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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심층진단(1)] ‘조국’ 반사이익, 2주 만에 까먹은 자유한국당 

黃에게 필요한 건 총선·대선 승리에 대한 집중력 

패스트트랙 가산점·‘벌거벗은 대통령’·박찬주 영입 등 잇단 실책
영남 관료 출신 측근들의 집단사고(group think) 늪에 빠졌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11월 6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보수 통합 방향을 제시했다.
2017년 5월 정권을 내준 뒤로 자유한국당은 대중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는 정당으로 전락한 듯했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의 그림자가 정권 교체 후 2년이 지나도록 자유한국당을 무겁게 짓눌렀다. 지지율은 끝없는 나락을 헤맸다. 예컨대 한국갤럽 여론조사의 8월 2주차 한국당 지지도는 18%. 탄핵 직후 보수가 분열된 상태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얻은 24%에도 못 미치는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그사이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를 선출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하는 등 재기에 안간힘을 쏟았으나 반짝 반등하던 지지율도 예외 없이 고꾸라지는 등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줄기 서광이 내리쬐었다. 8월 9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여론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은 앉아서 반사이익을 챙기는 등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조국 사태’가 절정에 이를 즈음인 10월 3주차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7%를 찍으며 더불어민주당(36%)과의 지지율 격차를 한 자릿 수인 9% 포인트까지 좁히며 바짝 압박해 들어갔다.

거기까지였다. 조국 전 장관 사퇴 이후 여야의 지지율 격차는 다시 벌어졌다. 11월 2주차 한국갤럽 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3%로 더불어민주당(40%)에 17% 포인트나 뒤졌다. 불과 2~3주 만에 8% 포인트가 빠졌다. 잠시나마 자유한국당에 힘을 실어줬던 국민 여론이 다시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뭐가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거듭되는 실책이 민심이반을 자초한 결과라고 본다. 자유한국당이 심대한 과오를 저질렀으면 크게 혼을 내고 반성케 할 텐데 그 정도 깜냥도 아닌 엉뚱하고 어이없는 악재들이 꼬리를 이었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국민의 눈높이를 벗어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자유한국당에서 일어난다”면서 “그것도 형식만 달리할 뿐 같은 내용의 실수가 되풀이되면서 정당으로서의 진정성에 의문을 품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자유한국당의 좌충우돌 행보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등 피로감을 안겼다. 10월 24일 자유한국당은 조국 전 장관 인사청문회 TF팀 소속 의원들에게 보상 차원의 표창장을 수여했다. 정작 상을 받아야 할 쪽은 서울 광화문 집회에 참석해 조국 사퇴 여론에 힘을 실어준 일반 국민인데도 자유한국당은 그 공을 자신들에게로 돌리는 자충수를 뒀다는 평을 받았다.

여론 역행하는 언행 줄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한 자유한국당 유튜브 채널의 ‘벌거벗은 임금님’편. / 사진:한국당 유튜브 채널 [오른소리] 화면 캡쳐
더구나 이 자리에서는 국민의 눈높이를 벗어난 황당한 제안이 돌출했다. 표창장 행사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에 동참한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자고 했다. 이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을 위해서 희생과 헌신한 분들에 대해 그에 상응한 평가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반드시 그런 부분도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인적 쇄신 과제를 안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의원에 대한 가산점 발언에 여론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에 황 대표는 이튿날 “가산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바 없다”고 말을 바꿨다.

자유한국당은 조국 사퇴 이후 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더불어민주당에 공세의 빌미를 주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이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린 ‘벌거벗은 대통령 애니메이션’이 그랬다. 문 대통령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등장시키고, 문 대통령을 ‘문재앙’이라고 비꼬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천인공노할 내용으로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면서 “문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인내력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고 반발했다. 자유한국당은 덴마크 동화의 벌거숭이 임금을 차용한 정치풍자라고 해명했지만 ‘도가 지나쳤다’는 내부 반응도 낳았다.

실책의 화룡점정은 ‘공관병 갑질’ 논란의 박찬주 예비역 육군 대장 영입 논란이었다. 박 전 대장은 황교안 대표가 대전까지 내려가 모셔온 영입 1호 인물이다. 박 전 대장은 재판에서 대부분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지만 군 내부 갑질 논란의 당사자였다는 점에서 영입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견해가 제기됐다. 내부의 비토 여론에도 황 대표는 “정말 귀한 분”이라고 그를 옹호하는 등 애착을 보였다. 결국 “군인권센터 소장은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박 전 대장의 발언으로 그의 영입은 없던 일로 막을 내렸다.

이런 논란과 구설수 끝에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수도권 한 중진의원은 “자유한국당은 조국사태 이후 조성된 지지율 상승의 기회를 실언과 헛발질로 날려 버렸다”면서 “각종 당무 처리 과정에서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개혁과 보수 통합의 중요한 모멘텀을 상실한 점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의 책임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에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이 늘어난다. 당내 사정을 아는 이들은 잇단 패착의 책임을 황 대표의 이른바 ‘밀실 리더십’과 결부 짓기도 한다. 측근 위주의 소수 인원으로만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당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황 대표는 매일 오전 박맹우 사무총장과 추경호 전략기획부총장, 김도읍 비서실장 등 핵심 측근들과 일일점검회의를 한다. 주요 당무와 관련한 1차 의사결정이 대개 이 회의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논란을 일으킨 박찬주 전 대장 영입 건은 당 최고위원들은 사전에 몰랐고 당 인재영입위원장인 이명수 의원의 경우 “1차 인재영입 당시 관여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밀실 리더십’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또 내년 총선을 앞두고 꾸려지는 여러 당내 기구의 구성원들은 다양성과 참신성에서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자주 받는다. 심지어 황 대표가 자신과 가까운 인사들을 요직에 심는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9월에 구성된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 명단을 보면 위원장에 박맹우 사무총장을 비롯해 추경호 전략기획부총장, 원영섭 조직부총장, 이진복·홍철호·이은권·최연혜 의원이 포진했다. 박맹우 총장과 추경호 부총장은 대표적인 황 대표 사람으로 통하고, 홍철호·최연혜 의원도 황 대표 취임 직후 꾸려진 상임특보단 멤버였다. 이은권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파’가 대거 들어가 있는 초·재선 모임 ‘통합과 전진’에 속해 있다. 이진복 의원은 한선교 전 사무총장이 사퇴했을 때 황 대표가 후임 사무총장으로 고려했던 인물이지만, 탈당 이력을 내세운 친박의 반대로 무산됐다. 황 대표의 조강특위에는 외부인사가 한 명도 없다. 지난해 10월 당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7명의 조강특위 위원 중 4명을 외부인사로 채운 것과 대조를 이룬다.

‘밀실 리더십’ 배경엔 공무원·영남 출신 측근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11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열린토론, 미래: 대안 찾기’ 토론회 중 황교안 대표에게 전날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11월 4일 출범한 총선기획단도 조강특위와 비슷한 실루엣을 느끼게 한다. 기획단장에 조강특위 위원장인 박맹우 사무총장이, 총괄팀장은 이진복 의원이, 간사는 추경호 전략기획부총장이 맡았다. 기획단 위원으로는 김선동·박덕흠·박완수·홍철호·이만희·이양수·전희경 의원과 원영섭 조직부총장, 김우석 당대표 상근특보가 포함됐다. 총선기획단 12명 가운데 5명이 조강특위 위원이다. 친황계로 꼽히는 김선동·박완수 의원과 함께 대변인인 전희경 의원, 지근거리에서 황 대표를 보좌하고 있는 김우석 상근특보 등 대표 측근들이 총선기획단의 주축을 이루는 셈이다.

당내 사정에 정통한 이들에 따르면 황 대표의 측근 인사들로는 앞서 언급한 박맹우 사무총장과 추경호 전략기획부 총장을 비롯해 김도읍 당 대표 비서실장, 김재원·박완수 의원 등이 우선 거론된다. 이들은 모두 영남 기반의 관료 출신 정치인이다. 울산시 건설교통국 국장 출신 박맹우 사무총장의 지역구는 경남 통영, 대구시 달성군이 지역구인 추경호 전략기획부총장은 기재부 제1차관, 국무조정실장 등을 거쳤다. 행시 출신인 박완수 의원은 경남도 농정국장·경제통상국장, 김해부시장을 거쳐 경남 창원시 의창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김도읍(부산 북구강서구) 의원과 김재원(경북 상주) 의원은 황 대표와 같은 검사 출신이다.

물론 황 대표 주변에는 다른 복심들도 더러 있겠지만, 밖으로 비쳐지는 모습은 ‘관료 천하’를 방불케 한다는 수군거림을 낳는다. 관료들은 특유의 명석함과 치밀함으로 한국 산업화의 한 주역으로 기여했지만, 그들이 갖는 특유의 폐쇄성과 경직성 등 관료주의는 늘 비판과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정계에 입문한 관료 출신 인사들이 상대적으로 정치적 상상력이 떨어진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게다가 지금처럼 영남이라는 특정 지역 출신 정치인들이 당의 구심점을 형성하다 보면 전국적 형세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우려다. 김 의원은 “그들의 일상적인 인적 네트워크(관료)와 지역적 네트워크(영남)에서 수집되는 정보는 편향, 편중될 개연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자유한국당 수도권의 한 국회의원도 “수도권에서 후두둑 자유한국당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이 마당에 황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대구·구미·부산 등 영남권 위주로 맴돈다”며 “그렇게 해서 어떻게 전국 민심을 끌어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황 대표가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들이 빈축을 사거나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도 이런 인적 구조의 부작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11월 1일 공개된 황 대표의 색소폰 유튜브 홍보영상은 팍팍한 현실에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이질감만 잔뜩 불어넣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자유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황 대표의 유튜브 동영상은 난데없는 대선 후보 코스프레라는 질타를 받았다”면서 “황 대표 주변의 참모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당내 사정과 황 대표 스타일에 정통한 자유한국당의 한 소식통은 “황 대표 주변의 측근 인사들의 정치적 안목과 집중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다음과 같이 질타했다. “박찬주 전 대장뿐 아니라 다른 영입 인사들의 허물만 하더라도 정치 잔뼈가 굵은 사람들 눈에는 금방 드러나는 흠결이다. 그런데도 대표 주변 관료 출신 측근들은 그걸 분별해 내지 못하거나 간과한다. 그들의 눈높이가 자유한국당 지지층, 나아가 국민의 그것과 따로 논다는 것 아닐까. 그래서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당장 황 대표 앞에는 보수 대통합이라는 ‘허들’이 놓여 있다. 뛰어넘으면 가속도가 붙지만 걸려 넘어지면 레이스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황 대표는 11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보수 통합 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하지만 통합 논의는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통합추진단장에 내정된 원유철 의원이 과연 통합 논의의 적임자인가에 대한 당내 논란이 그것이다.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통합의 유력한 상대인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과 친박계로 분류되는 원 의원 간의 신뢰관계에 의문을 던졌다. 유 의원은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이하 변혁)’을 이끌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변혁 사정에 밝은 정치권 한 관계자는 “황 대표 측근들은 결국 친박에 뿌리를 둔 인물들”이라며 “진짜 보수 통합 의지가 있다면 친박과는 거리가 먼 인물을 통합추진단장으로 내세웠어야 첫 단추가 쉽게 꿰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통합’ 허들에서 넘어지면 레이스 탈락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 넷째)가 11월 4일 총선기획단 임명장 수여식에서 박맹우 단장(왼쪽 셋째) 등 기획단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게다가 변혁에서는 황 전 대표를 둘러싼 영남권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면서까지 보수 통합에 헌신할 것인가도 반신반의한다. 자칫하다가는 보수 통합 논의가 본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김이 빠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보수진영에서는 전망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전임연구원은 “관료 출신 정치인들은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공직 시절처럼 수직적·폐쇄적 의사결정 구조에 익숙하다”면서 “비슷한 성향의 무리가 모였을 경우 집단사고(group think)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채 연구원은 “집단사고 경향이 강할 경우 이질성, 개방성 요소를 의식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케네디 대통령이 로버트 케네디에게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e) 역할을 부여한 것처럼 황 대표 역시 특정 집단을 벗어나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자유한국당 내 한 비주류 의원은 “황 대표가 나 같은 비주류는 안 만나준다”고 자조 섞인 푸념을 하기도 했다.

결국 참모를 기용하는 건 지도자의 몫이다. 정치인들이 갖는 태생적 한계와 관성은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관료 출신 영남권 정치인들이 어떻게 보면 자유한국당의 주류를 점하고 있고, 그들이 당의 중심부에서 활동하는 것도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할 것이다. 관건은 이들의 보좌를 받는 황 대표가 자신이 제시한 전략적 방향에 얼마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하는가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황 대표가 내년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전략적 목표로 한다면 그에 걸맞은 액션플랜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황 대표는 내년 총선까지 남은 대략 5개월 동안 당 내부 혁신과 외부와의 통합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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