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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심층진단(3)] 원내 세력화 기대에 헛물켠 정의당 

‘정치 현실’과 ‘진보의 이상’ 갈림길에서 방황하다 

진보 가치 유보하고 조국에 힘 보태자 지지세력 이탈, 기반 흔들
선거법 개정 수혜 노린 비판적 지지가 정책 정당 이미지 훼손


▎정의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도덕성 논란 국면에서 진보 정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9월 17일 국회에서 만난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 사진:오종택 기자
'국민 열 명 중 한 명’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진보 정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이다. 11월 초 ‘내일이 총선이라면’을 가정해 실시한 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9.0%였다. 일주일 뒤에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암담하다.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더불어민주당이 40% 선에 육박하는 동안 정의당은 6.3%에 그쳤다.

당장 1년 전과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8월 한국갤럽 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15%였다. 같은 조사에서 11%를 얻은 자유한국당을 제쳤을 정도다.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이 서거한 직후여서 애도 효과가 컸다. 노 전 의원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40~50대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해석이 따랐다.

지난해 정의당은 애도 국면에서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 외연 확장 효과를 누렸다. 신규 당원이 늘었고, 정당 후원금도 역대 최대 규모로 걷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정의당 후원금은 16억9400여만원으로 전체 정당 중 가장 많았다.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애도 정국이 끝나면서 국민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진보 정당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지지로 붙잡아두지 못한 것은 정의당에 뼈아픈 실책이었다. 중앙선관위가 집계한 올해 상반기 정당 후원금 모금액에서 정의당은 여전히 최고액(3억여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 비하면 크게 떨어졌다.

문제는 그 뒤부터다. 올 하반기 정국을 뜨겁게 달군 ‘조국 사태’의 유탄이 정의당에 튄 것이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고위직 인사에 관해 비교적 엄정한 기조를 유지해 왔던 정의당이 유독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인 게 발목을 잡았다.

당초 정의당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부적격 인사를 걸러내는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의당이 부적격 판정을 내린 공직 후보자는 거의 예외 없이 낙마했다. 문재인 정부의 첫 낙마자였던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나 최정호 국토부 장관 후보자, 조동호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대통령 임명직 중에도 정의당이 반대했던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과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그래서 정의당이 발표하는 부적격 후보는 ‘데스노트’라는 별칭이 붙었다. 군소정당이면서도 그 이상의 존재감을 인정받는 지위를 누렸었다.

하지만 일가족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른 조국 전 장관에 대해 정의당은 침묵했다. 조 전 장관에 대한 임명 반대 여론이 60%(8월 23~24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달했을 때도, 조 전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각종 혐의가 구체화한 9월에도 정의당은 상황을 ‘예의주시’할 뿐 입장 표명을 꺼렸다. ‘정의당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쏟아져도 요지부동. 정경심 교수가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된 뒤에는 오히려 조 장관 임명을 찬성한다고 시대의 흐름을 거슬렀다.

조국 정국 들어서며 여론 등 돌려


▎고(故) 노회찬 의원(왼쪽)과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오른쪽)는 진보 정당의 대중화를 이끈 간판 정치인이었다. / 사진:전민규 기자
당원들의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이는 심상정 대표의 철학과도 배치되는 일이었다. 심 대표는 6월 13일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세습자본주의’와 ‘경제 적폐’를 “불평등의 근본 뿌리”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국민은 정부·여당이 민생경제 개혁을 더 밀고 나갈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품고 있다”며 “정의당이 더 강한 개혁을 주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유독 조 전 장관의 부도덕성에 대해서만큼은 눈 감은 것을 두고 ‘민주당 2중대’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그렇다고 정의당이 스스로 검찰·사법개혁 의제를 주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급기야 당 지도부 태도에 실망한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탈당계를 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진 교수는 고 노회찬 의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정의당의 간판 논객이었다. 세 사람의 성을 따 ‘노유진’이란 애칭으로 불릴 만큼 대중적 인기가 높았다. 지도부의 만류로 탈당 의사를 거두긴 했지만 진 교수의 탈당계 제출은 조국 전 장관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참여연대를 비판하며 탈퇴한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과 맞물려 진보 진영의 이중성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으로 회자했다. 진 교수는 취재진과 통화에서 “평생 지켜온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느낌이었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말 못할 배신감이 들었다”고 당시 심경을 내비쳤다. 그는 11월 14일 서울대 사범대학에서 열린 강연에서 “원래 정의당은 조 전 장관 임명에 반대하고, 비판을 받게 되면 내가 등판해 사람들을 설득하기로 했었는데 당이 의견을 바꿨다”라고도 했다.

조국 정국에서 정의당이 겪은 부침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진보 진영에서 오랜 논쟁거리로 자리 잡은 ‘비판적 지지론’의 딜레마와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보 진영은 3대 정치 이벤트(총선·대선·지방선거) 때마다 민주 후보 중에서 ‘될 사람’을 밀어주는 비판적 지지와 진보 진영의 독자후보 추대론으로 갈라져 논쟁을 벌이곤 했다. 비판적 지지는 보수 후보에게 뺏기느니 범진보 후보가 낫다는 논리에 기반을 둔다. 반면 후자는 당선 가능성보다 진보 진영의 비전을 국민에게 전하는 데 의미를 둔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와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의 3자 대결이 펼쳐지자 민주 진영에선 후보단일화, 비판적 지지, 독자후보 추대로 갈라졌다. 양김 단일화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자, 민중후보로 추대됐던 백기완 후보는 군부독재 종식이 우선이라며 사퇴했다. 하지만 비판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양김 단일화에 실패하는데, 이때의 경험은 이후 주요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선거 전략을 짜는 교훈으로 남았다.

진보 진영의 입장이 하나로 통일된 적은 없지만, 대체로 보수와 범진보의 박빙으로 치러지는 경우 비판적 지지론에 힘이 실렸다. 특히 대선의 경우 여지없이 진보 정당 후보가 막판에 사퇴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일이 되풀이됐다. 총선에서도 지역구 후보는 민주당을, 정당 투표는 진보 정당을 찍어 비례대표로 원내 입성하는 것을 최선의 선거 전략으로 삼았다.

비판적 지지 전략이 가장 큰 효과를 본 것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독주 속에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약세를 보이자 진보 진영 내부에선 비판적 지지 여론이 퍼졌다. 당시 민주노동당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던 시민단체 활동가 A씨는 “투표일이 임박할수록 이회창,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좁혀지면서 ‘민주 정권을 지키는 게 우선’이란 주장이 힘을 얻었다. 격론이 있었지만, 민노당 지지자 중 상당수가 비판적 지지 차원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줬다”고 말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정에 발목 잡혔나


▎8월 22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정의당 지도부가 개혁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사진:김경록 기자
노무현, 이회창 후보의 표차는 57만980표. 불과 2.3% 차이의 신승이었다. 비판적 지지 전략을 취했던 범진보 진영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란 유행어를 만들어낸 권영길 민노당 후보가 100만 표를 얻는 선전으로 대중 정당의 발판을 마련했다. 2년 뒤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민노당은 13.2%의 정당득표율로 10석을 확보해 오랜 염원이었던 진보 정당의 원내 진출 꿈을 이뤘다. 이때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 중 상당수가 ‘지역구는 열린우리당, 비례는 민노당’의 선거 전략에 동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종의 보은(報恩) 투표였던 셈이다.

2007년 17대 대선은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워낙 큰 차이로 일찌감치 독주하는 바람에 비판적 지지론이 힘을 얻지 못했다. 이어진 2012년 대선에서 다시 한번 비판적 지지론이 힘을 받았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양강 구도에서 민노당의 후신인 통합진보당 후보였던 이정희 전 의원이 투표일 이틀 전날 전격 사퇴했다. 이 후보가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한 말은 당시 진보 진영에 널리 퍼졌던 비판적 지지론의 실체를 가늠케 한다.

최근의 조국 사태에서 정의당이 제 할 말을 하지 못한 것도 비판적 지지의 연장선이란 분석이 나온다. 과거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했던 한 진보 진영 인사는 “조국 장관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검찰·사법개혁 완수라는 대의명제를 이루려면 안고 가야 한다는 논리가 깔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보다 근본적으로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거법 개정 문제가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의 핵심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심상정 대표가 대표 발의했다. 심 대표는 지난 3월 17일 “산식(계산법)은 여러분이 이해 못 한다. 국민은 산식(을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셈법이 복잡하다.

국회에 상정된 선거법 개정안에 따르면 지역구 의석수는 253석에서 225석으로 줄고, 비례대표 의석수는 47석에서 75석으로 늘어난다. 비례대표 배분 방식에 따라 정당별 총 의석수 변화를 추정했을 때 최대 수혜자는 정의당이다.

라정주 (재)파이터치연구원 원장(경제학박사)이 분석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시 정당별 의석수 변화 시나리오를 보자. 민주당과 한국당의 의석수 우위 변화를 가정해 계산했을 경우 네 가지 시나리오에서 정의당이 확보 가능한 의석수는 최소 13석에서 최대 14석으로 나타났다. 지지율 6.7%로 가정했을 때의 수치다. 모든 경우의 수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정의당으로 분석됐다.

라정주 원장은 “준연동형 비례대표가 도입되면 정당 득표율을 높이는 게 가장 효과적인 선거 전략이 될 것”이라며 “지역구 선거에 약한 정의당 입장에서 원내 의석수를 획기적으로 불리는 데 이만한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중년의 ‘비장함’ 2030은 이해 못 해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뒤 정의당에 몸담은 이자스민 전 의원이 11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입당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임현동 기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정의당이 10석 이상 확보하는 데 성공할 경우 위상은 현재와 크게 달라진다. 우선 원내 교섭단체(20석 이상) 구성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현재의 두 배 수준인 연간 50억원 안팎의 정당 국고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연간 10억원이 넘는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정의당에게 상당한 매력이다.

정의당이 원내 전략에 치중해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외연의 한계와 고립도 그와 비례해 커지는 중이다. 특히 젊은 세대와의 단절에서 정의당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회찬·유시민·진중권이 당을 떠나면서 대중을 사로잡을 만한 간판 정치인은 심상정 대표가 거의 유일해졌다. 그만큼 그의 리더십이 갖는 책임도 크다.

최근에 한국당을 탈당한 이자스민 전 의원을 영입했지만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순애 정치평론가는 “기존에 있는 명망가 내지는 이름이 알려진 사람을 중심으로 한 인재 영입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의 기치가 청년 세대에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정치 평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정주식 [직썰] 편집장은 ‘진보아재와 진보청년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범진보 진영에서 청년과 중장년의 생각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는 한국당에 대한 시각차다. 40대 이상 소위 ‘진보아재’들은 한국당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보면서 한편으론 두려움도 갖고 있다. 2030세대는 다르다. 그들은 한국당을 비웃긴 하지만 무서워하지 않는다.”

2030세대에게 진보아재들의 정치는 너무 비장하고 엄숙하다는 게 정 편집장의 진단이다. “한마디로 ‘노잼(재미없다)’”이란 것이다. 중장년 세대가 보수와의 대결, 적폐 청산에 매몰돼 있는 동안 2030세대는 공정, 기후변화, 성평등, 동물권, 소수자 문제 등 새롭고 다양한 진보적 가치들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수호, 검찰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던 서초동 촛불 집회에 2030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저조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정의당 내부에서도 현실을 인식하고 해법을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상속·증여세 수입으로 국가가 매년 스무 살을 맞은 청년들에게 1000만원의 기초 자산을 주도록 하는 ‘청년사회상속법’을 내놓는 등 청년 공약 개발에 적극적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민주당의 진보적 색채가 강화하면서 정의당만의 차별화와 당위성에 대한 설득력이 줄어든 게 사실”이라며 “진보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정책 정당의 면모를 내년 총선에서 보여주는 게 심 대표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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