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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의 교차점에서 

사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는 것도 지혜다 

정치·경제·안보 대립의 여파로 서로에 대한 비호감도 급증
사람과 물자 교류 줄어들 때일수록 상대 자극하지 말아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11월 15일 청와대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 (왼쪽 둘째)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왼쪽)를 만나 지소미아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한국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11월 6일 한국 국민감정을 탐색한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조사는 2018년 4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 가운데 ‘북한과 일본이 전쟁을 벌이면, 한국 국민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항목이 있었다.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가 45.5%로 나타났다. ‘일본을 지원해야 한다’는 15.1%였다. ‘어느 쪽도 편들지 않겠다’는 39.1%였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2019년 10월 15일 자에 ‘혐한의 심리학’을 특집으로 다뤘다. 현재의 한·일 관계를 전후 최악이라고 봤다. 실제 한국의 ‘반일’은 좀처럼 꺾일 기미가 없다. 한국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일본 기업들에 실제적 타격을 입히고 있다. 일례로 일본 맥주 매출은 사실상 전멸 상태에 이르렀다.

한·일 관계가 악화한 7월 이후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숫자도 급감했다. 한국과 일본 규슈 각지를 오가는 항공 노선 수는 지난 7월 말 기준 주 281편에서 10월 하순 기준 주 149편으로 줄었다. 일본 정부 관광국이 10월 16일 발표한 ‘일본 방문 외국인 수’ 자료를 보면 9월 한 달 동안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20만1200명이었다. 1년 전 같은 달보다 20만1200명(58.1%) 줄어든 숫자였다. 항공뿐만 아니라 배를 이용하는 이용객도 줄었다.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시 하카타, 야마구치 현 시모노세키, 나가사키 현 쓰시마 등을 잇는 페리·고속선 등 정기 운항편의 4~9월 이용객은 43만3000명(한국인 36만134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6.6% 줄어든 것이다. 5년 만에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일본은 11월 14일 3분기 경제성장률을 발표했는데 수출이 0.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해외 관광객의 일본 내 소비를 수출 항목에 포함한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 담당상은 “한국인 관광객 감소가 3분기 수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시인했다.

반일의 상호작용으로 일본 민간 사이에선 한국을 향한 혐오 감정이 심화하고 있다. 일본 인터넷은 이미 ‘혐한의 바다’가 됐고, TV 와이드 쇼, 잡지, 출판 등이 가세한 가히 ‘혐한의 일상화’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혐한을 양성하는 일본 미디어의 책임’을 지적했다.

그 사례로 일본 4대 민영방송 중 하나인 TBS 와이드 쇼에 출연한 일본인 교수는 “일본 남자도 한국 여성이 일본에 들어오면, 폭행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지난 8월 말 한국인 30대 남성이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우연히 마주친 일본인 여성 관광객에게 가한 비하 욕설과 ‘묻지마 폭행’ 사건을 빗댄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 주간지 [슈칸 포스트]는 9월 13일 자에 ‘한국 따위 필요 없다’는 자극적 표지 기사를 게재했다. 일본 내에서도 격렬한 비판 여론이 생겼고, 이 회사는 사과했다. 그러나 이미 그 잡지는 지난 호에 비해 두 배 가까이 팔려나간 뒤였다.

또 우익 성향 작가 햐쿠타 나오키는 일본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 보증수표로 통한다. ‘햐쿠타 나오키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일본인들은 일본을 미화하는 그의 역사 해석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내 주위에 햐쿠타를 읽는 사람이 안 보이는데 책은 잘 팔린다’는 일본 내 반응이다. 숨어서 읽는 소위 ‘샤이(shy) 독자층’이 존재하는 것이다. 햐쿠타는 아베 신조 총리의 측근 그룹에 속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NHK 경영위원에 임명됐던 그의 배경에는 아베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이렇듯 한·일은 2019년 하반기 이래 쭉 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만 그리고 있다. 한국 여론은 일본의 수출 규제(화이트리스트 배제)가 구체화한 7월부터 급격히 나빠졌다. 이에 비해 일본 여론은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시점을 계기로 악화했다. 2019년 5~6월에 걸쳐 일본 비영리단체인 ‘언론 NPO’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가진 일본인(20%)보다 그렇지 않은 일본인(49.9%)이 압도적으로 많게 나타났다.

문 대통령, “일본과 군사정보 공유 어렵다”


▎아베 일본 총리(오른쪽)가 11월 12일 일본을 방문한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과 면담했다. / 사진:AP연합뉴스
NHK는 ‘일본인의 자신감’에 대한 여론조사를 지속해서 해왔다. ‘일본인은 다른 나라 국민에 비해 빼어난 소질을 갖고 있는가’, ‘일본은 일류국가인가’ 등에 관한 응답을 받았다. 1973년 고도 성장기부터 버블이 터지기 직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 이에 관한 긍정 답변은 치솟았다. 그러다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잃어버린 시대’가 도래하자 자신감은 바닥을 기었다. 그런데 200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그래프가 다시 올라가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최근 조사에선 일본 경제가 세계를 호령했던 1980년대의 그것과 같은 수준까지 상승했다. 정말 일본인들이 자신감을 회복한 것일까?

이런 맥락에서 혐한 정서도 접근할 수 있다. 후진국으로 취급했던 한국이 어느새 일본의 라이벌로 성장한 것이다. IMF의 구매력 평가에서 한국은 일본을 따라잡았다.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주요 한국 기업은 일본 기업을 뛰어넘고 있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넘어선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 내부의 우경화 흐름 속에서 자랑이었던 경제·기술력이 위협받는 와중에 한국과 얽힌 역사문제는 언제든 불붙을 뇌관이었다.

아베 내각은 이런 일본에 내재한 위기감과 반한 기류를 정치에 활용했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승리의 동력이기도 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일본이 7월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에 관한 수출규제로 보복하자 한국에서도 갈등을 관리해야 할 정치는 실종됐다. 조국 전 민정수석의 ‘죽창가’가 상징적 사례다.

불화는 8월 한국의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으로 격화됐다. 외교·안보 분야로 번진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의 진보, 보수 진영은 또 갈라졌다. 문 정부는 지지층 유지를 위해서라도 태세를 전환하기 어려워졌다. 그 여파로 다시 일본 여론은 악화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는 또 한국 여론을 자극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한·일의 대립 장기화가 두 나라만의 사안일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안보 축을 중시하는 미국은 한국의 지소미아 복귀를 시종일관 압박했다. 마크 내퍼 국무부 부차관보는 11월 2일 “지소미아 갈등으로 베이징·모스크바·평양이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한한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6일 청와대에서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과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재고 요청이 있었다는 전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11월 12일 일본을 방문해 아베 총리와 만난 뒤 “지소미아 시한 만료 전에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군사령관도 11월 12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지소미아가 없어진다면 주변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이틀 뒤인 14일 “내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소미아는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어떤 종료의 북한 행동에 관해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에 한·일의 행로를 묻다

이에 관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일본의 태도 변화와 한·일 관계 정상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11월 15일 에스퍼 장관, 밀리 합참의장 등을 접견한 자리에서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 일본과 군사 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문제는 진행형이지만 한국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 매각은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진행형이지만 일본의 추가 공격은 없는 상태다. 양국이 버티는 국면에서 균형이 깨지는 순간, 韓·日 관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 변곡점에서 길을 묻기 위해 서울대 일본연구소(JIS)의 석학들을 찾았다. 2004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일본의 정치·경제·역사·문화를 아우르는 종합 연구소다. 2008년부터 지급된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10년 만인 2018년 끊긴 뒤에도 1년을 버텼다. 그리고 2019년 국내 최대 규모의 장학재단인 ‘관정 이종환(삼영화학그룹 회장) 교육재단’에서 연구비 2억5000만원을 기부한 덕분에 고비를 넘기게 됐다.

월간중앙 송년호는 2019년 대한민국을 달궜던 이슈 중 하나로 한·일 갈등을 골랐다. 이에 관한 체계적이고, 다층적인 인사이트를 구하기 위해 한국 최고의 일본 전문 싱크탱크를 지향하는 서울대 일본연구소와의 공동 기획으로 특집을 진행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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