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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와이드 인터뷰]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가 말하는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이면 

“한·일 관계 복원해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훼손 안 돼” 

일본의 한국 압박, 북·일 회담 추진은 ‘자국 자산 강제 매각’ 공포에서 비롯
북·일과 ‘평화의 삼각형’ 구축한 DJ의 외교 전략은 文 정부에서도 유효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한·일 갈등 탓에 미국이 미·일 동맹으로 회귀하고 있고, 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부담일 수 있다고 봤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트리거는 당겨졌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소송 재상고심에서 ‘일본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는 원심을 확정했다. 이어 11월 29일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렸다.

역사문제가 불거지면서 한·일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아베 내각은 2019년 7월 1일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본은 8월 2일 화이트 리스트(수출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법령 개정안을 결정했다. 8월 7일 시행령이 공포됐고, 28일부터 실행됐다.

이에 한국 정부는 2019년 8월 22일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선언으로 맞받았다. 양국의 기싸움이 경제 문제를 넘어 외교·안보 사안으로까지 확산된 순간이다. 지소미아는 2019년 11월 23일 0시를 기해 기한이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 90일 전인 8월 24일까지 종료 의사를 서면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연장되는 구조였다.

한·일 두 나라가 시계 제로의 비탈길을 내달리는 시점인 11월 5일, 월간중앙은 남기정(55)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와 마주했다. 인터뷰의 포커스를 지소미아 복귀 여부의 타당성을 논하는 데 맞추지 않았다. 한·일이 이런 극한상황까지 오게 된 기원(origin), 한·미·일 동맹과 남·북·미 평화프로세스의 공존이 가능할 수 있는지를 국제정치학적 관점에서 살필 때, ‘지소미아의 정치학’을 온전하게 볼 수 있다.

남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석사,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호쿠대 법학부 교수를 거쳐 서울대 일본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 지식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의 제자였다.

“일본의 대화 거부는 그 자체로 메시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왼쪽부터), 키스 크라크 미국 경제차관,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 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동아·태 차관보는 11월 6일 한·일 관계를 포함한 지역 정세를 논의했다.
첨예한 이슈인 지소미아부터 얘기하자. 미국은 “베이징, 모스크바, 평양이 기뻐하고 있다”라며 한국의 복귀를 압박했다. 한국 정부가 부담을 느낄 법하다.

“미국은 처음부터 그런 입장이었다. 워싱턴 주류의 입장이다. 한국 정부도 미국에서 일정 정도 그런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이낙연 총리는 10월 22일 나루히토 일본 천황 즉위식에 참석해 친서 외교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11월 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아베 일본 총리와 11분간 예정에 없던 환담을 했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가 급해졌다는 해석도 나왔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이후 한국 정부가 일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화를 모색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듣는 여러 이야기에 따르면, 일본이 도통 대화의 공간을 열어주지 않았다. ‘우리 정부의 대화 노력에 대해 일본이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는 편이 오히려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은 이득이 없음에도 왜 대화를 거부해 왔을까?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금화(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 매각)는 일본이 생각하는 마지노선이다. 그것에 대해서 한국이 긴장감을 갖고 봐달라는 메시지라고 본다. 또 위안부 문제나 한국 대법원의 강제노동 판결에 대해 일본 여론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베 정권으로선) 이런 불만을 어느 정도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정서가 지난 7월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도 표출됐다.

“적극적으로 한국에 압박을 가해서 무언가를 얻어내겠다는 것보다 아무 대응을 하지 않고, 참의원 선거를 준비했을 경우에 감당할 부담이 컸을 것이다. 화이트 리스트 배제는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인 조치였다.”

역사문제와 얽힌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일본의 수출 규제를 불러와 경제문제로 비화했다. 어느덧 지소미아라는 외교·안보 문제로 정확히 1년 만에 퍼졌다. 문제는 지소미아가 한·일에 국한되지 않은 한·미·일의 사안이라는 지점이다.

“(미국이 한국보다 일본에 경도된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장제스가 중국 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밀려난 이후, 미국 동아시아정책의 중심은 일본이었다. 워싱턴의 주류는 미·일 동맹파다. 이들에게 한국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2018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미국의 중심을 한반도로 옮겨놓는 데 성공했던 것이었다. (한·일 갈등 탓에) 이게 다시(미·일 동맹 쪽으로) 원상복구 됐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듯하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지소미아는 제로섬 관계인 것인가?

“반비례까지는 아니어도 정합적이진 않다. 2010년에 지소미아가 논의된 상황(북한의 장거리 로켓과 핵 실험 이후)과 지금은 다르다. 당시 긴장국면에서 북한에 대해 한국의 정책적 ‘레버리지’가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2018년 4월 남북 판문점 선언, 6월 북·미 싱가포르 합의, 9월 남북 평양선언 등 (평화) 로드맵이 만들어진 상황이다.”

“한·일 관계 악화는 남·북·미 구도가 기원”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2018년 10월 30일 서초구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 선고를 내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예전 글을 보니 남 교수는 ‘유용성, 도덕성 여부와는 별개로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어떤 맥락이었나?

“냉전을 전제로 성립했던 동아시아 질서는 한·미·일 안보 삼각형이 지탱하는 구조였다. 이 틀을 바꿔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는 목표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고 표현된다. 구체적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다. 그 노력이 남·북·미 간에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미·일 안보 삼각형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지소미아가 부각될수록 남·북·미에 있던 미국이 한·미·일의 미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생긴다. 한·미·일의 자장이 세지면, 남북관계보다 한·일 관계로 우리가 끌려들어 갈 가능성이 커진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개입 없이 한·일 갈등이 해소되겠나?

“미국의 힘이 필요해서 기대는 것은 좋은데 그러면 한·미·일 관계가 더 세진다. 남·북·미 삼각형이 엉클어질 수 있다. 지금 약간 그런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두 삼각형을 저울질하면서 양쪽에서 재미를 보는 구도다.”

남·북·미 프로세스에 일본은 소외감을 가질 텐데.

“한·일 관계 악화의 직접적 기원은 10월 30일(한국 대법원 판결)이었다. 그러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8년(남·북·미 외교가 활발했던)에 그 기원이 있다. 일본의 이런 (한국 제재) 조처들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베가 있다.

“아베 총리와 주변 사람들이 정책 결정에 주도권을 갖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더 많은 액터(actor)들이 관여했다. 시간도 길었다. 그런데 이번(한·일 외교전)에는 신속하게 결정이 이뤄졌다. 거기에 관여하는 액터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일본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왜 그렇게 시스템이 변했나?

“아베에게 권력이 집중된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관료 우위였던 일본 사회가 정치 우위로 변화했다. 그중에서도 총리 관저가 주도권을 쥐었다. 그 핵심이 2014년 내각인사국의 설치다. 고위공무원의 인사권을 내각이 장악한다는 의미다.”

자민당 내 구주류들도 아베의 신주류에 의해 제압당한 듯하다.

“자민당 파벌정치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천권을 총재가 갖게 됐다. 예전에는 자민당 내부에 대안 정당이 있는 것처럼 굴러갔는데, 이제 대안세력이 생기기 힘들어졌다.(관료와 자민당을 장악하면서) 아베가 커다란 정치적 주도권을 쥐었고, 일방 외교의 전형인 화이트 리스트 배제로 표출된 것이다. 아베를 지지하는 주변 세력 중 핵심은 경제산업성 인맥이다. 이 가운데 이마이 다카야가 총리 수석비서관 겸 보좌관으로 있다. 이마이를 중심으로 한 경제산업성 라인이 2018년 남·북·미 프로세스에 일본이 어떻게 관여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절대적인 기술우위가 일본의 힘이라고 보고, 경제산업성 중심으로 (한국을 겨냥해) 수출 규제를 내놓은 것이다.”

일본 여론도 아베 독주 체제를 굳이 견제하지 않는 흐름이다.

“우경화 세력이 SNS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해 많은 국민을 포섭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일본은 견고한 현실의 틀을 가진 나라다. (미·일 동맹 틀 안에서) 평화헌법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리버럴들과 (미·일 동맹을 긍정하되 개헌을 꿈꾸는) 정치적 현실주의자의 대결 구도 속에서 가고 있다.”

북한과 일본이 ‘한국 패싱’한다면?

남북관계가 회복돼도 아베 정권은 미·일 동맹 틀에서 선회하긴 힘들 듯하다.

“미국과 일본이 함께 가면서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가 반드시 성공이 보장된 길이냐면, 꼭 그렇지도 않다. 미국(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왔다갔다 하고, 한계도 있다. 중국이라는 존재가 (미·일 주도를) 간단하게 놔두는 상황도 아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조금씩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 게 북·일 국교정상화다. 이쪽으로 일본이 조금 더 나오면 한반도 모멘텀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남·북·미가 아니라 북·미·일이 되는 그림인가?

“지금처럼 한·일 관계가 되어서는 한국이 주도권을 쥐기가 어렵다. 남북관계에서도 한국은 북한이 봤을 때, 부차적인 상대가 돼 버렸다. 일본도 한국을 거쳐서 가는 것보다 그대로 북한으로 직접 가거나 트럼프·시진핑·푸틴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국을 통해서 간다는 생각이 지금 일본에 없다. 오히려 북·일 관계의 진전이 한국에 더 큰 도전이나 시련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정부에 전략가가 부재한 것 같다”는 지적도 했었다. 한국이 그랜드 디자인을 짤 수 있을까?

“남북과 한·일을 같이 봤던 게 김대중 외교였다. 1998년 한·일 파트너십(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통해 밑변을 깔았다. 한·일 관계를 다져놓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김대중-김정일)으로 남북관계를 만들었다. 그 결과로써 2002년 북·일 정상회담(김대중-고이즈미)으로 연결됐다. 당시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도 한반도 주변에서 이런 외교를 끌어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DJ 정부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2000년의 남북관계가 2018년 판문점 선언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다음에 한·일 관계의 업그레이드로 가야 했는데 그 부분이 되지 않았다. 정부 분들과 이야기해보면 ‘나름 노력하는데 일본에서 받지 않는다’고 토로하더라. 대법원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처음 겪는 대일 외교에서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그래도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취할 것은 취하는 큰 그림을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정부가)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법률적인 접근을 취했다. 그러면서 정치가 뒤로 물러난 상황이 됐다. 그게 아쉽다.”

이 모든 사안의 근원은 ‘65년 체제’가 한계에 부닥친 여파 아닌가?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고, 1965년의 한·일 기본관계조약(이하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에 대한 정부의 공식 해석이 있다. 헌법에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우리 정부의 법통이라고 돼 있다. 이에 입각하면 그때 우리 정부는 존재했다는 해석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우리 정부가 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불법적인 것은 한국 입장에서 명확하다.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것은 기본조약 해석에서도 맞다.”

그러나 청구권 협정에서 한·일은 해석의 불일치를 남겼다.

“한국은 식민 지배의 불법성에서 출발하는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 문제는 빈 공간으로 남겨뒀다는 해석이다. 일본은 ‘청구권 협정으로 경제협력을 해줬으니 끝났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우리가 근본으로 들어가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고, 일본의 태도가 (무엇인지) 요구되는 것인데 전혀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전제는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베 정권에서는 비관적으로 비친다.

“일본이 줄곧 피해자 배상청구권을 거부해 왔던 것은 사실 현실적 문제였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순간, 배상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왜 또 우리가 배상해야 하느냐’는 감정이 일본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측의 역사 인식도 발전됐다. 그래서 홍석현 한일 비전 포럼 대표도 ‘우리가 일본에 더는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자. 그다음에 일본이 진지하게 불법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면, 문제를 풀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이 책임 인정하면 배상 요구 거둘 수 있어야”


▎1998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왼쪽 앉은 이)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도쿄 영빈관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중국이 일본에 그렇게 했다.

“‘우리는 배상권이 있지만,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피해자 개인 배상 청구권 문제는 일본 정부를 배제한 채, 피해자와 (강제징용과 관련된) 일본 기업들 사이의 화해로 나아갈 길을 열게 된다. 일본이 먼저 역사의 원칙에 대한 입장을 확실해 해주고, 한국이 그동안의 것들을 실질적 배상으로 간주해주는, 이것이 (과거사 화해에 관한) 중·일 방식이다. 이렇게 문제가 해결되면, 65년 체제의 안정화도 가능해진다.”

한국 정부가 6월 19일 ‘1(한국기업)!(일본기업)’로 피해자 배상을 해결하자는 제안을 했을 때 일본은 즉시 거절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11월 1!알파(한·일 국민 성금) 안을 들고 일본을 찾았다.

“사법 판결에 정부가 관여해서 풀어가는 모양새가 되면,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해왔던 논리와 어긋났기 때문에 고심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 정부가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어느 정도 한국 정부가 움직일 필요가 있다. 사법 판결에 관여하지 않는 형태로 한국 정부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가능할까?

“다른 트랙으로 우리 정부가 노력하는 것이다.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해 ‘우리 정부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면 줄소송을 우려하는 일본의 공포심을 덜어줄 수 있다.”

이게 풀려야 북·일 국교정상화와 남북한에 관한 일본 식민지배의 최종적 청산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2년 고이즈미와 김정일 사이에서 경제협력으로 ‘낙찰’을 봤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가 불거지며 유야무야됐지만) 북한도 결국 전쟁 배상, 식민지 배상, 개인 배상을 포기하는 상황이었다. 한·일간 역사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으면 북한에 대해서도 일본은 (그들의 방식을) 관철하려 할 것이다. 이때 북한이 박정희처럼 정말 현실적인 선택을 해서 ‘경제협력으로 좋다’고 한다면 우리 정부는 더는 일본에 요구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역사 문제를 북한에 들고 가서, 한국을 봉쇄하겠다는 생각이 아베의 전략에 없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지금 북·일 정상회담에 애착을 보이는 이면에 이런 의도도 담겨 있겠다.

“그런 맥락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일간에 큰 틀에서 해결을 보고, 그 방식을 북·일간에 적용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남 교수가 소개한 2017년 ‘후지산모임’ 전략보고서는 미국과 일본의 안보 브레인들이 작성한 것이다.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의 진짜 속내가 드러났겠다.

“그 1년 전인 2016년 일본 전략가들은 ‘희망의 미·일 동맹’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 말기에 나왔는데, ‘역사적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관계는 중요하다’는 주장이 녹아있었다. 그런데 2017년 보고서는 한국에 대해 거리를 두는 논조였다. 아베와 주변 전략가들의 사고가 드러나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한국과 관련된 결론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역사문제로 한·일 관계가 냉각한다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대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접근한다면, 미국과 함께 일본이 제동을 건다는 내용이었다. 인도·태평양으로 일본이 방향을 틀면서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됐다. 일본은 미국을 동아시아에 끌어 앉히는 데 주력하겠지만 그래도 미국이 빠져나갈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 것이다.”

한국은 일본에 몇 번째로 중요한 나라인가?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일본의 식민지배 불법성 인정에서부터 한·일 관계가 재구축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도 내심 한·미·일 공조 체제의 미래를 의심한 것인가?

“냉전기에는 미국이 가장 중요한 나라였고, 한국이 그 다음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인도·태평양으로 간다면, 미국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 다음은 중국, 러시아, 동남아시아다. 한국의 중요도는 역외국가인 영국·프랑스보다도 밑으로 내려간다. 한·미·일 안보 삼각형이 풀리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때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중요하지 않은 위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그렇게 갈 수도 있겠다.

“그런 위치에서 다시 중요한 위치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 그 동력을 유지해야만 이 지역에서 우리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미국이나 일본 상대로 어느 정도 외교를 펼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이게 굴러가지 않으면 우리로서는 계속 도전을 받는 상황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미국,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는 것을 두고도 한국은 딜레마일 수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인도·태평양은 인도양과 태평양 두 바다를 잇는다는 게 아니고, 아시아를 확대한 하나의 지역 개념이다. 마침 인도도 중요한 국가가 됐으니까 ‘인도까지 포괄하는 아시아’라는 의미에서 나왔던 것이다. 중국이 떠오를수록 일본은 지역 구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먼저 나왔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아시아 순방을 했었다. 그때 아베 총리가 처음으로 설명했고, 트럼프가 받았다. 그 뒤 트럼프가 한국에 와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한국 정부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도 인도·태평양 전략 합류를 한국에 강하게 권하진 않은 것인가?

“워싱턴 주류와 트럼프 백악관의 생각이 약간 다른 상황인 것 같다. 워싱턴 주류는 미·일 동맹, 인도·태평양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거기에 반대하진 않지만 완전히 찬성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오는 메시지도 그렇게 정확한 것은 아닌 듯하다. 아직 한국이 당장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지소미아 건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가는 부분도 있다.”

“더 큰 문제가 오지 않도록 하는 중간 단계의 노력을”

일본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과정에서 자국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싶어 하는 심정은 이해된다. 이에 관해 남 교수는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제재에 일본이 협조해주지 않으면, 순조롭게 되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개성공단과 금강산에 실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일본이 보기에 만일 한국이 한·미·일 공조라는 틀을 넘어서 민족 공조로 간다고 한다면, 이를테면 전략물자가 북한으로 유출된다면, 더 세게 나갈 수 있다. 기존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부품 관련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부문에서 일본이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기술력을 무기화해서 한국을 더 옥죌 수 있다는 뜻인가?

“핵 국가가 핵을 사용해서 무서운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지금까지 가시화되지 않았지만, (소재·부품·장비 특정 분야에서) 절대적 기술 우위가 일본에 있다. 이것이 일본의 한국 정책에서 강력한 레버리지로 들어올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훼손할 힘은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겠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일을 추진할 때, 일본의 협조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과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하면서 적어도 일본이 여기에 관여하지 않을 정도로 양해를 구하는 외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 매각을 실행한다면, 일본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개연성은 희박하다고 보나?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가시화시킨 것이 지금까지 몇 달 동안의 상황이었다. 양국 정부가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이를 피하는 노력을 한국과 일본이 할 수밖에 없다. 일본 기업 자산 강제 매각은 (한국 정부가) 내년 4월 총선까지 생각한다면, 할 수 없을 것이다.”

한쪽이 백기 들고 양보하는 일은 있을 수 없을 듯하다. 현실적으로 화해가 최선일 텐데.

“역사 문제와 외교·안보 문제는 분리해서 양자가 진지하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남북 화해와 같이 갔을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제대로 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간 새로운 관계 진입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개하는 데 필요한 단계로서 존재한다. (남북, 한·일 관계의 회복은) 같이 가야 할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외교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화이트 리스트 문제도 세 달이 흘렀는데 어느 정도 견디고 있는 국면이다.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닥칠 수 있겠지만, 그런 큰 문제가 오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보완 조치를 양국이 취하는 중간 단계의 노력이라도 필요하다. 양국이 ‘무언가를 한다’는 정도로 진정 국면을 가져가면서 새로운 협력 구도를 시작해보는, ‘한·일 관계의 재구축’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 녹취 정리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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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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