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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리포트] 북한이 시설 철거하겠다는 금강산 관광의 운명 

韓·美 향한 김정은의 연말 총력전이 시작됐다 

중대 결정 앞두고 백두산에 등장, 직후 금강산 철거 지시와 對美 경고 나와
北의 압박 이면엔 중국의 지원… 중국인들에게 금강산은 큰 매력 없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 이후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향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갑자기 눈 덮인 백두산에 백마를 타고 나타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으로 내려가서 폭탄선언을 했다. 북한 주요 관영 선전 매체들은 10월 17일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을 “백두영장의 준마 행군길”로 치켜세우며 절대 충성을 강조했다. 또한 김정은이 백두산에 오를 때마다 새로운 ‘전략적 노선’들이 제시되고 ‘세상을 놀래 우는 사변’들이 일어났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됐다. 김정은은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 발사 성공 직후 백두산에 올랐다.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은 미래를 예고하는 상징적 함의를 갖고 있다. 2013년 11월 그는 최측근과 함께 백두산 인근 삼지연군에서 고모부 장성택 처형이라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2011년 12월 30일 집권 이후 직면한 권력의 최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비밀 회동이었다. 서울에서는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했기 때문에 북한 내부가 불안하다고 평가했지만, 역설적으로 평양 입장에서는 이인자 행세를 하는 고모부를 처형하지 못하면 평양이 불안했다.

김정은의 최초 공식 백두산 등정은 2014년 12월이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 선친 김정일의 3주기를 앞두고 이른바 ‘백두 혈통’의 상징인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김정은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리는 리얼리티 쇼의 행보였다. 조선중앙TV가 방영한 ‘어버이 장군님을 높이 모시려라는 제목의 기록영화에는 김정은이 백두산 천지에 오른 영상이 포함됐다. 천지 주변은 흰 눈으로 덮여 있었고 김정은은 검은색 외투와 털모자, 장갑을 착용하고 천지를 배경으로 서서 감회에 잠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하거나 망원경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은 김정일 3년 탈상(脫喪) 이후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김정은의 ‘극장 정치’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 무대라는 백두산은 북한에서 정치적 정통성의 성지(聖地)다. 최고 지도자가 백두산을 방문하는 것은 과감한 결단과 결기를 예고한다. 김정은은 중대 결심을 할 때마다 백두산을 등정했다. 2017년 12월 9일 백두산 등정 후에는 남북화해 신년사 발표로 대남과 대미 정책을 강경에서 유화책으로 급전환했다. 이에 앞서 9월에 제6차 핵실험,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끝으로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하지만 한국의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밀물 전략에서 썰물 전략으로 노선 변경을 전격 결정했다. 과거 1989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대응해 현금 5억 달러를 들어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개최하고 금고가 텅텅 비어 고생하던 쓰라린 추억을 상기했다. 남측의 동계올림픽에 숟가락을 올리며 주연 행세를 결정했다. 국제적 고립보다는 스포츠 행사를 통해 김정은의 국제무대 등장을 서서히 준비했다.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대치국면에서 협상 국면으로 극적인 전환을 시도했다.

정책 전환 국면에서 백두산은 새로운 결단을 극대화하는 지리적 공간이다. 특히 삭풍에 눈 덮인 겨울 백두산은 고난과 분투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른다. 지난 10월 김정은의 백마 사진은 두 군데서 촬영됐다. 첫 번째 사진은 갑무경비도로에서 올라오는 모습으로 뒤쪽 왼쪽에 김여정, 오른쪽에 조용원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였다. 경사진 도로에서 올라오는 장면을 촬영해서 김정은의 높은 위상을 과시했다.

둘째 사진은 갑무경비도로의 설경을 배경으로 한 단독사진이었다. 세 번째 사진은 천지 근처에서 단독사진이었다. 태영호 공사의 주장대로 평양의 미림승마장에 있는 백마를 비행기로 미리 공수해서 승마 사진을 촬영했다. 2015년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에 참가한 인사들은 참관지역 중에서 미림승마클럽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클럽에 120여 마리의 말이 있다고 한다.

10월 중순이지만 북풍한설이 몰아지는 백두산 등정도 쉽지 않은데 거기다가 백마 사진을 촬영하느라 실무자들이 생고생한 것은 불문가지다. 백마는 항일 투쟁 시절 김일성의 주요한 이동수단이었다. 만주 일대에서 떠돌이 투쟁을 하던 시절 마땅한 이동수단이 없던 김일성 일당은 주로 말을 타고 이동했다. 2011년 12월 28일 눈 덮인 평양 금수산 광장에서 거행된 김정일의 장례식에도 수십 필의 백마가 등장했다. 김일성 광장 등 평양 시내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항일 투쟁 시절 활용됐다는 백마가 갑자기 나타나자 김정일이 과거 백마타고 항일투쟁을 전개했다는 아나운서의 해설이 조선중앙 TV에서 흘러나왔다.

사회주의는 상징조작에서 민주주의 국가보다 한 수 위다. 미국의 정치학자 찰스 메리암(Charles Meirram)은 정치에서의 상징 조작을 미란다(Miranda)와 크레덴다(Credenda)로 나눠 설명했다. 전자는 이성에 호소해 복종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으로 신조체계(信條體系)나 이데올로기 등을 가리킨다. 예컨대 자유라고 하는 가치를 강조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사회임을 보여줌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한다. 후자는 정서에 호소해 복종을 유발하는 노래·깃발·기념비·건물 등을 가리킨다. 예컨대 위엄 있는 건물에 의해서 의회가 더욱 권위적으로 느껴지거나 국가(國歌)나 국기(國旗)로써 귀속사회에 대한 일체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다. 백두산과 백마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삼부자의 최우선 크레덴다이다. 평양에서 무미건조한 연설을 하거나 영혼 없는 지시를 하기보다는 엄동설한에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서 이동하는 사진은 사생 결단의 고뇌를 대내외에 과시한다. 북한 인민들은 지도자의 비상한 모습에 바짝 몸을 낮추고 향후 행보에 주목한다. 미란다는 김정은의 선동적인 발언이다. 김정은은 이번 등정에서 ‘미국이 고통을 강요해와서 북한 인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럴수록 힘을 키워야 한다’라는 메시지도 발표했다. 인민들의 삶이 어려운 것은 미국의 대북 제재 때문이라는 논리다. 결국 미국과의 관계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으로 북미 관계 등에서 더는 대화에만 매달리지 않겠다는 중대결심의 예고편으로 읽힌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과 백마 퍼포먼스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가시적인 행동이 나오는 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닥치고 공격’ 행태는 대남관계부터 시작됐다. 북한은 그동안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협 사업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이라고 선전해 왔다. 하지만 김정은은 자기 아버지가 추진한 금강산 관광 등 대남 정책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김정은은 남북 경협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해 “잘못된 정책”이라고 혹평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은 금강산 관광 지구를 현지 지도한 뒤, “금강산 관광 사업을 남측을 내세워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백두산 백마 등정 후 첫 육성 지시로 ‘금강산 시설 철거’라는 초강수를 던졌다. 그간 요구해 온 남측의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대북 제재 완화에 진전이 없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며 대남 압박에 나선 것이다.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측 시설 철거 지시’로 위기를 맞은 금강산 관광 시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은 고성항과 해금강호텔, 온천빌리지, 고성항골프장 등 남측이 건설한 건물들을 둘러본 뒤 “민족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범벅식”이라며 “피해 지역의 가설 막이나 격리 병동처럼 들여 앉혀놓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남측의 관계 부문과 합의하여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고,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3대 세습 정권인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달리 후계자가 아버지를 비판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북한에서 신격화 대상인 김일성·김정일의 정책을 공개 비판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더구나 김정일의 아들이자 정치적 후계자인 김정은이 선대(先代)의 정책을 대남 의존적이라고 정면 비판한 것은 북한에서 최초의 사건으로 평가해도 무방하다. 김정은의 지시로 해금강호텔 등 7800억 원이 투입된 현대아산의 금강산 사업은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건설한 문화회관, 아난티 그룹이 투자한 ‘깔때기 홀’ 골프장 등 21개 시설물이 철거될 상황이다.

특히 북측은 대면보다는 문서로 철거 문제를 남측과 협의할 것을 제안했다. 북측은 문재인 대통령 모친상 발인 전날, 판문점을 통해서 조전(弔電)을 보내왔지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동해안으로 방사포 2발을 발사했다. 북측은 남북한 최고지도자의 조사에 조의를 표하는 관행은 유지하지만, 정치적 대치 상황과는 별개라는 입장을 보임으로써 혹시나 대화를 기대했던 청와대를 당혹스럽게 했다.

이로써 문 정부의 대북 정책이 갈림길에 서고 있다. 결국 1998년 10월 29일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간에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돼 같은 해 11월 18일 해로 관광으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게 됐다.

중국, 연 200만 명 관광으로 북한 지원


▎중국의 지원은 북한 외교의 지렛대다.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평양을 방문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의 금강산 시설 철거는 남측에 대한 압박임과 동시에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6월 21일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절묘한 힘겨루기 게임을 하고 있는 김정은에게 지원을 약속했다. 구체적인 지원은 식량과 대규모 중국 관광객 송출이었다. 모두 유엔 안보리 제재와 무관하다. 시진핑 주석은 유엔의 대북제재 대상이 아닌 관광객 송출을 통해 미국과 제로섬 게임을 하는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연간 200만 명의 숫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북·중 밀월로 중국인의 북한 여행이 크게 늘고 있다. 금강산 관광지구를 포함해 북한 주요 관광지에 중국 관광객이 급증했다.

북한은 중국 자본 유치를 위해 중국 기업체를 상대로 북한 관광 투자 홍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7월 필자가 방문한 북·중 국경도시 단둥에는 신의주를 통해 북한으로 가는 관광객이 줄을 이었다. 단둥의 호텔 1층에는 북한 전담 여행사들이 영업 중이었다. 시진핑의 6월 방북 이후 중국인의 북한 여행이 더 활발해졌다. 북·중은 목적지에 평양이 포함되지 않는 당일 관광인 경우, 중국인은 여권 없이도 중국 정부가 발급한 통행증만 있으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접근 장벽을 낮췄다.

북한에서 휴대전화와 카메라도 소지하는 등 여행 통제도 완화됐다. 단둥과 평양을 잇는 기차 노선은 빈자리가 없고 오전에 단둥에서 출발해 북한 신의주를 둘러본 후 오후에 다시 단둥으로 돌아가는 당일치기 버스 여행도 인기다. 침대 열차를 타고 평양과 금강산 등을 둘러보는 5~6일짜리 여행 상품에도 중국인이 몰리고 있다. 지난 7월 북한 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은 7월 하순부터 11월 말까지 올해 금강산 관광이 진행된다고 보도했다. 3박 4일 관광 일정에는 삼일포, 해금강 등 관광과 등산, 낚시, 온천 목욕 등이 포함했다. 과거 시즌 특별상품이었던 전세기 형태의 항공여행도 상설화했다. 북한 고려항공은 평양과 중국 베이징·상하이·선양 간 정기 노선에 이어 다롄·지난 노선도 열었다.

중국 관영 매체에서는 북한 관광산업 발전을 다루며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평양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올봄부터 북·중 접경 도시 단둥에서 평양으로 가는 국제열차표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중국에서 온 관광 버스로 평양역 주차장이 가득 찼다는 내용이다. 2016년 7월 문을 연 평양 미림항공구락부도 자주 소개되고 있다. 중국 국영 CCTV는 경비행기를 타고 평양 주요 건물과 관광지를 내려다보는 하늘 관광이 중국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의 허가와 지시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보도다. 북한으로 향하는 중국 여행객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5월 중국 국가여유국은 지난해 북한을 찾은 중국 관광객이 120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중국이 마지막으로 북한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 수를 공개한 2012년 관광객 수가 23만7000여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5배가 늘어났다. 중국인 관광객은 유엔제재를 우회하는 북한의 핵심 외화벌이 소득원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속에서 관광 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다. 김정은이 금강산을 철거하라는 과격한 지시를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 관광객 증가가 있었다. 200만 명 돌파는 시간문제다.

김정은은 8월 말 평안남도 양덕군에 있는 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시찰했다. 조선중앙방송이 스키장과 온천 휴양이 결합한 시설이라고 소개한 곳이다. 이곳엔 3개의 스키 활주로를 갖춘 스키장이 건설되고 있는데, 완공되면 북한의 세 번째 스키장이 된다. 2013년 김정은의 지시로 강원도 원산 근처에 만든 마식령 스키장도 단장에 들어갔다. 모두 중국 관광객 증대를 겨냥한 것이다.

북한은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 설명회도 개최했다. 북한 대외경제성 산하 조선대외경제법률자문사무소 변호사들은 올해 4월 베이징에서 중국 법률사무소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 외국인투자법과 26개 경제개발구역을 소개했다. 북한은 중국 기업가와 지방정부 등을 대상으로 원산과 금강산 관광지구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관광시설 확충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김정은이 10월 23일 남북 경협의 대표 사업인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한 게 알려진 후, 북한은 금강산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며 중국 자본 유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파트너’를 한국에서 중국으로 갈아치우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북한은 ‘금강산에 이어 개성공단의 남측 시설을 몰수하고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개발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를 흘리며 남측을 압박하고 있다.

금강산 시설물 철거라는 초강수를 발표한 직후 바로 미국에도 포문을 열었다. 김정은의 육성으로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방침을 밝힌 지 하루 만에 미국에 협상 개최를 압박했다. 미국과는 대화에 나서면서 한국은 철저히 배제하는 전형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이다. 외교 일선 무대에서 은퇴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10월 24일 김정은과 트럼프의 ‘각별한 관계’를 강조하면서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계관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라며 미국에 연말까지 새로운 타협 방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북·미 정상 간 친분을 강조하며 미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한 것이다. 동시에 여전히 정상 간 ‘톱다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기대를 밝혔다. 김정은이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 안에 3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제안했다. 북한은 스톡홀름 실무협상을 의도적으로 결렬시킨 뒤, 톱다운(top-down) 방식의 정상회담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동안 3차례의 상향식 실무회담은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한 만큼 예측 불가의 지도자인 트럼프 대통령을 은밀하게 유인하는 하향식 방식으로 워싱턴을 공략하겠다는 복안이다.

北 “미국의 시간 끌기는 어리석은 망상”


▎지난 10월 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로 나선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왼쪽에서 두 번째)는 스웨덴 스톡홀름 북한대사관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어 실각설이 나돌았던 김영철이 나섰다.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지휘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10월 27일 담화를 발표하며 미국에 시한을 거듭 상기시켰다. 김 부위원장은 담화에서 “조·미 관계가 그나마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형성된 친분 덕분”이라면서도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이 자기 대통령과 우리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을 내세워 시간 끌기를 하면서 연말을 무난히 넘겨보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지적했다. 북한과 미국이 지난해부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대화 국면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친분도 이제는 흔들릴 수 있다는 말로 미국에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특히 ‘올해를 넘길 생각을 하지 말라’는 김 부위원장의 발언은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사흘 전 발표한 담화에서 정상 간 친분을 언급하며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고 말한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김계관 고문과 김영철 부위원장이 시한을 언급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공개적으로 연말을 협상 시한으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주자는 최룡해였다. 권부의 핵심 라인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최룡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국제회의에 참석해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한국과 미국을 향해 각각 민족 공조와 대북 적대 정책 중단을 요구했다. 최룡해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18차 비동맹운동(NAM) 회의 연설에서 “지금 조선반도 정세가 긴장 완화의 기류를 타고 공고한 평화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일촉즉발의 위기로 되돌아가는가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최룡해는 이어 “김정은 동지는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룡해는 남북 관계에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지난해 북과 남, 해외의 온겨레와 국제사회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 속에 역사적인 북남선언들이 채택됐지만, 북남관계가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지향과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합되게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이 외세 의존정책과 사대적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북남 관계 개선은 남조선 당국이 민족공동의 이익을 침해하는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 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을 다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금강산 관광 재개는 가능한가?


▎2008년 금강산 관광 중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박왕자씨의 장례식. 이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다.
북한의 연말 대공세를 앞두고 정부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우선 북한이 대화상대로 접촉을 거부하는 바람에 운신의 폭이 크지 않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정부와 현대아산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개성)를 통해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금강산 국제관광국 앞으로 각각 통지문을 전달했다”며 “북측이 제기한 (철거) 문제를 포함해 금강산 관광 문제 협의를 위한 당국 간 실무회담 개최를 제의했으며, 관광사업자(현대아산)가 동행할 것임을 통지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편리한 시기’에 금강산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고 서면 협의를 고집하면서 남측을 겁박하고 있다. 우리 정부만 애가 타는 모습이다.

중국에 백두산과 금강산은 다르다

최문순 강원지사를 비롯해 여권과 대북 시민단체는 “미국 눈치를 그만 보고 금강산 관광 재개 협상에 나서라”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부 세미나에서는 개별로 금강산 관광에 나서고 정부가 허가하는 방식으로 유엔 대북제재를 우회하면서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북한은 연일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북한 매체[우리민족끼리]는 10월 28일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협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최근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사대 매국적 발언” “구차스러운 추태”라고 비난했다. 수세에 몰린 정부가 저자세로 나오자 대남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북한의 태도와 발언이 심하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북한도 그런 것이 우리 국민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식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중국 관광객 유치를 통해 금강산 관광을 활성화하는 전략이 성공할지는 현재로썬 미지수다. 사실 금강산은 한민족의 명산이지 중국인들에게 단지 한반도의 여러 산 중의 하나일 뿐이다. 중국이 자국의 10대 명산으로 선전하는 백두산(중국명 장백산)과 금강산은 차원이 다르다. 백두산은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상징이며 태평양 진출을 위한 동아시아의 거점이다. 금강산은 한국인이 애호하는 명산일 뿐이다. 필자도 금강산 관광 시절 3차례 방문했었다. 기암괴석과 계절별로 변화하는 풍광이 특이하지만, 산 중턱 바위에 붉은 글씨로 “김정일 장군 만세”와 같은 정치 구호가 새겨져 있는 모습은 매우 이질적이었다. 태산이나 장가계, 구채구 등 중국의 유명 관광지와 비교해 중국인들이 지속해서 매력을 느낄지는 미지수다. 중국인들의 금강산 방문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관광 열기도 시간이 갈수록 시들해질 것이다.

19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의 의미는 한국과 중국에서 차원이 다르다. 지난 2008년 7월 11일 북한 초병의 총격으로 관광객 박왕자씨가 사망해 중단되기 전까지 누적 관광객이 2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열기는 중국인들의 금강산 방문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결국 중국인의 금강산 관광은 남측을 겁박하기 위한 대체카드다. 북한은 한국이 유엔 제재를 이탈해서 금강산 관광에 나서라는 압력을 행사하지만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금강산에 끼어들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평양은 금강산에 한국의 투자를 유치하고 대규모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첩경은 하루빨리 북·미간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하는 비핵화 협상의 타결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지난 10월 국가대표 팀의 평양 축구 경기에서 드러났듯이 스포츠가 정치를 앞설 수 없다. 관광 역시 정치를 앞서갈 수 없다. 하루빨리 완전한 비핵화 협상 타결로 많은 한국인이 자유롭게 금강산 관광에 나서길 기대한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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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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