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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장관 2명이 실각한 아베 정권의 차기 주인은? 

힘의 중심은 스가(관방장관)에서 기시다(정조회장)로 기우는 중 

스가 장관이 야심차게 밀어붙인 경제산업장관, 법무장관 동반 중도하차
절대적인 ‘예스맨’ 기시다, 최장수 총리 아베 이후를 향한 암중모색


▎지난해 9월 아베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한 자민당 총재 경선이 끝난 뒤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를 외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11월 4일 태국의 수도 방콕.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등 13개국 정상 회의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대기실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10분 남짓 말을 주고받았다. 서로 영어 통역을 대동한 1대1 대화였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귀국 후에 이렇게 전했다.

“이번 대화는 한국 측 요구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옆에서 찰칵찰칵 ‘증거사진’을 찍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양국 관계 조기 개선을 요구하며 그를 위해 한·일 외교 당국 간의 협의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아베 총리는 양국의 현안 사항인 징용공 소송의 판결과 관련해 청구권 문제는 1965년 국교정상화 당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원칙론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11월 22일로 다가온 양국의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유효기간을 연장해 줄 것을 문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지금 전한 것은 어디까지나 일본 측의 주장이다. 한국 측에서는 다른 주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도쿄에서 날마다 취재를 하면서 느끼기로는 일본 정부 내에서 한국과의 지소미아 종료에 대한 위기감이나 초조함은 거의 없다. 아베 총리의 측근 관료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과의 지소미아는 종료되어도 상관없다. 다음과 같은 5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한·일 지소미아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쪽은 한국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북한이 발사하는 미사일의 착탄 부분(떨어진 지점)에 대해서는 일본 측이 정보를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측이 가지고 있는 발사 부분에 대한 정보는 북한 매체에도 어느 정도 보도되고 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착탄 정보인 것이다.

둘째, 일본 내 여론이다. 현재 일본 여론은 압도적으로 ‘한국과의 지소미아를 파기하려면 파기하라’는 것이다. 즉, 한국에 대한 감정은 굉장히 차가워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일 지소미아가 효력을 잃어도, 그로 인해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질 일은 없다.

셋째, 미국의 존재다. 지소미아 파기 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미 국무부나 국방부는 어떻게든 해결하라고 종용하고 있다지만, 그것은 결국 한국 정부가 결정할 문제다.

넷째, 2016년 이전까지는 한국과의 지소미아는 없었다. 비록 지소미아가 종료된다고 해도 원래대로 돌아갈 뿐이지 일본이 사활을 걸 만큼 곤란한 문제는 아니다.

다섯째, 이것은 나 개인적 견해이지만, 한국이 일본과의 지소미아를 파기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한국이 일본을 가상 적국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일본 역시 미래에 한국을 가상 적국으로 만들 준비를 당당하게 추진해 나가는 마음가짐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의 아베 총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국과의 지소미아가 끝나는) 11월 22일이 아니라, 그 이틀 전인 11월 20일이다. 총리는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11월 20일은 아베 총리가 총리 재임 일수로 2887일에 이르는 기념일이다.

일본에서 헌정이 시작된 때가 1885년(메이지 18년) 12월 22일이다. 초대 이토 히로부미 총리에서 시작돼 지금까지 총 62명이 일본의 최고 권좌에 올랐다. 그중 최장수 총리는 1901년부터 1913년까지 단속적으로 세 번에 걸쳐 총리를 지낸 가쓰라 다로 전 총리로, 재임 일수는 총 2886일이었다. 11월 20일이 되면 아베 총리가 드디어 가쓰라 내각을 제치고 과거 134년의 일본 헌정 역사에서 최장수 총리로 등극하는 것이다.

원하는 누구에게나 일자리를 제공


▎지난 2012년 선거운동 당시 아베 총리가 한 선거운동원의 코트에 짧은 글을 남기는 모습. 스가 관방장관이 옆에서 옷감을 평평하게 잡아주고 있다. / 사진:아베 총리 페이스북
왜 아베 총리는 이토록 장기집권을 할 수 있는가? 아베는 11월 9일에 발매된 월간 [문예춘추] 12월 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2012년 12월 제2차 정권이 출범했을 때, 국민 여러분이 원했던 것은 정치의 안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날마다 긴장하며 온 힘을 다해 오늘까지 왔습니다. (중략)

우리는 2012년 12월 선거에서 ‘일본을 되찾겠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오랫동안 지속된 디플레이션에 종지부를 찍고, 강한 경제를 되찾을 것을 국민 여러분에게 약속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나 중소기업의 연쇄도산에 제동을 걸겠다는 약속입니다. (중략)

그 결과, 정규직의 유효구인배율(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도 사상 처음으로 1을 넘었습니다. 정규직을 원하는 구직 1인에 대해 한 사람 분의 정규 일자리가 존재하는, 그러한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에는 다음의 4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본인도 말했듯이 경제 문제를 정책 과제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제1차 아베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에서 아베 총리는 지론인 ‘헌법 개정’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내걸고, ‘아름다운 나라 만들기 내각’을 슬로건으로 삼았다. 그러나 당시의 일본인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던 경기침체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길 바라고 있었는데, 한 조사에서는 헌법 개정은 ‘국민이 바라는 것’ 중에 13번째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아베 총리가 ‘하고 싶은 것’과 국민이 ‘원하는 것’과의 괴리가 생기면서 내각 지지율은 점점 하락, 급기야는 아베 총리 자신의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되어 게이오대학병원에 입원하면서 아베 총리 스스로 총리의 자리를 내던져 버렸다.

그 이후 아베 총리는 5년에 걸친 와신상담의 기간을 통해 2개의 과제를 극복해 나갔다. 하나는 자신의 건강 문제이다. 난치병인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 ‘아사콜’이 후생노동성에 인가되면서 아베 총리는 이 약을 처방하면서 서서히 건강을 회복해 갔다.

또 하나는 경제를 공부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필사적으로 경제를 공부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공부법은 경제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소위 ‘귀동냥 학문’이다. 기업 경영자와 경제학자 등을 초대해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경제 공부 자리에 불려간 사장 중 한 명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베와 식사하면서 국가의 운영과 회사의 경영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베는 메모도 하지 않고, ’그렇군이라고 연신 맞장구를 치며 경청했다. 그런데 며칠 후 TV를 보니 아베가 내가 한 말을 마치 자기 소신인 듯 말하고 있더라. 정말 요령이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감탄했다.”

2012년 12월 26일 제2차 아베 내각 발족 당시 아베 총리가 취임 회견에서 강조한 것은 경기 회복이었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3개의 화살’에 얽힌 고사(전국시대 장수인 모리 모토나리가 세 아들에게 ‘한 화살은 부러지기 쉽지만 세 개가 모이면 부러지지 않으니 세 명이 결속하라’고 설파했다)를 이용해 자신의 경제정책을 설명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화살이 금융 완화, 둘째 화살이 공공투자(인프라 건설), 셋째 화살이 규제 완화에 의한 민간 활력의 활용이다. 이는 어느덧 ‘아베노믹스’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아베 총리 본인도 이 명칭을 마음에 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악몽 같았던 민주당 정권으로 돌아가도 좋습니까?”


▎지난 5월 자민당 기시다파의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서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앞줄 오른쪽 둘째)과 참석자들이 건배하고 있다. / 사진:지지통신
어쨌든 아베 정권 출범 후의 5년(2012년~2017년) 동안 명목 국내총생산은 494조 엔에서 사상 최대인 549조 엔으로 늘어났으며, 취업자는 270만 명이 증가하고, 실업률은 사상 최저인 2.8%까지 떨어졌다.

아베 장기집권의 두 번째 이유는 그전에 3년 3개월 동안 계속된 민주당 정권이 너무 허술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 시절의 대부분의 기간을 필자는 베이징에서 일본계 문화공사의 주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 업무 중 하나로 일본에서 오는 정·재계 사람들의 방중 지원이 있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가스미가세키(중앙관청)를 적대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무성이 통괄하는 베이징의 일본대사관과도 사이가 나빴다. 그래서 원래 베이징 주재 일본대사관이 하는 것과 같은 업무를 우리가 일부 대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도쿄에서 오는 민주당 의원들의 일정을 코디하거나 통역을 하는 일 등이었다.

당시 베이징을 방문한 여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접대했는데, 그들은 기가 막힐 정도로 국제 감각이 떨어졌다. “무조건 직위가 높은 중국인을 만나서 사진을 찍고 싶다” “10위안에 살 수 있지만 1000위안처럼 보이는 선물을 사고 싶다” “경찰에게 들키지 않고 젊은 중국 여자를 만나고 싶다” 등등.

2006년 말 오랜만에 자민당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마음이 놓였다. 그 후 아베 총리는 선거에서 5연승을 했는데, 연설에서는 항상 즉각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계속 쏟아냈다. “여러분, 일본이 다시 한번 그 악몽 같았던 민주당 정권으로 돌아가도 좋습니까?”

아베 장기집권의 세 번째 이유는 일본의 동맹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권을 완전히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아베 총리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궁합은 솔직히 말해서 별로였다. 2012년 말 총리에 복귀했을 때 아베 총리는 즉시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화를 넣어 한시라도 빨리 워싱턴으로 날아가 인사하고 싶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매정한 태도로 인해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2013년 1월에 오바마 행정부 2기를 맞았다.

트럼프를 지렛대로 한 일본의 국익 챙기기


▎아베 일본 총리가 10월 31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약식 기자회견 도중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가와이 가쓰유키 일본 법무부 장관이 이날 오전 사직서를 제출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2017년 1월 미국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로 바뀌면서 두 정상은 밀월관계로 접어들었다. 아베 총리와 가까운 자민당 의원들은 말한다.

“아베는 1991년 첫 당선 이후 자민당 내에서는 ‘요령의 아베’라는 별명이 생겼다. 3대째 정치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서인지 엄청나게 요령이 좋았기 때문이다. 요령이 좋다는 것은 언제나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민당 내에서 정책을 실현하자면 ‘당내 어른들(중진의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보통은 먼저 그 분야를 충분히 공부하고 나서 어르신들께 찾아가 정책의 필요성을 필사적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아베는 공부도 안 하고 최고 중진들에게 갑자기 찾아가 골프라든가 그들이 좋아할 법한 잡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리고 그들의 기분을 좋게 만든 다음, ‘그런데 OO의 안건입니다만…’이라는 말로 동의를 얻는 식이다.

이 방식은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통용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통했다. 아베 총리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상사로 모셨던 자민당의 대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밀월을 쌓음으로써 일본은 어떤 점이 이로울까? 이 의원이 계속해서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좀 특이한 까닭에 전 세계에서 밀월관계를 맺고 있는 정상이라고는 아베 외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도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복잡한 중동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국제무대에 나설 수 없다. 그래서 유엔 총회나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서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아베 총리에게 정상회담 의뢰가 쇄도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 안건을 전달해 달라’ 등의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면 아베 총리는, ‘그건 전해 줄 테니 대신 ○○ 안건을 부탁한다’고 역 제안한다. 이런 식으로 일본의 국익은 신장된다.”

아베 장기집권의 네 번째 이유는 유력한 후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주요 언론은 매월 1회 내각 지지율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 결과를 발표한다. 그중에서 아베 총리 지지자에게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항상 톱은 “다른 사람보다는 낫다” 아니면 “다른 사람이 없기 때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여당인 자민당에 인재가 없다는 게 아니다. 아베 총리는 후계자 물망에 오를 정치인의 권력 확대를 교묘하게 막아 온 것이다.

최대 라이벌은 2011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결선 투표까지 갔던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다.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는 처음에는 “당내 일치단결”을 주창하며 이시바를 자민당 2인자인 간사장에 발탁했다. 2014년 9월에 개각했을 때에는 지방창생 담당 장관에 앉혔다.

최대 라이벌을 오히려 ‘내 식구’로 받아들이는 편이 상대방 운신의 폭을 좁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시바의 입장에서도 중책을 맡아 실적을 쌓는 게 국민과 자민당에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2016년 8월, 두 거물의 인내는 한계에 이르렀다. 이시바는 계속 아베 내각에 편입돼서는 영원히 자기의 순서가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아베 총리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을 가까이 데리고 있는 것보다 철저히 말려 죽여 버리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 이시바는 내각을 이탈했다.

잠재적 경쟁자 견제하기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가와이 가쓰유키 일본 전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부인 안리. / 사진:연합뉴스
지금까지는 ‘이시바파’만이 자민당 9파벌 중 유일한 ‘반(反) 아베’를 관철하고 있다. 그러나 세력은 당내에서 여섯번째로 19명밖에 되지 않고, 게다가 몇몇은 이탈 조짐까지 보인다. 추종자 중에는 이대로 이시바 밑에 있다가는 출세는 고사하고 다음 선거까지 위태로워진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시바는 ‘포스트 아베’에서 탈락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한 손실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시바는 아베 총리와의 갈등 외에도 두뇌는 명석하지만 냉정하다는 평을 듣는 게 단점이다. 필자는 단 한 번 인터뷰했지만 바로 그런 인상을 받았다. 그의 눈빛에는 초면인 기자를 깔보는 듯한 뭔가가 서려 있었다.

필자는 아베 총리도 한 번 인터뷰한 적이 있다. 본심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성실하게 취재에 응해 주었다. 총리로서 어느 쪽에 투표하고 싶은지 묻는다면? 이성적으로는 두뇌가 명석한 이시바겠지만, 감정적으로는 아베에게 한 표를 줄 것 같다.

아베 총리의 후계자로는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이 거론된다. 기시다는 자민당의 네 번째 파벌인 ‘기시다파’ 47명을 이끌고 있다. 히로시마 출신으로, 자민당 내 우파인 아베 총리와는 대조적으로 자민당 좌파에 속한다. 하지만 아베 총리와 사이가 나쁘지 않다. 오히려 아베 총리에게서 성심성의껏 ‘선양’을 쟁취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앞서의 아베 총리와 가까운 정치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시다는 제2차 아베 내각이 출범한 2012년 12월부터 2017년 8월까지 4년 9개월이나 외무장관을 지냈다. 아베 총리로서는 ‘절대적인 예스맨’인 기시다가 더 오래 외무부를 맡아주기를 바랐지만, 기시다 쪽에서 ‘당내 업무를 보게 해달라’고 제의해 정조회장으로 자민당 본부에 입성한 것이다. 외무장관은 항상 ‘외국’을 향해야 하지만 이제는 ‘당내’를 향해, 아군을 늘려 ‘포스트 아베’의 기초를 다지고 싶다는 것이다.”

이 측근 의원에 따르면 기시다가 4년이 넘는 외무장관 재임기간 중 아베 총리에게 자기주장을 한 적은 단 한 번밖에 없었다고 한다. 2016년 5월 이세시마 G7(선진국) 정상회의 후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들르게 해 달라고 간청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히로시마 출신의 기시다는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해 진정한 의미의 ‘히로시마의 전쟁’을 끝내려고 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아베 총리는 오랜 비원이었던 헌법 개정을 이제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내년 여름의 도쿄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이 끝나면 재빨리 총리에서 내려와 기시다에게 선양을 선언하지 않을까? 그리고 기시다 신정권의 뒤에서 킹메이커가 되려 할 것 같다.”

또 한 사람, 힘을 키워 온 사람은 아베 정권의 2인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다. 도호쿠 지방의 아키타현 출신인 스가는 고교 졸업 후 집단 취업의 일원으로 도쿄에서 일하면서 힘들게 호세이대학을 졸업했다. 그 후 정치가의 비서와 요코하마 시의원을 거쳐 1996년 국회의원이 되었다. 아베 총리나 이시바, 기시다 등과 다른 것은 부친을 계승한 2세 의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여러 계파를 전전, ‘책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가는 2011년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아베 총리를 탄생케 한 일등 공신이다. 그 논공행상으로 총리의 파트너 격인 관방장관에 발탁됐다. 짐작건대 아베 총리는 2세 엘리트도 아니고, 파벌도 없는 스가를 곁에 놔둬도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스가와 기시다의 새옹지마 각축


▎10월 24일 발간된 [문예춘추]에 스가와라 잇슈 경제산업장관의 비서가 지역구 주민의 장례식장에 부의금을 전달하는 사진이 보도됐다.
2019년 9월 11일 아베 총리가 개각했을 무렵 아베 정권에는 두 가지 권력구조가 형성됐다.

하나는 아베 총리,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 기시다 정조회장의 라인이다. 또 하나는 스가 관방장관과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의 라인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도 스가 라인에 줄을 대고 있다.

2019년 여름 시점에서 힘이 커지고 있는 쪽은 후자인 스가 라인이었다. 앞서의 아베 총리와 가까운 의원이 말한다.

“아베 총리는 9월 3일 아침 자민당 본부를 방문, 니카이 간사장에게 교체를 통고했다. 그러자 니카이 간사장이 격분했고, 그는 ‘이제 총리의 비원인 헌법 개정을 돕지 않겠다’고 응전, 결국 노련한 니카이 간사장은 간사장 유임을 쟁취했다. 그 시점에서 아베 총리는 전의를 상실, 스가 관방장관에게 개각 인사권을 통째로 맡겨 버렸다. 결국 스가 관방장관은 기회를 틈타 자신의 부하를 차례로 장관과 부장관에 임명했다. 그는 이번 인사를 통해 ‘포스트 아베’의 최고 유력자로 단숨에 올라서려고 했던 것이다.”

그 후 상황은 엉뚱하게 돌아갔다. 스가의 최측근으로 경제산업장관에 임명된 스가와라 잇슈가 스캔들에 휩쓸린 것이다. [주간문춘] 보도에 따르면, 스가와라 장관은 도쿄의 자신의 선거구 주민들에게 고가의 멜론과 귤, 게 등을 선물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에서는 정치인이 선거구 주민에게 금품을 보내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스가와라 장관에게는, ‘멜론남’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결국 10월 25일 경제산업장 관직을 사임했다.

또 10월 31일에는 다시 [주간문춘]이 가와이 가쓰유키 법무장관에 관한 스캔들을 보도했다. 이번에도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이다. 가와이 장관의 아내인 안리 여사는 히로시마의 현의원 출신으로, 올해 7월 21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 고향인 히로시마에서 입후보했다. 원래 이 선거구는 기시다 정조 회장의 측근이자 장관직을 역임한 77세의 베테랑인 미조테 겐세 의원의 텃밭이었다. 기시다 정조회장을 라이벌로 여기는 스가 관방장관이 자신의 측근인 가와이의 아내를 새로운 후보자로 내세운 것이다.

참의원 선거 당시 히로시마 선거구는 ‘스가와 기시다의 전쟁’이라는 해석이 따랐다. 선거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46세의 가와이 안리가 승리했다. 이에 크게 기뻐한 스가 관방장관이 남편인 가쓰유키를 법무장관으로 발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간문춘]에 따르면 남편 가쓰유키는 아르바이트 여성들에게 하루 3만 엔의 일당을 지불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일당의 상한선은 1만5000엔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안리 여사는 위법행위로 당선됐고, 그 당선의 공로로 남편인 가쓰유키가 법무장관이 되었다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게 된다. 결국 가와이 가쓰유키 법무장관은 이 잡지의 발매일인 10월 31일, 사정을 설명하지 않은 채 법무장관직을 사임해 버렸다.

두 장관의 전격 사임으로 인해 ‘포스트 아베’ 승부의 균형 추는 단숨에 스가 관방장관 측에서 기시다 정조회장 쪽으로 크게 기울게 되었다. 지난 7월과는 정반대로, ‘웃고 있는 기시다’, ‘울고 싶은 스가’의 형국이 된 것이다.

지금부터 1년 후에도 아베 총리가 총리를 계속하고 있을지, 아니면 기시다나 스가, 이시바 중 한 명이 정권을 거머쥘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일본 정계에는 ‘한 치 앞은 어둠’이라는 격언이 있다. 그 말 그대로 1년 후의 일본 정계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깊은 어둠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 콘도 다이스케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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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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