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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서울 제기동 실버멀티플렉스 풍경화 

“우리는 ‘콜라텍 세대’ 24시간이 모자라” 

눈치 주는 사람도 없고 가격도 저렴… “맘 편히 놀아 보겠다”
‘부킹’과 ‘즉석만남’ 통해 이뤄지는 은빛 로맨스


▎디스코 조명 아래 노인들이 제기동 소재 한 콜라텍에서 파트너와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 사진:박호수
"젊은 사람이 여길 뭐 하러 왔대. 할머니 찾으러 온 겨?”

“어린 아가씨는 부킹 못 해. 춤은 좀 추나 봐?”

가을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한 11월 초.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소재의 한 콜라텍을 방문한 기자에게 상가 관리인들은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냈다. 백발이 성성한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주로 찾는 콜라텍의 문을 20대 초반의 여성 기자가 두드린 까닭이다. 한 관리인은 ‘이곳이 젊은이들이 올 곳이 아닌데’ 라는 표정으로 기자를 물끄럼이 바라봤다. 방문 취지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뒤 홀 안쪽으로 발을 내딛자 한 노신사가 말을 걸어온다. “젊은 사람들 가는 곳보다 더 신나 보이지? 여기 있으면 시간 가는지 몰라. 하루가 너무 짧아.”

“취재차 이곳을 찾았다”는 기자의 질문에 흔쾌히 응한 그는 콜라텍에 얽힌 에피소드 등 경험담을 술술 풀어놓았다. 성명을 묻는 질문에는 “이름? 뭐 그런 게 중요해? 다들 그냥 ‘미스터 남’으로 부르고 있어”라며 다음과 같이 귀띔했다. “이곳에 계신 분들에게 성함과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큰 실례야. 붉은 디스코 조명 아래 모두가 그냥 ‘청춘’이지.”

계절이 겨울의 문턱으로 다가갈수록 탑골공원이나 경동시장 같은 외부 공간보다는 아늑한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장소로 노인들의 발길이 향하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콜라텍. 기자가 둘러본 제기동 일대는 콜라텍을 비롯해 하루 평균 700명 이상의 어르신들이 애용한다는 이른바 ‘실버 멀티플렉스’가 조성돼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발급되는 무임교통카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울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핫 플레이스로 종로 3가, 청량리, 제기동이 꼽혔다. 제기동역의 경우 지난해 지하철을 탄 승객의 46.4%가 무임승차 혜택을 받는 65세 이상의 고령 승객이었을 정도다.

11월 어느 날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구내. 이른바 ‘지공거사(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노인을 일컫는 말)’들이 우르르 개찰구를 통과한다. 일반 지하철역은 출퇴근 시간대에 승객들이 몰려들지만 제기동역은 오후 2시가 피크타임이다.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제기동의 2시는 홍대입구역의 밤 10시경이라고 보면 된다. 홍대에서 가장 핫한 만남의 장소가 홍대입구역 9번 출구라면, 제기동역은 경동시장과 청량리종합시장 등 재래시장으로 통하는 입구인 2번과 3번 출구가 가장 붐빈다.

‘콜라텍’인 듯 ‘생활체육관’의 진면모


▎‘생활체육’ 간판이 걸린 건물 입구로 노인들이 줄지어 들어가고 있다. 이곳은 하루 평균 500명 이상의 노인들이 오고간다. / 사진:박호수
3번 출구로 나와 은빛 인파를 따라 걷다 보니, 유독 한 건물로 어르신 행렬이 이어진다. 흥겨운 트로트 가락이 흘러나오는 이 건물 현관 입구에는 흰색 글씨로 쓰여진 ‘생활체육관’이라는 간판이 내걸려 있다. 이름이 ‘체육관’이라고 체육복과 운동화를 신고 공놀이를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선 상기된 얼굴을 한 어르신들의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다. 여성들은 다홍색 반짝이 털 코트에 빨간 입술로 한껏 멋을 냈고, 남성분들은 대개 중절모와 검은색 신사 양복을 쫙 빼입었다.

혼자 와도 심심할 틈이 없다는 이곳은 노인들의 독보적인 핫 플레이스, 일명 ‘콜라텍’이다. 내부에서 만난 한 업소 관계자로부터 이곳이 왜 ‘생활체육관’인지 설명을 들었다. “콜라텍이라고 하면, 노인들이 가기엔 좀 남사스러운 공간이라는 편견이 있다. 더러 색안경을 쓰고 보는 이들도 있고. 그래서 어르신들이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체육관’이라는 상호를 달았다.”

제기동 일대에 마련된 ‘실버 멀티플렉스’는 사실 1990년 대에 청소년을 겨냥해 조성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더는 제기동에 젊은 사람들이 유입되지 않고, 시설도 낙후되자 내부를 뜯어고쳐 노인들을 위한 여가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입구에서 만난 김정애(71·가명)씨는 “얼마 전에 친구 따라 이곳에 처음 왔는데 너무 좋아”라며 “노인들의 천국이 따로 없다”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노인정 같은 데 있으면 나이 먹은 것 같아서 우울해지잖아. 근데 여긴 안 그래. 운동도 되고 예뻐져”라며 건물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춤은 노인 건강에도 이롭다. 2017년 3월 SCI급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즈 인 에이징 뉴로사이언스(Frontiers in Aging Neuroscience)]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노년의 뇌기능 저하 개선에 걷기나 스트레칭 등 유산소 운동이 다 좋지만, 특히 춤이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함께 어울려서 춤을 추면 뇌 기능 개선 효과가 더 커지고 정보처리 속도와 기억력과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제기동 소재 콜라텍의 입장료는 대부분 1000원~2000원으로 큰 부담이 없다. 500원을 내면 짐도 보관해준다. 홍대나 강남 인근 클럽의 짐 보관료가 5000원인 것을 고려했을 때 파격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다. 콜라텍은 입장료 장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업소 내부의 식당이나 찻집, 실내 포장마차에서 주로 수익을 남긴다는 게 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젊은 사람들이 가는 클럽처럼 입구에 선 직원이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것도, 외모나 차림새를 보고 입장을 제한하는 것도 아니다. 노인이라면 언제든 단돈 천 원만 내고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온종일 자유롭게 드나들며 춤추고, 먹으면서 즐길 수 있다. 한마디로 노인을 위한 ‘멀티플렉스’다. 제기동 일대에는 이곳과 같은 ‘생활체육관’ 혹은 ‘노인 클럽’이 10여곳 성업 중이다. 대부분 빠르면 오후 6시, 늦어도 오후 11시 전에 문을 닫는다. 11시가 넘어야 손님을 받기 시작하는 홍대 클럽과는 영업 시간대부터가 다르다.

입장한 손님들은 가장 먼저 무거운 외투를 맡기려고 짐 보관소 앞에 줄을 선다. 순서를 기다리다 흥이 오른 어르신들은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르 흥얼거리며 몸을 좌우로 흔들며 가볍게 율동을 한다.

기자의 귀에도 익숙한 가수 이애란씨의 히트작 ‘백세인생’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복도에 앉아 쉬고 있던 어르신들까지 손뼉을 치며 ‘떼창’을 부르기 시작했다. “육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칠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오직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기에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무대에 오르자면 누구나 넓죽한 모양의 나무틀 위를 올라 발을 문지른다. ‘낙상 방지 송진 가루’를 신발에 묻히기 위해서다. 업소의 한 종업원은 마치 수영장의 안전요원처럼 홀을 누비며 다음과 같이 외치기도 한다. “마음은 청년이어도 우리 몸은 그게 아니래요. 한번 넘어지면 못 일어나요.” 혹여 흥분한 노인들이 오버를 하다 부상을 당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주기적으로 경고음을 날린다는 것이다.

낙상 방지를 위한 송진 가루 묻히기는 필수 코스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것은 기억력 향상과 정보처리 속도 증진에 도움을 준다는 의견도 있다.
모든 준비를 마쳤으면, 이제 진짜 시작이다. ‘클럽’의 묘미이자, 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 바로 파트너다. 업소에서 일하는 김명자(55·가명)씨는 일명 ‘부킹 여사’로 통한다. 하루에 평균 50커플 이상을 연결해 주는 부킹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녀에 따르면 최고 파트너가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보다 ‘춤 실력’이다. 김씨는 “옷차림이나 신발만 봐도 이 분이 어느 정도 춤 실력을 갖췄는지 알아챈다”면서 “고수와 초보가 만나면 손발도 맞지 않고 마음도 안 맞는 경우가 태반이라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이렇게 소개를 통해 커플이 성사되면 김씨는 남자 파트너에게 소정의 팁을 받는다.

‘부킹 여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파트너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 보는데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한 노년의 신사분이 맘에 드는 이성에게 당당하게 다가가 점잖게 손을 내밀면, 노년의 여성은 소녀와 같은 수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그의 손을 잡고 따라 나간다. ‘7080 황혼의 블루스’는 그렇게 시작된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음악에 취해,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듯했다.

김씨는 간혹가다 불상사도 빚어진다고 귀띔했다.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놓고 복수의 이성 파트너들이 승강이를 벌일 때도 있다. “간혹가다 어르신들끼리 마음에 드는 파트너가 겹치면, 남녀 할 것 없이 서로 크고 작은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팔십 세 넘으신 할아버지들이 주먹다짐까지 하면서 싸우는 것을 봤다.”

무대 근처 테이블에서 얘기를 나눴던 한 여성 노인분은 “아가씨, 부킹 못 해서 어떡해. 그러게 왜 이런 곳에 왔어. 젊은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지”라며 파트너 없이 홀로 앉아 있는 기자가 안쓰러운 말을 걸어왔다.

댄스 무대에서 나와 바로 옆 찻집과 식당으로 갔다. 이곳의 모든 메뉴는 2000원 안팎이다. 쌍화탕·대추차·마차 등 일반 카페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차를 팔고 있었다. 찻집에서 만난 한 남성 노인분은 최근 젊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프렌차이즈 커피숍을 큰맘 먹고 들어갔다가 5분도 안 돼서 나온 고충을 토로했다.

“입구에서부터 깜짝 놀랐어. 직원들은 다 바빠 보이고, 줄 서서 무슨 화면을 막 두드리는데…. 음료수 이름도 어렵고, 계산도 골치 아프더라고. 노인네들은 그런 데 가면 그냥 바보야 바보.” 그는 이곳은 가격도 싸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어 노인들에게 안성맞춤이라고 말한다.

찻집까지 이어지는 ‘즉석만남’


▎제기동 소재 콜라텍에서 한 연주자가 전자올겐을 연주하고 있다. / 사진:박호수
춤추며 만난 파트너와 ‘즉석 미팅’을 하는 커플도 보였다. 어두운 조명 아래 짙은 블루스 타임을 갖던 무대 안의 모습과는 달리 찻집에선 부끄러운 듯 서로가 다소곳이 먼 산을 바라본다. 그러다 여성분이 옷깃에 차를 살짝 흘리자 남성분은 손수건을 꺼내 묵묵히 닦아 주는 신사도를 발휘한다.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즐기는 젊은 세대와는 사뭇 다른 은은함과 풋풋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소개한 ‘미스터 남’씨는 37년간 택시 운전기사로 일하며 자녀 뒷바라지에 힘썼다고 한다. 젊은 날의 대부분을 좁은 차의 운전석에 앉아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왔다. “아가씨, 노인네들이 이런 데 와서 춤추고 노는 게 이상해 보여? 나는 노상 ‘나이트’에서 새벽까지 유흥을 즐기는 젊은 사람들을 집에 데려다주는 게 일이었어. 평생을 그렇게 구경만 했으니, 이제는 나도 맘 편히 좀 놀아 보겠다는 거야. 어때, 욕 못하겠지?”

제기동에서 만난 어르신들 대부분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었다. 정부에서 나오는 노인연금 20만~3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가는 이들도 왕왕 있었다.


▎제기동을 찾는 어르신 중에는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이 많다.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전쟁 세대, 평생 놀아 본 적이 없는 이들은 이제 ‘콜라텍 세대’로 불린다.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제기동에서 어르신들은 싸고, 정감 있는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최근 서울 종로 일대를 무대로 하는 복고풍 영화와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재미삼아 종로 일대를 즐겨 찾는 젊은이들이 증가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제기동의 한 콜라텍 사장은 “종로에서 소일거리를 찾던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피해 점점 제기동으로 밀려오는 추세”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곳이 홍대나 강남같이 젊은 사람들이 가는 유흥업소랑 다른 게 뭔지 알아요? 여기 오시는 어르신 분들 다들 재밌게 놀고 가는데, 내일 아침에는 다시 못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고객이 많다는 거야. 노인들은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법이니까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젊은이들과 달리 하루하루가 소중해.”

실제로 한 콜라텍에서 만난 여성 노인분은 손녀뻘 되는 기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여기 와서 노는 거 부끄럽지 않아. 앞으로 얼마나 더 산다고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살아. 나는 그냥 오늘처럼 신나게 웃으면서 놀고 집에 가면 그걸로 만족해. 곧 못 걸을 수도 있는데, 두 다리 멀쩡할 때 자주 와야지. 안 그래?” 서울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에서 오늘도 수많은 우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lake8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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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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