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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서점가 베스트셀러 점령한 ‘우파’ 출판물들 

유튜브 채널 통하면 열흘에 7000부도 ‘거뜬’ 

교보문고 정치·사회 월간 ‘톱10’ 가운데 여섯 자리 석권
“언론이 안 다루는 대안 진실” vs “독자적 의제 없어 한계”


▎11월 13일 낮 교보문고 광화문점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찾은 시민들. / 사진:문상덕 기자
베스트셀러란 말 그대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 숱한 인기작을 기획한 한기호 출판평론가는 ‘평소 책을 읽지 않던 사람이 사서 읽는 책’이라고 정의한다.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도사린, 마음의 뿌리를 건드리기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의 생각에 따르자면,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당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서재나 다름없다.

최근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른다. ‘보수우파’를 표방한 책들이 지난 10월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월간 베스트셀러에 절반가량 이름을 올렸다. 지난 7월 출간 이후 줄곧 ‘뜨거운 감자’였던 [반일 종족주의](이영훈 외)가 여전히 2위를 지키고 있다. 이 책을 낸 출판사 ‘미래사’ 관계자는 “최근 10쇄를 냈다. 판매 부수로 치면 10만 부가량”이라고 전했다.

이어 [탄핵은 무효다](류여해·정준길), [좌파가 장악한 대한민국](김세의), [과유불급 대한민국](전영기), [김정은이 만든 한국대통령](리 소데츠), [이승만의 분노](전광훈)가 각각 4·6·8·9·10위에 올랐다. 보수 성향은 아니지만, 여권 주류인 ‘친문(親文)’ 정치인들을 직격하는 책 [유시민, 이재명]이 3위에 올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진행되던 3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야(野) 3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12월 3일, 전국적으로 시민 200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나선 거리의 열기는 출판시장에도 고스란히 전이됐다.

2016년 12월 교보문고 정치·사회 월간 베스트셀러를 기준으로, 상위 열 권 가운데 네 권이 직간접적으로 대통령 탄핵을 다뤘다. 1위에 오른 [지금 다시, 헌법]은 참여연대 창립 멤버인 차병직 변호사가 대표 저자로 나섰다. 헌법 1조 1항을 차용한 부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당시 분위기가 묻어난다. 이 밖에 [오만과 무능: 굿바이, 朴의 나라](전여옥), [악마 기자 정의 사제](함세웅·주진우), [운명이다](노무현재단 엮음)가 순위에 올랐다.

10위 안에 든 나머지 책들도 페미니즘·불평등 같은 진보적 의제를 다뤘다. 2016년 연간 정치·사회 랭크에선 장하성 고려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가 쓴 [왜 분노해야 하는가]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이란 부제에서 보듯, 경제적 자유주의를 표방했던 보수 정권을 겨냥했다.

‘탄핵 무효’ ‘주사파 운동권’ ‘이승만’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인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자신들의 책을 두고 “구역질 난다”고 말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모욕죄로 고소하기 위해 8월 20일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여론이 오른쪽으로 기운다는 방증일까. 한 출판사 관계자는 “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으니 그 반대 입장을 지닌 독자들의 수요가 높은 것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표정훈 출판 평론가는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보수 성향 독자는 출판업계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치·사회 분야는 정권을 막론하고 진보 성향을 지닌 독자가 주 타깃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우파’ 독자들이 최근 출판시장에 새롭게 등장하는 까닭은 뭘까.

도서출판 서해문집의 김흥식 대표는 우선 “보수 진영에서 담론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김 대표는 “예전만 해도 ‘보수는 감성으로 움직이고, 진보는 지식으로 움직인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출판물들을 보면, 내용의 시시비비를 떠나 (보수 지식인들이) 지식 전달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또 “기성 언론 등에 잘 안 나오는 ‘대안 지식’들이 이들 책이 다루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들의 키워드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다. ‘탄핵 무효’ ‘(주사파) 운동권’ ‘이승만 복권(復權)’ 세 가지로 압축된다. 제목에서부터 ‘탄핵 무효론’을 전면에 내세운 책은 [탄핵은 무효다](정치·사회 4위)이다. 자유한국당의 류여해 전 최고위원과 정준길 전 대변인이 공동집필했다. 두 저자는 서문에서 “2016년 탄핵은 진보좌파의 정치적 책략에 의한 기획 탄핵”이었다며 “진실을 알려 문재인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떠나게 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김정은이 만든 한국대통령](정치·사회 9위)을 쓴 리 소데츠(한국명 이상철) 일본 류코쿠(龍谷)대 사회학부 교수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지난해 7월 일본에서 펴낸 [北朝鮮が つくった韓国大統領](산케이신문 출판부)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리 교수는 책에서 “정부 요직의 고위인사 절반은 친북 성향의 ‘운동권’ 출신”이라면서 “박근혜 탄핵은 남북의 대리전”이라고 주장한다. ‘기획 탄핵’을 이끈 주동자로 ‘주사파 운동권’을 지목한다.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 저자인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서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거짓말에 쓰러지고 말았다”며 탄핵의 부당함을 주장한다. ‘반일 종족주의’는 탄핵으로 치달은 ‘좌파’의 집단 심성으로 내세운 개념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이웃 일본을 세세(歲歲)의 원수로 감각하는 적대 감정뿐”이라며 “온갖 거짓말이 만들어지고 퍼지는 것은 이 같은 집단 심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이유를 들어 프롤로그 말미에서는 “온몸으로 반일 종족주의, 그 거대한 문화 권력의 진영에 돌진한다”고 출사표를 낸다.

이 밖에 김세의 전 문화방송 기자 역시 [좌파가 장악한 대한민국](정치·사회 6위)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NL(민족해방) 계열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정부와 언론, 법원과 변호사 집단, 교육단체에까지 요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쓴 책 [이승만의 분노](정치·사회 10위)는 제목처럼 이승만 전 대통령의 행적을 다뤘다. 전광훈 목사는 책에서 “한반도 공산화를 막고 독립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이승만은 오직 국민만을 선택했다”며 이 전 대통령의 현재적 가치를 발굴하는 데 몰두한다.

출판계 장기불황 피난처는 ‘유튜브 팬덤’


이렇게 보수우파 베스트셀러가 뜨는 배경으로 장기불황에 시달리는 출판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게 출판업계의 중론이다. 김흥식 대표는 “시장이 안 좋을수록 베스트셀러에 학습교재 같은 책이 많이 올라간다”며 “특수 계층이 집중적으로 사는 책이 쉽게 순위에 오른다”고 말했다. 출판사 편집장 A씨는 “최근 교보문고 기준으로 주당 2000부(월간 기준 8000~1만 부 내외) 정도 팔리면 종합 베스트셀러 5위 안에 든다고 추정한다”고 전했다.

보수적 메시지를 담았다고 해서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아니다. 한 달 정도를 팔아야 간신히 2000부를 달성하는 책도 많다. 그나마 시장 상황에 비하면 꽤 괜찮은 실적이다. 보수우파 서적을 낸 출판사 대표 B씨는 “책 내용을 두고 비난하는 전화가 쇄도한다”며 이름을 노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B씨의 조심스러운 반응은 ‘우파’ 베스트셀러를 향한 사회적 시선의 냉기를 가늠케 한다. 동시에 언론매체의 홍보는 필요치 않다는 자신감이 섞여 있다. 언론매체의 신간 소개나 서평을 마다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우파’ 유튜브 채널의 출현을 B씨가 보여준 자신감의 배경으로 꼽았다. 또 다른 출판사 대표 C씨는 “우리 출판사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익명을 전제로 말씀드리겠다”며 말을 이었다.

“3~4년 전만 해도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진행한 팟캐스트[이동진의 빨간책방] 영향력이 컸다. 진보적 의제를 다룬 책을 꽤 소개했다. 거기서 노출되면 최소 몇천 부가 움직였다. 그런데 이젠 우파 유튜브 채널들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우리 출판사에서 낸 인문 서적도 반년 전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펜앤드마이크TV]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진보 유튜브 채널에서 다뤘을 때보다 영향력이 훨씬 컸다.”

앞서 B씨가 낸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출판 전후로 책 저자가 [펜앤드마이크TV](구독자 62만 명)를 비롯해 고성국 정치평론가가 운영하는 [고성국 TV](구독자 50만 명) 등 ‘우파’ 유튜브 채널 네 곳에 출연했다. B씨는 “구체적인 증감량을 공개하긴 어렵지만, 유튜브 출연이 판매량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2위를 차지한 책 [유시민, 이재명]은 유튜브 채널 소개를 통해 극적인 판매량 증가를 경험한 경우다. 이 책은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로 알려진 김인성 전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자신이 세운 1인 출판사를 통해 지난 8월 1일 출간했다. 김 전 교수는 “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대표되는 선에서 벌인 선거부정을 폭로하기 위해 집필했다”고 책을 소개했다. “이들에 의해 ‘차세대 리더’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위험에 처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국 사태가 순위 역주행 계기”


▎8월 8일 유튜브 채널 [펜앤드마이크TV]에서 정규재 전 한국경제 주필과 대담하고 있는 리 소데츠 일본 류코쿠대 사회학부 교수(왼쪽). / 사진:펜앤드마이크TV
김 전 교수의 책은 출간 뒤 한 달 반 동안 전국에서 고작 400여 권만 팔렸다. “혼자 출판사를 꾸린 탓에 언론사에 보도자료 돌릴 줄도 몰랐다”고 했다. 그러다 8월 9일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계기로 보수 유튜브 채널들이 ‘친노·친문 세력’을 다루면서, 그의 책을 레퍼런스로 인용하기 시작한 게 판매량을 끌어올렸다.

“9월 둘째 주부터 7000부가량 나갔다. 2쇄까지 찍었다. 베스트셀러 일간 종합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재고가 떨어졌는데, 물류센터를 거칠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해 100권을 직접 가져다 주기도 했다.” 김 전 교수는 유명 보수 유튜브 채널에서 패널 섭외 요청이 왔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 스스로 보수 성향이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그런 까닭인지 “최근 책 판매량이 일간 기준으로 0권에 수렴하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 밖에 [탄핵은 무효다]와 [좌파가 장악한 대한민국]은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류여해TV](구독자 6만 명)와 [가로세로연구소](구독자 53만 명)를 통해 직접 소개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출판물 저자가 지니는 사회적 권위와 유튜브 채널의 파급력이 만나면 파급력이 커지게 마련이다”라며 “유튜브 영상 스크립트를 편집해 책으로 내면 노력을 적게 들이면서 부가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은 [반일 종족주의] 머리말에서 “[이승만TV]는 2018년 12월부터 45회에 걸쳐 ‘위기 한국의 근원: 반일 종족주의’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이란 두 제목의 연속강의를 했다”며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쌓은 강의노트를 정리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튜브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의 책을 홍보한 셈이다.

유튜브 채널이 강력한 홍보창구로 자리매김하는 현상은 비단 정치·사회 출판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단적으로 김미경 아트스피치 대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김미경 TV](구독자 74만 명)에 책이 소개되면, 단기간에 책 수백부가 움직인다는 것이 업계의 통설이다. 출판사 대표 C씨는 “어떤 광고도 [김미경TV]만큼 광고 효과가 확실한 게 없는 게 사실이지만, 출판사들이 유튜브에 매달리는 현실은 다소 씁쓸한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우파’ 출판물들이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점령하는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도서출판 기파랑의 박은혜 편집 실장은 “부침은 있겠지만, 정권 후반기에 접어든 만큼 2년여는 더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기파랑은 지난해 태영호 전 주영 북한공사가 쓴 책 [3층 서기실의 암호]가 16만여 부 팔리며 2018년 교보문고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반면 백원근 대표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최근 베스트셀러에 올라온 책들을 보면 특정 정치적 사건·인물을 중심으로 팩트체크를 시도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인의 집단 심성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반일 종족주의] 외엔 아직까지 유의미한 변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과거 진보 논객들이 ‘불평등 해소’를 의제로 내놨듯, 보수적 의제를 내놓는 책이 나오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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