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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중앙일보 대학평가] ‘과학 강국’으로 이끄는 이공계 우수 연구자들 

세계 상위 1% 수학자 김태균(광운대), 노벨상 후보로 꼽히는 박남규(성균관대) 

천종식 서울대 교수, 대변 미생물로 질병 예방 독보적 성과
석상일 UNIST 교수, 태양전지 효율 높이는 연구 세계가 주목


▎김태균 광운대 교수가 세미나에서 연구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 사진:광운대
11월 1일 오전 김태균 광운대 수학과 교수의 연구실에 부산대·경상대·경희대 등에서 온 연구자 6명이 모였다. 미국에 있는 연구자도 컴퓨터 화상으로 참석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김 교수가 개최하는 정기 세미나다. 김 교수는 화이트보드에 수식을 써내려가며 한 주 동안 연구한 이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확률 방정식에 사람의 심리와 같은 외부 변수를 반영하는 새로운 이론이다. 김 교수는 “예를 들면 야구 선수의 불안 심리를 반영해 홈런을 칠 확률 방정식을 연구하고 있다. 확률을 활용하는 다양한 분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팀이 2014~2017년 4년간 국내 교수들이 발표한 국제 논문을 분석한 결과, 김 교수는 자연과학계열에서 4번째, 수학자로는 가장 많은 피인용 실적을 보유했다. 그는 앞서 학술 데이터 분석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2016~2017년 선정한 세계 상위 1% 연구자로 꼽히기도 했다.

세계적 연구자인 김 교수의 책상과 연구실 곳곳에는 펜이 가득할 뿐 별다른 장비도 없었다. 그는 “펜이 연구하는 데 유일하게 필요한 장비”라며 웃었다. 펜과 종이로만 연구한다는 김 교수의 손가락엔 하얀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공계열에서 우수한 연구 성과를 내놓고 있는 연구자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끈기 있게 개척했다는 데 공통분모를 가진다.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20년 넘게 사람들의 대변을 채취하고 있다. 세균 등 사람의 대변과 함께 배출되는 미생물의 종류와 특징을 살피기 위해서다. 그가 지금까지 새롭게 발견한 미생물은 약 77종에 이른다. 천 교수는 이번 평가 대상인 2014~2017년 발표 논문의 피인용 실적이 생명과학 분야에서 가장 높았다.

천 교수는 그간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에 힘쓰고 있다. 새로운 미생물 발견을 넘어 미생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게 그의 목표다. 2009년에는 ‘천랩’이라는 바이오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천 교수는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미생물에 대해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며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우리 몸에 이로운 미생물에 대한 주목도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새로운 길 끈기 있게 개척


▎천종식 서울대 교수가 바이오 기업 ‘천랩’에 있는 미생물 DNA 분석용 컴퓨터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서울대
공학 계열 가운데 특히 에너지 분야는 국내 연구자들이 국제 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다.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교수는 태양전지 분야에서 손꼽히는 연구자다. 2017년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노벨상 수상 유력 후보로 꼽기도 했다. 효율을 높이면서 가격은 낮춘 태양전지 개발이 그의 관심사다. 1997년부터 20년 넘게 태양전지에 매달려온 그는 2012년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최초로 개발하면서 이 분야 연구를 주도했다.

박 교수는 지금도 태양전지에 어떤 새로운 소재를 도입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많은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꿈꿀 것이다. 나도 연구자로서 사회에 기여하고 노벨상을 받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석상일 UNIST(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도 박 교수와 함께 태양전지 분야의 석학으로 꼽힌다. 이번 평가에서 석 교수는 공학계열 중 논문 1편당 평균 피인용 실적이 가장 높은 연구자로 나타났다. 재료공학을 전공한 그는 유기물과 무기물 융합을 통해 태양전지의 효율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 신재생 에너지연구소의 공식 태양전지 효율을 4번 연속으로 경신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석 교수는 “화석연료로 인한 기후 변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효율 좋은 태양전지를 개발하려는 경쟁이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그 대열에서 15년간 연구하면서 운 좋게 선두에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남들이 하는 방법을 따라 하면 중간은 될 수 있지만, 최고는 될 수 없다. 위험하더라도 다른 길을 가야 최고가 될 가능성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는 석 교수를 포함해 조재필·김진영·백종범 교수 등 에너지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를 계속 배출하고 있다. 석 교수는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교수들이 모여 활발히 협업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전기 생산과 더불어 대용량으로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 분야 연구도 활발하다. 선양국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등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에 20여 년간 매진했다. 지난해 출시된 기아자동차 중 일부 모델에는 선 교수가 개발한 배터리가 주요 부품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번 평가에서 그는 공학계열에서 피인용 실적 합계가 4번째로 높은 연구자였다. 선 교수도 매년 세계 상위 1% 연구자로 거론된다.

유재수 경희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에너지 저장의 해답을 ‘섬유’에서 찾았다. 잘 구부러지는 섬유 소재에 배터리의 원리를 도입해 이른바 ‘전도성 섬유형 배터리’를 개발했다. 유 교수는 “몸에 부착하거나 입을 수 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수요가 높아지면서 전기 저장 장치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대학평가팀=남윤서(팀장)·최은혜·김나윤 중앙일보 기자 / 이태림·장유경·정하현 연구원, 김여진 인턴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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