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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기자의 ‘인간혁명’] 외고·자사고 폐지와 학교의 종말 

일반고는 19세기식 공교육, 상류층은 ‘그랜드 투어’ 

‘문·이과 융합수업’ 실시해도 현장선 교사별 ‘쪼개기 수업’
정치인들의 아집과 극성 지지자들의 ‘집단사고’가 교육 정책 왜곡


▎경기도 수원의 한 대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수시 논술고사를 치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외고·자사고 폐지 정책과 대입 정시 확대 방침이 발표되면서 서울 강남이 다시 들썩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좋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려는 부모들의 니즈가 강남 입성을 부추긴다고 지적합니다. 외고·자사고가 일괄 폐지되면, 소위 ‘명문고’로 불리는 학교들의 상당수가 강남에 밀집되기 때문입니다. 또 수능 중심의 정시가 확대되면 유명 입시학원이 집중된 강남이 더욱 유리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같은 ‘강남 집중’ 현상은 단지 교육의 문제로 만 끝나지 않습니다. 강남의 계급 울타리를 더욱 높게 만들고 계층 간 이동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리브스 박사는 [꿈을 쌓아두는 사람들(Dream Hoarders)]이란 책에서 “고학력·고소득 부모들은 최고의 교사들이 가르치는 학교에 자녀를 보낸다, 교육을 통해 사회·경제적 부를 대물림하고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구조적 장벽을 쌓는다”고 말합니다.

리브스 박사는 대표적인 예로 입시를 듭니다. 그는 “대입 평가의 핵심 기준은 경험을 확장하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인턴 기회가 많은 응시자에게 유리하도록 설정돼 있다”며 “명문대 입시를 통해 만들어진 거대한 특권의 산꼭대기가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일부 장학금 제도를 만들어 학생들이 발 딛기도 힘든 작은 사다리를 줘놓고는 평등한 기회를 마련했다고 자위한다”고 비판합니다.

리브스에 따르면 미국의 고학력·고소득 부모들은 그렇지 않은 부모들보다 취학 전 자녀와 2~3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1996년 이후 부유층의 자녀 교육비는 300% 가까이 증가했지만 다른 계층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는 특히 “고학력·고소득 계층은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사회체제를 구조적으로 조작한다”며 “포틀랜드·뉴욕·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 몰려 살면서 다른 계층이 학군 좋고 쾌적한 환경을 지닌 지역에 진입하는 것을 가로 막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교육 양극화 현상이 한국 역시 미국 못지않다는 겁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2007년과 2018년 서울대 입시 결과를 비교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은 이 기간에 합격자 수가 1208명에서 1258명으로 50명 늘었습니다. 경기도는 484명에서 720명으로 236명 증가했습니다. SRT와 외곽순환도로 등의 개통과 함께 ‘강남권’이 기존의 분당에서 판교·용인 등으로 확대된 영향이 큽니다. 반면 부산(91명), 대구(80명), 경남(41명), 충북(28명), 광주(27명) 등은 크게 줄었습니다.

똑같은 자료를 서울만 놓고 보면 그 안에서도 양극화가 뚜렷합니다. 수시 합격자로 범위를 좁혀 각 구별로 합격률을 따져보니 강남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2007년 수시 합격자 중 강남구 출신은 8%였는데 2018년엔 15.7%로 2배가 됐습니다. 같은 기간 서초구는 4.9%에서 11.7%로 증가폭이 더욱 컸습니다. 임성호 대표는 “서울대는 국립대(법인)이기 때문에 자료가 공개되지만, 명문 사립대는 이런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실상은 서울대보다 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소위 ‘SKY(서울·고려·연세)’ 대학생들의 소득 분포가 잘 사는 계층으로 훨씬 치우쳐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장학재단은 학생의 경제적 형편을 기초수급자와 차상위층, 1~10분위로 나눠 8분위까지 장학금을 지급합니다. 여기서 장학금을 못 받는 9·10분위는 부모가 고소득자인 소위 ‘잘 사는 계층’이라는 이야기죠. 그런데 SKY 학생의 경우 9·10분위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2018년 국정감사 때 장학재단이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SKY 학생 중 9·10분위가 무려 46%에 달합니다. 그것도 제일 잘 사는 10분위(30%)가 9분위(16%)보다 2배가량이나 됩니다. 반면 SKY 대학을 제외한 전체 학생 중 9·10분위는 각각 13%, 12%에 불과했죠. 고소득층 비율이 SKY 대학의 절반가량(25%)밖에 안되는 겁니다.

EBS 스타강사로 교사로 18년, 사교육에서 15년을 보낸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은 이를 “교육을 통한 귀족 계급의 세습”이라고 표현합니다. “과거엔 교육을 통해 계층 이동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교육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돼버렸다”는 거죠. 그러면서 “또다시 교육정책이 바뀐다고 하니 부모들의 불안심리를 파고드는 사교육만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고 지적합니다.

4차 혁명에서 소외된 서민들


▎정부가 외고·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교육계 일각에선 강남 8학군 쏠림이 강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 사진:연합뉴스
상위층이 아닌 가정에서 명문대 입학의 기회가 줄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미래를 살아갈 역량과 인사이트를 습득할 수 있는 경험의 기회마저 불평등이 심하다는 겁니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미래에 필요한 것은 창의성과 사고력, 이를 논리적으로 개념화시킬 수 있는 언어 능력이 필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교육 시스템에선 이런 것들을 습득하기 어렵다, 2030년엔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지고 전통적인 학교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미래학의 대가였던 앨빈 토플러(1928~2016)도 생전에 현대의 교육 시스템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부의 미래]에서 현재의 학교 체제를 산업화 시대의 노동력을 양성하는 곳으로 묘사했습니다. 단일화·표준화·대량화라는 산업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학교 체제가 최적화돼 있다는 거였죠. 쉽게 말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훈련된 노동력을 공급하는 게 학교의 최대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이는 현대식 학교가 처음 생겨난 19세기의 상황을 알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근대 국가가 형성되고 산업화가 빨라진 19세기 이후에 선진국들은 앞다퉈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무교육을 시작합니다. 토플러의 말처럼 산업혁명이 불러온 새로운 사회 구조에 필요한 노동력을 양성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국가라는 공동체의 이념을 전파하고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공교육이었습니다.

공장주의 입장에서는 기계를 돌리는 데 필요한 획일적 지식을 가진 노동자가 필요했고, 권력자의 경우엔 자신의 정치 이상을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말 잘 듣는 대중이 필요했습니다. 미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학교 공간이 감옥과 비슷하다”고 지적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회색 담장과 네모난 교실로 통일된 학교는 감옥처럼 소수가 다수를 관리하고, 각 개인을 훈련시켜 순응하는 객체로 만들기에 최적화돼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19세기에 만들어 놓은 학교 체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래 교육의 전문가인 찰스 파델에 따르면 18세기 이전까지의 교육은 지금과 매우 달랐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교육의 대상이 소수의 귀족 계층으로 한정돼 있었다는 거였죠. 생산에서 자유로운 소수의 지배계층만 교육 혜택을 누릴 수 있었죠.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인문과 교양, 올바른 매너와 품성 등을 기르는 전인교육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르네상스 이후 근세까지 주요 교과목도 독해·작문, 수사학, 역사, 철학, 수학, 음악, 미술, 라틴어 등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의 교양을 갖춘 공동체의 구성원을 양성하고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창의적인 과학자와 예술가, 철학자 등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인간 문명이 발전할 수 있던 기틀이 됐고요. 파델은 “전인적 역량을 기르는 르네상스식 교육에서 창의성이 배양되고 혁신적인 사고가 싹틀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21세기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

이런 이유로 앞선 나라들은 아이들이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개혁에 큰 관심을 쏟습니다. 교과목 중심의 교육과정이 아니라 협업,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 등 역량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고 있죠. 교수법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주입식 수업을 벗어나 토론·발표 등을 통한 고차원적 사고 훈련을 강조합니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시대에는 단순 지식과 스킬만 가진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가는 한국의 교육


▎세종꿈나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8월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정원에서 합주하고 있다. 세종꿈나무 오케스트라는 세종문화회관이 사회 취약계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음악교육 프로그램이다. /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미래역량을 키우기 위한 교육은 21세기의 필수조건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실은 여전히 국어·수학·영어 중심의 입시 공부가 대세입니다. 자유학기제를 자유학년제로 확대하며 학생들의 다양한 소질과 재능을 일깨울 수 있도록 했지만, 정작 체험 공간과 기회가 부족해 한 학기, 또는 1년을 허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교실에서 교사가 특정 이념과 가치를 학생에게 주입해 논란이 되기도 했죠.

이처럼 학교에서 미래사회에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배울 기회가 적다 보니 부유층은 자신의 자녀들을 특별한 사교육에 맡깁니다. 강남이 “교육을 통한 귀족 계급 세습”이 이뤄지는 곳인 이유는 단순히 이곳에 입시 실적이 좋은 학교와 국·수·영 학원이 몰려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파델이 지적한 ‘르네상스식 교육’이 그나마 이뤄지고 있는 곳은 교실이 아니라 사교육입니다.

수년 전부터 강남 학원가엔 인문학과 과학을 융합한 교육이 뜨겁습니다. 흔히 독서·토론 교육으로 불리지만 이곳에선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인공지능·블록체인 같은 최신 과학기술까지 통섭으로 가르칩니다. 선진국들이 미래교육으로 주창하는 ‘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Mathematics)’ 교육을 벤치마킹 하는 것이죠.

‘STEAM’은 인문·과학 지식에 대한 이해를 높여 융합적 사고력을 기르고, 실생활과 연관된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교육을 뜻합니다. 켄 로스 미네르바스쿨 아시아 총괄 디렉터는 “미래에는 어느 한 분야의 지식만으론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고 융합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스펀지처럼 지식에 대한 학습 속도가 빠른 아이들에게 다양한 인문·과학적 경험을 시켜 융합적 인사이트를 갖게 하는 것이죠.

물론 공교육에서도 융복합 노력을 시도합니다. 그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 2018년 도입된 문·이과 융합 교육과정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고1 학생들은 통합과학·통합사회라는 새로운 교과목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문과는 수능에서 과학을, 이과는 사회를 보지 않았는데, 그렇다 보니 문과생은 ‘과알못’이 되고 이과생은 ‘사알못’이 되기에 십상이었습니다. 통합 교과목을 통해 문·이과의 장벽을 없애고 융·복합 인재를 기르는 게 목표죠.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많은 학교가 통합과학 한 과목을 물리·화학·생물 교사 등이 각 장별로 나눠 가르칩니다. 통합사회도 마찬가집니다. 하나의 교과목 안에서도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데 문·이과 융합의 길은 멀어 보입니다. 아이들에게 야채와 고기를 골고루 비벼 먹을 수 있게 비빔밥을 차려주겠다면서 찬도 제대로 주지 않고 알아서 먹으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반대로 요즘 강남에서 가장 ‘핫’하다는 독서·토론 전문 학원의 사례를 한번 살펴볼까요? 한 유명 학원의 홈페이지에선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수학을 넘는 통섭적 수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철학책을 읽으며 연관된 과학적 내용을 살펴보고, 수학책을 보며 사회과학적 내용을 연결하는 수업을 한다”고 합니다. 학생 수준에 걸맞은 단계별 독서 커리큘럼까지 제공하고 있고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학원이 적어도 융·복합과 통섭의 측면에선 학교보다 뛰어난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넘어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과 소양을 기를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최근에는 초·중학생 아이들을 대상으로 유럽의 명소를 둘러보며 공부하는 인문·과학 기행 패키지도 성황입니다. 여행 가기 전에 미리 관련 공부를 하고 실제 현장에서 체험해 보는 거죠. 이만기 소장은 “근대 이전 귀족 자제들의 대표적 공부법이었던 그랜드 투어의 현대판”이라고 말합니다.

21세기 그랜드 투어


▎세계 최초의 대학인 이탈리아의 볼로냐대. 상인들의 자치 모임이 학문적으로 진화하면서 대학으로 발전했다.
그랜드 투어는 18~19세기 영국에서 지식인들이 귀족의 자녀들을 데리고 유럽 여행을 하며 그 나라의 기술과 산업, 역사와 철학 등을 공부했던 ‘수학여행’을 뜻합니다. [국부론]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도 당시 영국의 재무장관이었던 찰스 타운젠드의 아들과 그랜드 투어를 떠났습니다. 프랑스 여행 도중 케네 등의 중농주의(자유방임주의)를 접한 스미스는 귀국 후 [국부론]을 집필했습니다.

이처럼 사교육과 공교육을 비교하는 이유는 학원이 학교보다 낫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백년대계인 교육이 철학과 지향점 없이 수시로 바뀌면서 미래세대의 역량을 떨어뜨리고 있고, 교육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를 세습하려는 상류층의 기득권이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특히 인재가 가장 큰 자원인 ‘휴마인(human+mine)’의 시대에는 교육이 곧 미래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화석에너지가 산업발전의 주춧돌이었다면 이재는 인적자원(HR)이 성장을 위한 절대적 기준이 됩니다.

무엇보다 인재의 힘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한민국은 4차 혁명시대가 기회일 수도 있고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우수 인재를 바탕으로 혁신을 주도하면 또 다른 성장의 발판이 마련되겠지만, 인재를 키우는 교육 시스템이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면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 생긴 것은 11~12세기 남유럽입니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국가들은 유럽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십자군의 길목이었고 각지에서 거둬들인 교회의 자금이 한데 모이는 곳이었죠. 그렇다 보니 세상의 온갖 물자가 베네치아와 피렌체 같은 상업도시들로 집중됐습니다. 그중에서도 북부의 볼로냐는 유럽 전역에서 열정 가득한 청년들이 푸른 꿈을 안고 몰리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상법이 젊은 상인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있는 집’ 자제들은 개인 과외를 붙여 공부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청년들은 그럴 여유가 없었죠. 그래서 이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법률가를 초청해 공부했습니다. 나중엔 논리학·수사학·의학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고요. 이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오늘날 대학의 어원이 된 ‘universitas(자치조직)’입니다. 이렇게 세계 최초의 대학, 볼로냐대학이 탄생한거죠.

최초의 대학 볼로냐


▎지난 7월 자사고학부모연합회 주최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 사진:장진영 기자
볼로냐대는 학생이 직접 교수를 채용하고 총장을 뽑았습니다. 실력이 떨어지거나 불성실한 교수는 내쳤고요. 수요자 중심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교육의 핵심 원리였습니다. 그 결과 이탈리아는 14세기 르네상스라는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처럼 학교가 존재하는 근본적 이유는 학생의 니즈와 사회적 필요 때문입니다.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필요한 역량과 지식을 습득하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시민의식을 기르는 것이 학교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19세기 이후에 교육의 목적과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다행히도 대한민국은 근대 학교체제의 우등생이었죠. 누군가 혁신해 놓으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돼 빨리 따라잡고 시장을 점유했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근성과 높은 교육열이 시너지를 일으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만이 살아남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 슬로건처럼 ‘혁신’하지 않으면 ‘성장’도 없습니다. 여기서 ‘혁신’이라는 것은 과거의 것들을 탈피하고 새로운 터전을 닦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본질적으로 미래 교육의 근본적 방향은 19세기 근대 학교 체제를 깨부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현실은 두 가지 잘못된 관념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바로 정치가의 독선과 교육자의 타성입니다. 학교에는 물론 새로운 교육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선생님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교사들은 타성에 젖어 변화하는 것을 싫어하죠. 혁신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수차례 우수교사상을 받은 30대 교사 김모씨는 “동료 교사들의 인식을 바꾸는 게 제일 힘들었다, 오랜 관성이 학교의 변화를 발목 잡고 있다”고 토로합니다.

포퓰리즘이 만든 ‘교육오년지소계’


▎지난 8월 30일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 자녀 입시비리 의혹 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서울 고려대 안암캠퍼스 중앙광장에서 열렸다. / 사진:전민규 기자
교육자의 타성보다 더 큰 문제는 정치가의 독선입니다. ‘학생의 니즈’와 ‘사회적 필요’라는 교육의 근본 원리 대신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교육을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듣거나, 미래를 대비하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기보다는 자기만의 아집과 주변 지지자들과의 ‘집단사고(group thinking)’에 갇혀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정권을 잡은 권력자는 ‘민심’이라는 핑계로 교육을 희생양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복지정책이나 SOC 사업과 달리 교육 분야는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티가 많이 나는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대학입시 문제가 논란이 되자 청와대와 교육부가 갑자기 정시 확대 방침을 발표하고, 2025년 외고·자사고 일괄 폐지 입장을 발표한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물론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바꾸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외고·자사고가 사라지면 정부와 여권이 주장하는 ‘특권교육’이 사라질까요? 많은 사람의 예측대로 “자사고로 몰렸던 학생들이 교육 특구로 쏠리게 될”(이만기 소장) 가능성이 큽니다. “자사고가 (교육특구인) 수성구 쏠림 현상을 완화시켰다”는 우동기 전 대구시 교육감의 말처럼 외고·자사고 폐지 후엔 ‘8학군’이 다시 부활하게 되는 거죠. 결국 서두에서 살펴본 리브스 박사의 분석처럼 특정 지역의 계급 장벽만 높아지는 셈입니다.

교육이 획일화되고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선 혁신의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실리콘 밸리가 기술혁명의 요람이 된 것은 중세 이탈리아가 상업의 중심이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시장의 필요는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자유와 다양성은 혁신을 일으킵니다.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적성을 키우려면 그만큼 학교의 종류도 다양해야 합니다. 학생 각자의 니즈를 담을 수 있는 여러 교육 방식이 존재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학교를 일반고로 통일하고, 필기시험 하나로만 아이들을 줄 세워 대학에 보내는 교육 방식으로 미래인재를 키울 수 있을까요. 획일화된 교육은 학생과 사회의 다양한 니즈를 담기 어렵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처음 자립형사립고(현재의 자사고)를 도입한 이유도, 역대 정부가 ‘학교 다양화’라는 정책 기조를 유지한 원인도 그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상류층은 공교육에 큰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공부를 사교육에 맡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은 여전히 학교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의 적성과 소질만큼이나 교육의 방식도 다양해져야 개천에서 용 날 가능성이 커집니다.

볼로냐대가 생기고 얼마 후 르네상스 시기에는 자유와 다양성, 그 안에서 비롯되는 개별성과 창의성이 어두웠던 중세를 환하게 밝히며 역사의 진보를 이끌어냈습니다. 지금 우리는 르네상스를 꿈꾸면서 중세로 돌아가려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1세기 미래로 가려는 아이들을 19세기 학교가 발목 잡아선 안 됩니다.

※ 윤석만 기자/중앙일보 이노베이션랩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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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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