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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24)] 역(易): 변화의 철리, 변해야 영원할 수 있다 

“통하지 않으면 망하고 마느니” 

안주한 채 새로운 환경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게 인간 속성
과거의 역사, 이전의 지혜 바탕 위에서 창의적 변화도 가능


▎한나라 때 문자학자 허신은 역(易)의 어원을 설명하면서 “역은 도마뱀의 일종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1. 변해야 영원할 수 있다

[주역]에 이런 말이 있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영원할 수 있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변화의 중요성을 역설한 말이다. 이를 거꾸로 읽으면 이렇게 될 것이다. “편하면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망하고 만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살아 있기에 변하게 마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생물이 아니다. 그건 생물이라도 죽은 존재다. 이것은 상식이자 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사람은 잘 변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 인간이 가진 모순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안주하고, 새 환경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험과 새로운 시작을 싫어하고 자꾸 과거로 이전으로 회귀하려 한다.

[주역]의 이러한 말은 이의 위험성을 선언한 경구가 아닐 수 없다. [주역]은 달리 [역경(易經)]이라고도 하는데, “변화에 관한 경전”이라는 뜻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과 자연의 생성과 소멸 및 변화의 철리(哲理)를 해석했다는 점에서 유가를 비롯한 중국의 중요한 고전이 됐다.

이 책은 주(周)나라 때 만들어졌다고 해서, 혹은 주나라 문왕(文王)이 만들었다고 해서 “주역(周易)”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 다른 해석은 주(周)가 주(週)와 같다는 점에 주목해 모든 사물에 ‘두루’ 적용되는 철리를 뜻한다고 하기도 한다. 혹은 주기(週期)에서 보는 것처럼 생성과 성장을 거쳐 소멸에 이르고, 다시 소멸은 생성을, 성장을, 소멸을 반복한다는 순환론처럼 우주만물의 변화 원리를 뜻한다는 설명도 있다.

여하튼 [주역]에서 변화의 원리를 설명하고 변화의 중요성과 함께 철리성을 설명한 것은 그 이름이 갖는 당연한 권리로 보인다. 그래서 유가의 최고 경전으로, 아니 그것을 넘어선 동양철학의 최고봉을 차지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2. 역(易)의 어원: 도마뱀


▎제주도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 ‘바오젠 거리’. 돌하르방 옆에 중국어 간체자가 적힌 간판을 내건 가게들이 보인다.
변화를 뜻하는 역(易)에는 ‘바뀌다’는 뜻도 있고, ‘쉽다’는 뜻도 있다. 또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무시하다’는 뜻도 있다. 이런 뜻을 가진 역(易)은 간단한 글자이면서 상용자인데도 그 어원은 뜻밖에도 이론이 많아 논쟁이 끊이지 않는 글자다. 그러나 그간의 해석을 요약하면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뉜다.


▎상형1
역(易)의 어원을 가장 먼저 설명한 사람은 한나라 때의 문자학자 허신이다. 그는 [설문해자]에서 역(易)이 도마뱀의 일종을 그렸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마뱀(蜥易) 즉 언전(蝘蜓), 다시 말해 수궁(守宮)을 말한다. 상형이다.” 그는 소전체의 [상형1]에 근거해 윗부분은 머리를, 아랫부분은 발과 꼬리가 함께 더해진 몸통을 그린 것으로 봤음이 분명하다.

후세 연구가들에 의해 풀에 사는 것을 ‘석역(蜥易)’ 즉 도마뱀을, 벽에 붙어 다니는 것을 ‘언전(蝘蜓)’ 즉 도마뱀붙이를 말한다는 구분적 주석이 더해지기도 했다. 도마뱀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색깔을 잘 바꾼다는 뜻에서 ‘바꾸다’는 뜻이 생긴 것으로 봤다.

이와 다른 해석은 역(易)이 일(日)과 월(月)의 구성으로 됐다는 설이다. 이는 허신의 시대에 이미 유행했던 것처럼 보인다. [설문해자]의 이어지는 설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서(祕書)]에서 역(易)이 일(日)과 월(月)로 구성됐는데, 음양(陰陽)이 계속 전화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달리 일(日)과 물(勿)의 구성으로 보기도 한다.”

역(易)이 도마뱀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일(日)과 월(月)의 결합으로, 해가 지고 달이 뜨며 달이 지고 해가 뜨듯 서로 ‘바뀌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해설도 존재한다는 설명을 특별히 부기해 뒀던 것이다. 자신의 어원사전에서 자신과 다른 해설을 첨부해 뒀던 것은 그만큼 당시에 유행했고 영향력 있던 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허신 자신은 부기는 해 두되 “비서(祕書)”의 해설이라고 해, 이는 믿을 수 없는 자료이자 해석이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시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 심리 반영됐다는 설도

당나라 때의 육덕명(陸德明)은 [경전석문(經典釋文)]에서 이러한 해설이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라는 참위서에서 보인다고 했다. [참동계]는 한나라 말 위(魏)나라 때의 백양(伯陽)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초기 도가 경전의 하나로 연단술에 관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설문해자]에 부기된 다른 해설이 허신 당시의 “비서(祕書)”로 전해졌고, 한나라 말 때의 [참동계]에 직접 반영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3. 역(易)의 또 다른 어원: 익(益)


▎그림 : 이원복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갑골문이 발견되고, 고대 한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해설이 등장했다. 갑골문 4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곽말약(郭沫若)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상형2(왼쪽)과 상형3
그는 청동기에 새겨진 금문 연구 과정에서 역(易)자가 들어갈 자리에 익(益)자가 들어간 것을 발견했고, 이에 근거해 이들이 같은 글자라고 주장했다. 즉 1957년 보고된 상해박물관 소장의 ‘덕방정(德方鼎)’을 비롯한 ‘덕원정(德圓鼎)’과 하버드대 포그(Fogg) 예술박물관 소장 ‘숙덕궤(叔德簋)’와 ‘덕궤(德簋)’ 등 4점의 청동기 명문에서 사(賜: 상을 내리다) 자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한 곳에는 역(易)자가, 다른 세 곳에는 [상형2] [상형3] 등으로 표기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상형2]와 [상형3]은 ‘더하다’는 뜻의 익(益)자이고, 익(益)은 ‘넘치다’는 뜻의 일(溢)의 원래 글자다.

곽말약은 이들 글자의 관계에 근거해 볼 때 역(易)은 익(益)이 줄어 만들어진 ‘줄임형’일 것이라고 했다. 또 의미적으로는, ‘더하다(益)’는 뜻에서 ‘넘치다(溢)’는 뜻으로 다시 ‘하사하다(賜)’는 뜻 등으로 연결되며, ‘더하거나’ ‘주는’ 것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바꾸게’ 되므로, ‘바꾸다’는 뜻이 나왔다고 했다.

이후 갑골문에서 찾아낸 은 두 손으로 그릇의 내용물을 다른 그릇으로 옮기는 모습을 하고 있어 이런 모습을 더욱 형상적으로 보여주어 이의 설명을 뒷받침했다. 이렇게 되면 자형은 물론 관련 의미의 파생 및 관련 글자들의 확장 과정도 함께 설명 가능해진다. 대단히 창의적이고 뛰어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곽말약의 해설을 원용한다면, 청동기 명문에서 역(易)이 왜 [상형2]와 [상형3]로 표기됐는지를 해명하고, 또 역(易)에서 분화한 사(賜)나 석(錫)이나 척(蜴)을 비롯해 척(惕), 척(剔) 등을 해석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즉 역(易)에 패(貝)가 더해진 사(賜)는 ‘하사하다’는 뜻인데 주나라의 봉건제도에서 왕이 제후나 신하들이나 상을 줄 때 주는 중요한 하사품의 하나인 청동(金)과 조개화폐(貝)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또 역(易)에 금(金)이 더해진 석(錫)은 ‘주석’을 뜻하는데, 주석은 황동(구리)을 청동으로 변화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금속의 하나이다. 상나라에서 주나라까지 청동기는 단순한 제가가 아니라 권력이자 권위의 최고 상징물이었다. 그런 청동기를 만들 때 주석은 필요한 금속이었다. 황동에다 주석(錫)을 납과 아연 등과 적당한 비율로 첨가하면 용해점은 낮아지고 강도는 높아져, 질 좋은 ‘청동’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석(錫)에는 ‘청동으로 바꾸는 금속물’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또 역(易)에 충(虫)을 더해 분화한 척(蜴)은 ‘도마뱀’을 뜻하는데, 몸 색깔을 잘 변화시키는 파충류(虫)라는 의미를 담았다. 나아가 척(剔)은 칼(刀)로 ‘깎아내다’는 뜻인데, 어떤 물체를 칼로 잘라 내면 다른 물체로 변한다는 뜻을 담았다. 척(惕)은 두려워한다는 뜻인데,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심리상태(心)를 반영했다.

그러나 곽말약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다소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그가 논거로 삼았던 금문의 예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즉 사(賜=易)는 금문에서 매우 중요한 글자로 출현 빈도가 대단히 높은 글자인데, 그가 든 4점의 청동기에서만 역(易) 대신 [상형2]로 등장할 뿐이다.

도마뱀 그렸다는 전통적 해설이 가장 설득력 있어


▎상형4
게다가 이들 4점도 개별 기물이긴 하지만 한집에서 동시에 만들어진 세트임을 고려한다면 기물 제조자의 개별적 특성을 반영했을 가능성도 크다. 게다가 갑골문에 [상형4]라는 자형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것도 사례가 너무나 적어 곽말약의 주장대로 익(益)의 줄임 형이 역(易)인지, 아니면 익(益)과 역(易)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다가(혹은 [상형2]나 [상형4]가 전혀 다른 개별 글자일 수도 있다) 서로 빌려 쓴 것인지, 즉 ‘가차’의 관계인지도 불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곽말약이 이 글자에 주목했던 것에 ‘특수한 목적’이 깔렸었다는 점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특수한 목적’이란 다름 아닌 신(新)중국 초기의 국가적 과제였던 한자의 ‘간화’에 필요한 역사적 근거가 절실히 필요했던 사실을 말한다.

1949년 성립한 신중국의 국가적 과제의 하나가 한자와 유가사상의 폐기였다. 세계의 중심 ‘중국’을 서구에 뒤지게 한 원흉이 이들이었기 때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신중국의 국가 싱크탱크였던 중국사회과학원의 초대 원장을 맡았던 곽말약은 한자 간화의 주도자였고, 그가 주나라 금문에서 발견한 한자 간화의 실례는 간화의 역사를 주나라 때까지 앞당겼다. 나아가 간화가 한자 역사 발전의 ‘법칙’이며, 이 때문에 한자를 줄이고 폐기해 알파벳 문자로 갈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설명해 줄 좋은 자료가 됐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역(易)이 익(益)의 줄임 형이라는 곽말약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곽말약의 학문적 권력도 사라졌고, 1986년에 이미 한자의 폐기 내지 간화도 잘못된 정책임을 국가적으로 선언했으며, 지금은 한자를 미래의 문자로 만들고자 하는 중국의 분위기에서 이를 수용하는 사람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역(易)의 어원에 대한 여러 해설이 있지만, 그래도 도마뱀을 그렸다는 전통적인 해설이 여전히 가장 믿을 만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호를 위해 쉽게 자신의 몸 색깔을 바꾼다는 뜻에서 ‘바꾸다’의 뜻이, 다시 ‘쉽다’는 의미가 나왔으며, 이후 의미를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척(蜴)이 만들어졌고, 의미의 세분을 위해 분화한 석(錫)이나 사(賜)나 척(惕)이나 척(剔) 등을 설명하는 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후의 철학서들에서 역(易)을 일(日)과 월(月)의 구성으로 해석한 것은 오류라기보다는 이를 보다 철리화하고자 한 결과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관찰할 수 있는 해와 달의 운행을 통해 우주의 변화 원리를 설명하고, 이것이 천지만물의 고유한 변할 수 없는 법칙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역(易)은 보통의 사물에서 생성된 일반적 개념에서 철리적 해석을 거쳐 숭고한 철학적 개념으로 변했다.

4. 변(變)과 역(易)


▎‘중국의 괴테’라 불리는 곽말약의 동상.
변화나 바꾸다의 뜻을 가진 한자는 역(易) 이외에도 여럿 있다. 개(改)도 있고, 경(更)도 있고, 환(換)도 있고, 또 변(變)도 있다. 개(改)는 아이(巳)를 회초리로 훈육하며(攴=攵)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그렸고, 경(更)은 손(又)으로 어떤 물체를 옮기는 모습을 그려 위치의 이동이나 변경을 말했고, 환(換)은 환(奐)이 [설문해자]의 해설처럼 “사람(人)이 높은 동굴 집(穴) 위에 서 있는 모습”임을 고려하면, 어떤 것을 집으로 가져와 ‘바꾸다’, 교환하다, 변환하다는 의미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변(變)은 역(易)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자주 연결되는 글자이기에 이의 어원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변(變)은 지금의 구조에서도 볼 수 있듯, 攴(攵, 칠 복)이 의미부고 䜌(어지러울 련)이 소리부로, 강제해(攴) ‘바꾸다’는 뜻인데 말(言)은 항상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변해 믿을 수 없는 것임을 반영했다.

이로부터 변경(變更)하다, 변화(變化)하다, 사변(事變) 등의 뜻이 나왔다. 구조가 복잡해 약자에서는 련(䜌)을 역(亦)으로 줄여 변(変)으로 쓰기도 한다. 현대 중국의 간화자에서는 복(攵)을 다시 又(또 우)로 줄인 변(变)으로 쓴다.

말(言)은 언제나 변하기에 믿을 수 없어

변(變)의 주요 의미는 강제하다는 뜻의 복(攵)에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은 언(言)이 더 중요한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자에서 언(言)으로 구성된 글자들은 살펴보라. 이들은 언제나 “항상성을 지니지 못하며”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왜 그럴까?

이전의 제2회 연재물(2018년 월간중앙 2월호)에서도 밝혔지만, 언(言)이 큰 퉁소를 그린 악기에서 출발했고, 언(言)이 사람의 말이 아닌 악기의 ‘소리’에서 출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한자에서 언(言)은 서구 문명에서의 ‘문자’처럼 영혼을 담지 못한 존재로, 가변적이며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됐다.

이는 사람의 영혼을 육체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시신에 칼집을 낸 문(文)이 출발에서부터 사람과, 그리고 영혼과 관련돼 매우 숭고한 의미를 지니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본다면 역(易)이나 변(變)이나 모두 인간이나 영혼과는 관계되지 않고 도마뱀이나 퉁소 등, 사물의 형상과 특성에서 기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변하다’는 뜻의 영어 “change”가 굽(히)다, 전환하다 등에서 출발한 것과도 큰 의미에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5. '역경'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

[역경]은 동양 최고의 경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변화에 관한 책”이라는 뜻처럼 우주만물과 이 세상의 변화원리를 불변의 도(道)로 보고, 그에 관한 다양한 이치와 응용 가능한 실례를 설명하고 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던가?

더구나 지금은 변화가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시대다. 잠시라도 그 자리에 머물러 변화에 뒤처지면 그야말로 완전히 도태되고 무용의 존재로 전락해 버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를 보면 생존을 위한 관심 영역과 개척의 대상이 시대를 달리하며 끊임없이 변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 즉 육지가 그 주된 대상이었다. 육지에 대한 개척과 정복, 그 과정에서의 투쟁사가 바로 인류의 기나긴 한 역사였다.

그러다가 육지의 한계를 인식하고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 즉 바다로의 확장이 또 다른 한 시대를 이끌었다. 15세기 말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서구의 역사가 이의 진정한 시발이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육지보다 훨씬 작고 좁은 영역으로 생각했던 해양이었지만, 5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해양의 거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파헤쳐 모르는 것이 없게 됐다. 또 해양의 영역은 물론 해양에 존재하는 자원의 소유권까지도 거의 정리된 상태다. 더 이상의 확장성은 이미 소진됐다 하겠다.

이제 어디로 나갈 것인가? 어디로 확장할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벗어난 영역, 바로 우주가 그곳이다. 가까운 달부터 화성을 비롯한 태양계의 여러 행성, 나아가 끝도 없는, 생성과 소멸의 원리조차 잘 알려지지 않는 저 미지의 우주, 그곳을 탐험하며 인식하고 결국에는 지배하려는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마치 대항해 시대, 앞다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 제국을 세웠던 것처럼, 제국을 꿈꾸는 대국들이 이의 탐사와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 이유가 바로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영역 점령하기 위한 열강들의 각축전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의 새로운 영역에 대한 개척이다. 즉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상징해 주는 네트워크, 연결망, 관계에 대한 영역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됐고, 사람과 사물이 연결됐고, 이제는 사물과 사물이 서로 연결되는 초연결망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포스트 휴먼(posthuman)도 정보나 기기와 연결이 배제된 존재는 이미 존재가 아님을 천명한다.

그래서 제국의 역사를 보면 이러한 단계에서 누가 먼저 새로운 영역을 앞서 점령하느냐가 새로운 세계의 주인이 됐다. 육역(陸域)에서, 해역(海域)으로, 다시 우주역(宇宙域)으로, 그리고 연결역(連結域)으로 확장하면서 말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농경사회를 살면서 육역을 지배했으나, 해역으로의 확장에 실패해 근대 이후 제국이 되지 못했다. 반면 유럽 제국들은 16세기를 전후해서 육역을 벗어나 해역을 개척하고 그에 대한 패권 장악에 나섰고, 그것을 장악한 가진 나라가 세계의 제국이 됐던 것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과 네덜란드, 영국과 미국 등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다.

21세기가 된 지금은 우주의 선점과 연결망을 지배하는 자가 진정한 제국이 될 것이다. 그 연결망은 데이터의 축적이 관건이다. 그것은 빅(big)데이터도 있고 스몰(small) 데이트도 있다. 구글이나 아마존이나 페이스북 등이 이러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축적하며 분석하고 활용하는데 사활을 건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의 시대를 DT(데이터 테크놀로지)시대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중국도 근대 이후의 치욕의 역사를 설욕하고 새로운 제국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바이두나 알리바바나 위쳇 등을 통한 데이터의 축적과 이를 통한 미세한 연결망의 구축이 그것이다. 그것의 결정체가 인공지능일 것이다.

우주역의 개척은 1950년대 이후 냉전시대의 두 축이었던 구 소련과 미국에 의해서 주도됐고, 늦었지만 최근 중국이 “우주굴기”라는 이름 하에 우주에 대한 탐험과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시대적 변천과 제국의 역사에 대한 능동적 적응에 불과하다. 우리가 눈여겨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다.

이처럼 거대한 담론만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영역이 다 그렇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지금, 상품과 시장의 변화는 매우 직접적으로 우리와 ‘연결’돼 있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에서 이뤄지는 시장의 급격한 변화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빠른 변화, 이것의 결정성을 보여준다. 상품의 오프라인 시장에서 온라인 시장으로의 변화, 생산자 중심의 시장에서 구매자 중심의 시장, 교육자 중심의 교육에서 소비자 중심의 교육, 개인 소유에서 공유로의 변화 등등 이루 열거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와인도 그렇다. 로마의 후광을 입은 이탈리아 독점 시대는 나폴레옹 3세의 와이너리에 대한 등급 부여로 순식간에 그 중심이 프랑스로 이동했다. 그리하여 유명 와이너리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생산자 주권 시대’가 열렸다.

그것이 영원한가 했지만 1980년대에 들어 로버트 파커라는 한 미국인이 도입한 100점 체계라는 너무나도 평범한 평가체계와 블라인드 테스트라는 기존의 기득권 파괴 시스템으로 세상이 다시 완전히 바뀌었다. ‘평론가 주권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2010년대에 들어서는 ‘Vivino’ 등과 같은 평가 앱(App)의 출현으로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 변하고 있다. 소수의 전문가가 평가하던 한정된 종류와 소수의 입맛으로부터 모든 종류를 발굴하고 모든 사람이 평가하고 함께 즐기는 ‘소비자 주권시대’로 진입한 것이다(홍익희, [와인패러다임의 변화]). 소수의 독점과 일방적 소통에서 다중이 참여하고 상호 소통하는 진정한 인터랙티브 시대가 열리고 있다.

옛것 익혀 새것 터득해야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대형 방송국이라는 일방적 통신에서 개인 모두가 방송국이 되고 함께 즐기는 상호 통신의 시대로 전이한 것이다. 구글과 아마존과 페이스북, 바이두와 알리바바와 위쳇 등이 모든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것, 공유경제와 인공지능이 미래 산업의 전면에 올라 시대의 화두가 된 것도 바로 지금의 시대적 변화의 반영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주역]에서 선언했던 변해야 산다는 말은 지금도 매우 유효하다. 아니 영원히 유효할 것이다. 변화도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창의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혁명적·창의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혁명적 창의적 변화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전통에 대한, 과거의 역사, 이전의 지혜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

6. 다시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보통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뤄서 새것을 알다”라고 번역하지만, 그 속에 담긴 한자어의 세밀한 의미를 파악해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옛것’을 말하는데 고(古)가 아닌 고(故)를 쓴 것이고, 그다음은 온(溫)의 의미이고, 마지막은 신(新)이 가리키는 것이다.

먼저, 고(古)와 고(故)는 보통 같이 쓰이지만, 고(故)는 고(古)에 복(攵=攴)이 더해진 모습이다. 복(攴)이 손에 매를 든 모습이라 복(攴)이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강제하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렇게 본다면 고(古)가 단순히 옛날을 뜻하는 데 반해 고(故)는 옛날로 돌아가게 하다는 뜻을 담았다. 정치가 갖는 과거로의 회귀와 복고적 경향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미래적이고 창의적인 것은 기존의 가치와 질서와는 다른 혁명성을, 개혁성을 포함하며 개인적으로는 모험과 위험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치는 물론 개인조차도 자신의 기득권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래를 향한 개혁과 창의를 거부하고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복고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을 갖기 마련이다.

온(溫)은 ‘익히다’로 풀이하지만 사실은 ‘뜨겁게 데우다’는 뜻이다. 게다가 온(溫)은 수(水)와 온(昷)으로 구성돼 그릇(皿)에 따뜻한 물(水) 한 잔 담아 죄수(囚)에게 준다는 ‘따뜻한’ 마음까지 넣어 긍정성을 담았다. 물을 뜨겁게 데우면 분자 운동이 일어난다.

특히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속성에도 변화를 일으켜 액체에서 기체로 근본적 속성까지 변화시킨다. 신(新)은 손도끼(斤)로 나무를 쪼개는 모습을 그렸는데, 나무를 가공해 다른 ‘새로운’ 물건을 만들다는 뜻이 담겼다. 나무로 만들었지만 전혀 다른 모습의 다른 용도의 새로운 물건이 탄생한다. 이것이 신(新)이 담은 의미이고 ‘새로움’의 상징이다.

그렇게 본다면 옛날로 복귀하고자 하는 속성을 물을 데우듯 분자운동을 일으켜 근본적으로 바꾸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창의를 만들어 내 것, 그것이 온고지신이 주는 진정한 메시지일 것이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답습보다는 창의를, 보수보다는 혁신을 보면서 나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정신이자 역(易)이 주는 시대적 사명일 것이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다.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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