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치매·심장병 예방하는 빨간 무 비트! 

식물 전체 식용할 수 있고 가정에서도 재배 쉬워
뇌 기능 촉진, 항암 작용은 물론 체중조절에도 유용


▎비타민·미네랄·식이섬유 등 풍부한 영양소를 품고 있는 비트.
비트(beet)는 ‘빨간 무’라고도 불리는 서양 야채로 아삭아삭한 식감과 풍부한 영양소를 가지고 있다. 특유의 붉은 색을 지녀서 샐러드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에도 쓰인다. 또한 비트(Beta vulgaris)의 붉은 색소인 베타닌(betanin)은 세포 손상을 억제할뿐더러 토마토의 8배에 달하는 항산화 작용을 하므로 암 예방과 염증 완화들에 효험이 있다 한다. 요새 와서 비트에 대한 칭찬은 하늘을 찌를듯하다.

비트만큼 붉은 즙물을 내는 채소를 여태 본 적이 없다. 한마디로 피 그 자체다. 다시 말해 비트를 먹고 난 후 입가는 물론 숟가락에도 피처럼 뻘겋게 묻는다. 그래서 인조고기를 만들 때 갈아 넣어서 감쪽같이 고기 색을 낸다고 한다. 그리고 냉장고에 깜빡 잊고 해를 넘겨 묵혔는데도 아무 탈 없이 싱싱한 것을 보고 참 독한 식물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는 곧 세균이나 곰팡이에 끄떡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의 남부 유럽과 북아프리카다. 비트는 동그란 모양을 하는 단단한 원뿌리(tap root)와 뿌리에서 난 싱그러운 잎을 먹는다. 잎줄기는 같은 명아줏과(科) 식물인 적근대(붉은 근대)와 매우 비슷하고, 뿌리는 강화 순무를 빼닮았다. 여린 속잎은 샐러드나 생채(生菜)로 먹지만 오래된 잎은 찌고 볶아 먹으니 시금치 맛이 난다.

비트는 명아줏과 두해살이풀이다. 따스한 제주도에서는 두해살이풀인 당근을 봄에 심어 이듬해 봄에 수확하듯이 비트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필자가 사는 춘천만 해도 겨울이 몹시 추워서 당근이나 비트가 월동하지 못하기에 한해살이풀이다.

그러나 꽃은 6월에 피고, 노란빛을 띤 녹색이며, 수술은 5개, 암술대는 2~3개이다. 열매는 시금치 종자처럼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것이 그 속에 보통 1~5개의 종자가 들었다.

비트는 비교적 재배가 쉽고, 식물 전체를 식용할 수 있어 외국에서는 집에서 손쉽게 재배하는 인기작물이다. 원줄기는 1m 안팎으로 자라고 잎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잎은 다소 붉은빛을 띤 녹색이며 표면은 매우 윤이 난다. 비트의 잎줄기는 어릴 땐 샐러드로, 자라면 조리해서 먹는다. 비트와 유사한 식물에는 잎을 국거리로 많이 쓰는 근대와 잎과 뿌리를 먹는 사탕무(sugar beet)가 있다. 물론 이 두 식물은 모두 비트와 같은 명아줏과 식물이다.

내 텃밭에도 비트(beet root)를 심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씨를 심은 후 발아부터 수확하기까지 보통 55~65일이 걸리는데, 해마다 씨를 뿌려 모종을 이식(옮겨심기)했으나 요새는 게을러져서 모종을 사서 심는다. 모종 한 판이 100여 포기가 되니 둘이서 먹고도 남는다.

그런데 비트 이야기를 하면서 다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비탈밭은 인가 가까인데도 고라니가 자주 들른다. 녀석은 봄부터 가을까지 고구마 순에서 도라지 새순까지 사람이 먹는 것은 거의 다 입을 댄다. 그중에서도 비트라면 환장(換腸)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트밭에는 그물을 높다랗게 빙 둘러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고라니와 머리싸움을 한다.

혈액 정화 도와 갱년기 여성에게 좋아


▎중세시대에는 와인색을 밝게 낼 때, 지금은 인조고기를 만들 때 비트의 붉은 즙을 이용한다.
비트 속잎은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고, 겉잎은 고기 등과 함께 사용해 요리의 풍미를 높인다. 물론 잎에도 붉은 색소 베타닌이 가득 들었다. 뿌리는 저장성이 좋아 1년 내내 먹을 수 있지만, 역시 제철은 자랄 대로 다 자란 가을부터 초겨울이라 하겠다.

비트는 뿌리 겉면이 매끄럽고, 껍질은 단단해야 하며, 모양이 둥그스름한 것을 골라야 한다. 수확한 지 얼마 안 된 것은 흙이 묻어 있고, 잘랐을 때 붉은색 무늬가 나이테처럼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확한 지 오래돼 수분이 빠져나간 비트는 이용하기 전에 물에 잠시 담가두면 수분을 흡수해 다시 싱싱 해진다.

크게 보아 비트 뿌리는 88%가 물이고, 탄수화물 10%, 단백질 2%, 지방은 1% 이하로 구성돼 있다. 비트는 간의 정화 작용을 하고, 골격을 형성하며, 특히 유아 발육에 좋다고 한다. 철분과 비타민도 다량 함유되어 있어 적혈구 생성을 돕고, 혈액을 깨끗이 만들어 월경불순이나 갱년기 여성에게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위(胃)점막을 보호해 주기도 하고 정장(淨腸) 효과도 있다 한다.

비트의 좋은 점을 모아 봤다. 1)비트는 칼로리는 적지만 거의 모든 종류의 비타민이나 무기염류(minerals)가 들었고, 2)비트에는 식이 질산염(dietary nitrate)이 고농도로 들어 있어 혈압을 조절해 심장병을 예방하며, 3)식이 질산염은 산소 공급을 촉진해 운동능력을 높이기에 운동선수들이 즐겨 먹고, 4)만성염증(chronic inflammation)을 줄여주고 잡아줘 잔병을 없애며, 5)식이섬유(dietary fiber)가 많아서 소화관을 건강하게 하고, 6)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떨어지는 뇌 기능을 촉진하며, 7)비트의 항산화와 항염증은 결국 암의 생성을 억제하는 항암작용을 하고, 8)물이 많고 열량이 적을뿐더러 식이섬유가 많아 체중조절에 좋다.

비트의 베타닌이 치매 예방을 한다는 것이 알려져 주목을 받고 있다고도 한다. 베타닌이 치매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beta amyloid)와 상호작용해 뇌에 미치는 해로운 일부 과정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비트(베타닌)는 아이스크림·캔디·토마토주스·베이컨·소고기·소시지 등등 여러 음식물의 색을 맑고 붉게 하는데 쓰인다. 중세시대 당시 와인색을 밝게 내려고 비트즙을 섞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입 냄새(구취, 口臭)의 일종인 마늘 냄새(garlic-breath)를 없애기 위해서는 비트조각을 씹는다.

이 붉은 색소는 몸 안에서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비트를 많이 섭취하면 잠시 대소변을 빨갛게 물들이지만 몸에 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변에 피가 묻은 것으로 오해하기 쉽고, 소변도 붉어져 당황하기 일쑤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912호 (2019.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