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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복거일 소설 ‘이승만’ | 물로 씌여진 이름 (제1부 광복) 

제17장 국치일 행사 (7) 

1898년 5월에 서재필이 떠나자, 독립신문과 독립협회를 이끄는 임무는 윤치호가 맡았다. 윤치호는 식견이 높아 개화에 앞장섰고 미국 유학을 통해 서양 문명을 습득했다. 아울러, 정세 판단에 밝고 처신에 신중해서 온건한 방식을 통한 점진적 개혁을 선호했다. 조선 정부와 강대국들이 개혁 운동을 억누르려는 상황에서 그는 개혁 운동의 지도자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성공은 두 모임의 견해를 대변하는 독립신문의 평판을 높였고, 독립신문은 1898년 7월부터 격일간지에서 일간지로 발전했다. 집회와 신문이 공력(synergy)을 얻은 것이었다.



러시아의 이권 요구를 물리치는 데 성공하자, 독립협회 지도자들은 자유민권운동을 활발하게 폈다. 그들은 ‘의회 설립’을 첫 사업으로 삼아, 7월에 의회 설립을 요청하는 상소를 거듭 올렸다. 고종과 정부가 그런 요구를 거부하자, 독립협회는 수구적인 친로파 정권을 퇴진시키고 개화파 정권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0월 1일부터 궁궐을 에워싸고 철야 상소 시위를 시작했다. 결국 고종이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박정양과 민영환(閔泳煥)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 정권이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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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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