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심층취재

Home>월간중앙>특종.심층취재

[트렌드 분석] 2030이 2020년을 사는 법 

“나이 많다고 어른 대접하던 것을 멈추겠다” 

전 세계적으로 밀레니얼 세대 정신이 된 ‘안티꼰대’
미혼모와 애완견의 동거도 ‘가족’으로 인정하는 新연대감


▎사진:© gettyimagesbank
SF영화가 유독 사랑한 숫자, 많은 사람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막연한 미래 같았던 2020년이 현실로 다가왔다. 2020년은 ‘비전’의 연도이기도 하다. 정치·경제·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20년’을 목표로 내걸고 달려온 것들이 유난히 많았다. 오랜 기간의 준비로 기대감에 찼던 해라는 의미에서 2020년은 모든 것이 새로운 해다.

[월간중앙]은 경자년 새해를 맞아 ‘2020을 살아갈 한국의 2030세대 트렌드’를 분석해보는 기사를 준비했다. 1982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신세대를 일컫는 ‘밀레니얼세대’는 한국의 사회문제를 상징적이고 다층적으로 보여주는 세대인 동시에 그 어느 세대와도 구분되는, 이른바 ‘다른 세대’다.

2019년 한 해 동안 이들이 한국 사회 이슈의 전면에 내내 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 곳곳에 만연한 권력형 성범죄와 각종 갑질을 고발하고, 부정부패한 세력을 향해 분노했다. 이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회에 관심이 없어’라던 기성세대의 흔한 멘트를 단번에 일축하면서 자신들만의 소신과 가치관을 부각시킨 측면도 있다.

이처럼 트렌드의 중심에 선 2030세대가 ‘오늘’이 된 2020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역동적인 현대사를 살아가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이며, 그들은 언제 가장 분노할까? 또 어떤 형태로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가게 될까. 이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 만들어낸 신풍속도를 살펴보며, 2030세대의 시각에서 2020년을 내다봤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이루고 싶은 것에 집중한다


▎새해를 맞아 서점에는 2020년 트렌드를 예측하고, 주요 논점을 제시하는 다양한 신간이 발행됐다. / 사진:박호수 인턴기자
하루 물 6잔 이상 마시기’ ‘11시 전에 잠들고 6시에 일어나기’ ‘시 필사하기’ ‘매주 영화 시청 후 감상평 쓰기’.

흡사 초등학교 방학 숙제 같아 보이는 습관 형성 모바일 프로젝트에 매일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해당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한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젝트는 약 1만2000여 명 이상의 가입자들이 참여한 ‘하루에 한 번 하늘 보기’ 프로젝트.

도전에 참여하는 사람은 2주 동안 카메라의 앵글이 하늘로 꽉 찬 사진을 매일 찍어 올려야 한다. 창문에 가려지면 실격이다. 하루라도 지키지 못하면 처음 도전을 신청했을 때 넣어둔 금액의 일부를 사회 후원금 형식으로 지불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강요나 타인의 시선에 의해 참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나 자신의 성장’이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목표가 거창할 필요도 없고, 경쟁에서 지게 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나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에 집중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매년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2020년 트렌드 키워드로 ‘업글인간’을 뽑았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업글인간이 추구하는 자기계발은 과거 대기업 입사용 ‘토익 900점 넘기’나 ‘한국사 1급’과 같이 스펙을 쌓는 개념과는 추구하는 가치와 방법 면에 매우 큰 차이를 갖는다.

신자본주의 물결에 따라 훌륭한 인적 자본으로 성장할 것을 강요받아온 밀레니얼 세대는 화려한 스펙을 가졌음에도 경기 불황과 취업난 앞에 큰 좌절을 겪게 된다. 그리고 사회가 성공이라고 여기는 가치들이 과연 자신에게 진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성공을 정의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에 나온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실제로 한국 청년들이 삶을 대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사회·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의 방식보다 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선택한다’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의 답변이 긍정 응답 53.6%로 다른 세대에 비해 가장 높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밀레니얼 세대는 ‘성장’을 추구할 때에도 ‘내 기준’을 가장 우선시한다. 2018년도에 대한민국 트렌드 키워드로 각종 미디어에 의해 소개되었던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단순히 미래보다 현재, 강도보다 빈도가 우선시되는 행복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트렌드였다면, 2020년도에 새롭게 등장한 ‘업글인간’은 행복을 누리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제보다 나은 ‘나’, 한 걸음 더 성장한 ‘내일’을 꿈꾼다.

전문가들은 ‘업그레이드(upgrade)’를 추구하는 청년들의 생활 태도 변화가 삶에 대한 무조건적 단념(斷念)이 아니라 수용(受容)에서부터 비롯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경제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삶을 사는 청년들이 다른 세대가 염려하는 것처럼 절망에 빠진 채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말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자조 섞인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일부 수용한다. 동시에 2020년을 살아갈 한국의 밀레니얼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삶을 추구한다.

“맛있는 건 참치, 참치는 비싸, 비싸면 못 먹어, 못 먹을 땐 김명중.”

자신이 속한 회사 사장 이름을 거침없이 부르며 특유의 당당한 매력으로 ‘어른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캐릭터가 있다. 바로 EBS의 새로운 캐릭터인 자이언트 펭귄 ‘펭수’. 펭수는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 결과 ‘2019년 올해의 인물’의 방송·연예 분야에서 송가인(17.6%)과 방탄소년단(16.7%)을 제치고, 20.9%의 득표율로 1위에 오른 최근 가장 핫한 벼락스타다.

최고 권력자에게도 한 방 날리는 ‘안티꼰대’ 정신


▎2019년 10월 24일,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트렌드 코리아 2020]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 / 사진:박호수 인턴기자
펭수가 ‘직통령(직장인의 대통령)’이라 불리며 이토록 2030세대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펭수의 인기를 분석한 다양한 언론 보도를 살펴보면, 모두 입을 모아 ‘할 말은 하는 성격’인 펭수를 통해 이 시대의 청춘들이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설명을 내놓는다.

펭수는 출세지향적이고 위계주의적인 ‘꼰대’ 문화를 향해 돌직구를 날리는 존재다. “평소에 너무 사장님 이름을 막 부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사장님이 친구 같아야 회사도 잘되는 겁니다”라고 일갈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기성세대 꼰대들의 충고도 비판할 줄 안다.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아니죠. 그쵸? 그러니까 힘내라는 말보다 저는 사랑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라고 조언한다. 속 시원한 입담을 선사하는 펭수를 보며 위로를 얻는 젊은 세대들은 “펭수의 말이 맞다. 아프면 청춘이 아니라 병자다.” “앞으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힘내라고 충고하지 말고 사랑한다고 하자”라는 반응들이 오고 간다.

펭수가 끌어올린 시대정신이 바로 ‘안티꼰대’ 정신이다. SNS상에서 큰 호응을 얻은 ‘꼰대들의 육하원칙’을 살펴보면 젊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는 ‘꼰대’들의 특징을 파악하기가 쉽다. “내가 누군지 알아?(who) 네가 뭘 안다고 그래?(what) 어딜 감히(where) 나 때는 말이야(when) 어떻게 나한테(how) 내가 그걸 왜?(why).”

자신의 생각을 젊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꼰대’들에게 저항하는 ‘안티꼰대’의 움직임은 펭수의 인기 상승의 물결과 함께 2020년을 사는 청년 사이에서 더욱 확산될 예정이다. 특히 ‘안티꼰대’는 최근 정치권을 향한 젊은 세대의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지난달 열린 ‘자유한국당 청년 정책 비전 발표회’에서 청년들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노땅 정당’ 이미지를 갖고 있는 한국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첫 발언자인 청년 황영빈씨는 “구색 맞추고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청년들을 이용한다면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대표가 청년을 이용하려는 게 아니라면 청년 비판을 흘려듣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뒤를 이어 발언한 청년 백이룸씨는 “청년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평일 오후 2시에 행사를 열었다”면서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청년들은 오지 말라는 이야기”라며 청년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단편적으로 꼬집었다.

기득권 정치인들을 향해 “그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른 대접을 해주던 것을 멈추겠다”고 선언하는 안티꼰대 현상을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7)가 2019년 9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지구 온난화를 방치해온 정치인을 향해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는가”라며 비난을 보낸 것 역시 이 같은 현상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툰베리는 세계 최고 권력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성난 눈초리로 째려보는 ‘레이저 눈빛’으로도 화제가 돼 여러 외신을 통해 “통쾌한 한 방을 날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불공정을 참지 못하는 ‘공정세대’


▎어린이들보다 어른들에게 사랑받는 EBS 캐릭터 ‘펭수’는 ‘꼰대’ 문화를 향해 시원한 돌직구를 날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사진:EBS 자이언트 펭TV 유튜브 캡처
이처럼 2019년도는 유난히 학계와 신문, 방송에서 ‘세대 갈등’ 이슈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 한 해였다.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라는 의미에서 386이라는 별칭을 가진 현재 50대가 시대의 흐름상 한국의 절정에 도달하는 시기가 왔고, 그 대척점에는 역사상 가장 공정함을 추구하는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가 있었다.

현재 한국의 2030세대는 수직적인 문화와 수평적인 문화의 변곡점에 서 있다. 기성세대의 상명하복(上命下服)식 문화는 단군 이래 가장 평등이 강조되는 사회 속에서 그들이 또래집단들과 공유해온 문화와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논점 2020]에서 우석훈 박사는 386세대의 거대 민주화 담론에 부딪히는 한국 청년들의 공정성을 두고, ‘마이크로(micro) 담론’이라 정의했다.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들도 청년들은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반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젊은 세대는 항상 기성세대에 도전해 왔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맞부딪히는 것은 거대한 이념이나 사회조직이 아니다. 바로 내 곁에서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게 일어나는 일에 개인적으로 맞선다.

우 박사는 청년세대 공정성 담론의 기원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쟁’을 꼽았다. 통일과 평화라는 큰 명분에서 선수 몇 사람이 출전하고 말고가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이것이 진보 50대들의 시선이었다면, 20대들은 선수 한 명, 한 명에 대한 ‘공정성’을 내세우며 대통령 지지율에 위기가 올 정도로 강렬하게 반응했다.

전문가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공평하고 올바른 것에 대한 청년층의 욕구가 강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에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도 2020년 세 번째 트렌드 키워드로 ‘페어 플레이어’를 선정했다. 기자가 [트렌드 코리아 2020] 출간 기념 발표회를 갔을 때, 책의 저자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다. 아침 등교 시간 서울대 입구역에서 서울대 내부로 진입하는 셔틀버스의 줄은 언제나 길다. 버스 기사가 승차 시간을 줄이고자 학생들에게 일부는 뒷문으로 타도 괜찮다고 외치지만, 어느 누구도 열린 뒷문으로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똑같이 줄을 섰는데 누군가가 뒷문으로 승차하는 것이 극도로 싫고, 또 자신도 새치기를 하는 사실이 싫어서라고 대답한다.

김 교수는 “개인성이 화두인 사회에서 자란 젊은 페어 플레이어들은 직장 내에서도 막내인 자신의 기여가 팀장님께 돌아가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특성이 있다”라며 “사회 구조적 이슈로만 여겨졌던 공정함에 대한 열망이 일상의 모든 영역으로 퍼져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생활양식을 창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갖는 ‘공정’과 ‘올바름’에 대한 열망은 구매행위에서도 확인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제품·서비스를 구입할 때, 나의 소신이나 가치관에 맞다면 구입, 사용 과정의 불편함도 감수할 의향이 있다’라는 질문에 밀레니얼 세대가 50.1%로 세대별 긍정 응답률이 가장 높았다. 이들에게 구매는 일종의 ‘화폐투표’ 개념이다. 구매할 때도 그 브랜드가 가지는 ‘선한 영향력’이 소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불붙는 불매운동에서 2030세대의 참여율이 가장 높은 이유도 단순한 열기가 아니라 젊은 세대의 이 같은 공평성·선함·효능감에 대한 열망이 표현된 것이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 관계에 매력으로 느끼기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7)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성난 눈초리로 째려보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 사진:연합뉴스
경쟁을 통해 이뤄내는 ‘성공’보다 나 자신의 ‘성장’을 꿈꾸게 된 청년들, 권위주의적인 꼰대 문화에 정면으로 맞서는 청년들, 역사상 가장 공정함을 추구하는 세대가 된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2020년,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연대’하며 살아갈까?

‘20대 미혼 여성과 40대 미혼모 여성, 그리고 이 여성의 딸인 초등학생 아이와 애완견 한 마리.’

아이를 혼자 키우는 미혼모 여성 김지은(가명)씨는 셰어하우스를 운영한다. 3년 전부터 자신의 집에 들어온 동거인은 20대 미혼 여성인 홍서윤(가명)씨다. 그녀가 데리고 온 애완견을 포함해서 한 지붕 아래 4명이 함께 살고 있다. 김지은씨는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는 한가족이다”라고 말한다.


▎최근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자신의 내밀한 속 얘기를 쉽게 털어 놓는 ‘게스트하우스 파티효과’ 현상을 목격할 수 있다. / 사진:맥썸 게스트하우스
해마다 발간되는 유명 트렌드 서적 [라이프 트렌드 2020]은 2020년 가장 주목하는 트렌드 키워드로 ‘느슨한 연대’(Weak Ties)를 선정했다. 저자는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관계만을 지칭했던 ‘느슨한 연대’의 개념을 결혼과 가족 제도를 버리고 대안 가족을 꾸리고 사는 사람들부터 다양한 취향을 공유하는 가벼운 ‘살롱(salon) 모임’ 같은 커뮤니티의 형태로까지 확장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이러한 연대에 대한 소비가 더욱더 촉진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실제로 밀레니얼 세대가 ‘가족’을 바라보는 인식은 바뀌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에 발표한 ‘다양한 가족구조’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자. ‘전통가족이 아니라 다양한 가족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질문에 ‘동의한다’고 응답을 한 20대는 71.0%에 달했다. 10명 중 단 3명만이 전통가족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한국의 젊은 세대들에게 가족은 이제 ‘부모-자식 간의 혈연관계’가 근간이 된 채 ‘끈끈한 연대’를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끼리 자유롭게 살아가는 가구의 모습도 이들에게는 ‘한 가족’으로 인식된다. 가장 최근에 나온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비혼 동거 가족이나 친구끼리 모여 사는 비친족 가구는 34만 가구가 넘는다. 비친족 가구의 수가 매년 10% 이상 증가하는 추세로 보아 2020년에는 훨씬 더 다양한 대안 가족이 우리 사회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법과 제도로 묶여 있는 연대를 지양하는 젊은 세대들은 연대할 때는 연대하지만, 일정한 거리감을 두는 ‘따로 또 같이’의 삶을 추구한다.

가족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는 내가 원할 때는 언제든 맺고 끊을 수 있는 관계의 ‘느슨함’을 강조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보다 비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을 선호했고, 술자리와 같은 친목 모임을 강요하지 않는 모임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게스트하우스 파티 효과’ 개념을 이용해 위와 같은 현상을 설명한다. 최근 여행을 떠나는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저녁마다 술과 노래가 있는 조촐한 파티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곳에서 젊은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놀랍도록 솔직하고 내밀한 자신의 속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이들에게는 편안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경자년은 꾀가 많고 영리한 ‘쥐의 해’라는 측면에서 역사상 가장 많이 배우고, 똑똑한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세대와도 맞물리는 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19년도에 발표한 ‘사회 통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와 30대의 행복감은 10점 만점에 6.6점과 6.7점으로 전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난다. ‘88만원 세대, N포세대,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 등 그동안 우리 사회의 청년들을 일컫는 단어들은 ‘절망, 포기, 불행’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새로운 해, 2020년을 사는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행복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lake806@naver.com

202001호 (2019.12.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