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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의 어드벤처(32)] 벽안(碧眼)의 여인에게 비친 사막의 낭만 

유럽에서 온 그녀는 과연 베두인이 될까? 

사막 생활의 외형에 취해 베두인 마을에 정착한 백인 여성
문화적 차이의 벽에 가로막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


▎사막의 여인들은 외출할 때 온몸을 검은 천으로 완전히 가린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전체적인 상황을 보다 명료하게 파악게 하기 위해서, 나는 와디 럼에서 일어나고 있는 매우 명백한 동물 학대의 정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례를 들면, 젊은 개구쟁이들이 개를 철사로 묶어놓고, 큰 자갈을 개에 던져 맞추게 시합을 하는 등 너무도 처참하게 고문을 행하는 이야기들이 다반사처럼 떠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한 남자가 자기 점심을 그냥 무방비로 놓아두었는데 그의 동생의 개가 그것을 먹어버렸다는 것이다. 자리로 돌아온 그 남자는 자기 점심이 없어진 것을 알자 그 자리에서 그 개를 쏘아 죽여 버렸다. 나중에 동생이 개를 찾자, 형은 자기는 모르겠다고 해버렸다는 것이다. 결국 그 형은 자기가 죽였다는 것을 고백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이야기의 진상이 나에게 전달되었을 리 만무하다.

나는 이런 얘기들을 한나(Hanne)라는 이름의 스물다섯 살짜리 소녀에게서 들었다. 한나는 북구에서 온 여인이었는데, 모하메드 사라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사촌인 아프달라라는 청년과 정혼한 사이였다. 한나는 개를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한나가 개에게 행해지는 두려운 이야기를 할 때는 자애로움, 또는 원망 가득 찬 어조로 이야기하곤 했다. 한나는 그녀의 피앙세인 아프달라가 친절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그렇게 참혹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말을 했지만, 그의 약혼자 역시 개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관해 전혀 지식이 없다고 했다.

아프달라 가족의 집 지키는 개가 어느 날 주둥이가 반쯤 날아가 버린 채로 돌아왔다. 누군가 총으로 그를 쏘았다. 집안 식구 누구도 이 사태에 대해 어떠한 조처를 해야 할지를 몰랐다. 집안사람들은 그나마 집이라고 떠나지 않고 있는 그 개를 그늘진 구석에 뉜 채 그냥 홀로 내버려 두었다. 한나는 방치된 그 개를 며칠 동안이나 돌보았지만, 그것은 처참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썩기 시작했고, 수백 마리의 하얀 구더기가 주둥이에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개는 살아있었고 간신히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이 잔혹상을 목격하면서 한나는 아프달라에게 그 개를 쏴서 생명을 빨리 종료시켜달라고 애걸했다. 그런데 아프달라는 살생을 하는 것은 이슬람 신앙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거절했다. 그러나 실상인즉, 가족 멤버 누구도 그 개를 고통으로부터 구출시켜줄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있질 못했다. 한나는 결국 아프달라에게 개를 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프달라는 방아쇠를 당겼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는 세 가지 주제를 말해주고 있었다.

베두인들의 잔혹한 학대의 참상


▎사막에 정착한 유럽 여인 한나가 키우는 흰색 개.
첫째, 개들이 코가 날아가는 등 아무 이유 없이 학대당하고 있다. 둘째, 아프달라 가족과도 같은 어떤 베두인 사람들은 심약하고 겁이 많다. 셋째, 종교가 그들이 행하는 일에 대한 정당성도 제공하고, 또 행하지 않은 일에 대한 구실도 제공한다.

한나는 2013년 10월 중순경, 나의 사막생활에 등장한 매우 독특한 캐릭터였다. 그녀가 북유럽의 자택에서 6개월을 보낸 후 와디 럼에 막 되돌아왔을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는 2년 전 처음 와디 럼에 왔다가 베두인 청년 아프달라와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은 결국 그녀를 다시 와디 럼에 돌아오게 하였다.

나는 그녀를 친견하기 이전에, 이미 그녀의 열렬한 동반자가 되어버린 아프달라로부터 그녀에 관해 몇 번인가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들의 관계가 관광객으로 온 서구의 여인이 아주 이국풍의 로컬 가이드에게 홀려, 격식 없는 로맨스를 즐기기 위해 다시 오곤 하는 관계의 한 전형이거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상념은 옳지 못했다. 그들은 빌리지의 조그만 집에서 같이 살았다. 한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한 남자와 같이 살기 위해서, 스칸디나비아 고향에서 향유하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곳 사막으로 본거지를 옮긴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마력은 헤아리기 어렵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차 뒤 쪽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나는 사막의 차 안에 매우 매력적인 아름다운 서양 여인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내심 놀랐다. 흰 얼굴에 금발의 머리카락, 복성스럽게 생긴 둥근 윤곽에 부드러운 서양 미녀의 굴곡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저녁 식사를 같이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유창한 영어를 말할 수 있도록 잘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고, 또 예의범절이 바른 교양 있는 여인이었다. 나는 자꾸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당신 같이 지체 있고 교양 있는 여자가 뭣 때문에, 도대체 뭘 바라고 이 사막에서 산단 말이오?” 물론 내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사람들은 똑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나 사이에 초면의 서먹서먹한 느낌을 깨는 대화의 첫 토픽이 바로 개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와디 럼에서 두 마리의 개를 소유하고 있었다. 1년 전에 그녀가 양육하기로 했을 때, 그 두 마리의 개는 암컷이라는 이유로 도살될 운명이었다. 그녀는 그 두 마리의 개를 아카바의 수의 클리닉으로 데려가 난소 제거 수술을 행하였다. 사막에서는 난소를 제거해야만 발정기가 없어지므로 수컷처럼 오래 살 수가 있다. 그리고 아카바에서 산 수입품 음식으로 개를 길렀다.

이러한 그녀의 행태를 빌리지의 그 누구도 이해하질 못했다. 주기적으로 사살될 운명의 암캐들을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기른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질 않는 것이다. 빌리지에는 암캐가 극소수였다. 그래서 암캐 한 마리라도 발정하면 수십 마리의 수캐들이 사방에서 모여든다. 그래서 암캐 주인의 입장에서는 괴롭기만 한 것이다.

사랑을 찾아 사막으로 돌아온 서구의 여인


▎베두인과 사진 찍는 유럽의 여성 관광객. 유럽 여성들은 겉으로만 본 사막 생활을 동경하다가 베두인 남자와 결혼해 정착하곤 한다.
그녀는 내가 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또 그녀를 서구적 기준으로 이해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라는 주제로 허물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녀가 6개월 동안 사막을 떠나있는 동안, 그녀는 자기 개를 아프달라의 부모 집에 맡겨놓았다. 그런데 이 개들이 다시 난폭해지고 다른 베두인 개들처럼 벌레 많은 지저분한 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불평을 나에게 늘어놓았다. 한나는 매우 신중하게 그 암캐들을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점잖은 개로 훈련해 놓았다. 이제 한나는 개 훈련을 제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가 타아의 캠프에서 실험적으로 따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후에, 한나는 내가 그녀에게 사막으로 가서 독자적인 생활을 하게끔 영감을 주었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자신의 개들과 함께 따로 캠프를 차리고 살고 싶어 했다. 그녀는 여러 면에서 빌리지 사람들의 행태에 물린 듯했다. 그들이 개를 취급하는 태도라든지, 그녀의 사생활에 참견하는 것, 그들 자신의 영역에 이국인이 있다는 것을 각화해서 바라보는 짜증스러운 시선들에 질려버린 것이다.

단지 베두인족의 살림 주부가 되기 위해 그토록 가차 없이 가혹한 환경으로 거처를 옮기려고 하는 그녀의 의지에 너무도 당혹감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마치 전형적인 뉴요커들이 파티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 말을 던지듯이 그녀를 닦달했다. 나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대체로 짧고 부정적이었다. 일례를 들면 다음과 같이 질의와 응답이 오갔다.

“본국에서는 직업이 있었니?”

“지금은 없어.”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는 거니?”

“아니.”

“온종일 뭘 하고 사니?”

“아무 일도 안 해.”

그녀의 대답은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내가 자기와 똑같은 이유로 이 사막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베두인 남자와 결혼해 사막에서 베두인처럼 살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나는 유럽 여성이 베두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베두인의 사막 생활과 문화에 온전히 동화되어버린 몇 개의 사례를 알고 있었다. 특별히, 관광객이 많고 베두인들도 비교적 개방적인 페트라 지역에서는 그러한 사례가 종종 있었다.

내가 페트라에 갔을 때, 한 프랑스 여인이 완전히 집시화된 모습으로 울긋불긋 치장하고 다른 베두인들과 같이 서서 수제품 보석과 장신구들을 팔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불어가 자유롭기 때문에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그녀는 토착 베두인 남자와 결혼해 베두인이 생계를 이어가는 똑같은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면서! 무슨 청승이랴마는 그것은 그녀가 선택한 삶이었다.

와디 럼에서는 그런 케이스가 매우 적었다. 내가 알기로는 두 여자 사례가 있었는데, 하나는 벨기에 여자였고, 하나는 영국 여자였다. 이들은 모두 로컬 남자와 결혼해 빌리지에서 살고 있었다. 매년 한 10만 명 정도의 관광객이 와디 럼을 찾아온다. 그중에서 아주 난폭하리만큼 이국적인 사막 사나이들의 매력에 이끌리는 서양 여자가 기백 명 정도 있다고 치자! 그중에서 단지 두 명의 여자가 베두인의 삶 속으로 진입해 정착하였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면, 베두인과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겠다는 한나의 발상은 결코 성공적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질 않았다.

궁극적으로 이 두 여자의 성공담은 온전히 종교적 신념과 연관되어 있다. 그 영국 여자는 결혼하기 전에 이미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신내림된 무서운 광신도였다. 한국의 태극기부대 사람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같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 광신의 맹목성을 알 수가 있다.

사막의 매력에 빠져버린 여인들


▎페트라의 베두인들. 와디 럼 사람들과 전혀 다르게 자유분방하다.
나는 빌리지에서 베두인 결혼식이 열린다 하여 여성들만 들어갈 수 있는 텐트로 초대되어 갔는데 그 영국 여자를 텐트 안에서 만났다. 그녀는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의 여인이었는데 완전히 베두인 냄새가 몸에 밴 듯 차려입었다. 그리고 나이가 든 베두인 여인들에게 차를 서빙하고 있었는데, 그 영국 여자는 나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을 생략하고 넘어갔다.

그녀의 태도 속에서 나는 의도성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설렘을 위해 일하는, 혹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아우데의 부자 형님을 위해 일하는 인도네시아 하녀로 간주하고 의도적으로 건너뛰었다. 그녀는 이러한 인종차별(racism, 인종주의)을 아랍문화권에서 획득한 것일까? 아마도 그녀는 아랍에 오기 전에 이미 무지몽매한 인종차별적인 유럽 백인사회의 통념으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또 한 여인은 벨기에 여자였는데, 빌리지에서 혼혈 자식들과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거의 집 밖으로 나가질 않는다. 그녀는 집안에 갇혀있는 삶이 여인으로서 보다 적합한 생활이라고 믿는, 매우 전근대적인 생활패턴에 젖어있는 고고인류학적 인간인 듯했다. 그녀의 남편이 생존하기에 필요한 무엇이든지 밖에서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개종한 무슬림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 여인들의 개인사를 잘 알지 못한다. 나의 추론이 틀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여인들이 고국에서 심각한 실존적 문제를 안고 사막으로 왔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당한 신념적 선택인지, 가련한 도피인지는 내가 궁극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나는 크리스천이었고, 개종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이러한 그녀의 신념적 자세만 가지고도 아프달라와의 관계에 관한 그녀의 삶의 선택이 결코 성공적이기 어렵다는 것을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를 처음 만난 후로, 나는 그녀에게 삶의 선배로서 조언을 주어야만 하는 묘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돕는 것은 인간적으로 하나의 당위였다. 그런데 그녀가 기획하는 모든 일은 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사막에서 살지만, 끊임없이 창조적인 일과 속에서 나의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또 물리적으로도 바쁘게 지낸다. 나는 사막에서의 나의 삶이 나의 실존의 체험을 심화시키는 하나의 실험적 시도이며, 이것이 나에게 궁극적인 초월을 가르쳐주리라고 믿고 있다.

내가 베두인 남자와 결혼하기 위하여 사막에 와서 살고 있다고 믿는 그녀의 터무니없는 망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뇌까려본들 그녀가 무엇을 이해했을까? “오~ 노! 난 이런 데 정착 못 해. 잠시 집필을 위해 조용하고 고립된 특별한 환경이 필요했을 뿐이야. 알잖아! 난 맨해튼 한복판에 사는 사람이야.”

그리고는 또 지껄일 수밖에 없었다. “사막으로부터 베두인을 데리고 나갈 수는 있지만, 베두인으로부터 사막을 데리고 나갈 수 없다는 속담이 있지. 마찬가지야! 뉴욕으로부터 뉴요커를 데리고 나갈 수는 있지만, 뉴요커들로부터 뉴욕을 데리고 나갈 수는 없지. 뉴욕이 체화된 사람들은 뉴욕을 떠나지 못해.”

사막에 대한 동경과 일상의 괴리


▎베두인 남성들이 명절에 쓸 염소를 잡고 있다. 빌리지(읍내)에 다닐 때는 베두인 여인처럼 온몸을 가려야 한다.
홍익인간의 신념을 지닌 고조선의 후예가 알라신을 섬기고 살 수는 없는 노릇, 하여튼 내가 한나에게 한 말들은 따지고 보면 매우 속물적인 거드름이 배어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역시 사막에서 오래 살다 보면 한나처럼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공포심을 깔고 한 말일 수도 있다. 창조적인 예술 창작을 위해 가졌던 열정과 포부를 다 상실한 채, 도시의 소음을 다 잊어버리고 나른한 사막 여인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나는 확고하게 한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재삼 다져야만 했다. “나는 뉴욕에 다른 삶이 있다! 나는 새로 태어나고 재충전되었을 어느 시점에 즉각 돌아가리라!”

한나를 만난 지 겨우 며칠 지났을 때 한나는 빌리지의 자기 물건들을 다 꾸리기 시작했다. 사라의 캠프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개 두 마리와 함께 사막에 텐트를 치고 살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텐트를 마련할 때까지 도시로부터 가져온 대형의 캠핑 텐트를 빌려주었다. 나는 놀라기도 했고 또 그녀에 대한 걱정이 태산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저다지도 허약하게 보이는 백인 색시가 아주 최소한의 캠핑도구만 가지고 사막에서 홀로 생활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타아의 캠프에서 누리는 혜택, 일례를 들면 수도나 가스스토브 같은 것도 없이 어찌 홀로 생활한단 말인가!

베두인 캠프를 떠나서 따로 산다는 것은 실제로 문제가 많았고 또 위험했다. 그러기에 더욱 나는 그녀와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인 생활 지혜에 관하여 우리는 서로를 도와야 했고, 그러던 중 우정도 짙어만 갔다. 빌리지나 아카바로부터 어떻게 생필품을 공급받는가? 개는 어떻게 돌봐주나? 사라의 캠프의 음식이 너무 반복적이라서 지루할 때는 내가 좀 이색적인 음식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로컬들과는 나눌 수 없는 얘기들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갔다. 한나의 고백과 불평을 들음으로써 나는 베두인의 문화와 서구의 문화의 차이가 어떤 방식으로 충돌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존적 번민을 만들어내는지를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겪은 불만과 공통성이 있었고, 그러기에 나는 그녀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나는 나보다 더 많은 이슈를 감지하고 있었다. 한나는 나보다 체류 기간이 길었을 뿐 아니라, 실존적으로 베두인 애인과 같이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나보다 좀 더 현명하고 나이가 많은 친구로서 나는 그녀에게 단순히 주부가 되는 것 이상의 어떤 삶의 목표를 사막의 생활 속에서 발견하도록 격려하고 또 격려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별로 매가리가 없는 태도를 취했다. 삶의 과정에서 깊은 트라우마를 겪어 그녀 자신에게 어떤 생명력을 제공하는 의미 있는 그 무엇을 상실한 여인처럼 보였다.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든지 그림을 그리든지, 북유럽의 도시로 돌아가 직업을 잡아보라고 권유했지만, 그것은 마이동풍이었다. 한나는 텐트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거나, 빌리지의 시멘트 벽돌집에 가서 앉아있거나, 음식을 만들 궁리를 하거나, 청소하거나, 개하고 놀거나, 연인이 오면 맞이하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녀의 불만은 매일 쌓여서, 그것은 그녀가 와디 럼에서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다 없어질 정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개를 양육하는 문제 뜻밖에 불만의 좋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갈다. 내가 그녀와 공유하는 것들로부터 시작해보자! 우리 둘이 모두 공유하는 첫 번째 불만은 베두인들과 만나는 것, 그리고 같이 일하는 것을 조직할 때 생기는 어려움에 관한 것이다. 베두인은 우리와는 매우 다른 시간관념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베두인에게 어느 장소에 어느 시간에 있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그 약속이 지켜지리라는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 베두인은 그 시각에 그 장소에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나가 몰랐던 베두인의 습성


▎군데군데 떨어진 민가에 물을 공급해주는 낡은 급수차.
베두인은 사물을 조직할 때 되는 대로 마지막 순간에 결정하거나, 순수히 우발적으로 하거나 한다. 단지 관광가이드로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데리고 다닐 때만 시간을 지키려 하지만, 그것도 대부분은 정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누구를 정확한 시각에 만나기를 약속한다는 것,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는 그러한 행위양식이 베두인 문화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생활상의 중요한 과제를 처리하는 데도 상황은 똑같다. 일례를 들면, 캠프의 식수 탱크에 물이 말랐을 때 아우데에게 늦어도 내일까지는 식수공급 트럭이 와서 수조 탱크에 물을 채워달라고 요구를 하면, “예스”에 해당하는 말이겠으나 반드시 “인샬라(Inshallah)”라고 말한다. 그 뜻인즉, 직역하면 “신의 의지하심”이 되겠지만, 의역하면 “알라가 뜻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내가 매일 요구해도 항상 대답은 “인샬라”이고, 물 트럭이 오는 데는 며칠이 걸린다. 그런 상황에서는 나는 사라의 캠프를 가야만 하고, 그곳에서 병에 물을 담아오거나, 필요하면 그곳에서 몸을 씻기도 한다. “인샬라”는 아랍어에 있어서 미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할 때 아주 잘 쓰는 말이다. 베두인이 그 말을 할 때는 그들은 정말 문자 그대로 그 말의 뜻을 신봉하는 것 갈다. 그리고 그것을 그들이 해야만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편리한 변명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내가 속한 문명권에서는 내가 내일까지 물탱크를 채워달라고 요구하고 그에 대한 응당한 보수를 지불했다면, 물 채우는 일은 위탁받은 자의 일이고 책임에 속하는 것이며 알라의 의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로 상당한 고충을 경험하고 나면, 베두인이 ‘인샬라’를 말할 때마다 “웃기지 마, 그것은 네 의지야. 신의 의지가 아니란 말이야. 네가 해야만 돼. 알겠니?” 하고 호통을 치고 싶지만 나도 덩달아 “인샬라”하고 끝내는 수밖에 없다. 중국 문명의 ‘차뿌뚜어(差不多)’는 인간끼리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이므로 인간미라도 있지만, ‘인샬라’는 초월자를 끌어들이고 인간이 빠지기 때문에 한없이 얄밉다. 인간 중심 문명과 신 중심 문명이 이렇게 다른 것이다.

한나와 내가 공유하는 또 하나의 불평은 청결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베두인은 자기들의 공간을 정돈되고 깨끗하게 지키는 것에 관해 우리와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 수세식 변소나 가스스토브가 있는 부엌이나 전기 등의 근대식 편리함이 갖추어진 집에서 산다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부적응도 이해할 만한 것이기는 하다. 요즈음의 젊은 베두인들도 집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소제해야 한다는 것에 관해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들의 부모가 사막에서 문명의 이기가 없이 유목민으로 살았고, 청소라는 것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개미나 뜨거운 햇볕이 청소와 위생에 관한 작업을 말끔히 처리해준다.

소유에 대한 베두인의 희박한 관념


▎번화가에 해당하는 빌리지에는 천막 대신 콘크리트 건물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부부가 공유하는 공간에 왔다 가는 아프달라와 그의 친구들은 반드시 쓰레기를 남겨놓고 떠난다. 그것을 치우느라 고생하는 한나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타아의 캠프에 관광객들이 머물 때마다 나는 똑같은 상황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우데가 내가 쓰고 있는 텐트 이외의 텐트에 관광객을 데려오면 그들은 반드시 쓰레기를 남겨놓고 간다. 저녁을 먹은 후에 그가 접시나 그릇을 씻는다고 하지만, 그가 씻은 접시나 사발이나 작은 그릇들에는 항상 음식 찌꺼기가 붙어있다. 그러니 내가 함께 손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항상, “너는 나의 손님이니까 일하지 않아도 돼”라고 친절하게 말하지만, 그때 내가 씻지 않으면 결국 일과 물의 소비가 몇 배로 늘어날 뿐이다. 내가 같이 씻지 않으면 결국 다음날 내가 여벌의 일을 해야 한다. 워낙 더럽게 씻어놓기 때문이다. 다음날 다시 수고한다는 것은 물의 낭비가 크다. 그 물은 내가 지불해야 하는 금덩어리 같은 것이다.

베두인과 부닥치는 또 하나의 이슈는 소유자와 소유에 관한 전혀 다른 감각에 관한 것이다. 원래, 유목민들은 사막에서 어떤 특정한 물건이나 토지나 공간을 소유한다는 관념이 없었다. 그들이 만드는 텐트도 일시적인 것이다. 사막에는 영원이라는 것이 없다. 가혹한 사막의 땡볕 아래에선 무엇이든지 금방 해체되어버리고 만다. 대상 일반의 지속성에 관한 관념이 부재한 것이다. 유목민들은 그들의 가축도 한가족 전체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모든 것은 나누어 갖는 것이며, 그 어느 물건도 하나의 유일한 개인에 의하여 소유된다거나, 영원히 소속된다는 그런 관념이 없는 것이다.

한 필지의 땅을 소유하고, 지속적인 가옥이나 자동차, 그리고 생계를 위한 다양한 물건을 소유한다는 관념은 매우 새로운 관념이며, 그러한 신풍속은 빨라 봐야 그들의 부모세대 이상으로 소급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베두인의 젊은 세대들조차 우리가 근대적, 도시적 삶에서 약속으로 지키는 물건에 대한 개별적 소유의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나는 자기가 아프달라에게 주기 위해 외부에서 사 온 물건들이 빨리 사라지거나 훼손되거나 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베두인의 집 내부의 모습. 정돈되지 않고 지저분한 경우가 많다.
일례를 들면, 한나는 아프달라에게 멋있는 선글라스 하나를 선물로 사다 주었는데, 그것은 몇 주 만에 부서지고 말았다. 그가 그것을 그냥 방바닥에 팽개쳐 놓았다. 그녀는 또 매우 비싼 점퍼 한 벌을 고국에서 사서 아프달라에게 주었는데, 그의 사촌이 그것을 보더니 좋다고 하면서 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 잠바를 되돌려주지 않았다. 이 사건은 한나를 격분시켰다. 그것은 매우 모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아프달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 애는 내 사촌이잖아. 빌려달라는데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 김미루 -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고,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2006년 졸업, 미술학 석사 MFA). 이스트 리버 미디아에서 2년 동안 그래픽디자이너,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뉴욕타임스]와 [에스콰이어] 매거진에서 ‘베스트 앤 브라이티스트(Best and Brightest)’ 예술인으로 뽑혔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 서울시립미술관, 한미포토뮤지엄에 소장돼 있다.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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