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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전문기자의 ‘젊은 작가 列傳’] 순수문학 작가들이 인정하는 SF 작가 김초엽 

“영혼도 물질? 그래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포항공대 출신…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돌풍
오늘의작가상 받아… “과학 통해 인간 감정 색다르게 그리고 싶었다”


▎포항공대 대학원을 마치고 전업 작가가 된 1993년생 SF작가 김초엽. 전공 지식을 살려 단단하면서도 감성적인 작품을 쓴다. / 사진:임안나
기운차게 출발하는 게 마땅한 새해 분위기에 맞춰 SF 작가를 만났다. 과학소설, 그러니까 SF(Science Fiction)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장르니까 말이다. 새해 첫 달 말고 언제 또 앞날 걱정을 한단 말인가. 어쨌든 그렇다면 김초엽이다. 왜 김초엽인지는 이 기사 전체가 그 이유를 해명하는 셈이니 궁금증이 풀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본격적인 탐구에 들어가기 전에 SF라는 장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몸풀기 문제’.

①미국의 영화 시리즈 ‘스타워즈’는 SF 계열인가? 맞다. 맞는데,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이 시대 집단지성 인터넷 백과사전을 두드리면 SF는 수많은 하위 장르를 거느리고 있다. ‘스타워즈’는 과학적인 요소보다 우주 활극에 방점을 찍는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하위 장르에 속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SF물로 인정하지 않는단다. 판타지 성격이 강해서란다. ([에스에프 에스프리-SF를 읽을 때 우리가 생각할 것들]) 한마디로 SF물로 쌍수 들고 환영하기에는 뭔가 흡족하지 않다는 얘기다.

②난이도를 높여 이번에는 주관식이다. 국내 SF 가운데 베스트셀러 한 편을 꼽는다면? 기자의 답은 소설가 복거일의 1987년 두 권짜리 장편 [비명을 찾아서]다. 이 질문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명을 찾아서]가 베스트셀러였다는 점보다 SF라는 점이다. 역시 하위 장르. 이번에는 ‘대체역사’라는 카테고리다. 1909년 안중근의 저격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게 아니라 부상만 입고 살아남아 이 땅에서 일제의 식민통치가 계속되는 1980년대 상황을 가상한 내용 말이다. 이런 것도 SF라는 얘기.

질문 ①, ②가 제공하는 정보들을 조합하면 앞서 참조한 [에스에프 에스프리]에 나오는 다음 문장에 동의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장르를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건 거의 악명 높은 사실이다.”(9쪽)

동의하실 수 있나? 그런데 문제가 있다. 기자의 짧은 식견으로 예술 장르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정의 내리기 어렵다는 점이 SF 장르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얘기다. 예술 장르의 역사는 곧 장르 경계 확산의 역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한 예술 장르의 관계자들이 인정하는 작품이 그 장르의 예술 작품이 된다. 미술가들이 미술품이라고 하면 미술품, 작가들이 소설이나 시로 인정하면 작품이 된다는 얘기다.

‘스타워즈’는 SF 영화 아닌 판타지 영화

사설이 길었다. 그만큼 SF가 다양하다는 얘기인데, 김초엽 소설을 통해 SF 세계와 친해지자는 이 글의 목적 달성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다른 얘기를 하자. 지난해, 2019년은 토종 SF 르네상스의 원년, ‘부흥(르네상스)’을 따질 만한 태초의 융성기 자체가 없었던 것 아니냐고 문제 제기한다면, 토종 SF가 ‘장르 문학’이라는 굴레를 벗고 한국문학이라는 예술 공화국을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문학 시민권을 획득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나중에 문학사가 그렇게 기술할 것 같다는 추측이다.

근거들이 있다. 2019년 2월 문학평론가 복도훈씨가 SF 평론집을 펴냈다. 국내 첫 SF 평론집이다. 이해 11월 아르테 출판사는 SF 무크지 [오늘의 SF] 1호를 출간했다. 인터뷰·작품·리뷰 등으로 구성했다. 부정기 간행, 무크지니까 기력이 충전되면 같은 형식으로 또 내겠다는 뜻이다. 계간 문예지 [자음과모음]은 ‘SF 비평의 서막’을 가을호 특집으로 잡았다. 영어 원제가 ‘Science Fiction: A Guide for the Perplexed’, 번역하면 ‘당황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SF 가이드’쯤 되는 단행본 [에스에프 에스프리]가 출간된 게 8월. 이쯤 되면 본격문학에 대한 SF 인베이전이라고도 할 만하지 않나.

드디어 김초엽이다. 김초엽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그런 흐름의 한복판, 6월 초에 초판 1쇄를 찍었다. 그런데 이 소설집은 작가를 만난 12월 6일 현재 2만3000부를 찍고 있었다. 본격 소설도 그만큼 팔리기 힘든 시절이니 그야말로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앞서 [우리가…]는 민음사에서 주관하는 제43회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으로 한정현의 [줄리아나 도쿄]와 함께 공동 선정됐다. 이문열·강석경 등이 받았던 그 오늘의작가상이다.

더 있다. 교보문고 팟캐스트 낭만서점이 소설가 50명의 추천을 받은 결과 황정은의 연작 소설 [디디의 우산]에 이어, 박상영의 동성애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과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그냥 일반 작가들이 김초엽 소설을 지지했다는 얘기다.

왜소한 인간, 막막한 우주 대비가 SF 재미


▎김초엽은 “SF를 활용해 인간 감정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다. / 사진:임안나
김초엽 소설의 이런 인기 비결은 뭘까. 기자는 SF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갖고 있는 편이다.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지난해 초 타계한 미국의 SF 대가 어슐러 르 귄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빼앗긴 자들]에 언젠가 도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SF에는 진입장벽이 있다고 느낀다. 과학기술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거나, SF 독서 이력이 쌓여 최소한의 장르 감식안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가 처음 나왔을 때 완독하지 못했던 것도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다시 읽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소설집에는 모두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두 번째는 독서는 달랐다.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거나 기이할 정도로 단단하게 느껴지는 본격 소설에 익숙해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앞서 고백했던 기자의 편견 기억하시나. 자연과학에 대한 큰 관심이나 일정한 SF 독서 이력이 없어도, 이런 작품들은 얼마든지 읽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다. 막 작품활동을 시작한 풋풋한 소설가의 첫 소설집이 왜 적지 않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지, 본격 작가들은 왜 김초엽을 지지하는지, 이 기사의 앞머리에서 제기한 최초의 궁금증으로 되돌아가면, 그러니까 왜 김초엽인지 알 것도 같다. 그런 마음으로 한 편한 편 읽어나가 최종적으로 이르게 되는 도착지는 어쩌면 기존의 정통 혹은 본격 문학에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웠던 세계다. 인간은 한없이 축소되고, 그 배경으로 깔리는 우주는 한없이 막막한 가운데 인물들이 표출하는 인간 감정이 보다 강력하게 증폭되는 것 같다.

기자의 이런 주관적인 독후감을 SF 비평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알아보는 데까지 나가지는 말자. 복잡해질 테니. 김초엽의 소설에도 흩어져 있을 텐데, SF는 어떤 요건들을 갖춰야 할까, 어떤 특징을 갖춰야 비로소 SF인가, 이런 궁금증을 풀어보려다 마주친 개념이 ‘인지적 소외(cognitive estrangement)’와 ‘경이감(sense of onder)’이다. 여기서는 SF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인식이나 정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만 기억하고 넘어가자.

소설집 가운데 가장 속도감 있게 읽힌 작품은 ‘공생가설’이다. 김초엽은 1993년생, 울산이 고향이다. 포항공대 학부에서 화학을, 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생화학을 전공했다. 그런 이력을 이 소설에서 유감없이 발휘한 것 같다. 아이들의 언어 발달 과정에 대한 언어학 지식, 뉴런(두뇌 신경세포) 촬영 기술을 이용해 아직 말로 발화되기 이전 생각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머릿속의 사고 언어를 읽어내려는 자연과학의 최근 흐름(SF적 설정인지 모르겠으나), 몽환적인 미지의 천체 그림을 그리는 류드밀라 마르코프라는 가상의 여성 화가 등을 조합해, 인류의 시원, 근원적인 고향이라고 할 만한 곳을 그리워하는 어쩌면 우리 마음의 유전형질 비슷한 동경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소설집 맨 앞에 실린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는 이런 문장들이 나온다.

“어쩌면 일상이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었던 그 울고 있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그리 대단한 문장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읽다가 밑줄 그었다. 이런 마음의 움직임은 SF의 빗장을 풀고 슬그머니 걸어 나와 누구에게라도 보편적으로 말을 건다. 나는 누구이고 내가 느끼는 이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는 어떻게, 왜 생겨나나. 누구라도 흥미를 느낄 만한 주제다.

이런 김초엽의 작품들 안에서 SF 특유의 경이감, 인지적 소외, 이런 것들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이제 작가를 만나자. 인터뷰는 이번에도 서울 자하문로 임안나 사진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다. 인터뷰 섭외를 하다 김초엽에게 청력 장애가 있어 전화 인터뷰는 어렵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상대의 입술을 읽어야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육체의 한계 안에 갇혀 우주의 무한을 꿈꾸는 경우? 이런 감상적인 지레짐작은 실제로 작가를 만나고 나서 보기 좋게 깨졌다. 김초엽은 누구보다 명민하고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였다.

‘공생가설’ 등 전공 살려 단단한 글쓰기


▎김초엽의 첫 소설집 표지.
소설집에 실린 ‘관내분실’은 인간의 영혼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마인드 업로딩이 소재다. 마인드 업로딩을 꿈꾸는 자연과학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 그러니까 물질과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통념을 뒤흔든다. 당신 생각은? 자연과학에서는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정의하나?

“‘관내분실’도 그렇지만 소설집의 또 다른 단편인 ‘감정의 물성’이라는 작품에도 인간은 결국 물질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영혼조차 사실은 물질의 결과물이다. 뉴런들이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두뇌 안의 특정 현상을 우리가 영혼이라고 이름 붙인 거다. 영혼이라는 명사는 실재 대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런 현상을 지시하는 비유에 가깝다고 본다. 이런 자연과학을 바탕으로 한 SF는 결국 인간의 내면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객관화된 세계에 견줘 인간을 바라보자는 거다.”

당신 책에도 나오지만 그렇다면 남녀 간의 사랑이나 이타심, 인류애 같은 추상적인 관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그런 추상 관념들도 물질적인 인간과 별개로 존재한다고 보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화폐와 비슷한 것 같다. 화폐 역시 물질에 기반하고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추상화되어 있지 않나. 이타심이나 사랑 같은 감정 혹은 관념은 결국 두뇌의 호르몬 작용의 결과이거나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어떤 형질 같은 것 아닐까. 이타심을 이렇게 설명한다고 해서 이타심의 가치가 희석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이타심은 자체로 좋은 것이다. 우리가 온갖 물질적인 설명을 갖다 붙인다고 해서 그 가치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문학은 어떻게 보나. SF도 문학이다.

“우리 영혼이나 마음이 신경작용의 물질적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소설 쓰는 일과 충돌한다고 보지 않는다. 마음이 작동하는 기제나 메커니즘을 우리가 안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결국 마음 안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는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나. 인간 마음을 속속들이 읽는 게 요즘 과학이 하고자 하는 일이고 언젠가는 도달하게 될 텐데 감정을 낱낱이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해서 소설 읽는 즐거움, 소설이 전달하는 슬픔 같은 게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뇌 신비 풀려도 소설 즐거움 안 사라져”


▎사람들이 여전히 SF를 어렵게 여긴다. 김초엽은 “이해 안 되는 대목은 건너 뛰고 일단 100쪽까지 읽어보라”고 권했다. / 사진:임안나
’관내분실’은 뇌과학, 마인드 업로딩 등의 최신 연구 성과를 상세하게 전한다. 이런 SF의 목적은 과학 정보 전달인가.

“엄마와 딸의 관계를 현실의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통해 그리고 싶었다. 내가 그리고 싶은 인간관계나 인간 감정을 과학을 이용해 보다 극적으로 조망하거나 색다른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게 내 SF의 목적이다. 반드시 SF가 아니어도 괜찮은데 SF 장르가 내게는 매력적이어서 SF를 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SF는 어렵다, 특유의 문법에 익숙해야 한다, 이런 식의 진입장벽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럴 수 있다. SF 소설에 익숙해질수록 쉽게 읽히는 측면이 있다. 장르 독법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10쪽가량 읽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건너뛰고 한 100쪽가량 읽으면 대부분 재미있게 읽힌다. 특히 한국소설은 미문(美文)이나 문장 하나에 삶의 의미를 담은 문장들을 중시하는데 장르 작가들은 그런 것보다 이야기 자체의 의미를 즐긴다. 내 경우도 작품의 문장을 공들여 다듬기보다 서사에 신경을 쓴다.”

문답 소개는 여기까지. 몇 가지 궁금증이 풀렸고, 흥미로운 얘기들을 들었다. SF 읽는 법도 그중 하나다. 책장에서 르귄의 [빼앗긴 자들]을 다시 꺼내야겠다.

※ 신준봉 문화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 1993년 중앙일보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문사에서 10년 가까이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상식의 눈에는 괴짜인 문인들, 그들이 생산한 영롱한 것들을 초롱초롱한 독자들에게 중개하는 일, 제도로서 문학의 생로병사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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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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