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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테이지 인터뷰]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받은 재즈가수 나윤선 

“재즈는 만남의 음악 늘 색다른 선물 주고 싶어요” 

두 번째 프랑스 훈장… 2018년 쥬나스시에 그의 이름 딴 길 생겨
음반사 옮기고 미국서 본격 활동 “성공보다 다양한 교류 기대”


▎나윤선은 10집 앨범 ‘이머전(Immersion)’ 발매 기념 월드 투어를 마치고 7개월 만에 귀국했다. / 사진:나승열
'도저히 이 세상의 목소리라고 믿기지 않는다.’([르몽드])

2019년 3월 나온 재즈싱어 나윤선의 10집 앨범 ‘이머전(Immersion)’을 향한 찬사다.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는 말이 있지만, 그걸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나윤선이다. 그는 마치 듣도보도 못한 온갖 종류의 악기들을 입으로, 아니 온몸으로 기어코 만들어내려는 장인 같다.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실험한 50여 가지 소리를 담은 10집 앨범은 프랑스 발매 즉시 재즈 음반 차트 1위에 올랐다.

1년 내내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하는 그는 늘 연말이 돼야 한국에 돌아온다.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왠지 집에 와야 될 것 같아서”란다. 2019년 11월 28일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Officier)장’을 받아 화제가 됐다. 한 등급 아래인 ‘슈발리에(Chevalier)장’을 받은 지 꼭 10년 만이다.

프랑스에서 왜 자꾸 훈장을 주나요?


▎2019년 11월 28일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장을 받는 나윤선. / 사진:엔플러그
“첨엔 이런 훈장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2009년에 슈발리에 장을 받을 때 들어보니, 누군지 얘긴 안 해 주지만 추천이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평생 한 번 받는 건 줄 알았는데, 등급을 높여 주기도 한다는 걸 이번에 알았죠. 너무 놀랍고 고마워요. 프랑스가 10년 동안 제게 관심을 가져줬다는 얘기잖아요. 그저 하던 일을 계속했을 뿐인데 너무 고맙죠. 프랑스가 대단한 나라란 걸 새삼 느꼈어요. 이걸 받은 전 세계 사람들이 나가서 얼마나 프랑스 문화를 알리려고 노력하겠어요.”

2018년에는 프랑스에 ‘윤선 나’라는 도로가 생겼다면서요.

“쥬나스라는 작은 시골동네인데, 큰 재즈 페스티벌을 하는 곳이에요. 재즈 페스티벌로 유명한 곳이니 시에서 뮤지션 이름을 길에 붙이자고 생각한 거겠죠. 나보다 유명한 뮤지션이 많지 않느냐고 물으니 ‘우리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고 하더군요. 세리모니를 하러 가보니 정말 ‘윤선 나’라고 길에 쓰여 있는 거예요. 정말 감동이었죠.”

거기 가면 다들 알아보나요?

“전혀요. 카메라 울렁증이 심해서 유럽에서나 한국에서나 TV에 거의 나가지 않으니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어요. 며칠 전 훈장 수상 건으로 JTBC 뉴스룸에 나간 뒤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을 처음 만났죠. 그날도 너무 힘들었어요. 카메라가 날 보고 있으면 긴장해서 목이 뻘게지거든요. 얼굴보다 목에 메이크업을 덕지덕지 바르고 나갔어요(웃음). 전 그냥 혼자 조용히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전부터 ‘혼자 조용히’ 입으로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을 시도해 왔지만, 10집 앨범엔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다. 멀티 연주자이기도 한 프로듀서 클레망 듀꼴과 어쿠스틱 악기들에서 생각지도 못한 낯선 소리를 끄집어내는 실험을 한 결과다. “(소리가 두겹으로 갈라지는 희한한 발성을 시연하며) 저도 좀 배웠는데, 그린랜드에서는 한사람의 목소리로 화음을 내기도 하죠. 그런 식의 신기한 소리 실험을 악기로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프로듀서가 클래식 퍼커션을 공부한 데다 팝음악에도 관심이 있고 현대무용까지 하는 친구라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주더군요. 수록곡 ‘이즌 잇 어 피티(Isn’t it a Pity)’도 첼로 하나로 굉장히 많은 소리를 낸 것이에요.”

10집 앨범, 디지털 활용해 다양한 소리 실험


▎오피시에장 서훈식에서 노래하는 나윤선. / 사진:엔플러그
팝에 가깝게 음악적 변신을 시도했다는 평도 나오는데요.

“같은 곡이라도 어쿠스틱 악기로 연주했다면 그런 말을 안 할텐데. 형식이나 내용은 같은데 사운드가 바뀌니까 팝적이라고 말들을 하시네요. 수록곡 ‘인 마이 하트(In My Heart)’의 경우도 예전 같으면 피아노나 베이스로 연주할 부분을 제 목소리로 샘플을 만들어서 디지털 처리를 했거든요. 자연의 소리가 아니니까 팝 같다고 하는데, 소리가 좀 다르게 들릴 뿐 저는 똑같은 사람이니까요. 갑자기 스타일을 바꾼 건 아니에요.”

재즈란 배경음악 같은 것인데 10집에 ‘몰입’이란 제목을 붙였네요.

“사운드 때문에 그런 제목을 붙여봤어요. 이번 음반도 엘리베이터에서 지나가는 배경음악 맞아요. 집중해서 듣게 하고 멜로디를 따라부르게 하는 그런 음악이 아니라 편안하게 듣는 거죠. 스윙재즈 같은 건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음악이잖아요. 그냥 전세계인의 일상에 배경으로 깔릴 수 있는 음악이 재즈인 게 맞아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장 (Offic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 사진:엔플러그
자작곡이 절반쯤 되는데, 한국어 노래는 왜 없나요?

“처음으로 음반에 자작곡 중심으로 담아봤어요. 옛날엔 곡을 써도 음반에 잘 담지 않았거든요. 곡 쓰는 건 따로 배워야 하는 줄 알았더니 재즈뮤지션들은 다들 하더군요. 저더러 써보라고 하길래 처음엔 강요에 의해서 써보다가, 이제는 잘은 못써도 내 얘기를 좀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한국어 노래 쓰기는 아직 부담이 돼요. 아리랑이나 ‘초우’ ‘아름다운 사람’ 같은 한국어곡을 한 곡씩 부를 때마다 외국인들이 굉장히 좋아하긴 해요. 근데 만들려면 잘 만들어야 되니까. 프랑스인들은 샹송으로 음반을 내라고 하는데, 그것도 잘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직 자신이 없네요.”

레너드 코언의 ‘할렐루야’는 이미 300명쯤 커버한 곡인데 굳이 다시 불렀네요.

“제프 버클리 버전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런 곡들이 있어요. ‘이즌 잇 어 피티(Isn’t it a Pity)’란 곡도 니나 시몬 앨범에서 처음 들었는데 알고 보니 조지 해리슨 곡이었고, ‘할렐루야’도 제프 버클리 노랜 줄 알았더니 레너드 코언의 곡이더군요. 오리지널이 물론 가장 아름답지만 이렇게 다양한 개성과 감성으로 아름답게 커버하는구나 싶어요. 재즈는 사실 거의 커버니까요. 공연할 때 한번 불러봤는데 워낙 유명한 곡이니 많이들 좋아하셔서 녹음까지 하게 됐어요.”

최근 그는 오랫동안 함께 해온 독일 레이블을 떠나 워너뮤직으로 음반사를 옮기고, 유럽 중심의 활동에서 미국으로 영역을 넓혔다. 좀 대중적으로 활동하려는 걸까 싶었지만, 전혀 아니란다. “유럽의 재즈뮤지션이 미국 메이저 음반사와 직접 계약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그 정도 의미를 두는 거지, 그렇다고 더 많이 파는 건 아니에요. 미국에 진출해서 성공하려는 게 아니고, 새로운 시장에서 그쪽 뮤지션들과 자주 교류하고 싶은 거죠. 나이 오십에 종주국에 가서 배우는 느낌? 거기서 공연을 얼마나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미국시장의 벽을 좀 느낀 건가요?

“미국인들은 재즈를 물과 공기처럼 생각할 뿐, 일부러 찾아 듣지 않더군요. 오히려 유럽에 재즈 페스티벌이 더 많고, 재즈를 더 많이 들어요. 미국은 재즈뮤지션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살아남기 어렵다고 하네요. 지금껏 투어로 잠깐 거쳐 가다가 본격적으로 미국 활동을 해본 게 처음이라, 시간이 걸리겠죠. 유럽에서도 20년 걸렸는데, 미국에서도 20년 걸려도 좋다고 생각해요. 시장을 좀 넓혀서 늘 하던 걸 계속하는 것이지, 제가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아이돌댄스 안무가인 리아킴과 뮤직비디오를 찍었던데.

“저는 마케팅 활동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그런 걸 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미국인들은 마케팅에 민감하더군요. 워너뮤직과 회의를 하는데, 인스타그램 홍보를 어떻게 할 거냐 묻길래 계정도 없다고 했더니 순간 정적이 흘렀죠. (웃음) 이번에 처음 계정을 만들고, 뮤직비디오도 처음 찍었는데 어휴, 너무 힘들었어요. 리아킴과 찍은 ‘할렐루야’도 저는 딱 3장면만 나오죠. ‘할렐루야’는 무용하는 분이랑 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소개를 받았는데, 아이돌 안무가인 줄은 몰랐어요. 팝이나 유명곡들을 나름대로 춤으로 해석하는 게 너무 멋지더군요. 키가 자그마한데 몸을 어떻게 그렇게 쓰는지, 존경스러울 뿐이었죠.(웃음)”

아이돌 안무가 리아킴과 뮤직비디오도 찍어


▎10집 앨범 ‘이머전’ 발매 기념 월드 투어 중 2019년 11월 열린 프랑스 공연 모습. / 사진:solar-x
1995년 프랑스로 떠난 이래 줄곧 세계를 떠돌아 온 그는 2015년 특이한 행보를 보였었다. 해외투어를 일체 중단하고 1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기도 하고, 정가(正歌)를 배우는 등 국악계와 교류했다.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요. 가장 크게 배운 건 역시 모든 음악은 통한다는 사실과 국악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죠. 제가 초대한 해외 뮤지션들이 지금도 한국 뮤지션과 같이 작업하는 걸 보면 뿌듯해요. 1회성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계속 이어지길 원했던 건데, 제 소임은 다한 것이죠. 근데 제 음악에 국악을 차용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사실 게을러서 그렇죠 뭐.(웃음)”

해외투어를 중단했던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그때는 잠깐 스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 보면 톰 행크스가 계속 뛰다가 갑자기 딱 멈춰서 집으로 돌아가잖아요. 딱 그런 느낌? 잠깐 내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군요.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거예요. 쉬면서 혹시 내가 음악을 그만두려나? 내 인생을 확 바뀌는 계기가 될까? 이런 생각도 했지만, 결국 아니었어요.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여야 마음이 안정되는 체질인가 봐요. 길 위에 있는 시간이 결국 나에게 가장 맞다는 걸 확인한 기회였죠.”


▎워너뮤직으로 레이블을 옮겨 발매된 10집 앨범 ‘이머전(Immersion)’ / 사진:solar-x
앨범을 낼 때마다 변신에 대한 부담도 있겠어요.

“항상 있죠. 모든 아티스트가 다음 작품은 더 좋은 것, 색다른 것을 하고 싶을 거예요. 나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내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이 중요하기에 색다른 선물을 하고 싶은 거죠. 근데 어차피 재즈는 만남의 음악이거든요. 혼자서는 못하고 새로운 만남이 있어야 새로운 음악을 할 수 있죠. 그런 변화가 내심 기대되고 흥미진진해요. 새로운 것에 대한 부담반 호기심 반으로 사는 거죠.”

그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늘 빈틈없이 반듯하다. 틈을 찾으려 엉뚱한 질문을 던져도 한바탕 웃고 금세 꼿꼿해진다. 이런 반전 없는 ‘완벽주의자’가 자유롭고 즉흥적인 재즈를 하다니 ‘언행불일치’가 따로 없다 싶다.

“무대 위에 설 때가 가장 자유로운 순간”


▎나윤선은 1월까지 한국에 머무르다 2월 다시 기약 없는 투어 여정에 오른다. / 사진:나승열
너무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니 인간미가 없는데요.

“완벽주의자란 소리를 듣지만 사실 너무 안 완벽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는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중고등학교 때도 있는지 없는지 몰랐을 거예요. 그저 선생님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죠. 선생님이 줄 긋고 넘어오지 말라면 절대 안 넘어가고, 선생님이 먹지 말라면 떡볶이도 안 사 먹었어요.(웃음) 대학 때도 수업 끝나면 집에 왔고 일탈해본 적도 없어요. 그런 고지식한 사람이 이렇게 자유로운 음악을 하고 있네요. 근데 그래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생활이 일정한 만큼 무대 위에서는 자유로운 음악을 하는 거죠. 가장 자유로운 순간이 무대에 서는 순간이에요.”

가정도 있는데 아무 속박 없이 세계를 돌아다니는 삶은 어떤 건가요?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걸 좋아했어요. 외로움도 안 타는 성격이죠. 남편(인재진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예술감독)도 알고 결혼했을 거예요. 이런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게 느껴지죠. 너 하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대로 언제든 어디든 가라, 너를 응원한다는 게 남편, 시부모님을 포함해 모든 가족의 생각이에요. 너무 감사하죠.”

‘결혼은 뭐하러 했냐’ 물으니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고, 가족이 여기 있어 안심이 된다”고 답한다. 돈도 성공도 필요 없고, 혼자 노래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그녀의 삶에 든든한 버팀목이 바로 남편인 것이다. “첫 만남부터 잘 통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일, 제게 생기는 모든 일을 다 이해하고 있더군요. 제가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좋다는 걸 잘 아는 사람이라 많은 격려를 해주는 거겠죠. 저를 챙겨주고 제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고, 제가 아무 걱정도 안 하게 해주는 사람이 남편이에요. 제가 운이 좋은 거죠.”

- 유주현 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기자 yjjoo@joongang.co.kr

202001호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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