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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이슈분석] 검찰 인사 대란(大亂) 후폭풍 

“적폐로 몰던 옛 정권 닮아가고 있다” 

文 정권, 검찰 손발 묶는 인사와 직제 개편, 수사권 조정의 삼중 기습공격
진보진영에서도 반발… 명분 없는 실력행사 고집하면 몰락 자초할 수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후 단행한 검찰 고위직 인사와 직제개편으로 ‘윤석열 사단’이 와해됐다.
설마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살아 있는 권력의 중심을 향한 검찰의 공세에 청와대는 방패가 아닌 융단폭격으로 응수했다. 1월 8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단행한 취임 후 첫 검찰 고위직(검사장급) 인사에 대해 법조계에선 “윤석열 총장을 무장 해제하겠다는 의지를 애써 숨기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권 수립과 적폐 청산의 일등공신인 윤석열 사단은 와해했다. 개방직인 감찰본부장을 제외한 대검찰청 참모진 전원이 교체됐다. 한동훈(47·사법연수원 27기)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배성범(58·23기) 서울중앙지검장은 법무연수원장으로 각각 수사 라인에서 배제됐다. 박찬호(54·26기)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떠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 혐의와 청와대의 2018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의 지휘 선상에 있던 이들이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정권과 인연이 있는 검사들로 채웠다. 이성윤(58·23기) 서울중앙지검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파견돼 문 대통령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은 추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단에서 추 장관을 보좌했다. 윤 총장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윤 총장을 향해 정부와 여당에선 “오만방자”(홍익표 수석대변인), “명을 거역”(추미애 장관), “어처구니없는 일”(이해찬 당대표) 등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검찰 내부에선 “야습(夜襲)에 당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도 “더는 수사하지 말라는 살기(殺氣) 띤 경고”로 해석했다. 익명을 전제로 입을 연 한 현직 검사장은 “예상보다 훨씬 노골적이어서 놀랐다”고 했다. “최소한의 명분은 갖춰줄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 정권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때 민주당이 뭐라고 했나. 설마 똑같이 할 줄은… (정치 권력을) 순진하게 봤다.” ‘비슷한 일’은 7년 전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를 의미한다.

2013년 10월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을 수사하던 채동욱 전 총장이 감찰 압박 끝에 물러나고,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이 항명을 이유로 좌천되자,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SNS에 이렇게 비평했다. “윤석열 찍어내기로 청와대와 법무부 장관의 의중은 명백히 드러났다. 수사를 제대로 하는 검사는 어떻게든 자른다는 것. 무엇을 겁내는지 새삼 알겠구나.”

채동욱 찍어내기와 윤석열 사단 해체


▎1월 8일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수사를 비롯한 권력 비리 의혹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들이 줄줄이 좌천됐다. 왼쪽부터 한동훈 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박찬호 전 대검 공공수사부장, 배성범 전 서울중앙지검장.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문 대통령은 “수사에 외압이 행사된다는 것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고,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추 장관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검찰총장을 내쫓았다. 수사와 기소를 주장했던 수사 책임자도 내쳤다”고 비난했다.

최근 이어지는 조치들은 청와대와 법무부의 목적이 ‘수사팀 해체’에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법무부는 1월 13일 검찰의 직접 수사 부서를 줄이고 형사·공판부를 늘리는 직제 개편안을 내놨다. 전국 검찰청의 직접 수사 부서 41곳 중 반부패수사부, 공공수사부, 외사부 등 13개를 줄인다. 현 정권 관련 사건과 삼성 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 등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부는 4개에서 2개로 반토막 났다. 법무부는 “심각한 민생 사건 지연을 이대로 둘 수 없고, 수사권 조정 등 급격한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놨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직접 수사 규모를 늘린 게 현 정부이기 때문이다. 문무일 전 총장 재임 당시 검찰은 자체 개혁 과제로 직접 수사 부서를 줄이는 대신, 검찰청마다 전문 수사 분야를 지정하고 형사부를 강화하는 조치를 추진해왔다. 그런 와중에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적폐 수사에 집중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몸집을 불려왔다. 전국 검찰청의 특별 수사 인력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불러 모아 ‘미니 중수부’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정부는 적폐 수사가 우선이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2018년 여름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안팎으로 적폐 수사의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이 크다”며 2018년 연말까지 적폐 수사를 마무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하자, “시간에 제한을 두지 말라”고 면박을 준 건 오히려 정부였다.

법무부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검찰이 태스크포스(TF) 성격의 비직제 수사조직(특별수사단)을 구성할 때에도 장관의 승인을 받으라며 이에 대한 의견을 요구했다. 그동안 검찰총장은 대형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총장의 지시로 전담수사단을 운영하곤 했다. 2016년 1월 대형 국책사업을 점검하기 위해 반부패특수단을 꾸렸다. 현 정부 들어서도 지난해 11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을 대검 산하에 꾸렸다.

지방검찰청에 근무하는 모 부장검사는 “검찰이 권력형 비리에 아예 손을 못 대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제 개편안이 확정되면 한때 40명이 넘었던 서울중앙지검 반부패부 수사 검사는 10여 명으로 대폭 축소된다. 또 장관이 승인하지 않는 특별수사단은 아예 설치조차 할 수 없게 된다.

한 전직 검사장은 법무부의 잇따른 조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막겠다는 의지는 물론이고, 공수처 출범에 대비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검찰의 수사 역량과 자원은 공수처를 압도한다. 공수처가 쓸모없는 조직이라는 말을 안 들으려고 검찰의 손발을 잘라서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가적인 반부패 수사 역량을 하향 평준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법무부의 조치들은 검찰 구성원의 반발을 불렀다. 고위 간부 인사 조처 이후 첫 사의를 표명한 김웅(49·사법연수원 29기) 전 법무연수원 교수(부장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이프로스)에 올린 사직의 변이 기폭제가 됐다. 1월 14일 오전에 올린 ‘사직 설명서’라는 글에서, 김 전 교수는 전날(13일) 국회를 통과한 검·경 수사권 조정법을 강하게 비판하며 “목적은 권력 확대와 집권 연장이 아닌가? 그래서 ‘검찰 개혁’을 외치고 ‘총선 압승’으로 건배사를 한 것이냐”고 물었다. 또 법무부가 주도하는 검찰 개혁에 호응하라는 추 장관의 취임사를 빗대 “봉건적인 명(命)에는 거역하라. 추악함에 복종하거나 줄탁동시(啐啄同時)하더라도 겨우 얻는 것은 잠깐의 영화일 뿐, 그 대신 평생 더러운 이름이 남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도 했다.

“공수처와 균형 맞추려 검찰 손발 잘라”


▎김웅 전 법무연수원 교수는 1월 13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검찰 내부망에 비판의 글을 올린 뒤 사직했다. 그의 글에는 6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김 전 교수의 글에는 이틀 만에 6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자칫 정권에 찍힐 수도 있는 민감한 내용에 수백 명이 동감을 표명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한 구성원은 “이 거대한 사기극의 피해자는 역시 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또 다른 구성원은 “법안의 내용이 실제 어떤 것인지 국민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그럴듯한 ‘검찰개혁’이라는 프레임으로 경찰 공화국의 초석이 다져진 게 허탈하다”고 했다. 검찰을 옥죄는 일련의 조치들에 반감을 나타내는 의견이 많았다. 한 구성원은 “제도 변화로 인해 겪지 않아도 되는 억울함과 불편을 느끼는 국민이 한 분이라도 더 늘어나게 된다면, 이는 개악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교수에 이어 중간 간부급 검사들의 사표도 이어졌다. 김종오(51·30기)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장은 이 프로스에 짧은 인사를 남기고 검찰을 떠났다. 김 부장검사는 조국 전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불법투자 의혹과 연루된 의심을 받는 상상인그룹 수사를 이끌어왔다. 이번 직제 개편을 통해 그가 이끌던 부서는 형사·공판부로 전환된다. 최창호(56·21기) 서울서부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장과 송한섭 서울서부지검 검사도 다음 날(15일) 사직했다. 추 장관 취임 이후 스스로 사직한 검사는 고위 간부급에서 박균택(21기) 법무연수원장, 김우현(22기) 수원고검장, 이영주(22기)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 3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7명이다. 앞으로 단행될 간부(차장·부장급) 후속 인사에 따라 사직 인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는 청와대와 법무부의 ‘검찰 패싱’을 갈등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고위 검찰 인사와 직제 개편 등 법무부의 잇따른 조치에서 검찰 의견 수렴 과정이 실질적이었다고 보기 어려워서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을 나온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명을 거역했다고 말하는 추 장관의 인식은 검찰의 독립성을 크게 훼손하는 작은 불씨”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조 전 장관을 두고 공식 석상에서 ‘마음의 빚을 졌다’고 말한 대통령의 처신도 검찰의 최종 지휘권자로서 부적절했다”고 덧붙였다.


▎추미애 장관이 1월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책보좌관에게 징계 관련 법령을 찾아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검찰 구성원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법 통과에 크게 반발한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밥그릇을 빼앗긴 억하심정’일 뿐일까. 전문가들은 “수사권 법안 처리 과정이 왜곡돼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통과된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자율적으로 수사를 개시하고 종결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 부여하는 데 있다. 검찰과 경찰은 수직적 지휘관계에서 상호 협력관계로 바뀐다.

당초 정부와 여당은 수사권 조정의 전제 조건으로 경찰의 권한을 분산하고 조직을 재편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 일환이 경찰개혁위원회가 권고했던 경찰 정보국 폐지와 자치경찰제 도입이다. 경찰은 4대 권력기관(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 중 가장 많은 인력을 갖고 있다. 경찰의 정보망은 전국에 촘촘하게 깔렸다. 자체 개시와 종결이 가능한 수사권까지 갖게 될 경우 통제 불가능한 거대 공룡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예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현 정부도 출범 후 권력기관 개혁의 하나로 검찰의 범죄정보 수집 기능과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각각 폐지했다. 하지만 경찰의 정보 기능은 일부 제한을 뒀을 뿐 아직 존속하고 있다. 경찰 내부 관계자는 “당초엔 청와대도 경찰의 정보 기능을 폐지하자는 입장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치가 미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사견임을 전제로 “모든 정보 수집 기능을 폐지하자니 청와대의 정보 권력이 무력화할 게 우려됐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전했다.

비단 검찰만의 걱정이 아니다. 참여연대에서 집행위원회 부위원장과 공익법센터 소장을 겸임했던 양홍석(42·36기) 변호사도 1월 15일 직책을 내려놓고 참여연대를 떠났다. 양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국회를 통과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환영이 아닌 우려를 표명할 때”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찰 수사의 자율성, 책임성을 지금보다 보장하는 방향은 옳다”면서도 “수사 절차에서 검찰의 관여 시점과 범위, 방법을 제한한 것은 최소한 국민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부당하다”고 밝혔다.

3대 권력 비리 수사 방해하면 정면충돌할 수 있어


▎법무부는 검찰의 직접 수사를 대폭 축소하는 직제개편안을 마련했다. 권력형 비리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는 4개에서 2개로 줄어든다. 서울중앙지검의 부서 안내판. / 사진:연합뉴스
일단 외형상 검찰은 법무부의 개혁 방침에 순응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대검찰청은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조정 등 형사 사법체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검찰개혁추진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련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세부 내용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언제든지 충돌이 재현될 수 있다.

특히 현재 진행 중인 3대 권력형 비리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와 검찰의 정면충돌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앞서 청와대와 검찰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를 위한 청와대 압수 수색을 두고 마찰을 빚고 있다. 검찰이 두 차례 임의제출 형식의 압수 수색을 시도하자, 청와대는 영장에 상세 목록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한 차례 거부한 데 이어, 검찰이 제시한 목록이 임의로 작성된 것이란 이유로 재차 거부했다.

이 같은 청와대의 태도에 대해 진보적인 성향의 법관 전용 커뮤니티에서도 비판적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총 회원 수가 600여 명에 이르는 포털사이트 다음(Daum) 카페 ‘이판사판 야단법석’에서 한 판사는 “(청와대가) 영장에 불응하고, 앞으로도 이런 이유로 계속 영장 집행을 거부한다면 위헌·위법한 행동으로 볼 수 있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판사는 “청와대의 압수 수색영장 불응이야말로 법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나중엔 구속영장도 불응한다고 하겠다”고 비꼬았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역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청와대와 법무부가 보이는 일련의 행태들은 명분도 없고, 이성적이라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지지율에 취해 있기보다 작은 경고 신호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지금 청와대의 태도는 원칙을 저버리고, 자신들이 적폐로 규정했던 옛 정권의 행동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지금의 행태를 계속 답습한다면 정권의 말로(末路) 또한 적폐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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