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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일촉즉발 갈등 고조되는 페르시아만 

이란 민심, 혁명수비대와 정부에 등돌리나 

‘시아파 벨트’ 구축자 솔레이마니 영향력 대체할 인물 부재
이란 정부 영·프·독 압박 속에 美와 협상 시도할 수도


▎우크라이나 민항기 오폭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란 테헤란의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왔다.
1월 3일 이라크 시각으로 0시47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을 빠져나가던 두 대의 차량이 미군의 첨단 드론 MQ-9에서 발사된 미사일을 맞고 화염에 휩싸였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 쿠드스군(Qods) 사령관이자 이른바 ‘시아파 벨트(Belt)’ ‘시아 초승달’의 구축자 솔레이마니(Soleimani)가 순교자가 된 순간이다. ‘시아파 벨트’란 중동의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슬람 시아파 국가의 동맹 전선으로, 초승달 모양으로 포진해 있어 ‘초승달 벨트’로도 불린다. 이슬람 양대 종파 중 하나인 시아파는 시아파 벨트 동맹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에 맞서고 있다.

새해 벽두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은 중동을 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오는 3월 2일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월 중 이란과 관련된 계략을 벌여 보수층 표심을 잡으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1월 초부터 시아파 벨트의 책임자 솔레이마니를 정리하는 대형 사건이 터지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탄핵의 위기를 맞아 시선을 돌리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꾀였을까? 그런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중동의 정치 질서를 뒤흔드는 거사를 치른 미국의 속마음은 ‘억지력(level of deterrence)’ 증대에 있는 것 같다.

2017년 당시 폼페이오 CIA 국장, 이란에 이미 경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미 중부군 사령관을 지낸 후 CIA 국장직을 수행했던 페트레이어스 전 장군은 솔레이마니 제거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고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이란이 미국의 1300만 달러짜리 초고성능 무인 정찰 드론 글로벌 호크를 격추했을 때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 석유 시설 두 곳이 드론 공격을 받아 파괴돼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5%가 날아갔을 때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CIA 국장, 중부군 사령관, 합동특수작전 사령관, 이란 지역 대통령 특사를 모두 합친 지위를 갖는 솔레이마니를 제거했다. 이를 놓고 페트레이어스는 “알카에다 지도자 빈 라덴, IS 우두머리 알바그다디 살해보다 더 큰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스라엘은 입을 다물고 있지만, 이번 솔레이마니 제거는 이스라엘과 공조하에 미군이 수행한 작전이었다. 결정적인 원인은 2019년 12월 27일 이라크의 친(親)이란 시아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KH)’가 이라크 키르쿠크의 K1 미 공군기지에 30발의 카추샤 로켓으로 공격한 데 있다. 이날 미군 통역병으로 오랫동안 일한 이라크계 미국인 1명이 죽고, 4명의 미군과 2명의 이라크군이 다쳤다.

이에 미국은 29일 바로 보복 작전을 펼쳐 시리아와 이라크 내에 있는 5개의 카타이브 헤즈볼라 거점을 공습해 25명이 사망하고, 55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자 31일 카타이브 헤즈불라 대원과 지지자들이 이라크 바그다드 미국 대사관으로 몰려가 점거를 시도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안전한 ‘그린 존(Green Zone)’에 있는 대사관까지 시위대가 진출한 것 자체가 충격적인 일이었다.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 배경에는 여러 얘기가 돈다. 이라크 시위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핵심 참모들이 이들의 배후에 있는 솔레이마니를 제거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제안해 트럼프 대통령이 암살 명령을 내렸다는 설, 여느 때와 같이 참모들이 선택지의 하나로 솔레이 마니 제거 안을 내놓았는데 대통령이 이를 택해서 모두가 놀랐다는 설 등 여러 보도가 있다. 어느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솔레이마니를 제거함으로써 페트레이어스가 말한 대로 미국의 ‘억지력’이 재생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 폼페이오는 2017년 CIA 국장 시절 미국과 IS 소탕작전을 펼치던 솔레이마니와 이란 지도부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당신들이 통제하는 무장세력이 미군이나 미군 시설을 공격할 경우 책임을 묻겠다.” 즉 쿠드스군뿐만 아니라 이란이 지원하고 육성한 친이란 시아민병대의 도발까지 보복 대상으로 적시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친이란 세력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고 보지 않는다. 1979년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 사건을 연상케한 이번 바그다드 미 대사관 습격 사건은 카타이브 헤즈볼라의 단독 작품이 아니라 솔레이마니의 지휘 하에 일어난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폼페이오가 2017년 밝힌 대로 그 책임을 물었다고 보는 것이 지나친 추측은 아닐 것이다.

사령관과 순교자의 차이는 비교 불가능하다. 이란에서는 솔레이마니의 죽음을 전사가 아니라 순교로 본다. 이라크 미군 철수, 더 나아가 중동에서 미군이 떠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이란에 솔레이마니의 공백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1998년부터 쿠드스군을 지휘하면서 개인적인 역량을 발휘하며 이란 영향력을 시아 초승달로 구현한 솔레이마니를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만만찮다. 이라크의 시아 성직자 셰이크 잘랄 알사기르는 솔레이마니를 “영적이고 이상적인 품성을 지닌 대단히 드물고 예외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경직되고 엄격한 성격의 일반적인 보통 군사령관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솔레이마니, 이라크의 진정한 총리”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집을 방문해 유족을 위로하고 있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왼쪽). / 사진:트위터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 차기 최고지도자 가능성이 높은 사법부 수장 라이시가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솔레이마니의 죽음은 이란에 큰 충격이다. 그만큼 솔레아마니는 이란에서 존재감이 컸다. 페트레이어스는 솔레이마니에 대해 “상당히 능력이 뛰어나고, 카리스마 넘치고 노련하며, 임무 수행에 충실하면서 대단히 사악한 인간”이라고 평가한다. 5명의 미국 대사의 특별조력자로 일했고, 2003년부터 2009년까지 미 중부사령부에서 사령관 3명의 자문관으로 활동한 알리 케데리(Ali Khedery)는 “솔레이마니가 이라크의 진정한 총리”라며 “이라크는 솔레이마니와 그의 보스 하메네이가 다스리는 나라로 주권국가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는 솔레이마니가 레바논·시리아·이라크·예멘의 지도자라고도 평가했다.

그림자 사령관이라 불릴 정도로 은밀하게 활약하던 솔레이마니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때는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이다. 시리아는 국민 대다수가 수니파지만, 1970년 이래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 시아가 정권을 잡고 있다. 엄밀히 따져서 이란의 시아파와 시리아의 알라위는 절대 같지 않지만, 시아파라는 큰 틀에선 같은 집안임은 맞다. 시리아와 이란은 시아파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교리상으로는 서로 다르다. 이 두 나라를 묶어주는 핵심 가치는 시아파가 아니라 바로 반(反)미·반이스라엘이다.

이란이 가장 아끼는 반미·반이스라엘 운동단체는 레바논 남부에 거점을 두고 있는 헤즈볼라다. 1982년 이란의 도움으로 창설된 헤즈볼라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가열차게 벌이고 있다. 이란에 시리아가 중요한 이유도 바로 헤즈볼라 때문이다. 헤즈볼라에게 이란이 지원한 무기나 물품이 도달하려면 반드시 시리아를 거쳐야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헤즈볼라의 생명선을 끊고 이란의 영향력을 아랍에서 제거하려면, 반(反)이란 세력은 반드시 시리아를 이란의 손아귀에서 떼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1년 시리아 내전에 이란과 반이란 세력이 치열하게 다퉜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솔레이마니는 시리아 내전에 깊게 개입해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지지 않게 전력을 다했다. 시리아를 놓치면 테헤란마저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시리아는 이란에 중요한 곳이다. 시리아를 통해서 헤즈볼라를 지원해 이스라엘과 미국을 계속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영향력이 이라크 바그다드, 시리아 다마스쿠스, 레바논 베이루트까지 미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2003년 미국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2004년 미국 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 만일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이라크에서 민주주의 선거가 열려 시아파가 정권을 잡고 이란과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면 기존 이란의 시리아, 헤즈볼라-레바논 관계에 비춰 걸프국가와 전 세계의 안정을 해치는 새로운 초승달이 생긴다고 우려했다. ‘시아 초승달’이라는 용어가 중동 정세 이해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계기가 된 발언이다. 압둘라 국왕의 우려는 현실이 돼 사담 후세인 사후 이라크는 2011년 미군 철수 이후 온전히 이란의 품에 안겼다. 솔레이마니와 이란의 승리였던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이란은 솔레이마니를 통해 이루려 한 미군 철수 전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최대 보복이 중동 내 미군 철수라고 천명한 대로, 순교자 솔레이마니를 상징으로 계속 활용해 역내 친이란 세력의 힘을 결집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과감한 억지 정책을 본 이상, 이라크 내 친이란 무장세력이나 헤즈볼라, 예멘의 후시 반군 등이 미군 시설이나 병력을 지속적으로 공격할 경우 그 배후로 이란 역시 보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운신의 폭이 현저히 좁아진 점은 이란의 큰 고민이다.

로하니 “트럼프여서 협상 안하고 제재 감수”


▎이란이 솔레이마니 사령관 살해에 대한 복수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의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에 지대지미사일 수십 기를 발사했다고 이란 국영 TV가 1월 8일 보도했다. / 사진:이란 국영방송
미국과 이란의 갈등에는 본질적으로 핵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P5+1(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을 앞세워 2015년에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서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JCPOA가 이란의 핵개발을 영구히 막지 못한다며 2018년 5월 8일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어 2018년 11월 5일 제재를 재부과하면서 이란에 새로운 협상을 할 것을 요구하고 최대한 압박정책을 구사했다.

사실 미국과 이란 양측은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핵 협상을 벌일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양 정상의 만남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과 협상이 가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합의하지 못하고 제재를 감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다른 대통령이었다면 미국과 이란이 9월 23일에 협상을 타결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로하니 대통령은 대미(對美) 협상 불가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미국이 이란에 자신의 요구사항을 강제하려 하고, 둘째, 협상에 응하면 그 자체가 미국의 최대 압박정책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란의 공격에 파괴된 미군 기지 위성사진.
로하니 대통령은 국내 강경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JCPOA를 탈퇴하지 않는 이유로, 이를 준수할 경우 2020년 10월 18일자로 그동안 금지되었던 무기 수출입 규제가 풀리기 때문이라고 지난해 11월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혔다. 즉 자유롭게 무기를 수출하고 수입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는데 왜 탈퇴하느냐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은 이란에 녹록하지 않다. JCPOA 당사자인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3국이 이란이 단계적 감축 조치를 철회하고 핵 합의를 지켜줄 것을 당부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JCPOA에 보장된 핵 합의 위반 분쟁조정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분쟁조정 절차에 들어가면 30일 또는 그 이상 기간 동안 해결을 시도할 수 있는데, 실패할 경우 유엔 안보리로 회부되고 제재 재부과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이는 곧 핵 합의 이전 국제사회의 제재가 재개될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영국의 존슨 총리는 JCPOA 유지가 최선이지만, 만일 그럴 수 없다면 ‘트럼프 딜’을 하자고 제안했다. 새로운 핵 협상을 하자는 뜻이다. 이란은 핵 합의를 파기한 미국 대신 이란에 압력을 넣는 유럽의 움직임이 몹시 불쾌하다. 그러나 유럽 3국은 “이란이 핵 합의를 지키지 않는 현실에 분노보다는 슬픔을 더 느낀다”면서 “만일 협의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현 상태로 방치된다면, 이란이 1년 이내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두려운 속내를 내비쳤다.

이란 지도부, 서방 압박과 내부 반발로 사면초가


▎수천 명의 이란 사람들이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을 추모하기 위해 길거리에 모였다. / 사진:EPA/연합뉴스
이제 이란은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시아 초승달’을 완성한 솔레이마니가 사라지고, 미국이 강력한 억지력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유럽마저 이제 관망자의 태도에서 이란의 행동을 제어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라크에서만이라도 미군 철수를 이끌어내고자 하지만,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하게 철수 불가를 외치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 내 수니파와 쿠르드족은 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있다. 그나마 안심이 되는 것은 그동안 척을 졌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람코 석유 시설 드론 타격 이후 이란과 더는 적대적인 모습을 최소한 공개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역내 국가들이 대결보다는 긴장 완화가 지역 경제와 정치 발전에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새로운 핵 협상을 요구하며 계속 경제 제재를 부과하는 미국의 날카로운 발톱에 이란 국민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솔레이마니 죽음을 애도하며 반미 애국 전선에 나섰던 민심도 우크라이나 민항기 오폭 격추 사건 이후 혁명수비대와 정부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하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의 민심 이반은 광폭이다. 추모제에 참가한 학생들이 시위대로 변해 거리로 나섰고, 혁명수비대 비판을 넘어 체제비판 구호까지 등장했다.

뜻하지 않은 실수 하나가 상황을 급변하게 하는 이란의 정치 현실상 향후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민심을 달래기 위해 미국과 새로운 협상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월 21일에 열릴 총선에서 민의는 어떻게 표현될지, 또 페르시아력(曆)에서 새해 첫날로 삼는 ‘노루즈’가 제재의 늪에서 즐거울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솔레이마니 폭사, 우크라이나 민항기 오폭, 유럽과 미국의 압박으로 이란의 2020년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게 시작되고 있다.

※ 박현도 교수 -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연구소에서 이슬람학으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이란 테헤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 전문위원, 외교부 정책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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