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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나폴레옹을 떠올리게 하는 카를로스 곤의 ‘일본 탈출’ 

성악설의 개인(곤)이 성선설의 국가(일본) 제압 

보석, 최고 변호사, 위기일발 탈출 계획 등 3박자의 산물
평화가 지속되면서 분별력을 잃은 일본이 치명적 약점의 상징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회장이 지난 1월 8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1월 8일 현지시간 오후 3시(한국 시간 오후 10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도주극을 벌여가며 작년 말 일본에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로 도주에 성공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회장(65세)이 기자회견에 응했다. 곤 전 회장은 이따금 그 독특한 눈썹을 치켜 올려가며 실로 오랜만에 영어·프랑스어·아랍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기자단 앞에서 마음껏 울분을 쏟아냈다.

“오늘에서야 겨우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일본에서 나를 고소해 신병을 구속한 사람들이 우스꽝스러운 일을 벌였다. 오늘은 마음껏 나의 오명을 벗고 싶다. 내가 가장 못마땅한 것은 처음부터 유죄를 확정하고 있던 일본 사법제도다. 유죄 확률 99.4%라고 하는 검찰이 닛산 간부들과 공모해 나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캠페인을 펼친 것이다. 매스컴에 나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계속 흘려보냈다. 결국 나는 일본에서 죽음을 맞이하든지, 일본으로부터 도망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2018년 11월 19일 나는 (하네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별실로 끌려가 검찰에 체포됐다. 혐의에 대해서는 ‘보수에 관해 문제가 있다’고만 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보수(다액의 퇴직금)를 나는 아직 받지도 못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창문도 없는 독방에 130일이나 구금되었다. 밖에 나오는 것은 하루 30분뿐이고, 샤워도 1주일에 2번만 허용되었다. 하루 8시간의 심문에 이어 구치소에는 영어나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없었다.

일본에서의 내 입장은 ‘추정유죄’였다. 재판은 시작도 안 했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다. 어제서야 아내에게도 위증죄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9개월도 전에 아내가 검찰에 말한 내용을 어제서야 우연히 알았다는 것인가?

나는 19년간 일본과 닛산을 위해 일해왔다. 망할 뻔했던 닛산의 재건에 성공해 일본의 많은 권위 있는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제 나에게 붙은 딱지는 ‘냉혹’ ‘독재자’ ‘과욕’의 세 가지다. 나는 지금도 일본과 닛산을 사랑하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이 기자회견을 눈과 귀를 막고 싶은 기분으로 지켜보고 있던 쪽이 일본 당국이다. 곤 전 회장의 영화 ‘007 시리즈’와 같은 도주극이 성공함으로써 일본은 그야말로 ‘국치’라고 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 올림픽 축제 분위기에 찬물


▎카를로스 곤의 변호인 히로나카 준이치로(가운데)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31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들의 취재에 응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도대체 누가 부끄러워해야 할까? 도쿄 지검 특수부인가, 고문변호사인 히로나카 준이치로 변호사인가, 아베 신조 총리인가, 아니면 닛산자동차인가?

확실한 것은 경사스러운 일본의 설날 기분이 일순간에 날아가버렸다는 것이다. 1월 1일 새해 첫날은 ‘구정’을 축하하지 않는 일본에 있어 1년 중 가장 중요한 휴일이다. 본래 일본의 각 미디어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이 열리고, 일본이 세계의 중심 무대에 서는 2020년”이라는 화려한 뉴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실현하는 한 해로 만들겠다”는 야심에 차 있었다.

그런데 설날의 톱뉴스에는 눈썹이 올라간 광대 같은 얼굴을 한 남자의 사진이 도배되었다. 설을 축하하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다. 전날인 섣달그믐 곤 전 회장이 보석 중인 상황에서, 도쿄에서 레바논으로 국외 도피했다는 제1보가 들어온 이후 일본에 난리가 났던 것이다.

일본인의 첫 소감은 “헉, 설마!?”였다. 이어서 “도대체 왜 그렇게 됐지?”라는 의문으로 변했다.

레바논 언론들은 그가 도쿄의 아파트를 몰래 빠져나와 악기를 넣는 대형 상자 안에 숨어서 개인용 비행기로 터키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레바논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뉴스가 세계에 보도되자, 일본에서는 의문이 “도대체 누구 때문인가”라는 책임 추궁의 목소리로 변해갔다.

먼저, 곤 전 회장의 반생을 되돌아보자.

그는 1954년 3월 9일에 브라질의 포르투벨류(Pôrto Velho)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브라질에서 성공을 거둔 레바논인이며 그는 브라질, 레바논, 프랑스의 3중 국적 보유자다. 여섯 살에 부모의 모국인 레바논 베이루트로 건너가 학교 교육을 받았고, 그 후 파리 국립고등광업학교를 졸업한 뒤 프랑스의 글로벌 타이어 메이커 미슐랭(미쉐린)에 입사하여 18년간 재직했다. 그런 곤 전 회장을 1996년 프랑스 정부가 최대 주주인 자동차 메이커 르노가 부사장으로 헤드헌팅했다.

1999년 3월 닛산자동차가 재정위기에 빠져 르노가 닛산의 주식 36.8%를 매입하는 형태로 자본 제휴를 맺었다. 그 3개월 후, 곤 전 회장은 르노의 부사장을 겸임한 채 요코하마의 닛산 본사 COO(최고운영책임자)로 취임했다. 2001년 6월에는 CEO(최고경영자)에 올랐다.

곤 전 회장이 입사한 당시의 닛산은 약 2조 엔의 부채를 안고 있었으며, 전체 46개 모델 중 3개만 수익을 올리는 등 국내 판매 실적이 참담한 상황이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도요타와 닛산’이 일본의 고도성장을 견인하는 양대 자동차 회사였는데, 이 무렵에는 “닛산은 언제 도산할까”라는 게 화제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곤 CEO는 닛산 리바이벌 플랜을 발표, 보란 듯이 닛산의 경영을 V자로 회복시켰다. 효율이 나쁜 생산 공장의 폐쇄, 차종을 불문하고 엔진과 부품의 공통 사용, 가격 인하, 총 종업원의 14%에 해당하는 2만1000명 정리해고 등 파격에 파격을 거듭하는 정책을 쏟아냈다. 사내의 공통어도 일본어에서 영어로 바꾸는 등 사원의 의식 개혁을 촉구했다. ‘미스터 코스트 커터’로 불리며 닛산 사내에서는 야유를 받았지만, 일본 사회는 곤 CEO를 칭찬했다. 아무튼 ‘일본의 짐’이라는 야유를 받던 닛산자동차를 단기간에 V자로 회복시킨 것이다. 2003년 6월에는 부채 2조 엔(약 20조원)을 털어내고, 일본 국내 자동차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렸다.

세계적으로도 그 수완을 높이 평가받아, 같은 해 [포천]은 ‘최강 사업가 10명’ 중 1명으로 곤 CEO를 뽑았다. 곤 CEO는 일본 내외 언론에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일본 총리가 되면 어떨까”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당시의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엔 르노의 CEO도 겸임했고, 2016년 10월에는 미쓰비시도 산하에 넣어 닛산·르노·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톱으로도 군림했다.

“곤의 목소리는 신의 소리”


▎일본 도쿄 구치소 관계자들이 지난해 3월 6일 카를로스 곤으로 추정되는 인물(왼쪽 둘째)을 구치소 밖으로 데려 나오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하지만 동시에 곤 CEO는 점차 ‘닛산의 독재자’가 되어갔다. 일본의 대기업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사내에 강력한 경영자가 나타나면 많은 간부는 그 주위에서 아첨을 하게 된다. 만약 그렇지 않은 간부가 있다면 금세 한직으로 내몰리고 만다. 어느덧 닛산 사내에서는 “곤의 목소리는 신의 소리”라고 떠받들게 됐다.

더불어 곤 CEO도 점점 공사를 혼동하는 경향이 심해져 갔다. ‘닛산의 물건은 내 것’이라는 태도가 드러난 것이다. 예를 들면 도쿄, 파리, 베이루트, 리우데자네이루, 암스테르담, 뉴욕에 각각 호화저택을 구입하고 그 비용을 닛산이 지불하게 했다. 회사용 제트기도 구입했는데, 개인 전용으로 사용했다. 2016년 5월에 여자 친구인 캐럴 나하스(Carole Nahas)와 재혼했을 때에는 베르사유 궁전을 전세 내고 피로연을 열어 그 비용을 닛산이 지불하게 했다. 결국에는 중동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닛산이 컨설팅 비용을 지불케 하고, 자신이 일종의 소개비인 킥백(Kick back)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본인은 부인하고 있다).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18년 2월이었다. 곤 CEO는 4년 임기의 르노 CEO 연임을 원했고, 그러려면 최대 주주인 프랑스 정부의 승인이 필요했다. 그때 프랑스 정부는 실적이 눈부신 닛산을 완전하게 르노의 자회사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르노는 닛산의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곤 CEO는 그 일을 수락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어쨌든 4년 임기 연장을 결정했다.

여기서부터 닛산의 맹반발이 시작됐다. 닛산 내부 반발의 구심점은 대표적인 ‘곤 인맥’의 한 사람이자, 곤에게 가장 아부를 잘하고 추종하는 남자라고 일컬어지던 니시카와 히로토였다. 2017년 2월에 곤 CEO로부터 닛산 CEO로 임명된 니시카와는 표면적으로는 곤 전 회장에게 아첨을 계속하면서, 뒤에서 몰래 ‘곤의 사내 부정행위’를 도쿄 지검 특수부에 제보했다. 모든 것은 닛산을 르노의 완전한 자회사로 만드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여기서부터 ‘도쿄 지검 특수부 vs 곤 용의자’의 할리우드 영화가 무색할 정도의 투쟁극이 시작되었다.

2018년 11월 19일 저녁, 곤 CEO가 닛산의 회사용 제트기 ‘사장호’로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그때 닛산 간부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것은 도쿄 지검 특수부의 수사원들이었다. 수사원은 공항 안에서 곤 CEO를 긴급 체포해버렸다. 곤 CEO의 삶에서 이토록 경악했던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는 아마도 이때부터 도쿄 지검 특수부에 ‘복수’를 맹세하고 있었을 것이다.

곤 CEO에게 부과된 혐의는 금융상품거래법 위반이었다. 자신의 보수 등을 유가증권보고서에 실제보다 싸게 기재한 혐의 등이다. 곤 CEO는 도쿄에서 아시아 최대의 광저우자동차 쇼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실제로 향한 것은 따뜻한 광저우가 아니라 극한의 도쿄 구치소가 된 것이다.

곤 전 회장은 크리스마스도, 2019년 새해도 도쿄 구치소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그사이 닛산과 또 하나의 제휴처인 미쓰비시는 임시 이사회를 열어 곤 전 회장을 회장직에서 해임해버렸다.

곤 전 회장이 겨우 신병 보석을 따낸 것은 2019년 3월 6일이었다. 요즘은 일본발 세계적인 뉴스가 눈에 띄게 적어졌지만, 이날은 도쿄의 북동쪽 교외에 있는 도쿄 구치소에 전 세계 기자와 카메라맨이 집결했다.

보석금 15억 엔(약 150억원)을 내고 108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곤 전 회장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평상시와 같은 양복에 넥타이 차림이 아닌 공사장 작업복을 입고, 흰 마스크에 검은 안경과 파란 모자를 착용해 변장하여 나타난 것이다. 구류 중에 약 10㎏이나 말랐다는 둥 왕년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없었다. ‘변장 곤’의 보석은 순식간에 세계의 톱뉴스가 되었다. 르노 본사가 있는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1846년 나폴레옹 3세가 모자를 쓰고 장인복을 입고 요새에서 탈출한 에피소드를 인용해 보도했다.

일본 최고 변호사의 맹활약


▎터키 언론사 IHA는 사진 속 상자들이 카를로스 곤이 밀항하는 데 활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사진:AP/ 연합뉴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민완 변호사인 히로나카 준이치로가 곤 전 회장의 변호인단장에 선임됐고, 보석도 그의 영향력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히로나카 변호사의 닉네임은 ‘무죄 청부인’. 곤 전 회장은 2월 중순 기존 변호사를 해임하고 히로나카 변호사를 신규 고용했다. 그러자 이 무죄 청부인은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곤 전 회장의 보석을 받아낸 것이다.

곤 전 회장이 보석되기 이틀 전인 3월 4일, 히로나카 변호사는 일본외국특파원협회(FCCJ)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필자도 기자회견장에 갔지만, 300명 이상의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히로나카 변호사는 ‘곤 전 회장은 무죄’라고 강조했다. 그는 변호를 맡는 조건으로 두 가지를 내세웠다고 한다. 자기 자신이 무죄라고 믿을 수 있는지와 피고인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흥미가 생기느냐 여부였다. 그런 히로나카 변호사가 “무죄”라고 말하면 정말 무죄로 느껴지기 때문에 신기한 일이었고, 이날부터 일본 언론의 논조도 바뀌었다.

그런데 보석으로 풀려난 곤 전 회장은 히로나카 변호사 몰래 부인 캐럴과 ‘일본 탈출’ 계획을 세웠다. 곤 전 회장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은 국책 수사이며, 일본 정부 자체를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곤 전 회장이 뒤통수를 맞고 체포된 것에 대해 도쿄 지검 특수부에 복수할 차례였다. 다행히 자금이라면 남을 만큼 가지고 있었다. 도주극을 위해 그가 고용한 사람은 마이클 테일러라는 59세의 미국인이었다. 미군 특수부대 ‘그린베레’의 전직 대원으로, 현재는 민간 군사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내가 레바논인이고 아들 둘도 레바논에 거주한다는 점에서 곤 전 회장과는 구면이었을지도 모른다.

테일러를 일약 유명하게 한 것은 2009년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억류돼 있던 외국 기자를 구출했을 때였다. 이후 테일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억류된 사람을 구출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부하인 조지 자이에크와 함께 10여 명으로 구성된 ‘곤 구출부대’를 편성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음악단을 일본으로 보내 악기장갑 상자 안에 곤 전 회장을 넣은 뒤 국외로 반출하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이 작전의 가장 큰 문제는 출국 시 공항에서의 짐 검사다. 만일 상자 안을 검사하게 된다면 모든 것은 끝나버린다. 테일러가 주축이 된 ‘구출부대’는 일본의 10곳 이상의 공항을 답사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오사카의 현관인 간사이 국제공항이었다. 간사이 국제공항은 전 세계 부유층이 소유한 개인용 제트기의 발착을 늘리기 위해 1년 전 ‘타마유라’라는 시설을 가동시키고 있었다. 제트기를 이용하는 부유층은 일반 세관과 별도로 편안하게 세관 검사를 받게 하는 시설로, 24시간 오픈이었다. 단 하나의 어려움은 공항 주차장에서 내려 50m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타마유라에 도착하면 단 3분 만에 개인용 제트기에 오를 수 있다. 역시 간사이 국제공항이 ‘베스트 공항’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간사이 공항의 허점을 파고들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20년 도쿄올림픽 메인스타디움으로 사용될 새 국립경기장 준공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12월 29일 오후 2시반쯤 곤 전 회장은 마스크를 쓰고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맨션을 나왔다. 거기서 걸어서 1㎞ 정도 떨어진 호텔로 가서 테일러와 자이에크와 합류했다. 이들은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시나가와 역으로 갔다. 연말 시나가와 역은 귀경하는 사람들로 매우 붐벼서 마스크 차림의 곤 씨를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3명은 오후 5시 출발하는 신칸센을 타고 신오사카 역으로 향했다. 신오사카 역에서는 택시를 타고 간사이 국제공항 근처의 호텔까지 가서 그곳에 미리 예약해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2개의 똑같은 검정 상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폭 85㎝, 넓이 44㎝, 높이 90㎝의 상자로, 하나는 악기가 들어갔고 다른 하나는 비어 있었다. 상자에는 바퀴가 붙어 있어 밀어서 운반하는 구조였다. 그 빈 상자에 곤 전 회장이 들어갔다. 상자 바닥에는 공기구멍이 뚫려 있어 숨을 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밤 10시반경, 두 사람과 2개의 박스는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차로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어둠에 둘러싸인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2명은 2개의 박스를 끌고 약 50m 앞의 타마유라에 도착했다. 2개의 검정 박스는 너무 커서 엑스선 검사기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바로 앞의 상자를 열고 악기가 들어 있는 것을 세관 직원에게 확인시켰다.

상자 안을 확인한 세관 직원은 두 번째 검정 박스는 체크하지 않았다. 후에 간사이 국제공항 관계자는 “개인용 제트기로 드나드는 사람들은 엄청난 부유층이며 테러나 범죄 등에 관여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경비를 삼엄하게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렇게 밤 11시10분, 곤 전 회장을 태운 개인용 제트기는 감쪽같이 간사이 상공을 날아올라 터키 이스탄불로 향한 것이다. 곤 전 회장은 현지시간 12월 30일 오전 11시반경,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다른 개인 제트기로 갈아타고 현지시간 오후 2시경 베이루트에 내렸다. 그때는 소지하고 있던 프랑스 여권으로 본명을 써서 입국했다. 그리고 1월 8일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하게 된 것이다.

자, 여기서 다시, 모두의 질문 “도대체 누구의 실수인가?”라는 문제를 재고하고자 한다.

나의 개인적 견해를 말하자면, 이번 사태는 ‘갈라파고스화’된 일본의 ‘헤이와보케(平和ボケ, 평화가 지속돼서 분별력을 잃은 상태)’의 상징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갈라파고스화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휴대전화 업계였다. 21세기 초두에 3G 시대를 이끈 것은 일본의 NTT 도코모가 개발한 ‘i-mode’였다. 이로 인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계가 4G로 나아가는 가운데 일본은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3G의 기능을 발전시키는 것에 주력했기 때문에 4G 시대는 애플이 견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5G는 중국의 화웨이 테크놀로지가 견인하려 하고 있다. 일본 휴대전화 업계의 세계 점유율은 약 1%이고, 그 대부분은 일본 국내 시장이다.

이번 곤 전 회장의 도주 사건도 바로 ‘헤이와보케의 갈라파고스화’로 인해 벌어진 세계적 망신극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평소 ‘성선설’에 의해 생활하고 있다. 즉 인간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선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나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일본의 상식은 세계의 비상식


▎일본 오키나와현 기노완시에서 바라본 후텐마 미 해병대 항공기지. 전후 일본은 안보를 미국에 일임하고 평화헌법을 수호하는 데 주력해왔다. / 사진:AFP/연합뉴스
예를 들어,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는 지하철로 옆 역에 이동할 때도 역에서 수하물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성선설의 나라’ 일본에서는 지하철을 타는 승객이 나쁜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하물 검사는 하지 않는다. 지하철은커녕 신칸센을 타는 데도 수하물 검사는 없고, 신칸센 표를 사는데 자기 이름을 댈 필요도 없다. 게다가 일본 국내에서 비행기를 타는 경우에도, 여권은 불필요하다. 비행기 표를 살 때에는 일단 이름을 대지만, 실명이 아니라도 살 수 있다.

심지어 한국인은 믿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일본에는 신분증조차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 정부는 2015년부터 ‘My Number Card’라고 부르는 신분증 발행을 시작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급률은 15%에도 못 미친다. 즉 85% 이상의 일본인은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다. 성선설에 따라, 압도적 다수의 일본인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신분증 같은 것은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카를로스 곤이라는 남자는 성악설의 한가운데서 어렵게 성장해온 남자다. 브라질에서 태어나 레바논으로 이주하고 프랑스에서 취직하며 빈곤과 차별과 싸우면서 라이벌들을 쓰러뜨리고 현재의 자리를 쟁취했다. 개인적으로도 전처와는 진흙탕 재판극을 벌이고 있다. 그런 곤 전 회장 입장에서는 갈라파고스화된 일본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왜 체포됐을까? 왜 검찰의 집요한 수사를 받는 걸까? 왜 일방적으로 불리한 재판을 받아야 하는가?

그러한 가운데 갈라파고스화된 일본에도 단 하나,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석금이라는 제도다. 일본의 범죄 용의자는 체포되어 재판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 구치소에 머무른다. 하지만 구치소는 비좁고, 세금으로 숙식을 제공해야 한다. 거기서 도망의 우려가 없고 증거 인멸 우려도 없다고 판단된 용의자는 보석금을 법원에 맡기면 법원이 지정한 일반 거류지에서 살 수 있다. 곤 전 회장의 경우 보석금은 15억 엔에 달하고, 도쿄도 미나토구 맨션이 거주지로 할당되었다.

물론 여권은 변호사가 보관하기 때문에 출국은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상태에 놓인 일본인은 거의 틀림없이 조용히 재판을 받는다. 그것이 갈라파고스화된 일본의 상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곤 용의자는, 전술한 것처럼 ‘성악설’ 속에서 65년의 반생을 살면서 산전수전을 겪은 남자다. 프랑스 여권을 2개 가지고 악기 상자 안에 숨어서라도 국외 도피를 시도하고 말았다.

그럼 향후, 곤 전 회장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일본 검찰은 용의자 부재인 상황에서 재판을 신속히 진행해 상당한 중벌을 내릴 것이다. 히로나카 변호사는 이번 일로 만년에 명성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떤 수습에 나서더라도 결국은 ‘버스가 떠나간 뒤에 손 들기’가 돼버렸다.

그러면 일본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본의 상식은 세계의 비상식일 수 있다. 이번 일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세계는 성악설로 움직이고 있다. 올여름에는 도쿄에서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열린다. 이러한 ‘헤이와보케’ 상태로 있어도 되는가 싶다. 제2의 카를로스 곤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일본의 상식’ 그 자체를 바꿔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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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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