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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당신이 혈액암에 걸리면 벌어지는 일들 

“하루가 급한데 내년에 오랍니다” 

조혈모세포 등록기관 기증 목표치 채우면 더 이상 못받는 이상한 구조
정해진 혈액 검사 예산 소진하면 외상으로 외부기관에 의뢰하기도


▎혈액암 환자에게 조혈모세포 이식은 유일한 치료법으로 여겨진다. 서울의 한 대학교 건물 로비에 마련된 간이침대에서 재학생이 헌혈하고 있다.
10여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선 주인공이 전신 마취를 하고 엉덩이뼈에서 골수를 채집하는 장면이 나온다. 백혈병에 걸린 시어머니에게 이식하기 위해서였다. 극중 내내 이어지던 고부갈등이 골수 이식을 통해 해소되는 스토리다. 당시만해도 한국 사회에서 조혈모세포(골수) 기증은 꽤나 복잡한 절차와 통증을 수반하는 통에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실천으로 인식됐다.

요즘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골수 이식 절차도 간편하고 편리하게 진화했다. 헌혈하듯 정맥(말초혈)에 바늘을 꽂아 조혈모세포를 채집하는 식이다. 이식 4일전에 특수 촉진제를 맞으면 골수 내 조혈모세포를 일반 혈관을 통해 끄집어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체내 촉진제 성분이 사라지는 2~3일 뒤엔 일상 복귀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오른 사연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조혈모세포 기증,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 4월부터 희귀 혈액질환 ‘혈구 탐식성 림프조직구증(HLH)’을 앓고 있는 박성빈(7)군의 어머니 신민영씨가 올린 사연이다. 신씨는 이 글에서 “예전엔 환자와 일치하는 조혈모세포가 없다는 이야기에 절망했지, 기증 희망자가 있는데도 (보건복지부에서) 더 이상 모집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HLH는 혈액을 만드는 기관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거나 종양이 발생해 간·피부 등을 상하게 하는 병이다. 이런 혈액질환을 치료하려면 흔히 ‘골수세포’라고 부르는 조혈모세포의 이식이 필수다. 조혈모세포는 백혈구·적혈구 등 다른 혈액세포를 만드는 줄기세포 역할을 한다.

이렇게 이식법이 크게 나아졌는데도 박군이 반년 가까이 이식을 못 받는다고 호소하는 까닭은 뭘까?

기다리다 못해 해외 기증자 수소문


▎조혈모세포 채집을 위해 엉덩이뼈에서 주삿바늘을 꽂는 일은 이제 드물다. 한 대학병원 의료진이 루게릭병 환자의 척추에 골수 줄기세포를 주입하고 있다.
신씨가 전하는 사연은 이렇다. 박군은 지난해 4월 13일 간 이식을 받았고, 6월부터 조혈모세포 이식을 준비해왔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이식 대기자로 등록한 결과, 기증 희망자 9명의 유전자형(정확히는 조직적합성항원형, HLA type)이 박군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기증 희망자가 기증 동의 의사를 밝히면 추가 혈액검사로 유전자형이 100%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뒤 이식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신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기증 희망자 9명 전원이 기증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보통 기증 동의율이 50%를 넘는다. 9명 모두 응하지 않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신씨의 경우 명시적인 거절 의사를 밝힌 사람은 1명”이라며 “나머지는 고령이나 임신 등 이유로 불가피한 경우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신씨는 12월 들어 남편과 함께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모집에 나섰고, 환우 단체 등을 통해 300명이 넘는 희망자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후 절차는 간단하다. 기증 희망자들이 조혈모세포 등록기관에서 1차 혈액검사를 받게 되고, 등록기관은 이들의 유전자형을 장기이식관리센터 데이터베이스에 올리면 된다.

치료에 대한 희망에 부푼 신씨 가족에게 또다시 먹구름이 몰려왔다. 조혈모세포 등록기관에서 더 이상 등록을 안 받겠다고 기증 희망자들에게 밝혔기 때문이다. 2019년도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 등록이 마감됐기에 검사와 등록이 재개되는 2020년 2월 이후에 다시 오라는 것이다. 각 등록기관은 연간 단위로 등록을 받을 수 있는 수량이 제한돼있어 이를 초과하는 기증 희망자들은 다음해로 넘기게 된다. 검사 예산이 한정된 까닭에 무제한으로 등록 받아 혈액검사를 할 여건이 안 된다는 설명이 따른다.

이에 환자의 가족들은 발만 동동 구른다. 신씨는 “이렇게 되면 기증 희망자 등록에만 2개월 이상 지연되는 셈”이라며 “기증 동의자가 나타나도 2차 검사와 건강검진 등 관련 절차를 다 거치고 나면 올해 6월께나 기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박군의 사정이 지난해 12월 말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복지부는 2억300만원의 추가 예산을 편성해 기증 희망자들이 즉시 혈액검사를 받도록 조치했다. 1450여 명의 희망자가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규모다. 복지부 관계자는 “부처 차원에서 다른 사업들을 집행하고 남은 예산을 끌어다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한 언론사는 이를 두고 “성탄절의 기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박군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박군은 지난 11월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림프종 4기를 확진 판정받았다. 1월 들어서는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는 중이다. 신씨는 “3일 만에 혈액을 타고 퍼진 종양이 간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하루하루가 피가 마른다”고 하소연했다.

애타는 마음에 신씨 부부는 해외로 눈길을 돌려 대만에서 박군과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기증 희망자 2명을 찾았다. 아이에게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더는 한국에서 기증자가 나타나길 기다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대만인 2명의 혈액 샘플을 박군이 입원해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들여와 2차 검사를 진행 중이다.

이런 시스템상의 문제로 적기에 골수를 제공받지 못하는 일이 10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복지부가 작성한 ‘10년간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모집 인원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할당받은 목표치를 초과해 등록자가 몰린 기관이 꼭 생겼다.

2011년에도 박군과 비슷한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해법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복지부는 “다른 과에서 사용하지 않고 남은 예산을 부처에서 모아 1억4000만원을 전용토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9년 전과 변함없이 임시변통으로 문제를 수습한 것이다.

비판여론이 고개를 들자 복지부 관계자는 “2020년부터 기관들의 직전 연도 사업 수행실적을 반영해 1월부터 사업비를 조기 집행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의 수요에 대응해 융통성있게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종전에는 1~2월에 각 기관의 직전 연도 사업 실적을 평가하고 기관별 목표 모집 인원을 배분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 기간 동안 현장에서 기증 희망자를 모집해도 사업비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이식 합병증 막으려 ‘월 8000만원’ 비급여 약 투여


▎지난해 9월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생명나눔 홍보캠페인’ 부스에서 시민이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기존에도 등록기관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 등록기관에서는 골수 기증 희망자의 혈액을 채취해서 그 샘플을 외부의 분석기관에 보내고 검사비를 지급해야 한다. 연말에 임박해 등록기관이 목표치를 달성해서 예산 지출 여력이 없는 경우, 궁여지책으로 일단 채취한 혈액 샘플을 외부 분석기관에 보내고 새해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검사비를 지급하는 방식이 동원된다.

일종의 외상 거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혈액 샘플을 즉각 검사하지 못하는 맹점을 감수해야 한다. HLA 검사를 시행하는 사설 업체에선 1인당 검사 비용으로 50만원을 청구하는데, 복지부에서 지원하는 1인당 액수는 14만원에 불과하다. 그래서 등록기관은 검사 단가를 낮추기 위해 96개 샘플을 한꺼번에 모아 검사 기관에 보낸다. 그렇게 해야 1인당 검사비를 복지부 지원액인 14만원으로 맞출 수 있다. 범수희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팀장은 “96개 샘플이 모일 때까지 검사와 등록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가톨릭 조혈모세포은행은 5개 등록기관 가운데 모집 인원이 대한적십자사 다음으로 크다(2019년 기준 3985명).

조혈모세포 기증의 경우 환자가 부담해야 할 비급여 항목이 지나치게 많다는 여론도 있다. 예컨대 기증 희망자가 나타나더라도 HLA 검사를 실시하는데 드는 비용 50만원을 환자가 일단 부담해야 한다. 기증 희망자와 이식 대기자의 유전자형이 100% 일치해 실제로 이식이 진행됐을 경우에만 검사 비용을 사후에 건강보험 급여로 돌려받게 돼 있다.

비급여 항목 가운데 간정맥폐쇄증 치료제(데피브로타이드 성분)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간정맥폐쇄증은 간 내부 혈류량을 감소시켜 간 손상을 일으킨다. 조혈모세포 이식이 불러올 수 있는 대표적인 합병증이다. 박군처럼 이미 간 이식 경력이 있어 발병 가능성이 높은 경우엔 이식을 준비할 때 예방 차원에서 이 치료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는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간정맥폐쇄증 치료제는 환자 몸무게에 따라 투여 용량이 정해진다. 매일 4회, 적어도 한 달 이상 투약해야 한다. 신민영씨는 “몸무게 15㎏ 소아 환자에게 회당 40만원 상당 용량을 투여하더라”고 전했다. 한 달만 쓴다고 해도 최대 5000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박군이 조혈모세포 이식을 준비할 당시 몸무게(21㎏)를 기준으로 하면 약값은 8000만원을 훌쩍 넘어갈 터였다. 신씨는 “경기 고양시의 집을 내놓고 남편 회사에서 중도 퇴직금을 받아 치료비를 겨우 마련했다”고 말했다.

골수 기증 관련 의료 환경이 이처럼 열악하다보니 환자는 물론이고 좋은 뜻에서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려는 이들도 적지 않은 불편을 감수하게 된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원장(의학박사)은 2004년 조혈모세포 기증 당시의 경험을 돌이켰다.

“이식하기 전 4일 동안 조혈성장촉진제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휴일이 걸쳐진 날이 있었다. 병원에서 주사를 놔줄 간호 인력이 없다며 직접 주사를 놓으라고 하더라. 실제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려고 이틀간 입원했을 때도 간병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해당 병원에 개인적인 인연으로 아는 의사가 있어 돌봄을 받을 수 있었다.”

동의율 1% 늘리면 2만8000명 기증 효과


▎1994년부터 2013년까지 20년간 대한적십자사에 등록 신청을 한 기증 희망자의 기증 동의율은 63.7%로 집계됐다.
기증자에 대한 예우가 이처럼 보잘것없다 보니 기증 문화가 정착하기도 어렵다고 김 원장은 우려한다. 이는 유소영 차의 과학대 간호대 교수 연구팀이 2017년 기관 전문가 8명을 대상으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기증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이게 다 환자한테서 나온 돈이라고 하는데, 내가 특실에서 입원해도 될까?’ 이런 생각이 들어 하루빨리 퇴원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 이식조정기관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면서, 국가가 제한한 틀 안에서 일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러나 김 원장은 조혈모세포 기증 지원사업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마냥 찬성하진 않는 입장이다. 같은 예산 안에서라도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기증 사업을 바라보는 국민 인식을 개선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단적으로 미국의 조혈모세포 기증 희망자 등록 프로그램인 NMDP의 경우, 기증 희망자들의 기증 의사 유지율을 1% 개선하는 것이 2만8000명의 기증 희망자를 새로 모집하는 것과 동등한 효과를 갖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높은 기증 의사 유지율은 높은 ‘기증 동의율’로 이어진다. 기증 동의율은 유전자형 일치자 가운데 최종적으로 기증에 동의하는 인원의 비율을 말한다. 2016년 대한적십자사 발표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13년까지 20년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등록 신청을 한 기증 희망자의 기증 동의율은 63.7%로 집계됐다. 기타 나머지 기관의 같은 기간 평균 기증 동의율은 49.2%였다. 범수희 팀장 역시 “대한적십자사의 기증 동의율이 타 기관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은 게 사실”이라고 동의했다.

현격한 격차에 대해 범 팀장은 “적십자사의 경우 전국 헌혈의 집에 기증 희망자가 찾아오는 식이라면, 나머지 기관은 학교·군에 찾아가 하루에 대량으로 등록 신청을 받아오는 식”이라며 “기증 의지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대한적십자사는 지난해 모집 인원 5533명 가운데 5296명(95.7%)을 헌혈의 집을 통한 개별 모집으로 확보했다.

이런 이유로 김 원장은 “1994년 처음 조혈모세포 기증 지원사업을 시작했을 때처럼 대한적십자사로 등록과 조정 기능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관을 여러 군데로 쪼갠 것은 서둘러 기증 등록 누적 인원을 늘리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누적 인원이 32만 명을 돌파해 적정 모집단을 확보한 만큼, 기능을 일원화해 질적 개선에 나설 때”라고 김 원장은 강조했다.

-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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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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