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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추적] 허울뿐인 공공부문 민간위탁 대책 

업체 반발, 지자체 뒷짐··· 정규직 희망은 사라졌다 

알맹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현장에선 허탈감만
지자체는 생색내기… 정작 운영은 민간업체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 부산의 A 생활폐기물 업체는 직계 가족과 친인척을 허위 직원으로 등록해 급여를 주는 수법으로 8억5961만원을 횡령했다. 법원도 이를 인정해 A업체 대표는 2018년 11월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 부산 B 생활폐기물 업체는 2003년 5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해마다 적게는 2명에서 최대 13명의 환경미화원을 허위 직원으로 등록시켜 임금을 지급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민간위탁 수수료 35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B업체는 해당 업체에 근무한 적 없는 C씨 등을 정상적인 퇴직 근로자인 것처럼 실업급여를 신청해 약 500만~800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해당 업체 대표와 상무는 2019년 4월 구속됐다.

이들 업체처럼 정부의 공공서비스를 대행하는 민간업체가 2만 개를 웃돈다. 얼핏 보기에도 터무니없는 일들이 버젓이 반복될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말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3단계에 걸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이런 불법, 탈법의 개연성이 더 크게 열렸다는 지적이다.

당초 정부는 마지막 단계로 민간위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민간위탁이란 공공부문이 제공하던 공공서비스 일부를 민간업체가 대행하도록 한 업무를 말한다. ▷생활폐기물 수거 ▷소각장·선별장·하수처리장 운영 ▷정신건강센터 운영 ▷방과후학교 강사 ▷공공기관 콜센터 ▷노동·다문화·복지관 지원센터 운영 ▷수도·전기 검침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난해 2월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을 발표하며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사무와 운영 실태가 다양해 일괄적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며 정규직 전환 대신 노동조건 보호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이 발표되면서 공공부문 민간위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사실상 후퇴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았다. 이 같은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확약서 한 장으로 노동자 보호 가능할까


지난해 12월 정부는 공공부문의 민간위탁 노동자 20만 명의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을 확정했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위탁기관(공공기관)이 수탁기관(대행기관)을 모집할 때, ‘민간위탁 노동자 근로조건 보호 관련 확약서’를 제출받도록 한 점이다. 확약서에는 ▷책정된 임금 지급 ▷법정 사업주 부담금 의무 준수 ▷재위탁이나 하도급·파견 금지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남녀고용평등법·노조법 위반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만약 제출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아울러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해소를 위해 계약서에 수탁기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고용 유지, 고용 승계를 하도록 명시했다.

정부는 민간위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보호 디딤돌을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의 의견은 다르다. 장창우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민간위탁의 정규직 전환 자체를 안 하겠다는 얘기”라며 “처우 개선 부분에만 방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고 말한다. 장 국장은 또 “현장에서 가이드라인에 따라 실질적인 처우 개선이 얼마나 이뤄질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근로조건 보호 확약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입찰공고와 계약 체결 시 받는 형식적인 근로조건 보호 확약서 한 장으로 어떻게 근로조건 향상과 고용안정을 꾀할 수 있겠는가”라며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가이드라인 발표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민영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 국장은 정부의 민간위탁 가이드라인을 놓고 “공공기관에 오히려 민간위탁 외주용역을 용인해주는 꼴이 됐다”고 지적한다. 앞선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1·2단계보다 강제성과 구속력이 떨어지다 보니 민간위탁을 다수 활용하는 공공기관에 일종의 면죄부를 줬다는 뜻이다. 민 국장은 “정부가 민간위탁 정규직 전환에 의지가 없다면 공공영역은 물론 민간영역에도 나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도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지자체가 직영으로 하던 업무를 민간위탁으로 넘기는 사례가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같은 우려는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인천 남동구청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2019년 6월부터 민간위탁으로 전환했다. 다문화가정에 방문해 결혼이주여성과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다문화가족 방문지도사들은 2015년 민간 위탁에서 직영으로 전환된 지 3년 만에 다시 민간위탁으로 전환됐다. 지난달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아닌 ‘민간위탁 정책추진방향(2019년 2월)’ 발표만으로도 지자체에서 민간위탁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민간위탁관리위원회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민간위탁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민간위탁 사무의 전반적 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위탁기관 내 ‘민간위탁관리위원회(관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관리위원회 구성을 보면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할 자리는 없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위원 자격요건을 보면 ▷변호사 ▷회계사 ▷노무사 등 전문직 혹은 민간위탁 사무와 관련된 시민단체에서 추천한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실태와 문제점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지만, 이들은 위원회에 들어갈 수 없다”며 “쓰레기를 수거해본 적도 없고, 아이 돌봄을 위해 가정 방문도 해보지 않은 전문가들이 어떻게 제대로 된 의견을 낼 수 있겠나”고 반문한다.

깨기 힘든 민간업체·지자체의 뿌리 깊은 카르텔


▎정부 정책 변화로 지자체 직영에서 민간위탁으로 바뀌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사진은 다문화지원센터 모습.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외쳤던 문재인 정부는 왜 민간위탁 문제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수준에 그쳤을까. 정부의 ‘2018년 민간위탁 전수실태조사’ 결과, 공공부문에서 민간위탁 사무 수는 1만99개, 수탁기관은 2만2743개, 종사자는 약 19만5000명, 예산은 약 7조9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민간위탁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곳은 자치단체다. 전체 민간위탁 사무 수의 약 87.2%, 8807개를 차지한다. 자치단체에서의 민간위탁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주훈 민주노총 소속 민주일반연맹 기획실장은 “사회복지 서비스 확대 명목으로 자치단체장 치적 쌓기 발표에 유용한 시스템”이라며 “정작 운영은 우후죽순 대행업체에 맡기면서 사업 운영에 대한 책임은 회피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공약이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특정 서비스는 시범사업 성격의 업무를 민간업체에 맡길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이 국민에게 상시·지속적으로 제공될 경우 지자체에서 직접 관리·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정부의 실태조사 발표에 따르면, 민간위탁 사무의 93.4%에 해당하는 업무가 상시·지속적인 것으로 나왔다. 지자체의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자체와 민간업체 간의 관계도 정부가 민간위탁 정규직 전환 드라이브를 걸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윤 추구와 행정편의로 결탁한 민간업체와 지자체의 민간위탁 유지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장창우 한국노총 정책국장도 “수탁사업자들의 반발이 반영됐다고 본다”고 말한다. 정부의 공공서비스를 대행하는 민간업체는 2만 개가 넘는다. 공영·직영으로 전환할 경우 복잡한 행정절차와 함께 민간업체의 소송이 이어지는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직영하든 위탁하든 예산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은 지자체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하지만 민간위탁에서 지자체 관리로 선뜻 전환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소 황당하다. 한건희 공공운수노조 충북평등지부조직차장은 “일선 공무원들은 ‘수많은 지자체들이 민간위탁을 하는 상황에 우리만 공영화하기에는 눈치가 보인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먼저 총대 메고 나서서 타 지자체의 눈총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의미다.

노동계에서 바람직한 공영화 모델로 꼽는 곳이 ‘대전도시공사’다. 대전시가 전액 출자해 1993년 설립된 대전도시공사는 대전시 내 5개 구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소각, 매립, 재활용 등 전 과정에 필요한 시설을 관리·보유하고 있다. 매립장과 소각장도 보유해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을 지자체가 대행하는 것은 대전도시공사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대전도시공사 관계자는 “쓰레기 수거 업무는 각 구청에 책임이 있다”며 “대전도시공사는 대전시 산하 5개 구의 업무를 대행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민간업체에 쓰레기 위탁 업무를 맡기고 있다. 민간업체가 아닌 지자체가 쓰레기 수거 업무를 대행함으로써 얻은 이점은 광주 북구와 대전 서구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광주 북구는 약 43만 명, 대전 서구는 약 48만 명으로 인구 규모가 엇비슷하다. 광주 북구는 민간업체가 생활 쓰레기 수집·운반 업무를 하는 반면, 대전 서구는 지자체가 맡고 있다. 월간중앙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광주 북구의 t당 수거비는 대전 서구보다 16.6% 높았다. 대전 북구와 같은 무게의 쓰레기를 수거하더라도 광주 북구는 민간 대행업체에 더 큰 비용(세금)을 지불했다는 의미다.

효율성 측면을 따져보면 차이는 더 확실하다. 대전 서구는 108명의 인원으로 약 10만t의 쓰레기를 수거했다. 사업비는 약 113억원이었다. 반면 광주 북구의 민간업체는 140명의 환경미화원을 고용하면서 약 9만5000t을 수거했다. 사업비는 약 126억원이었다. 인구수 5만 명이 더 많은 대전 서구에서 광주 북구보다 적은 인원과 사업비로 더 많은 쓰레기를 수거했다는 의미다.

원가 산정 항목 중 하나인 이윤 역시 대전 서구를 포함한 5개 구는 8%지만 광주 북구는 10%로 책정됐다. 영업이익을 의미하는 이윤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의해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원가 중 노무비, 경비와 일반관리비 합계액의 10% 안팎으로 계약을 맺는다. 다시 말해 대전도시공사가 관리하는 대전 서구보다 광주 북구가 민간업체에 더 높은 이윤을 지불하고 있다는 뜻이다. 원가 산정에 인건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40명을 관리하는 민간업체에 주는 이윤의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호시탐탐 위탁업무 노리는 민간업체… “공영화 사수해야”


▎사회복지 서비스 중 하나인 아이돌봄 서비스 종사자(왼쪽)는 민간위탁 업체 소속이다.
고용안정성도 민간업체와 비교할 수 없다. 대전도시공사 관계자는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수행하는 인원만 418명으로, 모두 정규직 사원”이라며 “환경사원 채용 공고를 내면 10: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고학력자도 많이 지원한다”고 밝힌다. 이 관계자는 지난 연말에는 30년 넘게 근무했던 직원들이 퇴임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예산 효율성과 고용안정성을 자랑하는 대전도시공사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업무를 지속해서 수행할 수 있을지는 현재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전의 한 업체가 공개경쟁 입찰을 허용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고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전도시공사는 “대전시 5개구와 청소사업 대행계약 체결이 불확실하며 폐기물 수집·운반업 허가 신청이 쇄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강석환 대전도시공사 노조위원장도 “민간업체가 대행하게 될 경우 정규직 신분이 전환될 수밖에 없다. 고용안정이 훼손되면 지금과 같은 공공서비스의 질을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강력한 생존권 투쟁 의지를 밝혔다.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수거 작업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공영화가 잘 운영되는 곳도, 그렇지 않은 곳도 여러 잡음이 나오는 영역이 바로 공공부문 민간위탁이다.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단순히 가이드라인 발표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창우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총선 이후 공공부문 민간위탁 문제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에서 심도 있는 재논의가 필요하다”며 “정부와 지자체의 강력한 의지만 있다면 풀지 못할 난제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위탁노동자 20만 명, 민간업체 2만 개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쉽지 않은 문제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민간위탁 일몰제 등 직영·공영화로 연착륙하기 위한 정책 방향을 정부가 제시하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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