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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대한노인회중앙회 공동기획 同行(3) | 정년을 잊은 사람들] ‘인생 3모작 전도사’ 최성재 한국생애설계협회장의 청춘론(論) 

“청춘은 인생의 한 시절이 아니라 마음가짐”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계획은 필요”
“60대 이후론 자유롭고 여유 있게 원하던 일 할 수 있어”


▎최성재 한국생애설계협회장이 1월 6일 서울 중구 필동에 위치한 한국생애설계협회에서 수강생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최성재(75) 한국생애설계협회장은 국내 최고의 노인문제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서울대 사회사업학과 졸업 후 워싱턴대 사회복지학 석사,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사회복지학 박사를 받은 그는 40여 년 동안 노인문제와 생애설계 등에 천착(穿鑿)하고 있다.

최 회장은 서울대 교수에서 퇴임한 이후로는 한양대 석좌 교수, 박근혜 정부 초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 등을 거쳤고, 2015년부터 한국 수행하고 있다.

최 회장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은퇴설계가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작업이라면 생애설계는 생애 전체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라며 “돌아보면 내 나이 60~75세 사이가 가장 왕성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지난해 10월,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단행본 [생애설계와 시간관리] 원고 정리를 마쳤습니다. 현재 서울대 출판문화원에서 출판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오는 3월 말쯤 출판될 예정입니다. 일반인이 모두 읽을 수 있으면 좋겠고, 특히 노후나 퇴직을 준비하는 분들과 인생 2·3모작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많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한국생애설계사 양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120시간 과정의 교육을 이수(履修)하면 생애설계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배출된 200여 명 가운데 30명 정도는 기업체 등을 상대로 생애설계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생계뿐 아니라 생애를 위해서도 오랫동안 일하고 봉사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대학교수·청와대 수석비서관·한국생애설계협회장 등 지금까지 해온 일이 다양합니다. 각각의 일에서 느낀 보람과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서울대·이화여대·한양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한 세월이 32년입니다. 1970년대 말 노인 복지, 고령화사회 등을 공부하기 위해 해외로 유학을 떠난 사람 중에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은 아마 제가 처음일 겁니다. 당시만 해도 일본 등지에서 많이 배우던 시절입니다. 교수로서 여러 위원회 같은 데 참여해 정부 정책 수립에 힘을 보탠 게 보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9년 10월 2일 노인의 날 기념행사 때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대면하고 건의했는데, 그게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제정의 동력이 됐다는 점에서도 보람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교수로서 40년 동안의 연구 결과가 보다 많이 정책이 반영되지 못한 건 아쉬운 점입니다. 2012년 대선 캠프, 정권인수위원회,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을 거치면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제도 시행의 기초를 다지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에 (고용복지수석으로) 6개월 정도밖에 재직하지 못했던 터라 정책 조율·실현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 사회장관(교육·고용·복지) 회의를 부활시키지 못한 점도 아쉬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5년부터 한국생애설계협회장을 맡고 있는 제가 40년 동안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일반 국민에게 생애설계의 필요성을 교육할 수 있고,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보람입니다. 다만 사단법인이라 운영에 재정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한국생애설계협회는 어떤 단체입니까?

“2014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인생의 건강과 행복은 노후만이 아니라, 노후까지 생애주기 각 단계가 모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의 건강하고 행복한 일생을 위해 저 개인적으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설계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한국생애설계협회의 주요 활동으로는 ▷생애설계사 전문 컨설턴트 교육(한국생애설계사 및 시니어 생애설계사 민간자격증 발급) ▷부설 평생교육원 운영(전문가·기업·일반인 대상 생애설계 교육 시행 등) ▷생애설계 관련 다양한 교육 교재 개발·발간 ▷생애설계를 생활 속에서 실현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 개발 등이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지식과 연계된 분야에서 활동해야”


인생 2모작을 넘어 3모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모작과 3모작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인생 2모작이라면 평균수명이 80세 정도일 때 적합한 모델(모형)입니다. 가장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퇴직한 뒤 한 번 재취업(창업)하거나 사회공헌 활동으로 10~20년을 보내는 것이죠. 2018년 통계를 보면 가장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퇴직하는 나이가 49세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실제로는 50세부터는 새로운 일이 필요한 셈이죠. 그에 반해 인생 3모작은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 100세까지 연장되는 미래사회인 고령화·지식·정보화·4차산업혁명 사회에 적합한 모형입니다. 100세 시대라면 60~65세 퇴직한다고 가정했을 때 퇴직 후 15~20년 정도 더 활동해야 합니다. 따라서 가장 오래 일했던 직장에서 퇴직한 뒤 재취업(창업)을 통해 10년 정도 2모작을 하고, 이후 3~5년 정도 시간제로 일(봉사)하면서 3모작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적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생애에서 가장 오래 일한 일자리에 1차 퇴직 후 80세 정도까지 2모작만 할 수도 있고, 3모작 이상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생 3모작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생애설계를 통해 일찍부터, 또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막상 닥쳐서 하려면 생각만큼 쉽지 않은 게 생애 설계입니다. 물론 미래사회 변화를 예측하면서 준비해야 하고요. 아울러 건강관리와 자기계발이 뒷받침돼야 하겠죠. 가능하면 자신의 경험·지식·기술과 연계된 분야에서 활동하는 게 좋습니다. 아주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평생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먼저 퇴직과 은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퇴직은 말 그대로 직장에서 물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퇴직 후로도 재취업과 퇴직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은퇴는 일을 비롯해 거의 모든 활동에서 물러나 조용히 자기관리를 하며 지내는 걸 말합니다. 은퇴보다는 퇴직이 훨씬 현실적인 의미일 겁니다. 참고로 사무엘 얼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소개해 드리고 싶군요. 이 시는 70세의 나이에 한국전쟁 당시 유엔 사령관으로 참전한 맥아더 장군의 애송시이기도 합니다.”

“희망의 물결 위에 있는 한 여든 살도 청춘”


▎최성재 한국생애설계협회장은 “모든 국민이 효과적인 생애설계 및 실천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최 회장은 “청춘은 인생의 한 시절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시인의 말에 동의한다”며 ‘청춘’을 암송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한 시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씩씩하고 늠름한 의지력,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정열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의 청신함이다. (…) 나이를 먹었다고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었을 때 비로소 늙는다. (…) 머리를 높이 쳐들고 희망의 물결 위에 올라앉는 한, 여든 살이 되더라도 사람은 청춘으로 지낼 수 있다.”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보람된 일과 가장 아쉬운 일은 무엇인가요?

“보람이라면 노후생활과 고령화사회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한 것이겠죠. 그런 활동을 통해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데 작은 힘을 보탠 것 같습니다. 또 교과서 및 관련 서적(고령화사회의 노인복지학 등)을 저술하고 연구와 관련해 국제적 활동을 하게 된 것도 보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세계노년학노인의학회(IAGG) 유엔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생애설계의 필요성을 세상에 전할 수 있었던 것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에 기여한 것도 돌아보면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반면 연구한 것들을 정책과 서비스에 더 많이 반영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 중독이다 보니 아내와 가정에 소홀했던 것도 아쉬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성기가 지났을 때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자신이 쌓아온 지식·기술·경험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줄 교훈을 끌어내야죠.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꼰대같이 자기 생각과 경험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건 곤란합니다. 강요하고 간섭하는 건 실력과 인격으로 인정되는 권위를 바탕으로 후배를 멘토링 하는 것과 다릅니다. 나이나 과거의 지위를 앞세워 젊은 세대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 실력 있는 권위자로 컨설팅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100세 시대입니다. 퇴직 후로도 일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70대 후반, 80세까지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회에 참여해서 일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오래 그리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간단히·쉽게·단기적인 것으로 계속 반복하면 될 거란 생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는 미래사회의 변화를 잘 예측해서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 더 추가하면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계획은 세워야 합니다. 104세까지 살았던 일본의 의학자 하노하라 교수는 죽기 몇 달 전까지 1~2년 후 강의 계획을 세웠다고 하잖아요?”

최성재 회장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삶의 가장 중심적인 지주이자 제 삶의 중요한 가치를 실현해 주는 존재입니다. 자존심과 존재감이라는 거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위한 저의 의무이자 공헌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건강을 지켜주는 고마운 친구입니다(웃음).”

‘개인적 성취’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


▎2013년 3월 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앞서 당시 허태열 비서실장(오른쪽)과 최성재 고용복지수석(가운데) 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생의 좌우명이나 신조가 있으신지.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확실한 지식·신념으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둘째, 성실한 자세와 책임감으로 직무를 수행한다. 셋째, 실력 있는 권위자로 자존감을 유지한다. 넷째, 가족과 사회에 부담(돌봄에 따른 비용 등) 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간다.”

인생 후반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가치는 ‘내가 바라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제3기 인생론입니다. 영국의 사회철학자 피터 래슬릿은 자신의 저서 [신선한 인생 지도(AFresh Map of Life)]에서 고령사회에서 퇴직 후 건강하게 지내는 시기를 ‘제3기 인생’이라 하고, 제3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개인적 성취(Personal Achievement)’라 했습니다. 개인적 성취는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걸 의미합니다. 둘째 ‘100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60~75세 행복론입니다. 인생에서 60~75세 사이가 가장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기이며, 그 이후로도 노력하면 충분히 지켜나갈 수 있다는 김 교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60대 이후로는 많은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여유 있게 원하던 일을 계획해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제 자신의 경험입니다. 돌아보면 제 나이 60세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가장 왕성하고 의미 있게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945년생 해방둥이인데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면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을 지켜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건강관리 비결도 궁금하군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규칙적인 생활, 건전한 식습관, 규칙적인 운동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매일 저녁 10~11시쯤 잠자리에 들고 아침 5시쯤 일어납니다. 그렇게 생활한 지 30년쯤 된 것 같아요. 또 일주일에 5번 이상, 매일 1시간 이상 유산소 운동과 근력 강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목표나 비전은 무엇인가요?

“고령화사회에서 모든 국민이 100세까지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생애설계와 실천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는 겁니다.”

비슷한 연배의 독자들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도 20년 정도의 여생이 있습니다. 앞으로 20년을 더 살게 될 동년배들에게 몇 가지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하루를 적절한 스케줄에 따라 규칙적으로 보내자. 둘째, 주기적인 건강검진, 건전한 식습관, 적절한 운동을 통한 건강관리를 습관화하자. 셋째, 배우는 일과 자기계발을 꾸준히 이어가자. 인간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계속 발달할 수 있습니다. 인생 후반기의 발달이란 성숙·유지·적응이 이뤄지는 걸 말합니다. 노력하면 할 수 있습니다.”

-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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