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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특집 | 경제 변수] 먹고살기 어렵다는데 文 정권 지지율 버티는 이유 

복지 증대, 마중물일까 퍼주기일까 

여권, 감세 대신 ‘더 걷어서 더 주자’는 적극적 재정정책에 올인
경기 저점 통과하지만 V자 반등은 어려워… 국가 경제 휘청일 수도


▎스쿨존 교통지도를 하는 노인 일자리 참가자. 문재인 정부의 노인 일자리 정책에 대해 지지자들은 고용, 반대자들은 복지의 측면을 부각한다.
#. 여론조사 전문가 A씨는 언젠가부터 모임만 나가면 곤욕을 치른다. “회사를 경영하는 어르신들이 ‘내 주변에 문재인 대통령 지지한다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지지율이 40% 넘게 나오느냐?’고 힐문한다”고 호소했다. ‘조사가 조작 아니냐’는 불신이 배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모든 여론조사기관 발표가 엇비슷하다. ‘조국 사태’ 같은 대형 악재만 아니면 흔들리지 않는다.

#. 서울 거주 40대 B씨는 부동산정책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다. 그러나 연초 가족모임을 다녀온 뒤, 4월 총선에서 정부·여당 심판론이 먹히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지방에 사는 B씨 부모는 “민주당을 찍으면 안 된다”는 아들 내 외의 설득을 한방에 무력화했다. “이 정부가 너희들보다 효자다.” 소득 하위계층에 속하는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정부가 최대 30만원까지 지급하는 기초연금의 위력이다. B씨는 “평생 보수정당만 찍어온 장인어른도 ‘이번에는 민주당을 찍겠다’고 하더라”며 “40% 지지율은 실체가 있다”고 봤다.

#. 20대 후반 중소기업 직원 C씨는 “문 정부가 아니었다면 고시원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1.2% 저금리로 최대 1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한 제도 덕분에 전셋집을 장만한 것이다. 10평이 못 되지만, 삶의 질이 달라졌다. 어차피 서울 아파트 소유는 언감생심이었다. C씨에게는 2020년 4월로 예정된 청년저축계좌 출시도 고마운 일이다. 매달 10만원씩 적금하면 3년 후 만기금액은 1440만원에 달한다. 정부가 1000만원 넘게 ‘이자’를 주는 것이다.

반도체 실적이 집권여당을 돕는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4번째)이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2020년 경제 전망에 관한 의견을 듣고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강명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책 [불평등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저소득층은 재분배를 선호하지만, 투표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는 현실’을 포착했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고소득층은 투표율이 높은 편이다. 반면 저소득층은 다수를 점하지만, 투표율이 낮은 편이다. 이런 구조라면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경제적 불평등 해소 정책보다, 세금을 부담하는 고소득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책으로 기울게 된다.

이를 현재의 한국 정치 상황에 대입하면, 문재인 정부는 다수의 저소득층에게 투표장에 갈 만한 동기를 끌어내는 ‘블루오션 개척 전략’을 선택한 셈이다. ‘먹고살기 바빠 투표 관심 없다’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투표해야 한다’로의 전환이다. 이에 관해 지지세력은 ‘보편적 복지’, 반대세력은 ‘퍼주기 포퓰리즘’이라고 네이밍할 것이다. 복지 확대가 사회 쟁점이 되고, 우려가 커질수록 수혜를 입는 계층의 결집은 견고해진다.

“역대 선거에서 경제 이슈로 승패가 갈린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이 여론조사 업계의 정설이다. 경제 부진은 복합적 요인으로 발생한다. 정책 실패 탓이라고 꼭 집어 단죄하기가 모호하다. 그나마 부동산이 국민 정서와 직결된다. 그 휘발성을 감지한 문 대통령은 1월 7일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반면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등 거시경제 담론은 다수 서민의 피부에 바로 와닿지 않는다. 야당이 “이런 정책의 부작용으로 경제 기초체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목 놓아 외쳐도, 당장 나라에 큰일이 생기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중시하는 것은 데이터보다 경기, 즉 경제의 심리다. 이 대목에서 문 정부와 민주당은 4월 총선 국면에서 행운과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다수의 경제연구기관이 2020년 1~4월을 경기가 반등하는 구간으로 예측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수출국인 한국을 지탱하는 반도체 실적이 회복하고 있다. 실제 1월 8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2019년 4분기 실적은 기대 이상이었다. 영업이익이 기대치(6조5000억원)를 뛰어넘는 7조1000억원이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는 매출의 약 40%, 영업이익의 약 80%를 차지한다. 2020년 반도체 재고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주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좋아지면, 곧 한국 경제가 좋아진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2019년 수출·소비·투자 등 온갖 경제지표가 워낙 바닥이었기에 역설적으로 2020년 초, 어지간하면 반등한 것처럼 보이는 ‘기저효과’가 가능하다. 그 폭이 미미할지라도 4월 선거를 앞두고 저점을 탈출하는 신호가 확인되면, 정부·여당에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저물가·저성장·저금리의 ‘뉴 노멀’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전형적인 디플레이션은 아니지만, 그런 요소가 있는 국면”이라며 “V자형 반등은 어렵다”고 봤다. 가계와 기업의 사정이 빠듯할수록 정부 재정 집행은 강력한 대안이다. 2020년 국가 예산은 사상 최대인 512조3000억원이다. 최초로 500조원(2019년 475조4000억원)을 돌파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매년 9% 이상씩 증액되고 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문 정부의 이데올로그와 같은 존재감으로 각인된다. 문 대통령이 트위터에 [유시민과 도올 - 통일, 청춘을 말하다]를 추천할 정도였다. 유 이사장의 경제관은 2002년 출간된 [경제학 카페]에서 드러난다. “국가채무는 그 자체로 비난해야 할 사회악은 아니다. 그런데도 왜 정치인과 언론은 국가채무의 증가를 두고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비난을 해대는 것일까. 부분적으로는 무지와 오해 때문이며, 더 크게는 정치적 동기 때문이다.”

불황에 대처하는 정부가 동원하는 정책 수단으로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가 있다. 문 정부는 감세와 거리가 멀다. ‘더 많이 걷어서 더 많이 지출한다’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런 기조가 축적된 결과, 정부의 나랏빚은 2019년 11월 기준 704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가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700조원을 넘겼다. 정부의 실질적 재정 상태를 나타내는 관리재정 수치는 2011년 통계 발표 후 가장 큰 적자로 나타났다. 씀씀이는 더 커지는데 세금은 덜 걷히고 있다. 이를 메우고자 정부가 취하는 방편은 국채 발행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돈을 찍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복지 증대는 소비 축소를 불러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2018년 9월 광화문 광장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부는 적극 재정을 펴서 경제를 활성화하고, 세수를 증대하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했다. 그러나 돈을 아무리 풀어도 효과는 미진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돈을 그만 풀 수도 없다. 문 정부는 법인세율을 최대 25%로 올렸지만, 기업 실적이 저조하면 효과가 반감된다. 부동산 증세로 메우고 있다지만, 한계가 있다. 집값이 오를수록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지만, 더 이상 올랐다간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급격한 보유세 증가는 1주택자의 저항까지 부를 수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재정 지출은 가속화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월 8일 “상반기 재정 조기 집행 목표를 역대 최고 수준인 62%로 설정하고, 일자리 사업은 1분기 안에 37%를 집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경제학 카페]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국가채무가 국민경제에 주는 부담은 채무의 절대 액수가 클수록, 그리고 이자율이 높을수록 커진다. 국민경제가 국가채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커진다. 성장률이 이자율을 초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빚을 갚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 빚을 내야 하는 처지에 빠져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경제가 앞으로 과거처럼 높은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다른 길이 없다. 국가채무를 줄이기 위해 억울하지만 현재의 납세자들이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걷느냐’ 못잖은 또 하나의 이슈는 ‘어떻게 쓰느냐’다. 복지 지출이 증가할수록 총수요가 감소한다는 것은 우파적 시각이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 정면 배치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2019년 데이터로 보면 475조 예산을 지출했지만, 민간소비는 줄었다”고 말했다. 그 가설로 남성일 교수는 “과거처럼 시장이 닫혀 있지 않아서 해외여행이나 인터넷 해외직구 등에 쓴다면, (돈이 풀려도) 우리나라에서 소비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예측했다.

정부의 2020년 512조 예산 중 복지 예산은 180조원이다. 그리고 기획재정부는 1월 7일 ‘설 민생안정 주요 대책’을 발표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명절자금 지원(총 90조원) ▷청년저축계좌 신설 ▷근로장려금 및 자녀장려금 조기 지급 ▷60세 이상 노인 단기 일자리 확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이 망라돼 있다. 남 교수는 “경기부양을 위한 목표겠지만, 타깃 집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월 7일 신년사에서 ‘일자리의 뚜렷한 회복’을 정책 성과로 내세웠다. 실제 통계상 취업자 수 증가 폭은 2018년 10만 명에서 2019년 28만 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60세 이상 노인 일자리가 증가를 주도했다. 게다가 이런 고용의 대부분은 국가가 세금을 들여 만들어낸 초단기 일자리였다. 경제의 등뼈에 해당할 40대 제조업 같은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은 것은 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지니계수,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3대 분배지표가 모두 개선됐다”며 “특히 1분위(소득 하위 20%) 계층의 소득이 증가세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1분위 계층의 소득 증가는 노동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정부가 돈을 쥐여준 결과에 가까웠다. 2019년 3분기 기준, 이전소득은 11.4% 늘었는데, 근로소득은 6.5% 감소한 것이다.

결국 문 정부의 경제 정책을 반대하는 진영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은 경제활성화 정책이 아니라 선심성 복지정책’이라고 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타격을 받은 자영업자는 대략 6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신세돈 교수는 “배우자까지 합치면 1200만 명이다. 이들로 인해 깜짝 놀랄 총선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봤다. 종업원 임금을 감당 못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된 부류와 폐업한 자영업자는 정책의 피해자로 분류된다.

경제 성과 성에 안 차도 자유한국당이 더 싫다

반면 문 정부 복지정책의 수혜를 입은 저소득층(소득 하위 39%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과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의 혜택을 본 대기업 노조와 중산층 화이트칼라는 우호적인 편이다. 민주당은 경제·사회적(여성·장애인·소수자 등)으로 지지층의 스펙트럼을 넓게 확보해 지지율을 유지, 확장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수백만 회원 수를 보유한 레몬테라스, 맘스홀릭 등, 이른바 ‘맘(mom) 카페’는 문 정부의 가장 강력한 우군 중 하나다. ‘젊은 여성들이 이미지 감성 정치에 반응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론 해석이 불완전하다. 이들은 문 정부의 출산, 육아 관련 복지정책의 직접적 혜택을 받고 있다.

한국의 문 대통령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대조적 정치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지지를 얻는 방법론에서는 의외로 흡사하다. 신념(문 대통령)과 실리(트럼프)라는 가치관의 차이는 극명하지만 철저하리만치 다수의 아군과 소수의 적을 나눠놓고, 아군의 이익에 충실한 정책을 펼친다. 문 정부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를 ‘정의와 공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은 ‘적폐몰이, 편 가르기’라고 주장한다.

프레임 전쟁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영역이 경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는 “통계야말로 가장 고약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한다. 총선에서 정부 경제 실정론이 부각된다면, 집권여당에 유리하지 않다. 현재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선진국인 미국보다도 낮다. 물가상승률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디플레 운운하는 국면은 곧 경제가 침체 위기에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여론조사(한국갤럽 1월 둘째 주)에서 정권 심판론(37%)보다 보수야당 심판론(49%) 프레임이 우세하게 나오고 있다. 현 정부에 가장 아쉬운 분야로 민생경제를 꼽지만, 그래도 보수야당이 더 비호감이라는 정서다.

뒤집어보면, 이는 일본식 저성장 경제구조로만 끌고 가도 문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정황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콘크리트 지지율’에 도취해 베네수엘라식 포퓰리즘으로 흘러가면 국가 경제 자체가 휘청일 수 있다. 재정에 중독된 정부, 공짜 쿠폰에 맛 들인 국민은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문 정부 그리고 그 지지자와 반대자들은 4월 총선과 마주하고 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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