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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12)] ‘코트의 제갈공명’ 신치용 진천선수촌장 

“운동도 삶도 기본이 혁신입니다” 

삼성화재 창단 감독, 혹독한 기본기 조련으로 20년간 남자배구 정상 지켜
“최고의 지원은 존중·격려”… 매일 새벽 5시 일어나 선수촌 꼼꼼히 점검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이 선수촌 내 사이클 벨로드롬 경기장 앞에서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 사진:김성태 객원기자
'코트의 제갈공명’은 삼성화재를 배구판의 포식자로 이끈 신치용 감독에게 붙은 별명이다. 1995년 남자배구 삼성화재 창단 감독이 된 신치용은 97년부터 리그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한 뒤 2005년까지 9시즌 연속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V리그 2007∼08시즌부터 2013∼14시즌까지 7연속 우승의 영예도 ‘신치용 사단’ 차지였다. “삼성화재가 너무 독주해 프로배구가 재미없다”는 푸념과 “용병한테 공격을 몰아주는 몰빵배구로 국내 선수들 기량을 떨어뜨렸다”는 욕도 배부르게 먹었다.

신치용은 야구·축구·농구·배구 등 국내 프로 리그를 통틀어 한 팀에서 가장 오래 머무르며 가장 많은 트로피를 수집한 감독이다. ‘성과’를 너무 잘 내서 욕을 먹은 특이한 리더다. 2015년 감독에서 물러난 그는 삼성스포츠단 부사장 겸 삼성화재 배구단장을 역임했다.

신치용(65) 전 감독의 현재 직함은 대한체육회 산하 국가대표 선수들의 종합훈련원인 진천선수촌 촌장이다. 대한민국에서 각 종목 최고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모인 곳이고, 그들이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현장이다. 신 촌장은 매일 500여 명의 선수와 지도자가 생활하는 선수촌을 관리하고 책임진다.

2020 도쿄 올림픽을 200일가량 남긴 시점, 신 촌장을 만나러 웅장한 진천선수촌으로 들어섰다. 신 촌장은 특유의 넉넉한 웃음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도쿄 올림픽, 야구·축구·마라톤은 이겨줬으면…”


▎2013∼14시즌 프로배구 V리그에서 7회 연속 우승을 달성한 삼성화재 선수들이 신치용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5시 반에 운동장으로 나갑니다. 운동 환경을 점검해서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영하 10도 이하 혹한에는 옥외훈련 취소 결정을 내립니다. 오전에는 종목별로 훈련을 지켜보고 오후에는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하지요. 선수촌의 주인은 선수고, 선수촌의 목적은 훈련입니다. 선수들이 잘 먹고 편하게 지내고 훈련 잘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되는 거지요. ‘뭐든지 선수 위주로 해 주시니까 좋다’는 얘기를 들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체급 경기 선수들을 위한 다이어트 식단을 만들고, 몸에 좋은 야식을 제공하는 것 등입니다. 예전에는 새벽에 쓰레기통을 뒤져 보면 컵라면 용기가 수북하게 나왔어요. 컵라면·피자·치킨 등을 야식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선수들이 모르는 거죠. 골프선수 이정은이 US오픈 우승한 뒤 ‘오늘만큼은 내 몸을 호강시켜야겠다’면서 라면과 콜라를 먹은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만큼 평소에는 먹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대신 먹을 수 있는 걸 제공해야죠.”

요즘 가장 신경 쓰는 건 뭡니까?

“잘 먹이고 잘 입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존중입니다. 선수들 마음을 얻는 거죠. 자부심을 느끼고 책임감을 갖게 하려면 존중·이해·격려해 줘야 합니다. ‘나를 챙겨주는구나’고 느낄 때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운동을 하게 되고 그래야 마지막 승부처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기 싫은데 하는 척하면 나쁜 습관만 배는 겁니다. 스스로 깨닫게 하고 왜 이렇게 하면 좋은지를 설득해야 합니다. 여기서 편하게 지내려고 하는 선수에겐 ‘나가시면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선수촌에는 규율과 질서가 있어야죠. 저녁 식사 뒤에 타 종목 선수들이 수영장·배드민턴장에 가서 운동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저는 ‘해당 종목 지도자 허락 없이 일체 출입금지’를 내렸어요. 국가대표라고 해도 타 종목에선 아마추어입니다. 진천선수촌은 아마추어를 위한 공간이 아니죠.”

수영·쇼트트랙 등 몇 종목에서 선수촌 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요. 재발 방지책이 있나요?

“존중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고, 그다음은 교육입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소양교육과 인성교육을 합니다. 일부 선수와 지도자에 국한된 얘기지만 개념 없이 성희롱·성추행 소지가 있는 행동을 장난으로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훈련 중에는 애매모호한 장면이 나올 수 있습니다. 유도·레슬링처럼 상대를 잡고 하는 종목의 여자 선수는 남자 훈련 파트너가 있어야 합니다. 보기에 따라 묘한 장면이 나와서 전문위원에게 ‘저 기술 안 쓰면 안 됩니까’ 물으면 ‘실전에서 반드시 필요한 기술입니다’는 답을 합니다. 쇼트트랙 혼성 계주는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 엉덩이를 밀어줘야 합니다. 그런 걸 장난처럼 하면 이상하게 되는 거죠. 결국 교육이 중요하고, 교육의 기본은 사람 존중입니다.”

7월에 개막하는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특별히 준비하는 게 있습니까?

“훈련은 종목별로 지도자 책임 아래 실시합니다. 다만 그동안 제기된 부정적인 이슈로 인해 위축된 국가대표 선수들의 자존심을 살리고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 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영양·심리·생리 등 분야별 전문가들로 스페셜 케어(특별 관리) 팀을 짜서 식단 관리와 심리 상담 등을 해 주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힘들게 훈련하는데 보람을 가질 만한 결과를 만들어야죠.”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방사능 누출 지역인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올림픽 선수촌에 반입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선수 보호 조치가 필요한데요.

“이 또한 진천선수촌 차원에서 대비하고 있습니다. 도쿄에 있는 객실 80개짜리 호텔을 올림픽 기간에 통째로 빌려 선수지원센터를 운영합니다. 올림픽 선수촌에 못 들어가는 훈련 파트너나 일부 지도자의 숙식을 해결하는 동시에 선수촌에 묵는 선수들의 영양 지원을 담당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아 식욕이 떨어지거나 선수촌 음식이 입맛에 안 맞는 선수들에게 갈비찜 같은 한식을 제공하는 거죠. 만약 일본 측에서 끝까지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고집한다면 다른 나라 선수단과 공조해서 대처해야겠죠. 선수단 전체 급식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난 도저히 이건 못 먹겠다’ 하는 선수는 지원해야 할 겁니다.”

일본은 금메달 30개를 따서 종합순위 3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우리는 금 10개도 힘겨운 상황인데요.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국내 스포츠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엘리트 선수들의 경기력 하락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일본은 올림픽 준비를 많이 했고 홈 이점도 당연히 있겠죠. 유도 등 우리와 메달밭이 겹치는 종목도 있습니다. 일본이 금 몇 개를 따느냐보다 우리 선수들이 정정당당하게 경기하고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으로써는 금 7개도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판정 등에서 불리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저는 반대로 우리 선수들이 일본 가서 하거나 일본과 맞붙으면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나올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 강세 종목에서 평년작만 해 주면 금 10개로 10위 안에 들 수 있다고 봅니다. 일본과의 메달 경쟁은 그리 염두에 두지 않지만 꼭 잘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종목은 있습니다. 야구·축구·마라톤은 일본보다 잘했으면 합니다.”

진천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에 대한 걱정이 있습니다.

“선수촌에서 숙식하는 중·고생 선수들은 광혜원중·고, 충북체고 등 5개 학교에 다니며 수업을 받습니다. 올 2월에 이들을 위해 기간제 교사 2명을 채용합니다. 수영·체조·쇼트트랙 쪽에 중·고생 선수가 많은데 이들은 새벽 5시부터 6시 반까지 훈련하고 급하게 아침 식사를 한 뒤 학교에 갑니다.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짠할 때가 많습니다. 선수촌 내 교육 공간이 있어서 대안학교 같은 걸 만들고 싶은데 교육부와 충북교육청에서 규정상 그건 안 된다고 합니다. 한국체대·용인대 재학생이 많은데 이들은 셔틀버스로 통학을 합니다. 다행히 한국체대와 진천군이 ‘진천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진천선수촌 규모는 크지만 공간활용 아쉬움


▎2013∼14 시즌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석권해 통합우승을 차지한 삼성화재 선수단.
스포츠 내셔널리즘 시대가 지나갔는데 국가 차원에서 엘리트 선수를 위한 대규모 합숙훈련 시설을 운영하는 게 옳으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선수촌은 선수들이 편리하게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들어오고 말고는 본인 자유지요. 진천선수촌 규모가 엄청나다고 하지만 산이 많아서 효율적인 공간이라고는 안 봅니다. 오히려 좀 더 선수 친화적으로 지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선수가 다른 종목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컨디션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다목적 체육관과 400m 실내 트랙 같은 게 있어야죠. 호주 캔버라, 미국 콜로라도 훈련센터를 가 봤는데 그런 시설이 다 있더라고요. 스포츠 선진국의 개인종목 선수들은 대부분 독자훈련을 하는데 전담 개인 코치가 있습니다. 우리 학생 선수나 비인기 종목 선수에게 그런 여유가 있습니까. 밖에 나가면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훈련 장소 찾기도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나가라’ 하는 소리 들을까 봐 걱정하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선수촌을 꿈나무·생활체육·외국 선수들에게도 개방하고 산책로나 관광 코스로 개발하자는 제안도 있습니다.

“지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통해 개별 신청을 받아 하루 50∼60명 정도 견학을 합니다.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의 일환으로 형편이 어려운 나라 선수들이 와서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으며 일정 기간 훈련을 하는데, 이들의 수준이 의외로 높아 놀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시차와 환경 적응을 위해 각국 올림피언들이 진천선수촌에 캠프를 차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선수와 지도자들에게 ‘국가대표와 선수촌이 국민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다’고 늘 강조합니다. 힘들게 훈련하는 모습을 찍어서 SNS에 올리라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이 방해를 받으면 안 됩니다. 견학도 참가자 숫자, 가능한 종목과 시간 등을 철저히 체크합니다.”

신치용 촌장의 고향은 경남 거제인데, 가족 모두가 스포츠를 좋아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산으로 유학을 나왔고 전학한 학교에 배구부가 있었다. 특별활동 시간에 배구 하는 모습을 본 교사의 권유로 배구부에 가입했다. 훈련 끝나고 빵 먹는 재미도 컸다.

중학교 때는 키가 작아서 세터(공격수에게 볼을 토스 하는 역할)를 했고, 고교 시절 키가 자라면서 세터와 레프트 공격수를 겸했다. 부산 성지공고 한 해 선배가 ‘아시아의 거포’ 강만수였고, ‘여자배구 호남정유 신화’를 쓴 김철용 전 감독이 동기였다. 강만수에게는 공을 띄워줬고, 김철용의 토스를 받아서 스파이크를 했다. 국내에서 백어택(후위공격)을 처음 한 선수가 1972년 성지공고 3학년 강만수였다. 당시는 백어택이라는 개념도 모르고 후위에 내려와 있는 강만수에게 토스를 했는데, 다른 선배가 “전위에 있는 나한테 공 안 주고 후위에 있는 만수한테 공 주나” 하면서 혼을 냈다고 한다.

성균관대에 진학한 신치용은 스케이트를 배우다가 허리를 심하게 다치게 된다. 그 바람에 배구에 집중할 수 없었고, 대학 4학년 때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뛴 뒤 배구를 그만두고 현대 계열사인 동서산업에 입사한다. 허리 때문에 당연히 군 면제를 받을 줄 알았는데 현역 입영 대상자가 됐다. 당시 보안사 배구단(상무의 전신)에서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함께 보안사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전역 무렵 한국전력에서 당시로는 파격적인 200만원 스카우트비를 주고 그를 데려갔다. 2∼3년 정도 선수생활 하고 은퇴하려고 했는데 느닷없이 코치직 제안을 받게 된다. ‘지도자 신치용’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너무 이른 나이에 지도자로 변신하신 것 아닌가요?

“그렇죠. 1983년 배구 겨울리그(백구의 대제전)가 창설되면서 서른 살도 되기 전에 한전 코치가 됐으니까요. 89년 청소년 대표팀 코치를 거쳐 91년부터 국가대표팀 코치로 일하면서 92 바르셀로나 올림픽, 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등에 출전했죠. 배구 월드리그에도 여러 차례 참가하면서 세계 배구의 흐름에 일찍부터 눈을 떴습니다. 브라질·이탈리아 같은 강호들과 경기할 때는 훈련장에 찾아가 보고 또 보고 노트에 열심히 기록도 했죠. 상대 팀에서 뭐라고 하면 ‘어차피 우리는 너희한테 안 된다. 내가 배우려고 하는 거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95년 삼성화재가 창단되면서 한전 코치에 불과한 제가 초대 감독이 됐어요. 나중에 들으니 대표팀 코치하면서 선수들을 잘 리드한 점이 인정받았다고 하더군요. 20년간 삼성화재를 이끌면서 숱하게 우승을 했지요.”

삼성화재의 라이벌 현대캐피탈을 이끌었던 김호철 전 감독과 자주 대비되는데요.

“세계적인 세터로 명성을 떨친 김호철 감독에 비하겠습니까. 저는 그리 못한 배구는 아니었지만 화려하지도 않았고 국가대표도 잠깐만 거쳐 갔죠. 보안사 때도 호철이가 대표팀에 차출되면 내가 세터를 했고, 호철이가 돌아오면 레프트 공격을 맡았습니다. 세터로서는 호철이가 독보적이지만 저는 세터와 레프트, 심지어 라이트와 센터까지 안 해 본 포지션이 없어요. 그게 지도자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77년과 80년에 잠깐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그때 태릉선수촌에서 집사람(농구 대표 전미애)을 만났습니다.”

지도자는 욕먹는 자리, 솔선수범해야 살아남아


▎2013∼14 시즌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는 가빈(왼쪽)과 신치용 감독.
지도자로서 철학은 무엇입니까?

“끊임없이 준비하고 많은 생각과 경험을 축적한 사람이 지도자로 성공합니다. 지도자 덕목의 첫 번째가 솔선수범입니다. 그걸 갖고 선수들을 장악해야지 ‘하지 마’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술을 좋아하고 많이 먹을 일도 많지만 한 번도 아침에 늦게 나오거나 새벽 운동에 빠진 적이 없습니다. 여기 선수촌에서도 ‘촌장님이 새벽에 한 번도 안 빠지니까 무섭다’는 말을 듣습니다. 선수한테 책잡힐 짓을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선수는 절대 스스로 뛰어넘을 수가 없어요. 제가 늘 ‘동네배구 하려면 60만 하면 되고, 아마추어 하려면 80, 프로 하려면 100, 우승하려면 120은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선수는 혼자서 90 이상 못 갑니다. 100을 넘길 수 있도록 밀어주고 당겨주고 자극을 주는 게 지도자 아닙니까.”

지도자 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죠.


▎태릉선수촌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신치용(배구)- 전미애(농구) 커플. / 사진:장규홍
“오늘 아침에도 어떤 종목 감독한테 ‘욕먹기 싫으면 그만두소’라고 싫은 소리를 했어요. 어차피 선수는 편한 거 좋아합니다. 하기 싫은 거 하라 하고, 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하는 게 지도자죠. 지금 욕을 먹어도 나중에 ‘그렇게 시켜줘서 고마웠다’ 소리로 보상받습니다. 지금 좋은 소리 듣지만 나중에 ‘저 XX, 훈련도 안 시키고’ 그런 말 들으면 되겠습니까. 지금 삼성화재 출신들 다 감독하고 있잖아요. ‘간식 아무거나 먹지 마라’ 같은 잔소리도 듣기 싫었을 거고, 핸드폰 압수하면 ‘인권위 고발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기도 했겠지만 그렇게 해서 우승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삼성화재 출신이 감독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우승도 많이 했지만 외국인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며 ‘몰빵배구 원조’라는 욕도 많이 들었죠.

“감독은 주어진 상황에서 승리하기 위해 방법을 찾는 사람입니다. 10년간 우승하면서 드래프트(신입 선수 추첨)에서 매번 꼴찌 순번을 받았으니 좋은 선수를 뽑을 수가 없었지요. 다른 팀도 다 몰빵을 했지만 우리가 매번 우승을 하니까 ‘가빈화재’ ‘레오화재’ 하면서 몰빵의 원흉인 것처럼 비난을 한 거죠. 팀 전체 기본기가 안 되면 몰빵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성공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한전에서 뛰고 있는 가빈과는 얼마 전 저녁을 같이 했고, 레오·안젤코도 자주 연락이 옵니다. 그들은 나를 ‘동양의 아버지’ ‘둘째 아버지’라고 하는데, 그들을 지도할 때 결코 편하게 해주지 않았어요. 기본기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지만 왜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해 줬지요.”

‘코트의 제갈공명’이라는 명예로운 별명도 얻었는데요.

“그 별명을 지어주신 기자님께 지금도 감사하지요.(웃음) 선수가 어떤 생각과 처신을 할 건지 파악하고 준비하면 됩니다. 정말 힘들어할 때 ‘너희 힘들지. 쉬어’ 한마디 하면 끝입니다. 경기에서는 상대 팀이 뭘 하고 싶어하는지 알면 내가 뭘 해야 하는지가 딱 나옵니다. 바둑처럼 매 포인트 복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마지막 포인트가 다가오면 지시가 들어가야 합니다. ‘이번에 상대가 이거 할 확률이 높아. 내가 책임질 테니까 너희는 이렇게 해’ 라고요. 그러려면 50% 이상 성공 확률이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공격 루트를 선택했는지, 그때 성공률이 몇 퍼센트였는지 머릿속에 입력이 돼 있어야 해요. 저는 세트 끝나고 휴식 때 우리 선수 안 보고 상대 감독 입만 봅니다. 그러면 대충 작전이 어떻게 바뀌겠다 알 수 있어요. 저는 미리 코치한테 작전을 지시해 놓고 엉뚱한 말을 막 하는 거죠. 하하.”

요즘 삼성화재도 성적이 안 좋고, 삼성 스포츠단이 전체적으로 무기력해 보이는데요.

“삼성이 국내 최고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있는데 안타깝습니다. 이건희 회장님 시절에는 스포츠에 애정과 열정이 있었는데 최순실 사태를 거치면서 스포츠에 대한 지원을 확 줄여버렸어요. 지금 삼성은 스포츠를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마지못해 끌고 가는 거죠. 오너가 정확한 사인을 안 주는 상태에서 실무 책임자가 스포츠를 안 좋아하면 참 힘든 상황이 됩니다.”

사위 박철우 향해 “넌 기본은 안 하냐?” 불호령


▎‘코트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화제를 뿌린 신혜인-박철우 커플. 2011년 결혼했다.
신 촌장의 둘째 딸은 ‘얼짱 농구선수’로 유명한 신혜인이고, 사위는 라이벌 현대캐피탈 에이스로 뛰다 삼성화재로 이적한 왼손잡이 공격수 박철우다.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는 ‘코트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회자됐다. 지금은 딸 둘을 낳고 오순도순 잘 살고 있다.

신 촌장은 “원래 철우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삼성화재 오기로 돼 있었어요. 막판 협상이 틀어져 철우 아버지와 목소리를 높이고 헤어졌는데 사돈으로 만날 줄은 몰랐죠”라며 껄껄 웃었다. 처음엔 둘 사이를 반대했다고 한다. “둘 다 발목을 다쳐서 재활하다가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사귀는 건 모르겠지만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가 아내와 맏딸한테 ‘물정 모르는 소리 한다’며 핀잔만 들었어요. 그래서 혜인이한테 ‘좋다. 두 가지만 약속해라. 첫째, 철우한테 듣는 현대캐피탈 얘기 절대 나한테 하지 마라. 둘째, 네가 집안을 끌고 갈 준비를 해라. 교육대학원 가서 교사가 되어라’고 했어요. 결혼을 반대한 이유가 배구선수는 은퇴 이후 장래가 너무 불투명하기 때문이었지요.”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박철우는 삼성화재로 이적했다. 박철우는 ‘장인 감독’에게 “너는 기본은 안하냐? 그걸 배구라고 해?”라는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고 한다. “철우는 설렁설렁 뛰다가 공격만 하는 스타일이고, 저는 기본기 훈련을 철저히 시키잖아요. 철우가 초반에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잘 적응했고, 남편과 아빠로서도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라며 신 촌장은 미소를 머금었다.

선수촌장실 창문 너머로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 ‘레전드의 조건’을 물었다. 그는 또다시 ‘기본기’를 꺼냈다.

“선수촌장으로 와서 이런저런 시끄러운 일을 겪으면서 많이 느낀 게 사람 존중, 이해와 격려입니다. 제가 삼성화재 체육관에 마지막으로 써 붙인 글이 ‘본립도생’(本立道生, 기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입니다. 요즘 좋아하는 말도 ‘기본이 혁신이다’ 입니다. 선수는 선수로서 지도자는 지도자로서 기본만 지키면 절대 실패 안 하고 보람 있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솔선수범하는 습관이 발전의 원동력입니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와 한양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2002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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