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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심층분석] ‘진중권 현상’의 모든 것 

펜을 든 논객과 칼을 든 검객이 진보 권력의 위선을 고발! 

친문의 잇따른 비리와 팬덤의 극우화에 맞서 저격수로 등판
진중권이 포문 연 ‘반민주당 전선’ 총선의 최대 변수로 급부상


▎진중권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 자유주의자다. ‘독설가’, ‘모두까기’ 등 그를 일컫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진중권(57)은 미학자다. 미학은 현상에 관한 감성적 인식을 논리로 풀어낸다. 딱딱하고 지루한 학자의 언어가 진중권의 입을 거치면 쉽고 강렬한 범부의 언어로 치환된다. 그가 내뱉는 독설은 대중에게 짜릿함을 안겨준다. 권위와 권력은 그의 촌철살인에 꼭꼭 숨겨뒀던 위선의 알몸을 드러낸다. 우리 사회가 그의 입과 SNS를 24시간 내내 주목하는 이유다.

한동안 정치 평론을 중단했던 그가 돌아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의 SNS와 토론, 언론 기고를 통해 쏟아내는 독설은 주요 뉴스로 실시간 중계된다. 언론은 ‘진중권 가라사대’를 옮기기에 바쁘다. 불과 두 달여 만에 그는 하나의 현상, ‘진중권 신드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전과 달라진 게 있다. 그의 저격 대상이 문재인 정권과 집권 여당이란 점이다. 본래 진영을 가리지 않는 자유분방한 신념가의 기질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최근에 그가 조준한 총구는 분명 범진보 진영을 향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화가 나면 눈물이 나온다.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의혹이 터졌을 때 나눈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그가 한 말이다.

진중권·조국·유시민·노해찬은 진보의 대표 논객 4인방으로 꼽혔다. 유시민, 노회찬의 입담과 진중권, 조국의 필력은 이전 보수정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정의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진중권·유시민·노회찬 세 사람의 성을 따 ‘노유진’이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함께 정치 평론 인터넷 방송(노유진의 정치카페)을 진행하기도 했다. 노회찬 의원의 서거에 이어 진중권의 저격에 4인방은 해체됐다.

변곡점은 조국 사태다. 지난해 9월 진중권은 정의당에 탈당계를 냈다. 청문회를 앞두고 조국 전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 의혹, 동양대 표창장 위조 등 입시 비리 의혹이 제기됐을 때다.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후보 자진 사퇴 요구가 높아졌지만, 정의당은 침묵했다. 정의당이 반대하면 여지없이 낙마한다고 해서 붙여진 ‘정의당 데스노트’에 조국이란 이름 올리길 꺼린 것이다.

‘모두까기’의 귀환, 좌중은 침묵 모드


▎노회찬, 진중권, 유시민은 한때 진보 논객을 대표하는 3인방 ‘노유진’으로 불렸다.
정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정치적 유불리를 의식해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버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의당은 조 전 장관 임명에 찬성 의견을 냈다. 진중권이 탈당계를 낸 것은 바로 그 직후다.

이어 12월 말에는 동양대 교수직도 내려놨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직서를 올리며 “내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이란 뜻)’가 없나. 이젠 자유다!”라고 썼다. 진보의 저격수로 본격 등판을 알리는 출사표였던 셈이다.

등판 후 그의 행보는 진보와 보수 모두를 당황케 했다. 가장 껄끄러운 존재 중 하나였던 그가 앞장서서 정권과 여당을 비판하니 보수 진영은 떨떠름해하면서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 열광했다. 무소속 이언주 의원은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며 “야당 대신 정의를 세워줬다”고 극찬했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통합신당준비위원장)는 “원래 보수 진영에 있던 사람이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양극화를 가져오지만, 같은 진영에 있던 사람이 나오면서 비판하는 건 굉장히 아프다”고 평했다.

반대로 정부여당과 진보 진영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논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조차 진중권 현상을 “아무도 상대하지 않고 있고 별 영향도 없다. 혼자 얘기하게 내버려두면 된다”고 애써 태연해했다. 민주당 의원 중 누구도 진중권의 공세에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지역 재선 의원은 “기분 나빠도 어설프게 시비가 붙었다간 본전도 못 찾는다. 떡밥 안 주고 무시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말했다.

진보에 대한 일말의 애정이 남아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희망 사항일 뿐이다. 그의 비평은 신랄하고 직설적이다. 조 전 장관을 지지하는 서초동 촛불집회에 모인 군중을 향해 진중권은 ‘조국기 부대’라고 이름 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일컫는 ‘태극기 부대’에 빗댄 것이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선 ‘문빠’라고 지칭했다. 그는 동양대 교수직을 그만둔 직후 “스스로 붕대 감고 자진해서 무덤으로 들어간 미라 논객을 극성스러운 문빠 좀비들이 저주의 주문으로 다시 불러냈다”고 썼다.

진영 초월한 진중권의 펜과 윤석열의 검


▎지난해 가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열린 검찰 개혁 촛불집회에 나온 대중을 일컬어 진중권은 검찰 개혁으로 포장한 ‘조국기 부대’라고 혹평했다. 보수 진영의 ‘태극기 부대’에 빗댄 표현이다. / 사진:뉴시스
진중권 현상은 기시감을 준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극적인 반전에 반전이 교차하는 인물, 바로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윤 총장에 관한 대중의 반응 역시 ‘윤석열 신드롬’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보수 정권에서 제거 대상 1호였던 그를 보수 진영은 ‘차기 대통령감’이라며 열광한다. 지난 1월 말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 총장은 이낙연 전 총리(32.2%)에 이어 2위(10.8%)에 오르기도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10.1%)마저 앞질렀다.

‘윤석열 구하기’에 당력을 집중했던 민주당은 되려 그를 정권의 가장 위협적인 인물로 몰아세운다. 조국 사태 전만 해도 “우리 윤 총장”이라며 무한신뢰를 보냈던 문 대통령이 윤 총장을 바라보는 표정에 온기는 온데간데없다. 적폐 청산과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었던 그를 친문 진영은 적폐로 몰아붙인다.

진중권 현상, 윤석열 신드롬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고독한 투사’의 이미지다. 지지자는 있을지언정 연대하는 조직이나 동맹이 없다. 단기필마다. 진중권은 진영에 갇혀 있기를 거부해왔다. 레거시 미디어에 기대지도 않고, 매체 성향을 취사선택하지도 않는다. 영리하게 이용할 뿐이다. 진중권은 일찌감치 진영에 갇혀 있기를 거부하는 자유주의자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윤 총장도 마찬가지다. 그가 정치의 중심에 선 것은 타의다. 지지와 비판이 치환되었어도 단지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사람을 따르지 않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진중권의 별명은 ‘모두까기’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할 말을 한다는 뜻이다. ‘모두까기’의 면모는 윤 총장에게도 나타난다. 그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진중권은 위선적 진보의 속살을 드러냈고, 윤석열은 권력의 속성을 까발렸다. 이런 논객도 없었고, 이런 검객도 없었다.

두 사람의 언어는 상식적이다. 진중권은 한국일보에 연재하는 칼럼(진중권의 트루스 오디세이)에서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 외려 피해자 행세하며, 그것을 적발한 검찰과 그것을 알리는 언론을 질타한다. 이 적반하장이 문재인 정권하에서는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고 일갈한다. 윤석열은 어떤가. 수족을 쳐내는 정권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접 기소를 지시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공소장 첫머리는 지극히 상식적인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강조한다.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는 헌법 가치를 구체화한 것으로서, 국가 기관이나 공무원이 스스로를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의 편에서 선거에 유리하거나 불리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친문 파시즘이 촛불의 승리를 가로챘다!


▎조국(왼쪽)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도덕성 논란과 유재수(가운데)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비리, 황운하(오른쪽) 전 울산경찰청장이 연루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문재인 정권의 민낯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진중권이 정권에 각을 세운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정권에 대한 일말의 연민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27일에 쓴 페이스북 글에서 “많이 실망했지만, 아직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지한다. 문재인 정권이 성공하기를 절실히 기원한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현 정권의 난맥상이 일부 부패한 대통령의 측근들 때문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일부 부패한 측근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프레임’을 짜면, 어용 언론인과 지식인들이 나서서 바람을 잡는 것을 진중권은 ‘586적 특성’이라고 규정했다. 결국 “지지자들은 특권층의 사익을 옹호하며 자기들이 공익을 수호한다는 해괴한 망상에 빠지게 된다”며 “이 매트릭스 안에서 표창장을 위조한 이는 검찰과 언론의 무고한 희생양이 되고, 그것을 적발하고 알린 검찰과 언론은 졸지에 간악한 가해자로 둔갑한다”고 비판했다.

정권의 성패 조건으로 그가 내건 것은 단순하다. 권력 주변이 깨끗할 것. “불편하더라도 윤석열이라는 칼을 품고 가느냐, 아니면 도중에 내치느냐”를 정권의 진정성을 재는 시금석으로 봤다. “주변 사람 중에서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 잘 구별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이런 일말의 희망을 거둔 것은 그로부터 불과 2주 뒤. 법무부가 검찰 수뇌부를 모조리 좌천시킨 고위 인사를 단행한 것에 격분해서다. 진중권은 문재인 정권을 ‘촛불사기정권’이라고 새롭게 규정한다. 그동안 직접 비판을 삼갔던 문 대통령을 향해 ‘위선자’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또 오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거두게 된 배경은 지난 2월 6일에 쓴 칼럼에 잘 나타나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영화 [매트릭스]에 견줘 현재 상황을 ‘권력이 날조한 가상의 세계’로 규정한다. 자신을 ‘촛불정권’, ‘적폐청산의 역사적 사명을 짊어진 개혁의 주체’로 포장한 문재인 정권은 적폐 청산의 논리적 전제로 ‘정권은 깨끗하고 바깥은 더럽다’는 날조된 환상을 40%의 지지자들에게 심는다. 그러나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조 전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의 동양대 총장 표창장 위조 등 지지자들의 환상을 깨는 돌발요소가 등장한다. 자신들이 믿었던 윤석열은 정권을 위태롭게 할 치명적 버그다.

그는 “자기들을 맹신하는 40%의 지지자만을 위해 그 부패한 자들이 ‘부패하지 않은 대안세계’를 날조했다”고 지적한다. 또 “나머지 60%의 시민들은 권력이 ‘촛불정권’이라는 번거로운 허울을 벗어 던지고 아예 이익집단으로 제 알몸을 노출하는 민망한 장면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고 덧붙였다.

진보의 적전분열? 비판적 지지는 끝났다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진중권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석열과 닮았다.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답변 중인 윤석열 당시 국정원 댓글수사팀장.
진중권은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을 인용해 문재인 정권을 ‘파시스트 정권’으로 단언한다. “파시즘이 득세할 수 있었던 조건 중 하나는 진보 이데올로기에 고취된 자들의 파시즘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다.”(미카엘 뢰비, [발터 벤야민: 화재경보] 중). 그는 페이스북 글에서 “정권이 몰상식한 짓을 해도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예로 들며 “(문재인 정권) 통치가 이미 파시스트적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파시즘에 관한 그의 이론적 지식은 해박하다. 그가 논객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한국 사회를 파고든 파시즘에 관한 비평이었기 때문이다. 1997년에 펴낸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에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추종자들의 인식 구조를 파시스트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PK(부산·경남) 친문을 독일 나치와 연결 짓는다. “당혹스러운 것은 그때 제가 비판했던 극우세력의 파시스트적 특성이 23년 후인 지금 고스란히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옮겨졌다는 것”이라는 분석이 현 정권에 대한 그의 인식을 함축한다.

진중권의 선언과 행보는 개인의 호불호를 넘어선 사회적 의미를 함축한다. 진보 진영이 민주 정부를 비판적 지지라는 명분 아래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시대의 종언이 임박했다는 것이다. 진중권은 자신을 ‘잠수함의 토끼’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은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가 시인을 빗댄 데서 비롯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의 승무원이었던 게오르규는 산소 포화도에 민감한 토끼를 이용해 함 내의 공기 질을 측정했다고 한다. 다가오는 사회적 변화를 감지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비유하는 말이다.

1987년 사회 민주화 이후 비판적 지지론은 진보 진영의 오랜 논쟁거리였다. ‘최악보다는 차악이 낫다’는 논리다. 진보의 분열로 보수 세력에게 정권을 내주느니 당선 가능성 높은 민주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명분은 거의 모든 선거에서 먹혀들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비판적 지지의 결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한 86세대 정치 평론가는 이렇게 평가했다.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친문 세력의 지나친 자신감은 오만과 폭주의 부작용으로 변질됐다. 결과적으로 비판적 지지의 두 축이라 할 진보와 중도 지지층에서 이탈을 초래했다.”

이 같은 분석은 진중권으로 시작된 진보의 이탈이 가속화하는 현재 상황을 적확히 꿰뚫는다. 비판적 지지 대열을 이탈한 진보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결성하기보다 친문 여권의 대척점에서 시민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다. ‘민주당만 빼고’ 열풍은 그 결정체다.

‘민주당만 빼고’는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일탈이 가속화하는 것을 비판한 칼럼에 민주당은 선거법의 굴레를 씌워 고발로 대응했다. 민주주의의 최고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옥죄려는 시도에 진보 인사들의 비판 행렬이 이어졌다.

진중권이 포문 연 ‘반민주당 전선’ 확대


▎임미리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의 칼럼을 더불어민주당이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자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더욱 확산했다. / 사진: [경향신문] 캡처
결국 민주당이 고발을 취소하는 것으로 물러섰지만, 사태의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중도노선을 표방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번 총선을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회 탄핵’으로 규정했다. 황도수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제시한 ‘가능하면 떨어뜨려라’([월간중앙] 2월호)라는 모토는 ‘민주당만 빼고’의 취지인 ‘유권자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자’(임미리, 1월 29일 자 [경향신문] 칼럼 중)와 맥락을 같이한다.

진중권, 권경애 변호사, 김경율 회계사, 우석훈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 등 진보 진영 인사들은 “나도 고발하라”며 민주당 보이콧을 선언했다. 진중권이 포문을 열고 임미리 교수가 이어받은 ‘반민주당, 반친문 전선’이 진보 진영을 넘어 시민사회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진중권 현상은 이제 개인을 넘어 진보의 어젠다로 자리매김했다. 지리멸렬한 보수 진영의 자중지란으로 총선 승리를 낙관했던 민주당은 궁지에 몰렸다. 진중권 현상으로 촉발된 진보의 이탈을 수습하지 못한다면 차기 대선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진중권의 목표는 불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친문의 쇄신과 자정이다.

보수 철학자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진중권 현상을 레거시 미디어(방송, 신문 등 전통적인 언론 매체)와 진보의 당파성 몰락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레거시 미디어는 “근·현대 공론의 핵심 창출자이자 유통자”로서 우리 사회에 군림해왔다. 지난 보수정권에선 진보 논객들의 팟캐스트 방송이, 문재인 정권에선 보수 논객들의 유튜브 방송이 뉴미디어의 독자적 공론 공간을 형성해왔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뿐이었다. 그러나 “진중권 현상은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이런 세력 균형이 뉴미디어 쪽으로 기울었음을 증명한다”고 윤 교수는 분석했다.

무수한 레거시 미디어 매체가 진중권의 페이스북을 시시각각 ‘받아쓰기’하는 현실은 그 방증이다. 실제로 상당한 경제력과 잘 훈련된 언론인 수천 명으로 무장한 전통 매체의 심층보도가, 진중권 한 사람의 페이스북 영향력 앞에 초라해져버린 게 사실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인 트위터 하나로 미국의 레거시 미디어 거의 전부와 대등하게 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윤 교수는 “레거시 미디어의 소통 방향이 하향적·일원적이었다면, 뉴미디어는 쌍방향적·다원적이어서 민주적 공론장을 개선할 수도 있지만, 개악할 수도 있다. 이는 디지털 민주주의가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의 확장과 디지털 대중독재로 왜곡될 수 있는 양면성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매트릭스에 갇힌 시민을 구하려는 사명감


▎진중권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이 치부를 감추고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 사진:진중권 페이스북 캡처
여기에 진중권 개인의 언어 능력과 침묵하는 다수의 민심을 포착해내는 감각을 진중권 현상의 흥행 요소로 꼽는다. 권력의 위선과 책략은 진중권의 독설 앞에 ‘벌거벗은 임금님’에 불과할 뿐, 현란한 독설로 포장한 상식적 메시지는 강력한 카타르시스 효과를 부여한다.

윤 교수는 진중권에 환호하는 보수의 반응을 “짧은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지금은 힘의 추가 진보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어서 막대를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진중권이 반대쪽으로 밀고 있지만, 보수에 힘이 실리고 일탈을 일삼을 때는 그의 독설이 즉각 보수를 타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보수 정당이 무너진 것에 견주어 진중권 현상을 진보층 이탈의 신호라고 해석했다. 그는 “보수 정당이 무너진 것은 고정 지지층이 아닌 스윙보터(중도층)가 이탈하면서다.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냐’는 거다. 진중권 사태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을 지지하는데 왜 이렇게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진중권 한 명만은 아닐 것”이라며 “중도 보수가 이탈하면서 보수 정권이 무너진 것처럼 중도 진보의 스윙보터들이 이탈하는 것을 간단하게 볼 일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물론 여전히 유시민 이사장처럼 “아무도 상대하지 않고 있고, 별 영향도 없다”며 진중권 현상을 평가절하하는 의견도 굳은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만일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하더라도 그 책임은 온전히 진중권과 진보의 ‘적전분열’로 몰아갈 여지도 충분하다.

진중권 현상의 본질은 진영을 떠나 권력이 만든 거대한 매트릭스에 갇힌 시민들을 각성하는 데 있다. 각성한 시민의 힘은 권력을 위임할 수도, 위임한 권력을 회수할 수도 있다. 이를 그저 음모론적 진영논리로 바라본다면, ‘민주당만 빼고’를 제안한 임 교수의 정치 경력을 내세운 것처럼, 안철수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을 응원했던 진중권의 행보를 내세워 시민의 자발적 각성을 퇴색하려는 시도는 앞으로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모든 진영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진중권이 ‘모두까기’라는 자신의 별명을 좋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의 성격은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진중권의 산탄 총알은 권력의 텐트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

[박스기사] 진중권의 촌철살인 8선

진중권의 촌철살인은 그에 대한 호불호를 막론하고 누구나 인정한다. 논객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어록을 만들어냈다. 그의 대표적인 발언들을 정리했다.


- 유길용·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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