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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 특집 | 미래진단(2)] 보수 진영 승리 시 대한민국 변화상 

정권, ‘윤석열 검찰’ 수사에 간섭 못해 

문재인 대통령과 국무위원 탄핵도 의석수 규모에 따라 가능
슈퍼예산 폐기, 검찰 힘 실어주기, 탈원전 정책 백지화 등 ‘또 다른 세상’ 경험


▎지난해 12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심재철 원내대표 등이 ‘공수처법, 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승패 기준은 무엇일까. 통상은 집권여당이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느냐 여부다. 이에 실패하면 ‘여소야대(與小野大)’. 야권이 의석의 절대 우위를 바탕으로 정국을 주도하기 마련인 탓이다.

현 정국에 비춰볼 때 이 기준은 적용불가다. 20대 국회 의석수 현황을 살펴보면 집권여당이자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29석으로 재적 295석의 과반에 19석이나 부족한 상황. 그럼에도 정국 주도권은 항상 민주당이 쥐고 있다. 실질적으론 여대야소(與大野小)의 형국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드러난 이른바 ‘4+1’의 정치적 파워가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여기서 ‘4+1’이란 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에다 창당을 준비 중이던 대안신당을 일컫는 말. 민주당과 정의당은 진보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우당(友黨) 사이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소속 의원 절대 다수는 민주당의 전신(前身)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이탈해 딴살림을 차렸던 터라 민주당이 친정인 셈. 그래서 ‘4+1’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 등 개혁과제에 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자연스레 ‘4+1’은 ‘범여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21대 총선에서 야당의 승리는 현 정국에서 ‘4+1’과 정치적 궤를 달리해온 정파가 과반 의석을 차지해야 가능하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과정을 기준으로 할 때 야당 개념에 맞는 정당은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우리공화당, 미래를향한전진4.0 4개다. 하나같이 패스트트랙에 반대했고, 보수를 지향하고 있다. 전진당을 뺀 3개 정당 역시 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정치적 동지 사이. 총선을 앞두고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전진당이 미래통합당으로 뭉치는 등 보수 통합이 적극 추진 중이라 선거엔 어떤 형태로든 힘을 합쳐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총선에서의 야당 성적표를 ‘보수의 운명’과 직결시켜 보는 이유다.

‘새누리당, 심판당했다’(중앙일보), ‘국민, 정권을 심판하다’(국민일보).

20대 총선 다음 날인, 2016년 4월 14일 주요 조간신문 1면 톱기사 공통 키워드는 ‘심판’이었다. 선거 전 단독 과반(재적 의원 291명) 146석의 집권당 새누리당은 122석만 얻어 졸지에 제2당으로 내려앉았다. 반면 선거 전 102석의 민주당은 123석으로 제1당으로 부상했다. 제3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38석을 차지한 국민의당, 제4당은 진보를 표방한 6석의 정의당이었다. 진보 야권이 167석을 차지해 과반을 훌쩍 뛰어넘는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 한마디로, ‘국회 권력’이 진보 쪽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 급제동


▎2018년 4월 당시 바른미래당 소속 이언주 의원,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유승민 의원 등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불법댓글공작 규탄 대회에 참석했다. / 사진:연합뉴스
그때부터 단 하나의 입법도 정부 여당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됐다. 여기다 그간 공들여왔던 정책을 아예 포기하거나, 야당의 입맛에 맞춰 고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실제 당시 박근혜 정부가 강력 드라이브를 걸던 노동·교육·공공·금융 4대 구조개혁은 진전은커녕 완전 실종됐다.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재벌특혜만 키운다는 비판을 받다 국회 문턱에서 좌절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이 대표적 사례. 좌편향 역사교육을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추진됐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사업 역시 똑같은 운명을 밟았다. 하나같이 정권이 명운을 걸고 추진했던 사업.

역설적으로 야당 입장에선 결코 빗장을 열어줄 수 없었다. 선거공약으로 “박근혜 정부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심판”을 내걸었던 만큼, 정권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일일수록 분명한 심판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만약 21대 총선에서 보수 야권이 승리한다면, 4년 전 상황이 똑같이 되풀이될 게 불 보듯 빤하다. 차이가 있다면, 공수만 바뀐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사업 저지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한국당이 1월 15일 총선 1호 공약으로 내건 재정건전화법. 이 법의 요지는 다음 해 예산안 편성 시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이하로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채무한도 초과 땐 잉여금 전부를 채무 상환에 사용토록 했다. 이런 재정준칙이 도입되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엔 급제동이 불가피하다. 대규모 재정지출을 통해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와 복지를 늘려 소득수준이 낮은 계층의 가처분 소득을 끌어올리는 정책수단이 사실상 무력화된다.

아울러 이날 한국당이 함께 발표한 탈원전 정책 폐기와 다양한 근로시간제도 도입 공약 역시 현 정권의 에너지, 노동정책의 근간을 뒤흔들게 된다. 보수통합 추진체 ‘혁신통합추진위원회’도 ‘통합신당 10대 과제’에 소득주도 성장 폐지, 세금 만능 정책 중단, 탈원전 폐기를 넣어 한국당 1호 공약에 힘을 보탰다. 보수 야권으로선 선거전 초장부터 문재인 정권의 핵심 정책에 대한 문제를 집중 부각시켜 정권심판론에 대한 국민 지지를 끌어모으겠다는 전술인 셈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주도권을 쥐게 될 국회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을 무기로 관련 정책 백지화에 바로 착수할 게 확실해 보인다.

물론 정부 여당 입장에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저지에 나설 것이다. 기존 정책폐기 입법에 대해선 국회선진화법을 동원할 공산이 크다. 정파 간 견해차가 큰 법안의 경우 신속처리안건 지정, 즉 ‘패스트트랙’에 올려야 하는데 과반 찬성이 아닌 60%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탓이다. 보수 야권이 총선에서 과반 이상을 차지하더라도 전체 의석의 60%, 180석 이상을 얻지 못하게 되면 여권 저지에 막힐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보수 야권의 정국 주도권이 흔들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거꾸로 정부 여당이 더 큰 수세에 내몰리는 탓이다. 당장 정권의 정체성에 부합한, 새로운 입법은 물론 기존 정책 보완을 위한 법안 개정조차 완전히 막혀버린다. 보수 야권으로선 국민이 부여한 ‘정권심판’을 빌미로, 그에 관한 한 어떠한 정치적 타협도 마다할 게 확실한 탓이다. 오히려 예산심의권을 최대한 활용해 정권이 역점을 둬온 정책을 되돌리거나, 최소한 수정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예를 들어 2020년과 같은 ‘슈퍼예산’은 꿈도 꿀 수 없게 된다. 지난해 12월 10일 국회를 통과한 2020년도 예산안은 512조3천억원. 전년도 469조6천억원보다 9.1%(42조7천억원) 증가한 규모다. 2년 연속 9% 이상 증가율을 기록하며, 500조원 예산 시대를 열었다.

미국식 ‘정부 폐쇄’도 현실화 가능성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이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가결됐다. / 사진:뉴시스
이 같은 증가율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증가율(10.7%) 이후 처음. 문재인 정부가 확장적 재정을 통해 경기 부진 탈출과 가계소득 증가를 이끌겠다는 정책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한국당은 “우리 경제가(소득주도 성장 등) 잘못된 정책 기조로 저성장 늪에 빠진채 경기침체로 인한 근로소득 감소와 내수 부진, 기업경기 악화 등 악순환의 경제 고리를 이루고 있는데도 여권은 포퓰리즘 정책 구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뺀 ‘4+1’만 참석한 가운데 예산안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젠 완전히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확장적 재정운영은커녕 오히려 핵심 사업 규모를 줄이지 않고선 정부 예산안 통과는 불가능하다. 보수 야권이 현 정부의 경제 복지정책을 퍼주기식 ‘세금 중독’으로 규정해왔던 만큼, 대대적 사업 축소나 아예 폐지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정부가 이를 무시한 채 예산안을 편성할 경우 국회 심의는 파행이 불가피하다. 설사 정부 여당이 국회선진화법에 규정된 ‘예산안 자동부의’ 제도를 활용해도 끄덕하지 않을 것이다. 예산안 자동부의 제도란 헌법이 규정한 예산 처리시한(회계연도 개시 30일 전) 12월 2일을 강제하기 위해 예산안 심사 완료 전이라도 12월 1일이 되면 국회 본회의에 예산안이 자동적으로 토의에 붙여지게 한 제도. 이때 본회의에 부의되는 예산안은 정부가 당해 연도 9월 1일 국회에 제출한 정부원안이다. 국회 입장에선 그 이전의 심의 과정과 결과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로지 정부 제출 ‘원안대로 통과시킬 것이냐, 부결시킬 것이냐’만 결정할 수 있다. 여당이 50% 이상 찬성표를 확보할 수 있다면, 야당으로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다.

하지만 보수 야권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경우라 오히려 초조한 쪽은 정부 여당이다. 정부 원안 통과마저 좌절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해 연말까지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사태로까지 내몰릴 수도 있다. 예산안이 회계연도 개시(1월1일) 전에 의결되지 않으면 공무원 봉급, 기관 유지비, 계속 사업비 등 극히 일부 부문에 국한해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예산을 지출할 수 있다. 최소한의 국가 기능 유지 외에는 사실상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미국 행정부가 야당 우위의 의회와 예산안 합의에 이루지 못할 경우 벌어지는 이른바 ‘정부 폐쇄(Government Shutdown)’가 우리에게도 현실화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 준예산 편성이 불가피한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면 정부로선 정권 차원의 역점 사업을 대거 접는 타협책이 불가피하다.

180석 확보 시 공수처 없앨 수도


▎지난해 12월 30일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오른쪽)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공수처 설치법안 통과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보수 야권이 국회 입법권과 예산심의권만으로 문재인 정부를 제대로 ‘심판’할 수 있을까. 당연히 한계는 있다. 이미 입법으로 만들어진 제도나 기구는 당장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탓이다. 특히 그 제도나 기구가 해마다 대규모 예산을 필요하지 않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표적 기구가 바로 고위 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다.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 7년 만에 다시 ‘동물국회’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여야 모두 물리력을 동원해 맞붙었던 사안. 여권 입장에선 ‘검찰개혁’이라는 오랜 숙원에다 정권의 정체성이 걸린 사안이라 결사저지에 나설 것이다. 보수 야권이 국회선진화법의 패스트트랙 지정 요건인 180석 이상을 확보한다면, 일정 시간 뒤 여권 반발을 뛰어넘어 없앨 수 있다.

보수 야권은 ‘검찰 힘 보태기’로 공수처 견제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 추미애 법무부 장관 탄핵 소추가 ‘0순위’가 될 전망이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빌미로, 고위직 연쇄 인사를 통해 윤석열 총장의 ‘손과 발’을 자르고, 결국 정권을 겨냥한 수사까지 저지했다고 판단하는 탓이다. 아울러 추 장관이 기소와 수사 주체 분리 추진 등으로 사실상 검찰권을 무력화할 것으로 본다. 이를 방치할 경우 ‘괴물’ 공수처만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탄핵카드로 대응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왜 통상 야권이 취해온 국무위원 해임건의가 아니고 탄핵일까. 첫째 이유는 구속력의 차이다. 두 사안 모두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는 재적 과반수 찬성. 문제는 해임건의는 말 그대로 ‘건의’일 뿐이라는 점이다. 대개 건의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면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 탓에 해임하는 게 통례. 하지만 대통령이 뭉개버려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20대 총선으로 당시 과반을 장악한 진보 야권은 2016년 9월 24일 김재수 농림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가결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무시했고, 김 장관은 정권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반면 탄핵이 가결되면 추 장관의 모든 권한행사는 바로 중단된다. 법무행정은 물론 ‘검찰 장악’도 급제동이 불가피하다. 헌법재판소가 파면 결정을 내릴 경우 아예 장관직을 내놓아야 한다. 또 하나 이유는 해임건의가 정치적 주장으로도 가능하지만, 탄핵은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는 구체적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이다. 탄핵이 가결만 돼도, 정권의 불법성을 드러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역으로 정치적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있다.

사실 추 장관에 대한 탄핵은 이미 한국당이 1월 10일 발의한 적이 있다. 취임 직후 단행한 검찰 고위직 인사가 “(정권 핵심) 수사를 방해하는 보복성 인사”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탄핵 표결을 ‘패싱’하는 방법으로 뭉개버렸다.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지 72시간 이내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폐기되는 절차상 허점을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보수 야권이 국회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이런 일이 되풀이될 수 없다. 본회 운영의 키를 쥔 국회의장이 야권 의도대로 움직일 게 확실한 탓이다. 보수 야권이 총선을 승리하는 상황이라면 아마도 제1당은 야당이 될 것이다. 관례대로 그 당에서 배출한 의장은 ‘친정’의 요구에 적극 협조할 것이다. 헌정사상 2번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 당시 국회의장이 모두 야당 출신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울산시장 선거 의혹 특검 도입


▎윤석열 검찰총장이 일선 검사들과 간담회를 갖고자 부산을 방문한 2월 13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부산지검 앞에서 윤 총장을 응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송봉근 기자
‘검찰 힘 실어주기’의 또 다른 카드는 특별검사 추진이다. 한국당, 새보수당, 혁통위 모두 “특검을 통해 난폭한 정권의 권력 사유화를 막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야권은 특검이 1차적으로 추 장관이 실시한 검찰 인사의 절차적 부당성과 아울러 정권에 대한 수사방해 의도를 밝혀내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더 이상 정권이 ‘윤석열 검찰’의 수사에 간섭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다.

다음 수순은 검찰이 수사 중인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을 특검에 넘기는 것이다. 현재 검찰은 이 사건과 관련해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송철호 울산시장,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등 13명을 기소한 상태. 검찰은 청와대가 2018년 울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8개 조직을 동원해 송 시장을 지원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백원우 전 비서관 등의 변호인은 검찰 공소장을 “주관적 의견서, 정치선언문”이라며 수사의도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추 장관 역시 국회 요구에도 공소장 비공개를 고집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정권의 불만을 대변한 것이란 해석이다.

이에 보수 야권은 검찰 측을 적극 거들고 있다. 새보수당은 “사건의 본질은 권력이 자기 마음대로 민심에 불법적 영향을 행사해 민의를 자기들 입맛대로 조작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21대 국회가 구성되면 곧바로 국정조사와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당내 분위기는 조사일정, 대상 등 사사건건 여당과 합의하에 움직이는 국정조사보다는 일단 맡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수사가 진행되는 특검 쪽으로 쏠리는 모양새다. 특히 객관적 수사주체, 특검이 나서 진실을 가리는 게 정치적 정당성 확보에 더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문제는 과연 야권이 특검을 관철시킬 수 있느냐는 점이다. 특검법은 과반수 의석이면 가결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다시 얻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 패스트트랙 지정보다 더 어려운 조건이다. 그래도 당 관계자들은 은근히 믿는 구석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의 대북송금특검법안. 2003년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권은 김대중 정부 당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거액을 비밀리에 북한에 보낸 의혹을 캐기 위한 특검법안을 전격 의결했다. 여권 내 강력한 반발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수용했다. 남북협상의 절차적 투명성이 보장돼야 향후 대북정책에서도 국민적 동의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야권 관계자들은 “당시와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울산시장 부정선거 의혹 자체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엄중한 사안이라 정권의 도덕성과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도 특검을 수용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낙관한다.

실제 특검이 가동될 경우 수사 결과는 어떻게 될까. 특검 추천권을 보수 야권이 행사한다는 점에서 결론은 검찰 수사와 비슷하게 나올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 경우 당장 검찰이 반색할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 인증서를 받게 되는 셈. 공수처 눈치 보지 않고, 국가 최고사정기관으로서 거침없는 행보에 나설 것이다.

정작 주목되는 파장은 대통령 탄핵 여부다. 보수 야권은 언론에 보도된 검찰 공소장을 보고 대통령의 연루를 거론하며 “탄핵과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 특검마저 같은 결론을 내린다면 탄핵 추진이 현실화할 수 있다. 물론 특검이라도 대통령 직접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 대통령의 인지, 관여, 지시 여부를 명백히 밝혀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청와대 참모들과 ‘30년 지기’ 송 시장과의 공모로 결론 내릴 경우 야권으로선 ‘탄핵열차’에 올라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반면 야권 내 신중론과 반대도 만만찮을 것이다. 당장 탄핵가결에 필요한 재적 3분의 2 찬성 확보가 현실적 장벽이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여당 새누리당 의원들의 대거 이탈과 같은 사례를 기대하는 게 비현실적인 탓이다. 전망은 엇갈린다. 대통령 탄핵 추진보다는 정치적 엄포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에 현재로선 무게가 더 실린다. 탄핵을 ‘주머니 속 공깃돌’마냥 여권을 압박하는 정치적 수단으로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 대세론, 다음 대선의 발목을 잡을 수도

호사다마(好事多魔). 보수 야권의 총선 승리가 마냥 정치적 플러스만 가져올까. 실제 야권 일각에선 ‘총선 승리=대선 패배’라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기도 한다. 총선에서 승리해 의회권력을 장악한 정파가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까지 잡을 경우 우려되는 독선과 독주 탓에 유권자들이 대선에선 견제 심리를 작동해 총선에서 진 쪽을 지지하는 경향이 짙다는 주장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황교안 대표가 새보수당 유승민 의원 회동에 소극적인 데다 종로 출마마저 망설이자, 비슷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22년 대선에서 자신의 당선을 위해 눈앞 총선에 적당히 임하는 게 아니냐는 것. 하지만 전격적인 종로 출마 선언과 함께 의구심은 시나브로 사라지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최근 사례가 통설과는 정반대인 모습도 크게 작용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은 그해 말 박근혜 대표를 대선에 당선시켰다. 2016년 20대 총선도 똑같은 양상. 총선을 승리로 이끈 문재인 후보가 2017년 대선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총선에서 이겨 국회를 장악한 정파가 여세를 몰아 정권쟁취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방정식이 성립된 셈이다.

여전히 우려되는 정치적 함정은 있다. 이른바 ‘대세론’이다. 1997년 대선에서 석패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2000년 총선에서 여러 악재를 딛고 승리를 일궈냈다. 전체 273석의 과반 137석에 불과 4석 못 미치는 133석을 획득, 제1당을 차지했다. 공동여당 새천년민주당(115석)과 자유민주연합(17석)을 합친 것보다 1석 더 많았다. 20대 회기 출범 이후 자민련이 야당으로 돌아섬에 따라 사실상 국회 권력을 손아귀에 쥐었다. 정가 안팎에선 “대통령보다 더 센 야당 총재”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당내에서 오직 ‘이회창 찬가’만 울려 퍼졌다. 이쯤해서 측근 그룹 ‘7인방’이 전면에 등장했다. 당의 공조직보다 측근 그룹의 언행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한 양상이 빚어졌다. 비주류가 거의 실종되다시피하면서 치러진 대선 경선. “요식행위” “다른 후보는 들러리”라는 푸념이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반면 민주당 경선은 초반 ‘노무현의 광주 기적’을 시작으로 연일 시선을 집중시켰다. 졸지에 ‘바보 노무현’은 이회창의 유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회창은 대세론을 낙관하는 모습이었다. 막판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에도 이회창은 자민련 김종필과의 연대를 거부했다. 결과는 다 알다시피 노무현의 승리. 총선 승리의 달콤한 유혹, 대세론의 단맛을 버리지 못한 이회창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거기서 끝났다.

현재 보수 야권은 뼈아픈 과거를 되새기고 있을까. 차기대선 여론조사에서 보수 1위를 독주하고 있는 황교안 대표 역시 ‘측근정치’ ‘밀실 리더십’ 논란이 떠나지 않는다. ‘공관병 갑질 논란’ 주역 박찬주 전 대장 영입을 둘러싼 해프닝은 한 단면. 당 공식조직 몰래 소수 측근과 일을 추진하다 뒤늦게 안 최고위원들이 반발하자 없던 일이 돼버렸다. 다소 뜬금없는 단식, 장외투쟁 일변도의 대여 전략 등 그의 리더십을 둘러싼 우려는 잊을 만하면 되풀이된다.

-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 jwhn20@naver.com

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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