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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특별기고] 진격의 진중권, 침묵의 진보 진영 

성역 없는 비판은 공화국의 시민윤리 

분노하는 중도층, 그의 독설에 연신 무릎을 치며 박장대소
촛불민심 세분화하면서 정치적 착시현상 사라져간다


▎지난해 10월 3일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봉준호 영화감독의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의 국민적 기쁨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불안감이 상호 교차하는 혼돈의 시기다. 이 시기에 정치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두 명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이들에게 쏟아지는 국민의 관심은 신드롬(syndrome)과 같은 사회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두 사람은 공히 ‘살아 있는 권력’에 당당하다.

진중권은 그의 독설적인 캐릭터의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비판으로 중도층에게 상당한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진중권의 페이스북은 기자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고, 심지어 보수우파들도 “뼛속까지 좌파 논객인 그의 비판적 독설을 즐기며, 그간 쌓인 정치적 화병을 풀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하기도 한다. 집권여당과 청와대는 한때의 동지였던 두 사람을 이제는 불편해한다. 진중권은 한 번 필이 꽂히면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진보진영 내 문제적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좀처럼 놓치는 법이 없다. 공정과 진실의 잣대를 벗어나는 행위는 예외 없이 저격한다.

일종의 ‘진중권 현상’, ‘윤석열 현상’은 청와대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 핵심부에서 “감히, 문재인 대통령의 명을 거역해”라고 오만으로 겁박할수록 윤석열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더 끓어오르고, 진보진영의 솔직한 반성과 성찰이 없는 한 진중권의 칼은 더 날카로워질 것이다. 반면, 말발 센 국회의원을 다수 가진 집권여당에서 어느 누구도 진중권과 맞설 엄두를 못 내고 입을 다물고 있다. “별 영향 없다.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다. 그의 발언은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혼자 얘기하게 내버려두고 관심 끊는 게 낫다”는 회피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진중권의 정권 비판 메시지는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더욱더 비판 수위를 높여갈 전망이다. 일면(一面), 현 상황은 보수 언론과 보수 야당이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 진중권의 주장을 정략적으로 키우는 국면처럼 보인다. 그러나 집권여당이 진중권과 관련된 언론 보도를 정파적으로만 안이하게 이해하다가는 ‘진중권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겉으로 심중을 드러내지 않는’ 중도층에 의해 총선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 어디에도 마음 줄 곳 없는 국민들이 진중권과 윤석열을 바라보며 그나마 위로받는 게 요즘 한국 사회의 답답한 정치 현실이다. 오죽하면 매주 목요일 방송하는 [미스터트롯]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유행할 정도일까.

진중권이 힘을 받는 것은 그의 현란한 어법과 적확한 비유, 후련한 일갈로만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진중권이 갖는 감정을 공유하며, 진중권과 자신을 일체화하는 시민들이 날로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하는 내부고발자


▎2008년 6월 ‘광우병 파동’ 당시 인터넷 방송 리포터 역할을 맡은 진중권이 보수단체 회원과 인터뷰를 시도하고 있다.
‘진중권 현상’은 이념과 진영논리를 뛰어넘고 있다. 진중권도 조국 사태를 비판할 때 이념이나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진중권이 주장하는 내용을 정치 공학적 시각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이념이나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부정의,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로 파악해야 한다. 그는 “문 정권이 정의의 기준, 법의 기준, 도덕의 기준 자체를 바꿔버렸다. 로고스(logos, 이성)와 에토스(ethos, 윤리)가 무너지고 시민을 이성이 없는 좀비로, 윤리 잃은 깡패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사실, 진보진영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라는 집단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 편을 지켜야 하기에, 우리 편은 옳다’ 식의 전체주의적 사고가 작동한다. ‘조국 수호’가 문 정권의 명운과 동일시되고, 이 사안을 정권과 악의 무리의 정치적 전투로 이해한다. 이편이든 저편이든 정의의 잣대가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법치주의’의 헌법정신이다. 때로 우리는 모두 ‘편견과 편향성’을 가진다. 단지, 의견 표출의 자유를 ‘진실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다. 상대를 거짓과 악으로, 나를 진실과 선으로 자가 세뇌하면 증오와 혐오를 서로 조장하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형성된다. 분노는 적을 만들고, 경쟁은 숙의의 토론을 발생시킨다.

진중권은 ‘지식인의 존재론’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자기편’이면 무슨 짓을 해도 감싸는 패거리의 진영논리를 넘어 같은 편부터 먼저 비판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내부고발자다. 정의는 각 진영의 정치적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일회용 처방전이 아니다. 그는 구 진보의 물질주의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속물주의적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586의 허위의식’을 스스로 고해성사하고 있다. 그는 ‘혐오·증오’를 이용해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려는 정치인들을 견제해주는 지식인의 비판적 역할을 새롭게 복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하나로 모였던 촛불민심이 점차 세분화하는 경향과 맞물린다. 단일한 광장 민심의 정치적 착시현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성역 없는 내부 성찰이 시작됐다. 586 운동권과 민주당을 지지하고, 자유한국당을 비판한다고 해서 모두 진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진중권은 자신의 무능을 타인과 집단에게 돌리고, 타자에게 증오와 적대감을 만들어 자신의 실패를 방어하는 진영논리의 폐쇄적 환각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라고 권고한다. 또 다양성 있는 성찰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빈부 격차, 부동산 투기, 학벌, 젠더, 노인, 병역 등 불공정의 문제에 더욱더 관심을 가지라고 노골적으로 선동한다.

‘검찰 개혁=조국 수호’라는 해괴한 등식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선고 이틀째인 2017년 3월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촛불집회 참가자들.
이런 진중권은 전문가의 미사여구보다 이해하기 쉬운 대중적 언어를 주로 사용한다. 언어의 간결성과 비판의 풍자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비유와 수사, 풍자와 냉소는 기존 미디어의 금기를 뛰어넘어 목표를 정확하게 초정밀 타격하여 비판한다. 생활형의 독설 언어가 국민에게 일종의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끓는 분노를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던 중도층의 국민은 그의 독설에 연신 무릎을 치며 박장대소하고 있다.

이게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딜레마다. 딜레마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그 뿌리의 원천을 찾아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른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선거법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강행, 하명수사와 감찰 무마, 검찰 표적 물갈이 인사 등을 보면서 국민은 점점 ‘몰가치의 혼란’을 겪고 있다. 사실 가장 혼란스러웠던 점은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동일시하는 여권의 태도였다. 조국 사태는 조 전 장관의 고교생 딸의 의학 논문 제1저자, 의학전문대학원 6차례 장학금 등에서 불거진 불공정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 문제가 진영의 프레임 전쟁으로 번지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를 계기로 ‘검찰 개혁=조국 수호’의 해괴한 정치 등식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조국을 수사하는 검찰을 ‘항명의 쿠데타’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탄핵을 부정하는 태극기 부대가 ‘공정의 정의’를 외치면서 윤석열과 진중권을 역지사지하는 현상도 발생하였다. 모두 집권여당이 조국을 무리하게 수호하려 한 데서 발생한 정치적 혼란이었다. 최근 검찰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윤석열 사단의 인사 작업이 완료되었다. 한마디로 수사검사에 대한 피의 숙청이었다. ‘빅4’인 서울중앙지검장, 검찰국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공공수사부장이 호남 일색, 운동권 출신 검사로 전진 배치됐다.

왜 이런 정치적 무리수를 둘까. 조국 사태 때문일까? 아니면 대통령 핵심 측근들이 줄줄이 연루된 유재수 사건 때문일까? 하지만 두 사안은 조국과 친문 실세들의 도덕적 윤리에 얽힌 공직기강 문란 사건일 뿐이다.

무리수의 근본 원인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이다. 문 대통령과 바로 연결될 수 있어 정치적 휘발성이 엄청나며 정권의 상징적 도덕성이 걸린 사안이다. 이 사건의 폭발성은 검찰 공소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통령’이란 단어가 39번 등장하고 “누구보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 비서실이 부당하게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표현이 기록돼 있다. 공소장의 절반은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청장이 집요하게 청와대 하명 수사를 어떻게 집행했는지 생생하게 적시하고 있다.

조국 사태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진보진영에 ‘어떤 진보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적 질문을 던져줬다. 그 화두의 선봉에 진중권 교수가 서 있다. 그의 개인적 캐릭터는 독특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관심종자, 성격 파탄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인 호불호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내용인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의 최근 행보는 중도층 이탈의 시그널로 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보수 정당의 몰락은 중도층 이탈이 촉발했다. 고정 지지층의 이탈은 예정된 몰락을 최종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진중권 현상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여권은 정권 교체를 지지해온 이들에게 ‘왜 이렇게 우리에게 자괴감을 느끼게 만드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한다. 이들이 하나둘 중도층으로 이동하고 슬슬 정권에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진보진영은 속절없이 고립·붕괴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만약 총선에서 민주당 또는 범여권이 과반수 의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집권 후반기의 대통령은 바로 권력누수에 시달린다. 더불어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목소리가 높아진다. 야당은 서로 연합하여 대통령의 연루 사실을 법률적으로 확인하는 특검을 임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발의를 정략적으로 추진할 수도 있다. 설령 야권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향후 대선의 주요한 정치 이슈로 수시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진중권 신드롬’은 상식을 확인하는 중도층의 존재감


▎2018년 지방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월 30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안타깝게도 향후 울산시장 선거 의혹은 보수 정권 집권 시 ‘진보세력 적폐청산’의 주요한 정치적 모티브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뒤집어 말하면 정치 보복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재기 불가능한 정치적 치명상을 입기 전에 결자해지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해법은 문 대통령이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발언한 내용에 숨어 있다.

“진실을 은폐하고 경찰과 검찰 수사는 방해받고 있다. 시간을 끌수록, 진실을 덮으려 하면 할수록,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물론 박근혜 정부가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검찰 수사에 부당한 외압을 중지하고 드러난 사실은 엄중히 문책하라.”

이대로 하면 된다. 이번 4월 총선만 이기면 이 울산 사건의 범죄 혐의를 다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읍참마속의 빠른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진중권 신드롬은 한 시대에 반짝 유행하다가 사라지는 정치적 소비재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거악(巨惡)이 사라진 후 서로를 악이라 규정하며 둘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서초동과 광화문은 ‘신념의 과잉과 결핍’이 빚어낸 정치적 소모전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검찰 개혁을 위해 불공정쯤은 묻어둬도 된다고 외쳤고, 적폐청산의 길이 틀렸다는 믿음에 도취해 문재인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며 하야와 탄핵을 아무렇지 않게 주장하기도 했다.

진중권 신드롬은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사안별로 옳고 그름, 상식과 비상식을 판단하는 중도층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도층은 두 진영으로 쪼개진 우리 사회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다. 중도는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중간이 아니다. 극단적 판단을 멀리하면서 절충적이고 실용적인 입장을 찾아가고 있다. 각 진영의 독과점 정당 체제에서 핵심 지지층에 기대는 정치는 당장은 쉽고 편하지만, 정치세력의 확장성은 전혀 없다. 진영논리에 갇혀 있지 않고 상식이 구현되는, 원칙 있는 한국 사회를 다시 갈망해본다.

끝으로 필자는 진중권 교수를 개인적으로 존경하지 않는다. 하지만 팩트에 기초하는 성역 없는 비판 정신은 존중한다.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시민윤리이기 때문이다. 상식은 불통의 벽이 아니라 소통의 다리다. 그 시험대가 이번 총선이다. 깨어 있는 민주공화국 시민들의 합리적 선택만이 공정사회를 만드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정치인의 입바른 미사여구를 쉽게 믿지 마라.

- 이쌍규 전 나친박 정치 팟캐스트 진행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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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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