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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대학총장 열전] 타수(舵手) 리더십 강조하는 김무환 포스텍 총장 

올해부터 전교생 AI 교육, ‘두 개의 뇌’ 갖춘 인재 키운다 

국내 첫 블록체인 캠퍼스, 합격률 19% 최정예 AI대학원도 열어
“빨리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Fail Fast 장려해야 4차 혁명 선도”


▎포스텍 중앙광장에 선 김무환 총장은 “과학기술의 혁신은 하루아침에 ‘평지돌출’ 처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꾸준히 준비하며 나아갈 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뒤에 보이는 지구본은 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86년 개교 기념으로 선물한 과학탐구상.
경북 포항에 있는 포스텍(포항공대)은 광활했다. 정문을 들어서니 2017년 포항 지진 때 끄떡없이 버텨 화제가 됐던 건물들이 반겼다. 캠퍼스를 다 돌아볼 요량이었는데 163만㎡의 드넓은 공간이 내게는 벅찼다. 그래서 우선 몇 해 전 포스텍을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곳부터 찾았다. 바로 4세대 방사광가속기였다. 2011년 착공해 2015년 완공한 4세대 가속기는 건물 길이만 총 1.1㎞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두 개 옆으로 눕힌 길이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했을 때 생기는 밝은 빛으로 미세한 물질이나 현상을 관찰하는 장치다. 햇빛보다 100경 배 밝은 ‘거대한 슈퍼 현미경’으로 불린다. 이 장치로 비아그라의 단백질 결합구조를 관찰해 어떻게 발기부전을 치료하는지 밝혀냈고,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 개발에도 공헌했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김광우 박사는 “가속기를 이용하면 효과가 뛰어난 신약을 만들거나 생체를 훨씬 정교하게 모방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사광가속기를 사용해 연구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 미국·일본·한국·독일·스위스 등 5개국에 불과하다. 특히 4세대 가속기를 갖춘 대학은 스탠퍼드대와 포스텍뿐이다.

방사광가속기를 둘러보고 창의IT 융합학과 건물에 들어서니 강의실 구조가 특이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앉아 토론하고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눈길을 끌었고,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했다’는 낙서가 빼곡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강의실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캠퍼스를 둘러보고 영원한 ‘포스텍 맨’인 김무환(62) 총장을 만났다. 1986년 12월 학교 설립 직후인 87년 29살의 나이에 부임해 첫 신입생부터 가르치며 34년을 포스텍과 함께한 그였다. 학생처장·기획처장·입학처장 등을 두루 거친 포스텍의 역사다.

캠퍼스를 둘러봤습니다. 방사광가속기와 인공지능 & 빅데이터센터, 청년 AI·빅데이터 아카데미가 인상적이네요.

“국내 최초로 블록체인 캠퍼스를 구축한 포스텍의 변화 현장입니다. 연구원들이 빅데이터를 AI에 접목해 연구하고, 아카데미에서는 포스텍 학생이 아닌 외부 취업준비생들도 심도 있는 교육을 받아요.”

개교 때부터 34년간 함께한 영원한 ‘포스텍 맨'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건설된 4세대 방사광가속기(PAL) 전경. 빛을 가속시켜 머리카락의 10만분의 1 크기의 물질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연구시설로 물리·화학 등 기초연구에서부터 신약개발·반도체산업까지 그 활용범위가 넓다. 총 길이는 1.1㎞, 건물 면적은 3만6764㎡. / 사진:포스텍
세계적으로 고등교육의 흐름이 바뀌고 있습니다. 올 1월 6~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을 다녀오셨는데요.

“2016년부터 전자전기공학과가 운영 중인 글로벌 탐방 프로그램입니다. 전공 지식이 있는 3학년생 17명이 직접 세계적인 기업을 탐방하면서 기술을 체험하고, 동문을 만나 멘토링을 받는 프로그램이죠. 이번 방문을 통해 고등교육의 방향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어떤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구글의 비밀연구소로 불리는 구글X도 방문했어요. 구글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온 곳인데, 구글이 할 것 같지 않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더군요. 그곳엔 독특한 철학이 있는데 바로 ‘Fail Fast’입니다. 곳곳에 ‘Think Big. Fail Fast. Do it Now’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더군요. 프로젝트를 하다 실패를 인정하면 파티를 열어주고, 빨리 실패하면 상도 준다더군요.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면 다음 프로젝트 때 주눅 들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실패를 단순한 경험의 일부로 생각하면 더 대담하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게 구글의 생각이더군요. 빨리 실패한 것은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 성과를 내려 노력한 것이니, 장려 차원에서 상을 준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구글 얘기를 하던 김 총장은 성공만 중시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지적했다. 수능 점수로 상징되는 우리 교육은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며, ‘성실 실패’를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SKY 캐슬]을 보니 이런 대사가 나오더군요. ‘오직 결과만이 여러분의 가치를 증명한다’. 현재 우리 교육의 폐부를 찌른 것 같았어요.” 김 총장은 실패를 경험하게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길러주는 게 진정한 교육이라는 설명이었다.

AI로 상징되는 4차 혁명 시대의 고등교육에 울림이 되는 사례네요.

“학생은 실패하더라도 ‘학생’이니까 양해가 되지요. 4차 혁명엔 AI가 필수입니다. 넷스케이프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은 “소프트웨어(SW)가 세계를 집어삼킨다”고 했는데,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AI가 SW를 집어삼킬 것(AI is going to eat SW)”이라고 하더군요. 이미 세계 과학기술 관련 뉴스에서 AI는 매일 등장하면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어요. 선진국들은 AI 기술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AI를 바탕으로 더 효율적인 연구나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어요. 지난 1월 30일 영국 스타트업이 세계 최초로 AI가 개발한 신약을 임상시험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했어요. 기존에 5년 걸리던 신약개발이 AI는 1년이면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사회과학은 물론 인문학이나 역사에서도 AI 응용 범위는 무궁무진합니다.”

어떤 전공이든 AI를 기본으로 다룰 수 있어야


▎1996년 대학행사에서 故 박태준 설립이사장(포스코 명예회장)과 만나 환담을 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매년 졸업식에 참석해 학생들을 격려했다. / 사진:포스텍
4차 혁명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1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팔다리를 보완했다면, 2차 혁명은 팔다리의 확장성을, 3차 혁명은 눈과 입을 보완했어요. 4차 혁명의 핵심인 AI는 전 분야에 활용되는, 인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두뇌입니다. 앞으로의 관건은 AI와 소통이 될 겁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AI와 소통하며 이용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는 1조원을 투입해 AI대학을 설립했다. 개교 158년 역사상 최대 프로젝트다. 하버드대도 전 교육과정에 AI를 도입했고, 중국 대학들의 변신도 빠르다. 특히 중국의 인재유치와 규제 완화, 집중 투자는 주목의 대상이다. 2030년까지 1조 위안(168조원) 규모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다.

포스텍도 학부생 전원에게 AI 교육을 시작하지요?

“올 3월부터 1학년은 기초 AI 2학점이 필수죠. 매 학기 1주 차는 집중 이수 기간으로 정해 다른 과목은 수강하지 않아요. 2~4학년 대상 심화 과정은 9학점입니다. 빅데이터와 기계학습, 컴퓨터 비전, 자연어 처리 과목이 있어요. 과정을 이수하면 수료증을 줍니다. 우리는 AI를 학문이 아닌 또 다른 두뇌라고 봅니다. 어떤 전공을 선택하든 AI를 기본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AI와 소통하면서 기술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커리큘럼 파괴인데 우수 교수 확보도 중요합니다.

“모든 대학의 고민이죠. AI 대학원 설립을 계기로 우수 인력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의 관심도 필요해요. 대학이 아닌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죠. 대학이 구글이나 애플과 인력 경쟁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다행히 올해부터 AI 관련학과 교원의 기업 겸직을 허용할 방침이라니 숨통은 트입니다. 연구 환경 조성과 공동연구 집단 구성도 필요합니다. 미국과의 기술격차가 2년, 투자액도 차이가 커요. 하지만 우린 저력이 있어요. 우리 국민은 두 배로 머리가 좋고 두 배로 성실하기 때문에 미국의 4분의 1만 투자해도 AI를 선도하며 치고 나갈 수 있어요.”

KAIST·고려대·성균관대에 이어 3월에 AI대학원을 여는데요.

“첫 입시에서 합격률이 18.5%에 불과할 정도로 최정예 인재를 선발했어요. 석·박사 통합과정은 경쟁률이 11:1이었어요. 비이공계 전공자와 AI 연구 희망자, 융합연구자(AI+X), AI 관련 창업자를 위한 맞춤 트랙 교육을 제공하는 게 특징입니다. 비이공계 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초 수학이나 프로그래밍 과목도 개설했어요. 학생 주도로 사회문제나 산업현장의 애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도 장점이죠. AI+X의 경우 3차원 가상현실, 로보틱스, 포항가속기연구소, 바이오 오픈이노베이션센터와 협력해 바이오신약 개발과 헬스케어, 에너지 분야 연구를 진행합니다.”

지난해 10월 포스텍이 AI 스마트팩토리, 지능형 바이오, 헬스케어 등 미래도시(퓨처 시티)의 기술 테스트베드가 될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퓨처 시티는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AI, 클라우드, 에너지, 건축, 헬스케어, 환경 등의 기술과 결합해 도시 생활 편의를 증대시키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도시를 말합니다. 포항은 기술적으로 발달한 중간규모(mid-sized) 도시인데 테스트베드로 활용 가능한 지곡단지가 있어 새 도시 모형 적용 기반을 갖추고 있어요. 산·학·연이 협력해 IT·헬스케어·에너지·건축·심리학·언어학·법·행정학이 결합한 퓨처 시티 소사이어티(Future City Society)를 구성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토털 솔루션(total solution) 모델을 구현할 계획입니다.”

그런 개혁을 통해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같은 인물을 키울 수 있나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저는 초등학교 교육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답을 잘 골라내고 실수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중심이 되면 안 됩니다. 미래사회는 도전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인재가 필요해요. 그런데 실수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자기주도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융합형 인재로 성장하도록 커리큘럼을 바꿔야지요. 교수는 일대일 멘토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실 실패가 격려받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공계 두뇌가 중요한데 유출이 심각합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한국 두뇌 유출지수가 130개국 중 43위라고 평가했어요.

“인재가 해외로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현실입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EB’ 비자를 내줍니다. 2018년에만 5745명이 이 비자를 통해 한국을 떠났어요. 이들이 떠나지 않고 한국에 남아 능력을 발휘하게 할 제도 마련이 시급해요.”

김 총장은 우리나라는 도전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적당히 눈치 보며 ‘중간이라도 가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포스텍 동문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글로벌 기업들은 도전적인 일을 장려하고 있어요. 이런 기업문화가 우리에게 꼭 필요해요.”

산학협력이 중요합니다. 포스텍은 국내 최초로 산학일체 교수제를 도입했는데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인력을 전임교원으로 채용하고 교육과 연구 활동에 기업체 수요를 적극 반영하는 제도죠. 성과도 좋아요. 산학일체 첫 교수인 김욱성 교수는 2018년 포스텍의 동료 교수와 서울대, LG디스플레이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네이처 표지논문을 발표했죠. 한국 과학자만으로 네이처 표지논문을 장식한 것은 6년 만의 일이었어요. 기업과의 상호 신뢰를 더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학들이 혁신, 혁신을 외치지만 잘 되는 것 같지 않아요. 원인을 뭐라고 보세요?

“일관된 목표 없이 비전이 바뀌고, 매년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새 정책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봐요. 저는 총장 선임 때 ‘제게는 비전이 없다’고 발표했어요. 1986년 개교 당시에 가장 중요한 건학이념을 비전으로 설정했잖아요. 그 이념을 토대로 시대에 맞게 세부 사항을 더하거나 수정하면 충분합니다. 자동차로 전국 여행을 할 때 포항에서 출발해 서울에 가려다 갑자기 광주로 목적지를 틀고, 다시 부산으로 바꾸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럼 혁신을 어떻게 진행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요즘은 ‘대륙의 실수’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사실 그 시초는 ‘현대의 실수’입니다. 현대자동차가 2008년 처음 ‘제네시스’를 출시하고 아시아 최초로 ‘북미 올해의 최고 차’에 선정되며 ‘현대의 실수’라고 불렸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이는 갑작스러운 결과는 아니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륙의 실수’ 샤오미나 화웨이도 알고 보면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많은 투자와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된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평지에서 솟아나는 산과 같은 ‘평지돌출’은 없어요. 혁신은 결국 좋은 토양에서 부단히 키워낸 기술을 중심으로 결과를 맺는 것이지, 당장 급하게 밀어붙인다고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포스텍 건학이념은 ‘교육과 연구로 국가와 인류 발전에 기여하고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겠다’입니다. 포스텍은 미래 경쟁력을 어디에 두고 있나요?

“개교 당시부터 수도권이 아닌 중소도시에서, 그것도 1980년대에는 개념이 생소했던 ‘연구중심대학’으로 설립됐어요. 당연히 우려도 컸지요. 그러나 중앙일보에서 처음 대학평가를 한 1994년, 포스텍이 1위에 올랐는데 개교 10년도 안 됐을 때였죠. 포스텍을 이렇게 빠르게 성장시킨 건 구성원들의 도전정신과 탁월한 연구경쟁력 덕분입니다.”

포스텍은 ‘최초’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유일의 3세대 방사광가속기(1994년), 석·박사 연계 진학제(1996년), 교원 연봉제(2000년), 레지덴셜 칼리지(2008년), 학부생 전원 수시 선발(2010년), 캠퍼스 영어 공용화(2010년), 4세대 방사광가속기(2016년), 무(無)학과 선발(2018년), 블록체인 캠퍼스 구축(2019) 등이다.

한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 ‘1호’ 기록 이어져


▎김무환 총장이 학부생들과 강의실에서 만나 행복한 학교생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포스텍
2019년 9월 취임사에서 포스텍의 진정한 힘은 ‘함께하는 힘’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더 빠르게 더 높은 곳으로 가려면 ‘함께 하는 힘’이 중요해요. 수많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는 점점 그 규모가 커지고 있어요. 개인의 아이디어만으론 해결이 어려워요. 학문과 국경을 넘나드는 공동 연구가 중요합니다.”

공동의 힘도 중요하지만 포스텍 출신 리더나 브랜드파워는 아직 약한 것 같아요.

“이번 삼성전자 인사에서 가장 큰 화제가 된 노태문 사장이 포스텍 동문입니다. 갤럭시 신화를 창출한 분이죠. 포스텍 교수 출신으로 네트워크 사업부를 이끌고 계신 분도 계시고, 최초로 여성 전무가 된 동문도 있어요. 미국 [포브스]지가 매년 30세 이하의 젊은 리더들을 지역별로 선정하고 있는데, 포스텍 학생이나 동문이 매번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과학과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2018~2019년에 계속 포스텍 학생과 동문이 선정됐고, 미디어나 벤처 투자 분야에서도 선정됐어요. 다양한 분야에서 리더급이 계속 등장할 겁니다.”

타수(舵手) 리더십을 강조하셨는데 치고 나가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조정경기에서 타수는 뱃머리를 향하고, 노를 젓는 조수는 뱃머리를 등져야 합니다. 물론 스퍼트도 중요하지만, 자기 코스를 벗어나 다른 코스를 침범하거나 접촉하면 실격돼요. 당연히 방향이 중요하죠. 구성원들이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도록 풍파와 조류를 앞서서 읽고 정확한 방향을 지시하는 타수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입학처장 시절 320명 신입생 전원을 100%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하는 디자인을 하셨지요. 그런데 정부는 정시 30%를 강요하네요.

“사실 우리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실력이 엇비슷해요. 그러니 지원 동기와 도전정신·윤리성·자기주도력을 갖춘 잠재력 있는 인재를 찾으려면 학종이 가장 적합한 방법입니다. 교육부가 정시 30%를 강조해도 우리는 그대로 학종 100%로 갑니다. (웃으며) 포스텍은 지방에 있는 대학이라 적용 대상도 아닙니다.”

2018년부터 시행한 무학과 선발, 즉 무은재(無垠齋) 학부의 성과는 어떤가요?

“무은재는 초대 총장 김호길 박사의 호입니다. 경계가 없다는 뜻이지요. 학생들이 각 전공을 최대한 경험하면서 선택 기회를 갖는 장점이 있어요. 전공 정원이 없어지니 학과들이 스스로 경쟁하며 혁신하고 있어요. 학생들은 3학기를 공부하고 전공을 선택하는데 언제든 전과가 가능해요.”

포스텍은 전체 재학생이 3400여 명이다. 이 중 학부생이 1300여 명, 대학원생이 2000여 명이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2.9명(비전임 포함), 학생 1인당 연간 교육투자비는 9318만원이다. 등록금보다 장학금이 더 많다. 인문사회 융합교육과 글쓰기 교육도 병행한다. 전공을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나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소통이 안 되면 능력을 꽃피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 총장은 흥미로운 예를 들었다. 미국에서 성공한 엔지니어 4000명을 대상으로 직장에서 필요한 대학 과목을 조사한 결과, 2위가 테크니컬 라이팅(technical writing), 4위가 퍼블릭 스피치(public speech)였다는 것이다.

100대 혁신대학 세계 12위, 아시아 1위


▎김무환 총장(가운데)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KINS) 원장으로 재임하던 2014년에 일본 후쿠시마 사고 복원 현장을 방문했다. / 사진:포스텍
포스텍은 글로벌 경쟁력도 인정받고 있다. 영국 로이터가 선정한 세계 100대 혁신대학(2019) 아시아 1위와 세계 12위, 그리고 THE가 뽑은 세계 최고 강소대학은 미국 칼텍과 프랑스 에콜폴리테크니크에 이어 세계 3위다. 하지만 종합평가에선 포스텍을 벤치마킹해 1991년 설립한 홍콩 과기대나 싱가포르 난양이공대에는 뒤진다.

김 총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대답은 의외였다. “연구 수준이나 혁신성 면에선 결코 뒤지지 않아요. 산학협력은 오히려 앞서고요. 비영어권 소규모 대학이란 한계 때문에 두 대학에 비해 평판도가 떨어집니다. 시간이 필요해요.”

김 총장의 말은 실제 평가에서도 입증됐다. 최근 5년간 산학협력 연구비율을 보면 포스텍은 8.6%, 난양이공대는 3.5%, 홍콩 과기대는 3.6%다. 전 세계 평균은 2.3%다. 특히 최근 5년간 논문 중 상위 10% 저널 게재 비율은 포스텍이 51.7%로 난양이공대(50.5%)와 홍콩 과기대(54%)와 엇비슷하다.

실적이 좋은데 섭섭한 면이 있겠군요.

“환경·분자생명학·생화학·유전학·약학에서 특히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어요. 방사광가속기가 있어 앞으로 더 앞서나 갈 수 있다고 봅니다.”

고등교육 정책, 윤리적인 문제만 감시해야


▎2020년 1월 7일 김무환 총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 참가한 동문 기업 ‘비트센싱’ 부스를 방문했다. 4D 이미징 레이더를 개발하는 이 기업은 CES 2020 혁신상을 받았다. / 사진:포스텍
등록금이 12년째 동결돼 대학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포스텍은 어떤가요?

“등록금 재정기여도가 10% 선으로 큰 영향은 없는 편입니다. 자율성 제한 정책이 대학의 자기주도적 발전과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정부가 알아줬으면 해요.”

총장들은 자율을 갈구하는데 교육부는 규제를 많이 합니다.

“등록금이나 재정지원사업, 연구사업 등은 윤리적인 문제가 있으면 강한 제재를 하되, 잘할 수 있는 대학은 격려하고 스스로 혁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교육은 지위재(positional goods) 성격이 강합니다. ‘SKY 캐슬’ 입시 열풍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고요.

“대학은 작은 사회입니다. 출신 지역이나 성별, 계층 등 학생 구성원 비율이 국민 구성원 비율과 같을 때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점이 잘 반영되지 않아 ‘학종’이 비판받는 것이라 생각해요. 포스텍은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일반고와 과학고 출신 비율은 반반입니다. 지금은 간판보다 능력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좋은 대학 이름보다는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능력을 갖췄는가가 중요합니다.”

김 총장은 원자력 전문가다. 서울대 원자력공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10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2013년 10월~2016년 9월)도 역임했다. 올 1월에는 국내 최고 공학기술학술단체인 한국공학한림원의 정회원(재료자원공학 분야)으로 선임됐다. 원자력 산업의 핵심 메커니즘인 ‘이상 유동 열전달 연구’에서 다양한 측정 기법과 실험장치를 개발한 공로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김 총장은 “에너지 정책은 과학기술의 발전, 사회의 필요 때문에 결정되는 것이지, 특정 정책에 의해 쉽게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국가의 환경적 제약이나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정책 방향이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에 아쉬움을 나타낸 것으로 이해됐다. 정부가 추진 중인 한전공대 설립에 대해선 “정권에 상관없이 50년 이상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의 연구와 인재 양성이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 만큼 일관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일쇼크 경험, ‘분배보다 생산’에 눈떠 원자공학 선택


▎1979년 여름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동기들과 찍은 사진(사진 왼쪽부터 서태석 가톨릭의대 교수, 김무환 총장, 서덕영 경희대 교수, 박원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 김헌일 전 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이현로 목사). / 사진:포스텍
김 총장은 중2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향 부산에서 가족이 야반도주한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한다. 서울 남산 자락의 지인 집에 얹혀살며 생활했다고 했다. 부산에선 1등을 했는데 서울의 중학교에서 치른 첫 시험에서 반 꼴찌를 했다. “3학년 1학기 과정을 선행 학습하고 있더군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때의 충격은….” 까까머리 소년은 포기하지 않았다. 점심시간과 주말에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묻고 또 물었다. 그때 만난 은사들은 평생 잊지 못할 인생의 사표(師表)가 됐다. 마침내 소년은 경기고에 당당히 합격해 1973년 입학했다. 경기고 시험 마지막 세대인 72회다. 고교 시절엔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맡기도 했다.

기억나는 동기생들이 누군가요?

“김용덕·고승덕·노회찬·이종걸(직함 생략) 등등 많지요. 대법관을 지낸 김용덕과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했던 고승덕은 ‘공부의 신’으로 불렸어요. 나름 공부벌레라기보다는 개성도 있었어요.”

개인 김무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은 누군가요?

“‘장래 어떤 직업을 가져도 좋지만 훌륭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보살펴주신 중학교 은사님들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주셨어요.”

그 영향으로 교육자가 되신 건가요?

“처음에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죠. 평화지향적 외교를 통해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유럽을 평화로 이끌었잖아요.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인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터졌을 때 ‘분배보다는 생산이 중요한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리고 생산의 중심은 바로 에너지라고 생각해 원자력공학을 선택했고 교수가 됐네요. 학생 개개인의 성향에 맞게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게 가르치는 게 교육철학입니다.”

청년들이 취업난 등으로 좌절을 겪고 있어요. 당부 말씀을 해주시죠.

“자기주도적으로 인생을 개척해야 합니다. 이젠 ‘평생직장’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요. 평생 서너 번 직업을 바꿔야 한다잖아요. 실리콘밸리에 가보니 평생 열 번은 이직한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머지않아 이런 일이 일어날 겁니다. 자신만의 뚜렷한(unique) 개성과 능력을 키우고 경험을 축적하는 게 실력입니다.”

‘영원한 포스텍 맨’인 김 총장은 평생을 기계와 소통하며 살아와 자연과는 소통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서 훗날 아내와 함께 자연 여행을 떠나는 게 버킷리스트란다. “자연과 얘기하며 인생의 진리와 겸손,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 ■ 1958년 부산 출생
■ 1976년 경기고 졸업(72회)
■ 1980년 서울대 원자력공학 학사
■ 1982년 서울대 원자력공학 석사
■ 1986년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원자력공학 박사
■ 1987년 포스텍(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교수 학생처장, 입학처장, 기획처장, 첨단원자력공학부 주임교수
■ 2019년 9월 제8대 포스텍 총장

※ [주요 경력]
■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자문기구 한국대표위원
■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
■ 한국원자력학회 평의원
■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김무환 총장 약력

※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교육저널리즘으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교육데스크, 정책사회데스크, 사회1데스크, 행정국장, 사회에디터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마음은 따뜻하고 시선은 엄정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소신을 갖고 있다. 공저 [한국의 파워 엘리트]와 역서 [멀티미디어 조직혁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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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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