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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 심층 인터뷰] 이근 서울대 교수가 말하는 코로나19 이후 한국 경제 

“文 정부, 기업이 ‘지를 수 있는’ 시스템 만들어줘야” 

한국 기업은 주주 견제 탓에 장기투자 어려워… 차등의결권 도입할 때
제조업 리쇼어링 해결책은 공장 자동화… 바이오·디지털에서 먹거리 찾아야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위기를 우리나라 산업의 구조 재편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는 2월 4일 울산 5공장 생산라인 일부의 작업을 일시 중단했다. 코로나19로 중국에서 오는 자동차 부품 ‘와이어링 하니스’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탓이었다. 중국 공장이 움직이며 생산이 재개됐지만, 중국 경제와 연동되는 한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생산 기지이자 소비시장인 중국의 불확실성은 한국 경제에 대형악재다. 대기업부터 직격탄이다. 이근(60)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위기를 우리나라 산업의 구조적 재편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다. 이 교수는 ‘경제발전론’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다. 영문 저서 [경제추격에 대한 슘페터학파적 분석]으로 비서구권 학자 중 최초로 슘페터상(2014년)을 받았다.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분과 의장을 비롯해 서울대 경제연구소 산하 비교 경제연구센터장, 경제추격연구소장, 한국국제경제학회장,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회장 등을 맡고 있다. ‘후발국 경제나 기업이 선발국을 따라잡는 경제추격 현상’에 관한 규명으로 대한민국 학술원상(2015년)과 경암상(2019년)을 수상했다. 인터뷰는 3월 3일 서울대에서 진행됐다.

중국 경제의 미래 | “기업과 지방정부 적자, 부동산 버블에 허덕이는 中”


▎코로나19 여파로 중국 금융의 중심지인 상하이 동방명주 일대에도 인적이 끊겼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 경제의 어떤 부분이 우려되는 상황인가?

“기업 차원의 혁신, 첨단 기술 도입은 잘 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 부채나, 지방정부 부채, 주택시장 버블 같은 문제가 있다. 미시적으로는 괜찮은 기업들이 많은데, 거시적으로는 권위적인 경제 체제에서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정부 주도에서 시장 왜곡이 발생했다. 중국은 중앙정부 흑자, 지방정부 적자로 전반적인 균형을 유지해왔는데, 세계 금융위기(2008년) 이후, 최근의 코로나19 사태까지 이어지면서 중앙이 지방에 대한 통제를 풀었다. 지방정부의 적자가 확 늘어나면서 중국 전체가 적자로 돌아섰다. 미·중 무역전쟁과 같은 외생적 쇼크에 대비하다 보니까 중국 국내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3월, 9500억 위안(약 216조원)의 사상 최대 적자예산을 발표했다. 과거에 그랬듯 이번에도 중국이 위기를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

“정부 재정으로 막고 있는 부작용이 점점 커지는 게 문제다. 중국의 기업부채 비율이 150%를 넘어섰는데, 이는 과거 한국 외환위기 직전 90년대 상황과 비슷하다. 중국은 해외에 자본시장을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환위기로 가진 않겠지만, 신용경색과 같은 대내적 위기는 발생할 수 있다. 정부 힘으로 막고는 있는데, 점차 부담이 되면서 경제가 왜곡되고 있다.”

어쩌다 중국은 거품을 키웠을까?

“지금은 중앙정부도 어려워지면서 재정 여력이 떨어지고 있다. 시진핑 정부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성장률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를 건실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 그러나 이것이 (2008년) 금융위기에 의해 멈춰버렸다. (그 결과) 중국은 대내적인 뇌관을 계속 안고 가는 것이다. 대외적 충격에 버티곤 있지만, 내부에서 곪아가고 있는 게 문제다.”

중국 경제 경착륙에 대한 견해는?

“그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가 등장한 이후 미국의 대중(對中) 정책이 확 바뀌었다.”

오바마 때와 비교했을 때 어떻게 바뀌었나?

“트럼프 이전까지 미국의 정책은 중국을 세계 경제에 편입시키고, 중국이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진핑은 세계 금융위기를 보고, ‘미국식으로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까지 덩샤오핑식으로 민영화하던 것을 멈추고, 국영기업이 국가 경제를 주도하는 방향으로 바꿔버렸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구나. 파트너가 되기 어렵겠다’ 싶었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지금까지의 대중 정책은 실패했다. 이제 중국을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포위하겠다’로 바뀐 것이다.”

앞으로도 미국의 이런 기조는 강화될까?

“이런 인식은 트럼프뿐 아니라 미국 민주당 내에서도 존재한다. 올해 트럼프가 재선하든,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든, 대중 정책은 더 강화될 것이다. 이는 중국에 큰 도전이다. 미·중간 갈등을 막다 보니까 점점 부담된다. 미국은 쌍둥이 적자(무역과 재정 적자)라도 달러를 찍어 메울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인민폐는 그런 정도의 국제화가 안 되어 있다. 외환위기는 아니라도, 국내경제가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시간은 중국 편이 아닐 수 있겠다.

“중국은 세 가지 함정에 빠져 있다. 첫째, 1인당 국민소득이 미국 대비 40%를 넘겨야 한다는 중진국 함정이다. 아직 30%도 채 벗어나기 전에 미국과의 헤게모니 싸움인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졌다. 그리고(홍콩사태 등에서 노출된) 정치적 민주화의 함정이다.”

한국과 대만이 중진국 함정을 돌파한 비결은?

“개발도상국의 성장 모델은 대부분 저급·저가의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해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 한계는 어느 정도 중진국에 도달하면, 국내 물가가 올라가면서 임금이 상승하고 노동집약적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 예가 태국,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선 노동집약적이 아닌 기술집약적 상품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한국과 대만만 달성했다.”

이 벽을 넘기가 그렇게 어렵나?

“태국이 전형적으로 중진국 함정에 빠진 국가다. 고부가가치까지 못 갔다. 가령, 자동차산업에서 현대자동차의 업적은 엔진과 트랜스미션을 국산화한 것이다. 반면 태국 자동차산업은 일본계가 장악하여 국산화에 한계가 있었다. 전자산업의 경우는 말레이시아가 그런 예인데, 삼성전자처럼 핵심적인 반도체 설계를 못 했다.”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 | “삼성이 7년 적자 보며 반도체 투자할 수 있겠나?”


▎경남 창원의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 경한코리아 공장에서 작업중인 로봇.
이근 교수는 자본주의의 모델을 ▷영·미식 ▷유럽대륙식(프랑스·독일식) ▷북유럽식 ▷동아시아식, 네 가지로 분류한다. 영·미식은 국민소득의 성장률이 낮고, 분배가 안 좋은 상태다. 동아시아는 영·미식과 대칭에 선다. 프랑스·독일식은 그 중간쯤에 위치하고, 영·미식보다 국가가 개입한다. 북유럽식은 분배를 더 중시한다. 한국 자본주의에 관해 이 교수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에서 영·미식 자본주의로 넘어갔다”고 진단한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자본주의는 2000년대 이후 영·미식과 같은 그룹으로 변형됐다는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질적 변화는 1997년 말 터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큰 모멘텀이었을까?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특징이었던 고(高)투자가 사라졌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투자율이 40%에서 35%로 떨어졌다. 개방이 되다 보니까 분배가 악화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영·미식 자본주의의 특징은 투자보다 배당을 중시한다. 외국지분이 많은 한국의 우량기업들에서 해외로 배당이 빠져나가는 구조가 정착됐다.”

영·미식 자본주의가 기업 투자를 저하한다?

“투자의 감소 이유는 세 가지다. 해외로 돈이 빠져나가는 것, 고비용 구조와 규제이다. 뒤의 두 가지는 많이 알고 있는데, 배당 문제는 다소 간과하는 것 같다. 한 해 외국인들이 배당 등으로 가져가는 돈이 250억불이 넘고 급증세다. 97년 외환위기 때 IMF에서 당시 구제금융 받아서 3년 동안 갚은 액수가 250억불임을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다. 실제로 배당 철이 되면 외환시장이 출렁거릴 정도다. 투자보다 배당이나 자사주 취득으로 주가부양을 중시하면 단기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그 길로 가고 있다.”

그럼 과거의 동아시아 자본주의, 소위 재벌 체제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인가?

“현재 한국 재벌은 패밀리 오너쉽과 영·미식 경영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모델이 됐다. 이윤 배분에서 재투자, 배당, 임직원 보너스 간에 적절한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혼합형 자본주의 모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주주중심 경영 같은 영·미식 자본주의의 폐해를 오너식 자본주의가 막아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부분이 점점 약화하고 미국식 경영이 중시되면서 투자는 줄어들고 있다. 이건희 회장 시절 삼성은 7년간 적자 보면서도 반도체에 투자했다. ‘삼성 망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던 그런 (장기)투자를 지금은 못 한다. 그때는 (오너 경영자의 판단으로) 계열사 돈 끌어모아서 투자했는데, 이제는 주주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 자본주의의 활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벤처기업 투자가 활발하다. 또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을 보면, 최초 상장 시에 한해 창업주는 차등의결권을 가져서 주식 1주당 10배의 의결권을 갖는다. 주주로부터 보다 자유로운, ‘지를 수 있는’ 투자를 할 수 있는 구조다. 한국은 차등의결권 같은 시스템이 없다. 국회에 법안이 상정되었으나 막혀 있다. 유럽처럼 오래 주식을 보유할수록 의결권과 배당을 더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안 하면 투기자본에 계속 휘둘리게 된다. 현재 대한항공이 그런 상황이다. 어떻게 주식을 일주일 보유한 사람과 1년 보유한 사람의 의결권이 같을 수 있나?”

미국, 유럽의 사례가 있음에도 왜 우리는 도입하지 않을까?

“차등의결권 말만 들어도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결국 재벌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인식이 강하다. 우선은 벤처기업에만 해당하는 것이라고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보유 기간에 비례하는 의결권 배당은 기존 기업에 허용하는 병렬 방식으로 가면 창업주도, 국민연금도 좋아할 것이다. 기업 가치를 보고 장기 투자하는 사람들은 좋아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의 미래 | “자산 격차 경시한 소득주도 성장은 한계”

문 정부는 영·미식 자본주의의 폐해인 분배 구조 약화를 보완하기 위해 소득주도 성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영·미식 자본주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소득주도 성장은 한계가 명백하다. 딜레마다.

“소득 격차, 불평등의 원인이 어디냐의 문제다. 임금 소득의 차이보다는 자산소득, 금융소득, 배당, 부동산 등에서의 차이가 크다. 이 부분을 손 안 대고 임금만 건드리면 반쪽이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현 주중 대사)은 임금 차이가 큰 요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쪽을 건드린 것인데 사실은 금융, 배당 등에서의 차이가 훨씬 더 크다. 이런 개인소득에 대한 과세는 높이되, 법인세는 인하해 생산적 산업자본을 활성화해야 소득 격차를 줄이는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

결국 정부가 기업을 활성화해서 혁신 성장을 끌어내야 할 텐데 규제가….

“1987년 이후 우리나라 기본 정책은 경제력 집중 완화다. 재벌의 성장을 막자는 것인데 그것부터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건 하나의 모순인데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재벌 기업에 취업하고 싶어하는데 정부는 그 팽창을 막고 있다. 재벌 기업을 더 크게 해서 일자리가 많이 나와야 젊은이들의 수요를 맞출 수 있다. 재벌 기업들의 스타트업 인수합병을 장려해야 한다. 그러면서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는 것 아닌가. 이를 통해 대박 치는 사례가 더 나와야 대기업의 인재들이 그걸 보고 뛰쳐나와 창업할 것이다. 가족 지배의 폐해, 불공정거래 같은 것만 확실히 잡으면 재벌 기업이 크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기업은 중소기업 인수합병을 안 한다.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니까, 해외 기업은 인수해도 국내 기업은 안 한다.”

근본적으로 국민 정서가 재벌 체제에 우호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정치인은 이런 정서를 이용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에 재벌 체제 말고 남은 게 뭐가 있나. 정부도 결국 위급 상황에서는 재벌 기업들에 손 벌린다. 수소경제, 바이오, 반도체…. 모두 재벌 기업들이 하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을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인수·합병과 창업을 매개로 대기업과 중소벤처 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재벌 기업의 숨통을 틔워주면 정부는 (일자리 외에) 직접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세금을 많이 걷을 수 있지 않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려면 숙명적으로 노동시장의 경직성 문제를 풀되 사회보장은 강화하는 유연안정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 전제 중 하나가 직무형 임금제도이고 대통령 공약 사항인데, 노총 등의 저항으로 못하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의 결단에서 배워야 한다. (제조업 리쇼어링의) 유일한 해결책은 자동화다. 단순히 세제혜택 이런 것으론 안 된다. 중소기업 공장이 자동화하고 스마트화하면, 그만큼 비용절약이 되기에 한국에서 생산을 할 수 있게 된다. 자동화만 되어도 버틸 수 있는 기업들이 많다.”

자동화가 될수록 노동 양극화가 되지 않나?

“자동화하지 않으면 그냥 그 회사가 문을 닫게 된다. 그러면 더 많은 노동이 사라진다.”

우리나라는 로봇 사용률 1위로 알려져 있다. 자동화가 이미 잘 돼 있는 것 아닌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중심이다. 중소기업들은 아직 할 여지가 많이 있다.”

로봇이 노동을 대체할수록, 인간의 박탈감은 커질 것이다.

“수소차와 전기차 논의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전기차는 부품이 덜 들어가서 노동이 덜 필요해지는데, 수소차는 전기차보다는 노동의 사라지는 양이 적고, 부품 생태계 훼손도 많지 않다. 현대자동차가 수소차로 가려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노사 간 어느 정도 이해가 맞는 것이다.”

세계적 트렌드는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 아닌가?

“그건 아직 모른다. 지금은 전기차가 조금 앞서지만 버스, 상용차에서는 수소차가 강점이 있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전기차는 아직 충전 시간 문제가 남아 있다. 둘 간의 게임은 끝이 안 났다.”

삼성전자 등 한국 산업의 미래 | “이재용 부회장의 M&A는 좋은 방향”

대한민국 산업을 언급할 때, 삼성전자를 빼놓을 순 없다. 삼성전자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기술력, 제품개발력 면에서 대단하다. 미국에 출연된 특허를 보면, 최근 10년간 1~2등이 항상 IBM 아니면 삼성전자였다. 삼성 전체 그룹으로 따지면 세계 1등이다. 삼성이 과거처럼 가성비 높은 값싼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제 기술력이 압도적이라는 의미다. 또 하나 삼성의 강점은 최종 소비재와 중간재(부품) 양쪽 모두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겸비한 유일한 기업이다. 다각화돼 있어서 어느 한쪽 상황이 안 좋아도 잘 버티는 편이다. 애플이 잘 되면 애플에 파는 부품(반도체)이 잘 되고, 안 되면 휴대폰(삼성 갤럭시)이 잘 되는 식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애플은 제품군이 적은데 삼성은 다양하다. 그것들을 연결할 때, 엄청난 시너지가 나올 수 있다.”

삼성전자가 노키아처럼 쇠락할 수도 있다. 위험요소는?

“삼성전자는 하드웨어는 잘 만드는데, 소프트웨어는 약하다. 소프트웨어가 점점 중요해지는 추세라는 점에서 자칫하면 올드 기업이 될 수 있다. 미국만 봐도 (대표 기업이) 과거의 MS나 IBM이 아니라 지금은 F·A·N·G(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이다. 삼성전자는 여기에 못 끼는 상황이다. 이런 전환이 쉽지만은 않다. 장기적으로 삼성전자가 어떻게 할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삼성전자가 수성에 치중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는데.

“구글은 1년에 2~3개씩 M&A(인수합병)를 하면서 큰 기업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내부에서 확장한 기업이다. 이제는 삼성전자도 M&A를 하고 있다. 좋은 방향의 변화다. 그런 면에서 (이 부회장이 수성형 CEO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산업에서 반도체를 대체할 분야를 꼽는다면?

“바이오(Bio)다. 개인적으로 바이오가 삼성의 새로운 성장 산업으로 클 것이라고 본다. 한국은 그동안 숏 사이클, 단품 기술을 했는데 그런 것은 중국에 금방 추격당한다. 그 반대로 롱 사이클, 융복합 기술로 가야 한다. 부품 소재나 바이오, 이런 것들을 잡으면 독일이나 스위스형 경제가 될 수 있다.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다.”

바이오는 ‘하이 리스크 - 하이 리턴’ 산업이다.

“바이오 원약은 선진국이 잡고 있다. 바이오 시밀러는 바이오 원약을 카피해서 만드는 새로운 기술이다. 셀트리온이(바이오 시밀러를) 세계 최초로 실현했다. 한국의 독보적 기술이다. 바이오 시밀러를 통해 진입 기회가 생긴 것이다. 한국에 천재일우의 기회다. 바이오 시밀러로 돈과 경험을 쌓아 신약개발로 나아가면 된다.”

한국 경제가 미국을 추격하는 걸 논하기 전에 궁금해졌다. 왜 미국 경제는 독일, 일본의 추격을 뿌리치고 항상 1등인가?

“세계 인재를 다 끌어모으고, 세계 우수한 기업을 모두 M&A 하니까 계속 1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조지프 슘페터를 인용해 ‘새로운 기술 경제 패러다임의 등장이 후발 주자에게는 기회의 창이 된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하나로 우리나라 벤처기업이 대기업 구조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을 지칭. 2019년 기준 한국에 11곳이 있다)’들이 벌써 꽤 되고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자생적으로 크거나 대기업에 인수되는 방식으로 커 가면 된다. 대부분 디지털 기업들이긴 하지만 그쪽이 대세다.”


▎한국 바이오산업의 대표 기업인 셀트리온의 인천 송도 공장 바이오리액터 홀.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찾아서 | “금리인하가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다”

이 교수는 2020년 한국 경제를 ‘오리무중 속의 고군분투’라고 정리했다. 한국 경제는 ‘단기 변동 속의 추세적 하락’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정부는 재정 확장, 금리 인하에 계속 손을 대고 있지만 점점 악순환에 접어들고 있다.

“금리 인하는 전통적인 경제 정책이다. 이미 금리가 낮다. 자꾸 돈만 푸는 건 마약과도 비슷하다. 금리를 내려도 투자는 안 늘고, 부동산으로 여유 자금이 돌아다닌다. 기대 효과가 안 나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더 문제를 크게 만들 수 있다.”

소위 진보 정부에서 양극화가 심화하는 역설이 빚어지고 있다.

“금리 인하는 분배 효과도 적다.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만 더 빌리게 된다. 금융 위기의 해결책이라고 돈을 더 풀었더니 주가와 자산은 오르는데, 일자리는 안 생긴다. 이럴수록 분배가 더 악화한다. 오히려 이 돈으로 핀셋식, 맞춤형 정책을 펴는 게 맞다. 금리 인하는 대단히 무딘 정책이다.”

그래도 정부 입장에서 돈을 푸는 건 성장률이 너무 떨어지면 곤란하기 때문 아닐까?

“그럴 수 있다. 금리를 내리면 성장률이 오른다는 게 거시경제의 법칙이니까. 그러나 이미 (양적완화를 실시한) 다른 나라에서 그게 잘 안 되는 것으로 증명됐는데, 그걸 또 쓴다는 것은 회의적이다.”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분과 의장인 이 교수에게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조언을 구한다면 무슨 말씀을 전하고 싶은가?

“사실 (청와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서) 한번 직접 말씀드린 적이 있다. 디지털 인프라를 강조했다. 3차혁명 시대의 초고속망이 역할을 했다면, 4차 시대에는 디지털 팩토리에서 더 나아가 디지털헬스(원격의료), 디지털 교육 등의 디지털 인프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데 이미 투자했으면 이번에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당장 서울대도 다음 주부터 비대면 강의를 하려고 시스템을 갖추느라고 허둥대고 있다.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다. 최근 청와대가 디지털혁신비서관을 신설했는데, 이런 디지털 인프라로 확 질렀으면 한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 녹취 정리 박지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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