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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 현지르포] 바이러스와의 사투 한 달, 대구의 기록 

‘대탈출’도 사재기도 없어… 다들 훌륭하게 버텼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의료진, 시민들의 저력
남 탓 않고 자기 책임하에 현실과 마주하다


▎2월 23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코로나19 여파로 임시휴업을 한 상가연합회 관계자들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조선시대에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의 하나였던 대구장(서문시장). 2만여 상인의 삶의 터전인 서문시장은 지난 2월 25일부터 3월 1일까지 엿새간 휴장에 들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다. 시장 상인들은 “50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6·25 전쟁통에도 쉬지 않았던 곳이다.

휴장을 끝낸 지 사흘째인 3월 4일 시장을 찾았다. 4000여 개 점포의 대부분이 문을 열지 않았다. 상가 건물들 사이로 빼곡히 줄지어 선 국수가게 난전마다 국방색 비닐 천이 덮여 있다. 적막감마저 돈다. 간신히 문을 연 국숫집 하나를 발견했다. “장사 좀 됩니까”라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주인 박 모(72)씨는 “손님 기대하고 나온 기 아입니더. 냉장고에 오래된 재료 비울라고 나왔지”라고 했다.

발 디딜 틈 없는 장터에서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문시장의 명물 칼국수를 즐기던 일상은 온데간데없다. 시장 안 소방서 앞에서 만난 택배기사는 “어제, 오늘 한 건의 배달 주문도 못 받았다”며 “지옥 같은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상이 사라진 도시 대구


▎3월 13일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위해 보호구 착의실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구의 첫 확진자인 31번 환자가 나온 것은 지난 2월 18일.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날 집단감염의 온상이 됐던 신천지 대구교회를 폐쇄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가속화하자 주말을 앞둔 21일 시민들에게 외출과 집회 자제를 요청했다. 천주교 대구교구는 100년 만에 미사 중단을 선언했다. 개신교 교회도 예배 중단에 동참했고 팔공산 동화사의 산문도 23일 폐쇄됐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응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한 다음 날인 2월 24일. 코로나 확진자가 6일 만에 400명을 넘어섰다. 확진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팔랐다. 시민들의 출퇴근 때를 제외하고 대구의 시가지는 텅 비어 있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객차에서는 승객 구경하기가 힘들다.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의 영화관은 물론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다. 10여 일 후인 3월 6일 오후. 문을 연 가게가 조금씩 늘었지만 손님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해 질 무렵 만난 택시 기사는 “하루 사납금이 14만원이지만 새벽에 나와 지금껏 5만원을 못채웠다”고 말했다. 그가 속한 회사의 택시 가운데 15%만 운행 중이다. 중앙지하상가에서 13㎡(4평) 규모로 옷가게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곧 여름옷을 들여야 하는데 봄옷이 고스란히 재고가 됐다”며 “월 1500만원씩 적자가 쌓이면 두 달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성구 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영남대 학생은 “월세는커녕 식비 마련하기도 벅차다”며 “코로나로 적금통장을 깨야 할 처지다”라고 말했다. 자영업과 소상공인, 일용직 가릴 것 없이 대구 경제가 주저앉고 있다.

점포 앞에서 서성거리는 상인들의 눈엔 불안과 낭패감이 가득하다. “왜 하필 대구냐”는 울분도 엿보인다. 상인들은 “코로나도 무섭지만 장사를 접고 실업자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대구국제공항의 하늘길도 사실상 폐쇄됐다. 3월 13일 대구에서는 대구-제주 간 국내선 항공기 두 편만이 오고간다. 지난해 여름(7월) 하루에 항공기 100편이 뜨고 내리던 대구국제공항이었다. 대구와 구미 산업단지의 기업들은 중국, 베트남 출장이 막히고 원자재 수급이 안 돼 조업과 생산을 중단하는 라인이 늘고 있다.

1995년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사고(사망자 101명, 부상자 202명), 2003년 대구 중앙로 지하철역 방화사건(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 등 대구는 큰 재난을 당해 많은 희생자를 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도시 전체와 경제가 이처럼 멈춰선 것은 처음이다.

결혼식도 장례식도 전시처럼 치러진다. 코로나19 희생자를 화장하는 대구시립화장장 명복공원. 이곳에는 희생자 가족들의 눈물과 통곡이 그칠 새가 없다. 대부분 고인의 유언도 못 듣고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바로 화장된다. 감염병관리법에 따라 ‘선(先)화장 후(後)장례’를 치르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유가족이라도 레벨D라는 방호복이 없으면 화장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다. 의료진의 방호복도 부족하다 보니 유가족에게 넉넉히 지급되지 못하는 어려운 사정이 있다. 한 유족은 “확진 판정 후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돌아가셨다”며 “이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 아파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그게 마지막


▎2월 24일 대구 이마트 경산점에서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3월 13일 0시 현재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928명(전국의 74%), 사망자는 48명(전국의 72%)이다. 김신원 대구 감염병관리지원단 단장(경북대 교수)의 말이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인생에서 장례라는 큰일을 당해 가족도, 조문객도 없이 바로 화장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쓸쓸한 일이다. 그러나 감염병의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코로나19가 전파력은 높지만 치사율은 높지 않아 건강한 일반인들은 지나치게 염려하거나 공포감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보건당국의 설명에도 불구, 많은 시민이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연로한 부모님이 응급상황으로 병원에 실려가 양성 판정을 받고 돌아가시면 얼굴조차 못 본 채 이승과 저승의 이별을 해야 한다. 대구가 아프다. 크게 아프다.

자고 나면 300~700명씩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에 질려 온 도시가 충격에 빠지고 슬픔에 잠겼지만 대구는 다시 일어서고 있다. 자신의 처지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가족과 이웃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시민들이 늘어나면서부터다.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면서 어떻게든 견뎌내고 이겨내야 한다는 의지가 이심전심으로 모이고 있다.

취업난 속에서 지난해 11월 문을 연 칠성시장 야시장의 청년들은 개장한 지 4개월 만에 코로나 한파를 맞았다. 새로운 꿈을 제대로 한번 펴보지도 못한 채 언제 장사를 접어야 할지 모를 위기 속에서도 박수찬씨 등 청년상인 6명은 도시락 온정을 발휘했다. 200~300인분의 도시락을 대구의료원과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에게 세 번이나 전달했다.

“코로나 끝나면 꼭 대구로 여행 갈게요”


▎3월 8일 대구시청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이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대구시
대구의 사회적기업인 공감씨즈 허영철 공동대표는 타지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의료진들을 위해 게스트하우스 방 15개를 모두 내놓았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자원봉사를 온 의료진들이 숙박 장소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허 대표는 “직원들이 50% 임금 삭감을 결의한 상태지만 고마운 분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며 “의료진에게 드리라며 전국에서 음식과 성금을 보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대구 대탈출’이나 사재기도 없다. 대구에서 네 살, 일곱 살 아이를 키운다는 주부 이야기다. “타지에 있는 신랑이 초기에 시부모님과 함께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안 간다고 했어요. 지금 대구에서는 기사에 뜨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훌륭하게 견디고 있어요.”

자신도 혹시 감염됐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폭넓게 자리 잡았다. 한때 정치권이 ‘대구봉쇄’를 거론하는 결례를 저질렀지만 시민들은 일찌감치 ‘자발적 봉쇄’를 택한 것이다. 이런 대구 시민들의 소식을 접한 광주와 경기도 시민들은 “코로나 끝나면 꼭 대구로 여행 갈게요”라고 화답했다.

서울의 한 직장인은 “부모님들도 마스크가 부족할 텐데 우체국에서 몇 시간 줄서서 산 마스크를 서울로 보내주셨다”며 “너희들은 일한다고 바쁘니 마스크 살 시간이 없지 않느냐고 하셨다”며 눈물을 흘렸다.

서문시장 맞은편에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이 있다. 환자 300여 명이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민간병원이지만 대구에서 가장 먼저 기존 환자를 내보내고 코로나19 확진자를 받고 있다. 병실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부산, 서울로 전전하다 목숨을 잃는 환자들을 보다 못해 민간병원이 수십억 원의 손해를 무릅쓰고 개방했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의료 현장이지만 가슴 뭉클한 감동의 스토리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또 다른 연대와 배려의 공간이다.

이 병원에서는 전국에서 생업을 접고 달려온 의사와 간호사 30여 명이 매일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경남 거제에서 온 의사 박태환씨는 “환자의 곁을 지키는 것은 의사의 본업이지 봉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시인 박미영씨는 “우리는 봉사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본업이라는 말에 대구 시민은 엄청난 감동과 용기를 얻었다”며 “일상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대구와 대한민국의 시민 모두가 힘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서구 중리동 대구의료원. 환자 300여 명이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은 동산병원보다 상대적으로 경력이 짧다. 서명순 감염관리팀장은 “확진환자들이 갑자기 수백 명씩 늘어나자 딸 같은 후배 간호사들이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채 전선에 투입됐다”며 “긴장감 속에 일하다 지쳐 쓰러져 쪽잠을 자는 걸 보면 피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병상을 구하지 못한 대구 환자를 광주로 데려가 치료하겠다는 광주 시민사회의 ‘병상 연대’에도 대구 시민들은 큰 감동을 받았다.

낙동강 전선이 된 의료현장


대구에서는 미국 ABC방송의 이언 패널 기자가 현장에서 쓴 기사가 화제가 됐다.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중심지에서’라는 취재수첩 형식의 글이다.

“… 그런데 대구는 폭동도 없고 수많은 감염환자를 수용하고 치료하는 데 반대하며 두려워하는 군중도 없다. 절제심 강한 침착함과 고요함이 버티고 있다. 동산병원 원장은 의사, 간호사, 의약품, 병상 등 모든 것이 모자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결의에 차 있었다.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것이 새로운 일상(New Normal)이 된 2020년, 많은 세계인에게 대구는 삶의 모델처럼 비쳤다.”

대구시는 기존에 10월 8일이었던 대구시민의 날을 38년 만인 올해부터 국채보상기념일인 2월 21일로 바꿨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민주운동 기념일인 28일까지를 대구시민주간으로 정하고 대구의 역사와 정체성을 한껏 고양하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행사가 취소됐다. 권영진 시장은 “지금 대구는 초유의 위기상황 속에서 어쩌면 가장 소중한 ‘시민의 날’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70년 전 낙동강 전선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대구·경북의 시민정신이 코로나19 현장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김원섭 고려대(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 사태를 이렇게 분석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전국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특정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혐오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코로나 사태는 우리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운명공동체인 점을 확인시켜줬다. 우리는 빈부·지역·성별에 관계없이 바이러스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대구의 고통은 곧 모든 국민의 고통이다. 혐오와 배제의 언어보다는 배려와 연대의 언어가 절실하다 ”

바이러스를 대구에서 종식시켜 대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대구의 시민정신과 대구 밖에서 대구를 향해 내민 연대와 배려·응원의 손길은 앞으로 언제 또 닥칠지 모를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대한민국이 잊지 말아야 할 새로운 매뉴얼이 되고 있다.

- 오경묵 한국경제신문 대구주재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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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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