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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특집 | 격전지를 가다] 서울 광진을, 고민정과 오세훈의 맞대결 

승자의 앞날에 무문가도(無門街道) 열린다 

高, ‘5선 중진’ 키운 민주당 아성… ‘포스트 추미애’ 띄워 표심 단속
吳, 개발 소외감에 코로나 여파 민심 균열… ‘큰 인물론’으로 파고들어


▎서울에서 손에 꼽히는 민주당의 전통 텃밭인 광진구을 선거구에선 ‘문재인의 입’ 고민정(왼쪽) 전 청와대 대변인과 서울시장 재선의 관록을 내세운 오세훈 전 시장이 맞붙는다. / 사진 : (좌)연합뉴스, (우)신인섭 기자
국회의원 선거의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는 크게 세 가지다. 인물, 지역 특성 그리고 민심이 그것이다.

정당의 간판, 즉 골리앗들의 싸움만큼 거물과 신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도 흥미진진한 요소다. 역대 선거에서 유권자의 눈을 사로잡은 드라마틱한 대결은 대개 거물과 신인이 맞붙은 곳에서 펼쳐졌다. 1992년 12대 총선 때 부산 동구에서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발탁한 정치 신인 노무현 후보가 5공 실세 허삼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서울 광진구을은 이번 총선에서 주목할 만한 다윗과 골리앗의 전장이다. 당초에는 골리앗들의 싸움터가 될 뻔했다. 이곳에서 5선을 거머쥔 터줏대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맞대결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추 장관이 입각하면서 빅매치가 성사되지 않았다.

추 장관 대신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이 결전에 나섰다. 민주당의 전략공천을 받아 나선 고 전 대변인은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경선 캠프와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를 거쳐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다. 후보 시절부터 줄곧 문 대통령을 보좌해 ‘문재인의 입’으로 불린다. 정치 신인이지만 청와대와 여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인물은 오세훈, 지역 성향은 고민정


▎광진을 지역은 1996년 정치에 입문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2016년 20대 총선까지 5차례 당선시킨 정치적 산파 역할을 했다. / 사진:뉴시스
오 전 시장은 일찌감치 광진을 지역구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아 표밭 다지기에 공을 들였다. 20대 총선 때 종로 출마를 위해 잠시 주소를 옮긴 것을 제외하면 2016년부터 광진을에서 거주해왔다. 그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두 후보의 객관적인 경력만 비교하면 오 전 시장이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총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세 차례 승리한 경험이 있다. 대중적 인지도에선 고 전 대변인도 뒤지지 않지만, 선거를 치러보거나 정책을 직접 펼쳐본 경험이 없는 게 약점이다.

하지만 인물만으로 선거의 승패가 가려지는 건 아니다. 지역의 유권자 특성도 중요한 요소다. 이는 고 전 대변인에게 유리한 요소다.

광진을 지역은 서울에서 흔치 않은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유권자의 약 30%가 민주당에 우호적인 호남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에 치러진 15대 총선부터 2016년의 20대까지 20년간 보수정당에 배지를 내준 적 없는 곳이다. 추 장관은 6차례 총선에서 다섯 번을 승리했다. 유일하게 낙선한 17대 총선에서도 보수 정당이 아닌 김형주 열린우리당 의원이 당선했다. 자양3동을 중심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부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지만, 선거구 전체의 유권자 성향을 뒤바꿀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민심 이반이 감지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이 지역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한 것이다. 옆 동네인 성동구의 경우 ‘마용성(마포·용산·성동)’으로 불리며 강북 집값 상승의 최대 수혜지로 떠오른 게 불을 붙였다. 성동구에 비하면 광진을 지역의 발전 속도는 더디다. 건국대학교 주변 등 몇 군데 고급 아파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연립이나 다세대주택이 밀집된 오래된 베드타운이다.

개발과 정비가 더디다 보니 추 장관에 대한 주민들의 피로감이 크다. 광진을 지역에 거주하는 한 40대 회사원은 “추 장관이 20년 동안 지역에 기여한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중앙 정치에 매달려 있느라 주민의 바람에 귀 기울이는 데 소홀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민심의 변화는 역대 추 장관의 득표율 변화에서 알 수 있다.

‘마용성’ 뜨자 광진 소외감 깊어져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지역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맞붙어 있는 성동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광진을 지역 민심이 선거의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건대입구역의 한 음식점에 휴업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사진:뉴시스
추 전 장관의 역대 지지율은 대체로 내림세다. 정치에 입문한 15대 때 43.77%를 얻은 뒤 16대에서 57.35%로 정점을 찍었다. 17대를 건너뛰어 18대에서 51.29%, 19대 55.19%로 지지기반이 공고해지는 듯하더니 20대 총선에서 48.53%로 초선 이후 50% 방어벽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추 장관에 대한 유권자의 피로감은 고 전 대변인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급격한 경기침체가 민심 이탈을 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직격탄을 맞은 탓에 지역 골목상권이 크게 위축됐다. 오 전 시장 측 관계자는 “수개월간 매일 지역의 상가를 돌아보니 코로나 사태 이후 거의 모든 상점이 개점휴업 상태”라며 “민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그 어떤 정치적 비전과 수식어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 같은 지역 특성과 민심이 오 전 시장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다.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 주거 환경을 정비하고, 한강 주변 지역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진을은 한강을 끼고 강남과 마주 보고 있는 곳이다. 수변구역 개발과 노후 주거 밀집 지역의 개발 수요가 크다. 이런 점 때문에 오 전 시장 측도 서울시장 경험이 우호적 여론을 형성하는 밑천이 된다고 기대하고 있다.

결국 광진을 선거는 이번 총선의 메인 테마인 인물론과 야당심판론의 대결이 될 공산이 크다. 현재까지 여론조사에선 두 후보의 지지율이 팽팽한 힘겨루기 양상을 보인다.

지난 3월 3일 뉴시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고 전 대변인은 46.1%로, 42.0%를 얻은 오 전 시장을 오차범위(±4.2%p) 내에서 근소하게 앞섰다.

고 전 대변인을 선택한 요인으로는 ‘소속 정당’(41.5%)을 가장 많이 꼽았다. 오 전 시장의 경우 ‘능력과 경력’(28.9%)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혔다. 고 전 대변인에게는 탄탄한 민주당 지지층이 힘을 실어주지만, 오 전 시장은 인물론이 먹혀들고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다만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중도 유권자가 9%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 후보가 없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자가 각각 4.1%, 5.3%였다. 이들은 후보자 개인보다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투표할 가능성이 크다. 중도 무당층이 결과를 좌우할 캐스팅보트가 되는 셈이다.

여론조사는 2월 29일~3월 1일 이틀간 광진을 선거구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539명을 대상으로 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4.2%p다(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또 다른 여론조사에선 오 전 시장이 오차범위 밖에서 고 전 후보를 앞섰다. [뉴스핌]이 코리아정보리서치에 의뢰해 3월 2~3일 이틀간 만 18세 이상 남녀 거주자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에서다. 이 조사에서 고 전 대변인은 38.6%, 오 전 시장은 48.2%를 각각 얻었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3월 1~2일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광진을 유권자 5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오 전 시장이 근소하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오 전 시장은 38.5%를 얻었고, 고 전 대변인은 35.9%로 집계됐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p).

‘청와대 가교’와 ‘광용성 시대’의 선명성 경쟁

답답한 쪽은 고 전 대변인이다. 탄탄한 민주당 지지기반에도 불구하고, 40% 선에서 좀처럼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3월 3일 여론조사에서 광진을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이 39.8%로 통합당(23.4%)을 크게 앞섰다. 그런데도 인물론을 내세운 오 전 시장이 고 전 대변인을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조사에서 고 전 대변인 지지율은 35.9%로 오히려 민주당 지지율보다 적게 나왔다.

오 전 시장을 앞지른 3월 2일 여론조사에서도 고 전 대변인의 지지율은 46.1%로 민주당 지지율에 약 5% 안팎을 얹은 수준에 그쳤다. 민주당이 고 전 대변인을 전략공천하기로 결정한 게 2월 19일이었다.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여론조사의 지지율 추이를 보면 고 전 대변인의 컨벤션 효과가 점차 약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한 원외 인사는 “고정 지지층 40%에 ‘플러스알파’가 적어도 5% 이상은 나와야 하는데 지지율이 오르기보다 조금씩 빠지는 흐름이다. 아직 만회할 시간적 여유가 있긴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이나 경기 악화 같은 악재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어서 결코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 전 대변인 측은 오 전 시장보다 뒤늦게 선거운동을 시작한 탓에 지지율이 낮게 나왔을 뿐, 앞으로 만회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내보인다. 청와대 출신이란 점과 추 장관의 뒤를 이은 여성 정치인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스스로 자신의 강점을 현 정부와 지역발전을 위한 정책적 가교 구실을 할 수 있는 적임자임을 내세우고 있다. 고 전 대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구청장, 시장, 대통령까지 다 연결되는 후보”라며 “지역 사업을 현실화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강조한다.

오 전 시장은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의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에서 스스로 물러난 뒤 절치부심하며 여의도 복귀를 준비한 만큼 각오가 상당하다. 그가 승리한다면 단숨에 미래통합당에서 유력한 대선 후보의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오 전 시장은 광진구 개발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마용성’이 아닌 ‘광용성(광진·용산·성동구)’ 시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낙후된 곳을 재개발하고, 개발이 어려운 곳은 생활편의시설 투자를 늘리겠다는 청사진이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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