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정밀해부] 문재인 호위무사 ‘문빠’의 실체 

획일주의로 가는 민주당, 파시즘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죄의식으로 노사모에서 극단적 팬덤으로 분화
패권 좇다가 2016 총선 패배 후 탄핵 역풍 맞은 친박의 교훈 되새겨야


▎지난해 1월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신년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8년 11월 JTBC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임원들의 경력을 전수조사해 보도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코레일유통의 비상임이사로 선임된 박모씨다. 이학재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이 코레일과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씨의 주요 경력은 건국대 총여학생회장과 문재인 대선 캠프의 외곽조직인 ‘더불어포럼’ 운영위원을 지낸 것으로 나온다. 이에 더해 인천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레일유통은 역사 내 편의점과 카페 등 유통사업을 담당하는 코레일 자회사다. 비상임이사 연봉은 약 1700만원 수준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리는 이사회 회의에 참석하는 게 전부다. 박씨의 경력은 코레일유통 업무와 연결고리가 없었다. 수수께끼는 다른 곳에서 풀렸다. 박씨가 2016년 9월에 창립한 문재인 대통령의 팬카페 ‘문팬’의 카페지기(운영자)였던 것이다.

지난해 11월 19일 MBC에서 생중계한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의 왼쪽 뒤에 앉아 방송 내내 비춰진 인물이 있었다. 화면에 들어오는 시민 6명 중 유일한 50대. 다른 이들은 20~30대였다. 이 남성은 문팬 회원이자 전국총회 사회자였던 김모씨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참가자 선정 과정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팬카페 문팬에 이목이 쏠렸다. 문팬은 문 대통령의 공식 팬카페라고 밝히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 당선을 돕기 위해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꾸렸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공식 카페에 가입한 회원 수는 3만 명을 넘는다. 1일 방문자 수도 1만 명쯤 된다. 정치인 팬카페치곤 손꼽히는 규모다. 2016년 9월 문팬 창립총회에는 문 대통령도 참석한 적이 있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박범계·박주민 의원 등도 총회에 참석했다. 여권 내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의 팬카페는 여러 개다. 열성 지지자들은 각자 모여 온라인 세계에서 나름의 ‘진지’를 구축했다. 문팬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문팬과 더불어 대표적인 팬카페로 ‘젠틀재인(문재인과의 동행)’이 있다. 문팬보다 5년 앞선 2011년 8월에 결성했다. 2012년 대선을 겨냥했다. 다음 공식 카페 회원 수가 8만6000명에다 1일 방문자 수가 3만6000명에 이른다. 젠틀재인 트위터는 4만5000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자 모임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정치인 팬카페 중 단연 최고 화력 자랑


▎문재인 대통령의 팬카페 ‘문팬’의 카페지기 박모씨(오른쪽)는 현 정부 출범 후 코레일유통의 비상임이사로 선임됐다. / 사진:jtbc 화면 캡처
겉으로는 여느 정치인 팬카페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결속력이 남다르다. 문 대통령에게 누가 될 만한 이슈가 생기면 일사불란하게 모여들어 여론 정지(整地)작업을 벌인다. 이들의 타깃이 되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지난 2월 충남 아산의 한 전통시장 상인이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2월 19일 문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전통시장을 찾았다. 한 반찬가게에 들른 대통령은 상인에게 “좀 어떠세요”라고 물었다. 이 상인의 대답이 화근이었다. 그는 “거지 같아요. 너무 장사 안 돼요”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발끈했다. 상인의 대답이 불경스럽다는 이유에서다. 가게 이름과 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노출됐고, 비난과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일부는 폭언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상인은 모욕적인 발언을 하거나 업무를 방해한 이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아울러 신변 보호도 요청했다.

해프닝일 수 있지만, 비단 이 상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화력(온라인에서 여론 선점 능력)’은 여타 정치인들의 팬덤을 압도한다. 자신들을 ‘문꿀오소리’, ‘달빛기사단’이라고 부른다. 문꿀오소리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고 용맹하기로 유명한 족제빗과 포유류인 벌꿀오소리(라텔)의 기질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문 대통령에게 해를 끼치는 이를 끝까지 쫓아가 사정없이 물어뜯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을 부르는 말도 여러 가지다. ‘대깨문’이란 말은 온라인에선 익숙한 용어다. ‘머리가 깨져도 문재인’의 줄임말인데, 무조건 문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뜻으로 쓰였지만, 열성 지지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2017년 대선 당시 나온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투대문(투표하면 대통령은 문재인)’ 등도 지지자들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대중적인 단어는 ‘문빠(문파)’다. 문 대통령 강성 지지자를 두루 지칭한다. 이렇듯 다양한 용어가 함축한 의미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극문(극단적인 문재인 지지자를 지칭)’이다.

문빠들의 피아(彼我) 구분 기준은 오로지 문 대통령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다. 같은 진영 사람이어도 문 대통령을 따르지 않으면 적폐로 몰아 ‘응징’한다. 이들에게 ‘원팀(one team)’은 곧 ‘문재인 중심’을 의미하며, 이는 타협 불가능한 절댓값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비난이 쏟아졌다. 민주당에서 금 의원만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진 탓이다. 금 의원은 공수처 설치를 공개적으로 반대해왔다. “나쁜 정권이 들어서면 충성 경쟁으로 이어져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피아 구분의 유일한 기준은 오직 ‘문재인’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온라인 여론을 선점하기 위한 댓글 달기 활동을 전개한다. / 사진:트위터 캡처
금 의원의 의견은 충분히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그러나 친문 지지자들은 해당(害黨) 행위라며 반발했다. 금 의원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휴대전화·사무실에 항의가 빗발쳤다. 이성적인 비판보다 대개 원색적인 비난이었다.

친문 지지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금 의원은 결국 신인인 강선우 민주당 부대변인에게 밀려 결국 공천을 받는 데 실패했다. 금 의원은 경선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비문(非文)으로 분류되는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민주당의 전통은 중도에서 진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고 본다. 금 의원을 향한 비난과 이를 수수방관한 지도부의 태도를 보며 우리 당이 다양성을 잃고 획일화로 퇴행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의 목소리는 공개석상이 아니라 귓속말로 오갈 뿐이다. ‘문빠에게 찍히면 죽는다’는 공포가 의원들의 입까지 막고 있어서다. 문빠들에게 ‘찍힌’ 대표적인 민주당 인사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있다. 이 지사는 2017년 대선 경선에 나와 문 대통령에게 맞섰다가 그 지지자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했다.

대선이 끝난 뒤에도 이 지사를 향한 공격은 잦아들지 않았다.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친문 핵심으로 꼽히는 전해철 의원과 경선하면서 반목이 극에 달했다. 강성 지지자들은 이 지사가 경기도지사 후보로 확정되자 이 후보 낙선을 위해 새누리당 후보로 나온 남경필 지사에게 투표하자고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친문 진영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을 비난했던 트위터 이용자 ‘정의를 위하여(@08__hkkim)’가 이 지사의 부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경찰에 고발했다. 이 지사의 부인 김혜경씨는 ‘혜경궁 김씨’라는 조롱성 별명이 붙었다. 검찰이 결국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지만, 문빠들은 여전히 해당 트위터 계정이 김혜경씨의 것이라는 낙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 지사가 문빠의 경계 인물로 떠오른 건 경선 말미 그가 당시 문 후보를 위협할 만한 인물로 주목받으면서부터다. 경선 초기만 해도 지지율 낮은 이 지사를 위협적인 상대로 보지 않았다. 초기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공격이 집중됐다. 안 전 지사는 경선 당시 SNS에 올린 글에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 “문 전 대표와 캠프의 태도는 타인을 얼마나 질겁하게 만들고, 정떨어지게 하는지 아는가. 사람을 질리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성공해왔다”고 비판했다.

대선이 끝난 뒤 원팀을 강조하며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듯했지만 한번 찍힌 그를 곱게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11월 28일 서울 성북구청에서 열린 특강에서 다시금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호소성 충언을 내놓는다. 그의 발언이다.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많은 분께 부탁을 드리고 싶은 건, 이견의 논쟁을 거부하시면 안 돼요. ‘우리 대통령이 하겠다는데, 니가 왜 문제 제기야!’ 이러면 공론의 장이 망가져요. 지금 현재 진행되는 것을 보면 다른 이견 자체를 싫어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한 지지 운동으로는 정부를 못 지킵니다.”

이 발언에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안 전 지사를 ‘적폐’로 몰아붙였다. 당시만 해도 노무현 정신의 핵심 계승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격한 반응은 친노와 친문이 다르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문빠 스스로도 이런 특성을 숨기지 않는다. 젠틀재인의 운영자(닉네임 ‘규리아빠’)가 2018년 9월에 올린 공지글 일부다.

“젠틀재인은 문재인 대통령님 말고는 전부 다 안 믿습니다. 조금이라도 허튼소리 하면 그날부로 역적입니다. 이리저리 다 내치면 결국 문재인 대통령님 곁에 누가 남겠냐고요? 어떤 일이 있어도 대통령님을 지켜줄 대깨문 인사들, 대깨문 의원들만 남겠죠, 뭐.”

문빠의 시각에서 문 대통령은 절대군주나 다름없다. 그의 발언과 행동·생각에 오류란 있을 수 없다. 그의 진의(眞義)를 깨닫지 못해 잘못 실천한 우둔한 시종들이 있을 뿐이다. 익숙한 장면이다. 박사모(박근혜 대통령을 사모하는 모임)의 행동 양태와 거의 일치한다. 박사모는 박 전 대통령을 비운의 공주, 여왕으로 여긴다. 자신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유일한 가치라고 믿는다.

문빠들이 즐겨 쓰는 용어 중 하나로 ‘용도 폐지’란 말이 있다. 자신들이 원했던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면 내친다는 의미다. 지난 1월 부산고등검찰청 앞에 현수막이 걸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를 수사하다 좌천돼 온 한동훈 전 대검 반부패부장을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한동훈 검사 부산고검으로 좌천됨을 환영합니다’, ‘부산 좌천역을 통과, 사직역까지 직행 - 부산깨시민 일동 -’. ‘깨시민’은 문빠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훈이나 다름없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란 말에서 따왔다.

젠틀재인은 친문 방송인 김어준을 카페 내에서 언급할 경우 활동중단 징계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 기여하고, 문재인 정부를 옹호해온 그의 활동을 돌이켜보면 의아한 일이다. 김씨가 이재명 지사를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문제 삼았다. 순식간에 “김어준도 똑같은 적폐”, “이미 용도 폐지”, “갈라치기(분열선동) 작전세력의 총수”로 매도당했다.

비판 세력 입 막지 않았던 노사모와는 달라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반대하다가 문빠들로부터 항의와 비난 공세에 시달렸다. / 사진:최승식 기자
문 대통령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던 윤석열 검찰총장도 문빠의 시각에선 ‘용도 폐지된 퇴출 대상’이다. 공수처 입법 반대,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를 강행한 그를 문빠들이 곱게 볼 리 없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윤 총장이 친문 패거리들의 기득권에 칼을 들이대자, 적폐들이 청산의 칼을 안 맞으려고 애먼 사람 잡는 것”이라며 “지지자들은 실제로는 특권층의 사익을 옹호하며 자기들이 공익을 수호한다는 해괴한 망상에 빠지게 된다”고 일갈했다.

문빠의 배타성과 선민의식, 집단주의적 특성은 파시즘의 속성과 매우 유사하다. 지난 대선 때 안 전 지사의 경선 캠프에 있었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문빠에 관해 “국정원 댓글 부대와 동일선”이라고 비판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도 “히틀러 추종자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좌파 성향인 이민석 변호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정치인 팬덤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문빠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기를 비판하는 세력의 입을 막지 않았다. 노사모가 있더라도 의견이 다른 집단을 왕따시키지 않았다. 반면 문 대통령은 주변 팬클럽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 문 대통령을 최고 존엄으로 모시면서 ‘개싸움’은 우리가 나서겠다고 한다. 나치의 친위조직 같다.”

유튜브에서 대표적인 친문 시사평론가로 활동했던 유재일씨는 최근 반문(反文)으로 돌아섰다. 조국 사태가 결정적인 실마리가 됐다고 한다. 그는 “문제를 지적하니까 ‘우리끼리 왜 이래요’ 이런 반응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문빠의 습성이 선과 악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종교적 감수성을 불어넣는다고 봤다. 문재인은 절대 선, 그에 대항하거나 반대하는 모든 이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의 분석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이후 끊김 없이 이어져온 ‘적폐 프레임’, ‘토착왜구 프레임’을 설명하기에 적확하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강의하는 교수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계속해서 증오의 대상과 이유를 만들어낸다. 문 대통령은 완벽한데 주변에서 훼방하거나 그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해 문제가 생긴다는 논리를 편다. 신념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이다.”

문빠의 습성은 586세대의 과거 운동 방식과 유사한 점이 많다. 집단주의와 조직적 활동에 익숙하다. 선민의식으로 뭉쳤고, 은밀하게 행동하는 밀행성을 보인다. 피아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인물을 경계하는 배타성도 판박이다. 학생 시절, 이런 운동 방식을 접해봤던 30~50대에게는 익숙한 활동 방식이어서 거부감이 적다는 게 장점이다.

선과 악으로 나누고 증오의 대상 만들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부인 김혜경씨가 대통령을 비난한 트위터 사용자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 사진:연합뉴스
다만, 집단주의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조직적 활동을 접해보지 않은 20대에게는 오히려 거부감을 주는 역효과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문빠들한테 질려서 민주당 지지 철회한다”는 고백을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문팬 회원인 이모(42)씨는 대학생 시절부터 노사모 회원으로 활동해온 진성 민주당원이다.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이 문빠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과거에는 인터넷 토론 게시판에서 주로 정치 토론 벌이기를 즐겼다. 그런데 요즘에는 온라인 뉴스에 댓글을 달거나 가입한 커뮤니티 사이트나 자신의 SNS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여론전을 펼친다.

이씨는 자신이 문빠가 돼 댓글 전쟁에 참전한 이유를 “죄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진보 진영의 소시민들은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러다 ‘노짱’의 뒤를 잇는 문 대통령이 나타났고, 두 번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지지자들 사이에 널리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씨는 “보수 진영에서 ‘십알단(십자가 댓글 알바단)’처럼 온라인 여론을 조작하는 조직적 활동이 전개되고, 일베 등 극우 사이트의 공세를 막으려면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다. 문빠들의 주요 공략 대상은 회원 수가 수만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나 지역별 맘카페들이다. 진보적 색깔이 짙은 포털사이트 다음을 중심으로 기사의 댓글을 선점하는 작업도 이뤄진다. 때로는 인원 공세를 통해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바꾸기도 한다.

이런 일은 단시간 안에 일사불란하지 않으면 원하는 여론 선점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이씨는 “카페에서 회원들만 볼 수 있도록 ‘작업’이 필요한 기사나 게시판 글을 올리면 회원들이 화력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또는 팔로어가 많은 친문 트위터 사용자가 트위터에 링크를 올려 ‘지령’을 내리기도 한다.

극단적 패권주의로 치닫는 지지자들에게 친문 진영은 별다른 먼 산 불 보듯 방관할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문 대통령이 오히려 이들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문빠들의 비난과 ‘문자 폭탄’이 쏟아지자 “경쟁을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이라고 말했다. 또 코로나19 사태에서 “(경기 상황이) 거지 같다”는 말을 했던 상인이 인신공격에 시달린 것을 두고는 “장사 안 되는 걸 요즘 사람들이 쉽게 하는 표현”이라며 “오히려 서민적이고 소탈한 표현”이라고 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우리도 흔히 대화할 때 이런 표현을 쓰는데, 비난을 받고 가게가 장사가 안 된다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흥미로운 양념”이라고 두둔하는 문 대통령


▎2018년 1월 24일 문재인 생일기념 문팬 번개모임 참석자가 문 대통령 사진을 새긴 머그컵을 들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의 전언이 극성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요청한 것이냐는 물음에는 “지지층에 대해 하신 말씀이 아니다. 오해하지 않을 상황에서 악성 비난 댓글을 다는 것은 이른바 ‘문빠’들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정치인에게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된다”면서도 독일 출신의 유대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인용해 “잘못도 감싸면서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마음은 ‘폭민’처럼 폭력 같은 극단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문빠를 “영웅을 경배하는 정치적 팬덤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문빠에게 문 대통령은 철인(哲人)왕이고, 철인왕은 무오류이며 사심이 없다고 확신한다. “선의 상징인 지도자를 수호해 악의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흑백논리는 문빠들의 일관된 태도다. 선악의 적대 정치에 의존하는 철인통치의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의 악몽을 부른다.” 윤 교수의 충고다.

문빠의 폭주가 계속될 경우 외연을 넓히지 못하고 몰락한 친박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2016년 총선의 교훈이 그것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압도적인 지지로 일찌감치 야당을 따돌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원내 과반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180석까지 차지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대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안철수 전 대표는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야권은 사분오열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막상 투표 결과는 민주당의 승리였다. 새누리당이 건진 의석은 겨우 122석에 불과했다.

원인은 친박의 패권주의에 있었다. 친박의 눈 밖에 난 인물들이 줄줄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대구에서만 3선을 했던 유승민 의원은 국회법 개정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보여 공천 탈락은 물론 당에서 퇴출당하기에 이르렀다. 박 전 대통령은 유 의원을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지지자들에게 요구했다.

총선 패배는 정치 지형의 급격한 변화를 불렀다. 민심을 잃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심각한 권력 누수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최순실 국정농단과 탄핵으로 이어졌다. 서민 단국대 교수는 “문빠들의 생각과 달리 문빠의 존재는 문 대통령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2004호 (2020.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