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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리포트] 여전히 ‘안갯속’ 한·미 방위비 협상 

일본의 협상 방식 ‘타산지석’ 될 수 있다 

경제 논리, 혈맹 역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트럼프
장기 계약, 상향식 비용 산정 등 미래 내다보는 원칙 필요


▎2017년 11월 7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의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한·미 장병들과 오찬을 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이크를 건네고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2010년 여름,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요코스카 주일미군 해군기지를 방문했다. 국가안보전략 연구원장 자격으로 형식적이나마 기지 운용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 기지에 근무하는 일본인 군무원들의 급여는 일본 정부가 지급한다는 설명이었다. 용산 미군기지의 출입 관리를 담당하는 한국인 군무원들이 미군으로부터 급여를 받는 방식과는 차이가 컸다.

3월 들어 주한미군사령부가 한국인 근로자 9000명에게 4월 1일부터 잠정적 무급 휴직에 들어간다는 사전 통보를 했다. 방위비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를 가정한 30일 전 통보 절차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국인 직원을 ‘볼모’로 잡아 방위비 분담금 협상 타결을 압박하는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인 직원이 무급 휴직하면 미군 역시 불편할 수밖에 없다. 출입 및 시설 관리, 방호, 식당 및 각종 지원 업무 중단으로 기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군무원들을 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방식이고 한국은 미군이 고용하는 방식이라서 주한미군에는 근무자의 무급 휴직이라는 특이한 일이 발생한다.

미국 국무부의 클라크 쿠퍼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는 3월 6일 교착 상태인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과 관련, 한국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그동안 논의해온 것에 대해 응답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라며 거듭 압박했다. 그동안 협상에서 한국은 지난해 수준인 8.2%를 상회하는 수준을, 반면 미국은 5배 증액을 요구해왔다. 각자가 내놓은 협상안이 서울과 워싱턴 간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2월 말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은 한·미 국방부 장관 회담 이후 워싱턴D.C.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미국에 있어 최우선 과제”라면서 “한국은 방위비를 더 분담할 능력이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우리 차례” 일본도 협상 준비에 만전


▎지난해 9월,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사진:AFP/연합뉴스
일본은 한국의 협상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이 한국 다음으로 협상할 상대이기 때문이다. 지난가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주일미군의 주둔 비용에 대해 “일본이 30%밖에 분담하지 않는다”고 압박하자,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의 분담 비율은 70%”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지금보다 4배가 넘는 방위비 분담금(약 80억 달러)을 요구하고 있다. 미·일 최고지도자 간의 쟁점은 일본의 방위비 분담 비율이다.

차제에 한국은 일본의 방위비 소요 산정 방식의 장점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하향식에 가까우나 일본은 상향식에 유사하다. 일본은 2015년 가을,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의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약 9465억 엔(한화 약 10조3000억~3500억원)으로 합의하고 이행 중이다. 일본은 1년에 약 1조8200억원의 방위비를 주일미군을 위해 부담한다. 일본의 방위비 분담 비율은 74%로 전 세계에서 제일 높으며, 한국은 50%, 독일은 30%대로 추산된다.

일본은 소요 비용을 현장에서 미·일 실무자가 공동으로 집계하면서 소통을 중요시한다. 5년 단위로 현장 의견이 반영되어 워싱턴의 펜타곤 책상에 오르는 만큼 설득력이 적지 않다. 2004년 미국 국방부 보고서도 일본은 2000년대부터 분담금 비율 70%를 지켜왔다는 점을 인정한다.

일본은 분담금 부담 비율뿐만 아니라 각종 항목에서 미국을 배려한다는 입장이다. 주일미군 지위 협정은 “일본 내에서 주일미군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된 비용, 즉 인건비 및 시설의 공공요금 비용 등은 일본에 부담을 주지 않고, 미국이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과의 특수한 동맹관계를 고려해 일명 ‘오모이야리(배려) 예산’이란 것을 편성해서 주일미군 기지 내 일본인 근로자들의 인건비, 기지의 수도·전기 등의 공공요금 비용을 추가로 부담한다. 기지 근처의 군사 보안상 이유로 어업 조업에 제한을 받는 일본인 어부들의 보상비, 지상 기지의 토지 관련 보상비 등도 모두 일본 정부가 부담한다. 궁극적으로 배려 예산과 보상 비용은 일본인 지갑으로 들어가기에 소탐대실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

일본이 미국에 제공하는 방위비 분담 총액은 한국의 4~7배에 해당한다. 항목이 달라서 완벽한 비교는 어렵지만, 일본 [방위백서]에서 발표하고 있는 자료 중에서 한국이 부담하는 항목과 유사한 내용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2018년의 경우 일본은 3884억 엔(11원 환율로 환산할 경우 4조2724억원)을 분담한다. 2019년 한국의 분담액 1조389억원과 비교하면 약 4.1배다. 일본의 국내총생산이 한국의 3배 정도이고, 주일미군 규모는 1.9배(주일미군 5만4000명 :주한미군 2만8500명)다.

[아사히] [산케이] 등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3월 들어 미국이 국방부 장관까지 나서 한국에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일본 외무성 간부가 “한국의 비명은, 내일은 우리 자신”이라고 말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일본에 “한국과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보라”고 할 정도로 동시에 일본을 압박하고 있다.

협상에서 안보와 경제는 철저히 분리해야


▎평택 캠프 험프리스 미군 기지에 헬기들이 계류된 모습. / 사진:우상조 기자
최근 [산케이신문]은 “일본 정부는 한·미 간 협상 내용을 참고해 연초부터 협상 전략을 다듬어왔으며, 최근 대략적인 방침이 정해졌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엔 현행 부담액을 유지키로 했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할 경우엔 △대폭적인 부담 증가는 거부한다 △한국에 요구하고 있는 주일미군의 역외 작전비를 일본에 요구해올 경우 2016년 안보법제 개정에 따라 일본이 부담하게 된 미군 지원금으로 상쇄한다 △일본이 부담하고 있는 비용 전체를 포괄적으로 조정한다는 계획을 짰다는 것이다.

미국 측의 인상 요구는 전체 일본 부담액 중 소위 ‘배려 예산’(올해 1974억 엔, 약 2조2000억원)으로 불리는 일본인 근로자 기본급과 수당, 시설 정비비 및 훈련 이전경비 등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은 당장 올여름부터 협상을 본격화하겠다는 자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올가을쯤부터 협상이 시작될 것”(고노 다로 방위상)이라며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자존심이 걸린 자국 근로자 인건비나 주민 보상비용 등은 비율만 반영하고 자체 예산으로 지급한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2월 말 워싱턴 국방대학교 연설에서 “한국 정부는 그동안 세계 최대 규모와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을 자랑하는 캠프 험프리스 건설을 위해 약 90억 달러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위해 기여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총론적인 주장과 과거 스토리로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지난해 10월 제11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 과정에서 한국 측이 “미국산 무기를 많이 수입했다”고 설득에 나서자 미국 측은 “한·미 자동차 무역 수지를 생각하라”며 반박했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모두 62억7900만 달러(약 7조4530억원)의 미국산 무기를 수입했다”며 “앞으로도 구매액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에 “한국이 매년 미국에 자동차를 얼마나 수출하느냐”며 “미국은 엄청난 무역 역조를 겪고 있다”고 맞섰다.

한국의 논리는 한·미 갈등의 전선을 확대할 소지만 있는, 번지수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트럼프 후보는 2016년 대선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재앙”이라고 비난했다. 당시 그는 “한·미 FTA 때문에 9만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한국과의 무역수지 적자는 거의 두 배로 늘었다”며 “특히 미시간·오하이오·인디애나 주의 자동차 산업이 (일자리) 피해가 컸다”고 주장했다.

자동차는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간 무역 협상에서 꺼지지 않는 불씨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자동차 얘기가 본격화되면 안보와 경제가 혼합되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방위비 막으려다가 자동차 산업마저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적지 않은 대미 무역흑자를 감안하여 방위비 협상은 방위 분야로 좁혀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트럼프에게는 통하지 않는 ‘한·미 혈맹사’


▎1952년 12월 4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 두 번째)과 경무대에서 만난 이승만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 / 사진:국가기록원
중국 송나라 시대 시인이자 관료를 역임한 도연명(陶淵明, 365-427)은 돌고 도는 인생유전(人生流轉)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적나라하게 언급했다. 도연명은 세상의 만물 중에서 정지한 것은 없으며 끊임없이 변한다고 노래했다. 인생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이라는 껄끄러운 돈 문제를 논하는 데 있어 어찌 한가롭게 도연명을 거론하는가’라고 한다면 영원할 것 같았던 한·미 관계의 상황 변화 때문이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휴전에 대한 한국 안보의 담보를 주장한 이승만 대통령의 옹고집을 수용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 결정되었다. 1953년 10월 1일, 조약이 정식 체결되면서 한·미동맹은 혈맹이란 단어를 내세워 한국 안보의 버팀목으로 65년 이상 존속해왔다. 조약에는 외부의 무력 공격에 대한 공동의 대처 및 주한미군의 한국 주둔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처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가치가 양국 관계의 주춧돌이었다. 1970년대 카터 전 대통령의 철군 압력과 80년대 민주화 시위, 90년대 이후 반미 움직임 등의 부침을 경험하면서도 한·미동맹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특수 관계였다.

하지만 이제 도연명의 표현대로 세상은 변했다. 카지노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트럼프 대통령은 ‘뉴노멀(New Normal)’을 내세우며 ‘수익이 나지 않는 가치(value)’들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있다. 여기에 유감스럽게도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도 포함되었다.

트럼프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전개하는 전략자산 비용과 주한미군 인건비 등을 망라해 한국 방위에 쓰는 돈이 연간 48억 달러(5조7400억원)라며 분담금 증액을 요구했다. “돈이 중요하다(Money does matter)”는 명제로 무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만드는 것도 버리는 것도 ‘식은 죽 먹기’라고 인식한다. 그에게 세상은 ‘돈이 되는가와 안 되는가’의 이분법으로만 이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대선 자금 모금 행사에서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 달러를 받는 것이 더 쉬웠다”고 발언했다. 특히 11월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부자 나라 한국의 돈을 더 받아냈다’고 선전하려는 트럼프는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1950년대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아니다. 트럼프 뉴노멀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선 한국의 패착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기존 5년간의 다년 계약이 아닌 1년 계약에 서명한 것이다. 지난해 3월, 한·미는 2018년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보다 8.2% 인상된 1조389억원으로 하는 제10차 협정을 맺었다. 정부 당국자들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전 단 하루의 공직 생활도 경험해본 적 없는 ‘독특한(unconventional)’ 지도자 트럼프의 행태와 사고를 면밀하게 연구하지 않았다. 단기적 득실만을 고려하여 기존 인상률을 훨씬 상회하는 미국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1년 계약에 서명했다.

1991년 1차 한·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이후 처음으로 다년 계약이 아닌 1년 계약이 체결되어 정부는 해마다 미국의 인상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이 예견되었다. 미국은 당초 50% 인상 요구에서는 물러섰지만, 해마다 협상을 통해 한국 측 부담을 늘리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美 정치판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장기 계약해야


▎지난 1월, 정은보 한국 대표와 제임스 드하트 미국 대표가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 협정 체결을 위한 6차 회의에 참석했다. / 사진:뉴시스
2018년 협상은 미국의 50%(15억 달러) 인상 요구를 거부하는 대신 5년 계약을 포기하고 8.2% 증가하는 1년 계약에 합의했다. 유효기간 1년의 미국 안과 10억 달러의 한국 안이 절충된 것이다. 외교부는 미국 측이 대폭 증액을 요구했지만 △주한미군의 한반도 방위 기여도 △한국의 재정 부담 능력 △한반도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해 양측이 납득 가능한 합리적인 수준에서 분담금이 합의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20년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비즈니스 협상 행태와 1년 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결정이었다. 2018년 협상안처럼 우리 국방 예산 증가율에 맞춰 해마다 8~10%씩 방위비 분담금이 늘어날 경우 결국 5년 계약과 비교하여 분담금이 50% 인상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14년 1월, 방위비 협상이 5년 시한으로 타결된 후 외교부는 잦은 협상이 한국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시퀘스트레이션(격리, sequestration)’에 따라 미 국방 예산이 향후 10년간 지속 삭감될 예정임을 감안할 때 협상 때마다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가 거세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5년 후 반대 전략을 추진했다.

지난 22년간 주한미군이 대규모 감축됐던 2005년을 제외하고 협상 때마다 총액이 증가했다. 결론적으로 5년 계약의 50% 인상안을 수용하여 올해 트럼프 재선 캠페인 과정에서 방위비 인상이 공론화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했어야 했다. 매년 협상할 때마다 양측의 숫자 싸움과 신경전으로 동맹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는 유권자를 상대할 때마다 500%의 한국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언급했다. 1년 만에 50% 인상안에서 500% 인상안으로 급등한 것이다. 유형의 단기 이득을 방어하려다 무형의 장기 손실이 적지 않은 시나리오다.

그동안 미국이 요구한 방위비 항목은 주한미군 기지 내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군사시설 건설비, 군수지원비 등 세 가지뿐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제시한 50억 달러에는 기존의 세 가지 항목 외에 전략자산 전개 비용과 미군 인건비뿐 아니라 남중국해 항행작전, 호르무즈 해협 호위 파견 등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공공재까지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해지는 ‘자국 우선주의’, 거세지는 방위비 압박


▎지난 2월 6일, 최응식 전국 주한미군 한국인노동조합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 양국이 합리적 수준에서 방위비 협상을 조속히 타결할 것”을 요구했다. /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뉴욕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엄청난 방위비를 공정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Again)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때리기’로 대선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경질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9월 말 워싱턴 세미나에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 “재조정이 있을 것이고, 있어야 한다”며 증액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은 여느 때와 같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의 방위비 분담 증가 불가피성 발언은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했다.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 대국으로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5배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하지만,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현재 한국이 전체 비용의 5분의 1만 감당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협상이 시작되면 그 중간 어디쯤에서 절충안으로 협상이 이뤄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협상 시한이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말 “‘내년으로 넘어가겠지’라고 기대하는 것은 빈약한 전략(poor strategy)”이라며 한국의 협력을 촉구했다. 이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달린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이를 노려 ‘시간 끌기’ 전략을 취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시도로 읽힌다.

한국은 외교관 대신에 통상 전문가를 수석대표로 내세우고 미군 기지 환경오염 방지 비용 부담 등을 내세워 꼼꼼한 ‘주판알 싸움’에 나서고 있으나 녹록지 않다. 최근 미국이 5조원 규모에서 4조원대로 목표액을 하향 조정했다는 설도 나왔으나 여전히 한국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미국이 해외 주둔비 분담 원칙을 새로 마련했다며 기존의 협상 틀을 뒤집은 만큼 주한미군 기지 26곳의 조기 반환에 따른 오염 정화 비용 등 새로운 항목을 제시했다. 부평 ‘캠프마켓’ 한 곳의 오염 정화 비용만 해도 615억원이 드는 만큼 인상된 분담금을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부는 협상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국민 여론을 꼽았다. 정부는 “(분담금은) 납세자들의 돈”이라며 “한·미동맹의 진전에 기여하는, 확실히 이성적이고 상호적인 방법이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방위비 협상은 양날의 칼이다. 가치 대신에 비즈니스 거래의 ‘아파트 동맹(condominium alliance)’을 내세우는 트럼프에게 분담금 인상 수용 불가 정책은 여타 분야의 우회 압력 확산 등 한·미 관계를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미군 철수를 선언했다. 쿠르드족은 시리아에 근거를 둔 극단적 테러조직 IS에 대한 미국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의 성공을 도운 주인공이다. 쿠르드족은 작전에서 1만1000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현재는 미군 철군으로 터키의 공격에 직면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쿠르드 철군은 혈맹도 미국을 믿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반대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한국 내 반미 여론이 고조될 수 있다. 트럼프의 결정은 동맹국에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또한 북한에 매우 복잡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북한은 한·미 방위비 협상에도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해 10월 8일 “실제로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은 안보를 구실로 미군을 남조선에 영구 주둔시키며 침략 전쟁 비용을 더 많이 빼앗아내려는 약탈 협상”이라고 비난했다.

최근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 단체 탈레반이 평화협정을 공식 체결하며 18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사실상 종식됐다. 미국이 그동안 전쟁 수행과 아프가니스탄 재건 사업 등에 사용한 비용은 무려 2조 달러(2420조원)에 달했고, 미군 2400여 명과 아프가니스탄 민간인3만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선거 공약 이행을 강조하며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에게는 세계 경찰의 가치보다는 자국의 비용 절감과 인명 존중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솔로몬의 지혜를 요구하는 절충안이 필요하다.

우선 원칙은 최소 5년, 최대 10년의 장기 계약이 필수적이다. 계약 기간을 장기화하는 것은 매년 인상률을 반영할 경우 인상 폭이 삭감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의 일부 요구를 수용할 경우 최장 10년 장기 계약도 검토해야 한다. 매년 힘겨루기 방식의 협상에 직면할 경우 한·미동맹의 토대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무조건 거부’ 아닌 경영자 관점으로 접근해야

다음은 일본 방식의 부분적 도입이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이른바 특별협정(SMA)을 맺은 유일한 나라들이지만, 각각이 분담하는 금액의 산정 방식이 매우 다르다. 상향식 비용 산정 원칙의 일본 사례는 충분한 반면교사의 가치가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복잡하게 방위비 분담을 하는데도 미국이 제기하는 불만은 크지 않다. 미군이 하부 단위에서 필수 비용을 산정하고 일본과 협의하면서 확정해감으로써 미국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수용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한국보다 일본이 미국의 방위비 분담 요구를 더욱 지혜롭게 처리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견이 심한 협상 과정에서 일본의 상향식 틀을 접목하는 것도 미래를 위해 불가피하다. 각론 차원에서 돈 계산은 동맹이라도 정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1조원과 5조원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절충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절충점이 항목별 객관적 계산을 통해 정해지기 위해서는 비용과 투입의 산출 효과를 분석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의 2018년 [국방백서]는 방위비 분담금이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한다. 인건비는 주한미군 장병이 아닌 주한미군에 고용된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건비를 가리킨다. 한국이 분담하는 금액은 미국 경제로 흡수되는 걸까? 국방부가 발행한 [국방백서]는 “방위비 분담금 대부분은 우리 경제로 환원됨으로써 일자리 창출, 내수 증진과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건비는 한국인 노동자에게 지급되고, 군사건설비는 12%(설계, 감리비)를 제외하고는 전액이 한국 업체를 통해 현금이 아닌 현물 지원이 되고 있다. 일본은 민간 토지에 대한 사용료도 방위비로 계산한다. 한국 역시 이 방식을 원용하여 분담금의 절대 규모를 높이면서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군사시설 건설비, 군수지원비 등의 직접 비용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동시에 공공안보의 간접 비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직접 비용은 사실상 한국에서 소비되는 만큼 해외 유출의 부작용이 크지는 않다. 단기와 장기 계약, 유형과 무형의 득실에 따른 SWOT(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 분석이 필요충분조건이다. 장사꾼 행태의 거래보다는 경영자 관점에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필요하다.

2월 말 워싱턴 방문에서 정경두 장관은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 사태가 발생해 연합방위 태세에 영향을 주는 상황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방위비 분담금 항목 중 인건비만 우선 타결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일축했다. 협상에서 미국이 쉽게 물러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미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방위비 협상이 21대 총선이 실시되는 4월을 넘길 수 있다. 방위비 협상은 정치적 파장이 크기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방위비 인준 절차를 밟고 통과시키기 쉽지 않다. 총선 이후 5월 30일 임기 만료되는 레임덕 시기에 국회 인준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시대의 한·미동맹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확실히 받는 ‘안보+비즈니스’의 복합 동맹이다.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대세인 만큼 무조건 거부보다는 우리의 방위비 부담 증가와 교환될 수 있는 다양한 카드를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1966년 체결된 한·미 행정 협정(SOFA) 개정, 핵 물질의 재처리 허용 및 미사일 사거리 확장 등도 검토되어야 한다. 동맹도 실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이 대세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동북아 화약고 한반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자각해야 하는 시점이다.

-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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