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독점분석] 정부가 감춰왔던 ‘정부주도성장’의 증거들 

소득주도 성장 정책 이후 국민 지갑 더 얇아졌다 

2018년 최저임금 급격히 올리자 소비·내수·고용·분배·물가 동반 악화
물가지수 통계 작성 54년 만에 처음 마이너스… ‘무고용 사업장’은 급증


▎지난해 12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열린 ‘2019 경기도·수원시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 및 제4회 경기도 버스 승무 사원 채용 박람회’가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소비 활동이 위축되면서 경제 불황이 닥쳐오고 있다. 전염병이 돌면 경제지표가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감염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나빠진 원인을 모두 코로나19로 돌릴 수는 없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타난 시점은 지난 1월 20일. 적어도 2020년 이전의 경제 상황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원인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대표적인 경제정책은 소득주도 성장(소주성) 정책이다. 최저임금은 소주성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됐다. 최저임금은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16.4%, 10.9% 급격하게 인상됐다. 이전까진 매년 5~8% 정도 인상되던 것이 갑자기 두 자릿수인 16.4%로 인상되자 2018년에 시장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

정부가 주장하는 소주성의 원리는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소득이 늘어나기 때문에 재화 또는 서비스에 대한 소비가 늘고, 이에 상응하는 생산이 증가해 결국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21일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불평등한 소득 양극화의 경제 구조를 바꾸고,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정책이다”라면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이 늘고 소비가 증가하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면 국가 경제 성장과 함께 국민의 삶도 크게 나아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2020년 1월 22일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공동으로 개최한 토론회 인사말을 통해 “가계소득을 늘리고 빈곤층 지원을 통해 소득 격차를 완화하는 것은 혁신적 포용 국가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이자 소득주도성장이 담고 있는 핵심 가치”라며 “가계소득을 늘리고 소득 격차를 줄이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과가 최근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12월 발표된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는 2018년 지니계수,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3대 소득분배지표가 모두 개선됐다”며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2018년 저소득가구의 재분배소득뿐 아니라 시장소득도 함께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분배 참사가 벌어졌다는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다.”

그러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오히려 부작용을 키웠다. 일자리가 줄어들거나 음식 등 재화 가격이 상승하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초 정부가 기대했던 효과와 정반대 양상이다. 이런 현상은 다음과 같은 논리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소득 늘면 경제 성장하고 양극화 준다”는데 현실은…


▎2019년 4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초청 간담회에서 엄창환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년실업 등의 발언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대상자는 주로 아파트 경비원과 같은 단순노무 종사자와 커피숍 종업원과 같은 서비스 종사자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단순노무 종사자와 서비스 종사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다. 노동 수요는 기술, 자본 수요와 함께 대표적인 생산 요소다. 단순노무 및 서비스 종사자에 대한 수요가 줄었기 때문에 재화 또는 서비스의 생산은 줄어든다. 생산이 줄어들면, 가격이 오르고 소비가 감소하게 된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원리다.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실제는 다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이런 기초적인 원리를 가볍게 여겨서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재화 또는 서비스 시장이 아니라 노동시장이라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노동수요(일자리)가 감소한다. 커피값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데 임금이 크게 오를 경우 업주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대책은 커피값 인상 대신 인건비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은가.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하면서 정부가 고려하지 않았던 중요한 또 다른 변수는 바로 일자리에 대한 자동화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하면, 일자리에 대한 자동화가 촉진될 수 있다.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단순노무 종사자와 서비스 종사자의 일자리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혁신 때문에 로봇으로 대체가 가능해졌다. 자동화 구축 비용도 많이 낮아졌다. 이로 인해 최저임금을 많이 인상하면, 인간에 의한 노동비용보다 로봇을 구입 및 유지하는 비용이 더 적게 들기 때문에 사업주는 자동화를 선택하게 된다.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커피숍이나 음식점이 종업원을 무인주문기(키오스크)로 대체하는 현상이 대표적 사례다.

다수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전미경제연구소의 최근 연구(Lordan & Neumark·2017, “People versus machnes: the impact of minimum wages on automatable jobs,” NBER working paper 23667)도 이를 뒷받침한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1980~2015년 자료를 바탕으로 최저임금이 1달러 상승하면, 전체 저숙련 근로자 중 자동화될 수 있는 일자리에 종사하는 저숙련 근로자의 비중은 0.43%p 감소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최저임금 16.4% 인상에 따라 일자리에 대한 자동화가 촉진된다는 연구가 있다. 필자가 소속된 민간연구소 (재)파이터치연구원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16.4% 인상할 경우 자동화로 인해 17만 명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오르자 일자리 줄고 자동화 늘어


정부가 주장했던 것과 달리 소주성으로 인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통계자료나 연구 결과가 뒷받침되지 못하다 보니 여전히 이 정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가 천차만별이다. 특히 정치권에선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함으로써 객관성을 잃고 정치적 논박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자료만으로도 소주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충분히 가능하다. 필자는 그동안 정부와 언론이 외면했던 통계자료를 이용해 소주성을 자세히 분석, 평가했다.

먼저, 소주성 시행 전후 민간·정부 소비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래프 1 참조)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에는 전년 동기 대비 2016년 1분기 민간 소비 증가율은 2.5%였고, 2017년 4분기에는 3.2% 수준이었다. 그러나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후 그 증가율이 하락하기 시작해 2018년 3분기에는 2.3%를 기록했고, 2019년 4분기에는 1.9%로 뚜렷이 감소했다.

반면, 정부 소비는 민간 소비와 반대 추이를 보인다.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에는 전년 동기 대비 2016년 1분기 정부 소비 증가율은 5.0%였고, 2017년 1분기에는 2.8% 수준이었다.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후 그 증가율이 오르기 시작해 2018년 4분기에는 7.1%를 기록했고, 2019년 4분기에 6.6%를 유지했다.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에는 민간 소비와 정부 소비 증가율이 동반 상승하는 추이를 보였으나 소주성 본격 시행 직후부터 두 지표의 흐름이 반대로 바뀌기 시작한다. 민간 소비 증가율은 감소했지만, 정부 소비 증가율은 지속해서 오르는 상황이 펼쳐졌다. 정부 재정으로 소비를 지탱했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소주성은 ‘정부주도성장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면 소비가 늘어난다는 소주성의 기본 전제는 바로 민간 소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최저임금을 올리면 노동자의 소득이 올라가기 때문에 민간 소비 증가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민간 소비의 증가율은 오히려 퇴행하고, 정부 소비 증가율만 오르는 현상이 지속했다. 지표상으로는 명백한 ‘정부주도성장 정책’이란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소주성의 두 번째 가설. 내수 시장 변화를 살펴보자. (그래프 2 참조)

내수는 국내수요로서 간단히 말하면 소비와 투자를 결합한 것이다. 따라서 이 분석에서 재고는 제외했다.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 내수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2016년 1분기에 3.4%였고, 2017년 2분기에는 5.8% 수준이었다. 그러나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후 그 증가율이 급락하더니 2018년 3분기에는 -0.5%를 기록했고, 2019년 1분기에는 -0.7%로 더 하락했다. 이후 조금씩 회복해 2019년 4분기에는 2.3%를 기록했다. 전체적으로는 소주성 본격 시행 직후 우리나라 내수경제는 크게 폭락했다.

객관적인 지표가 이런 데도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달랐다. 문 대통령은 2019년 5월 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KBS와 가진 ‘문재인 정부 2주년 특별대담, 대통령에게 듣는다’에서 2019년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0.3%로 역성장을 나타낸 데 대해서 “다행스럽게도 분기 마지막인 3월에는 저성장의 원인인 수출 부진, 투자 부진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분명하게 인정해야 할 것은 거시적으로 한국경제가 크게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대외적 요인을 경제성장률 하락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고, 우리 경제가 거시적으로 좋다고 인식하고 있다. 통계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2019년 1분기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때에 내수경제는 더 크게 폭락했다. 즉, 내부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의미다. 또한 내수가 거시지표 중 하나임을 고려한다면 거시경제 또한 소주성을 시행한 후 크게 나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견고하던 내수 시장도 소주성 시행 후 급랭 하락


이번에는 소주성의 일자리 증가 효과를 알아볼 차례다. 소주성 시행 전후 60세 이상과 전 연령의 취업자 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래프 3 참조)

먼저, 전 연령의 취업자 수 변화 추이다.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에는 전년 동월 대비 2016년 1월 전 연령의 취업자 수가 25만4000명이었다. 2017년 3월에는 46만3000명으로 증가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후 그 신규 취업자 수가 급격히 감소해 2018년 2월에는 10만4000명을 기록했고, 2018년 8월에는 3000명까지 떨어졌다. 이후 지속해서 회복하여 2020년 2월에는 49만2000명으로 소주성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그다음은 60세 이상의 취업자 수 변화 추이다.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에는 전년 동월 대비 2016년 1월 60세 이상의 취업자수 증가량은 19만9000명이었고, 2016년 11월에는 31만 명 수준이었다. 소주성 시행을 기점으로 증가량이 급격히 늘어나 2020년 2월에는 57만 명을 기록했다.

소주성 시행에 따른 일시적 충격 이후 고용시장이 안정을 되찾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다. 소주성 본격 시행으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자 다급해진 정부가 60세 이상 취업자 수를 크게 늘려 지표를 봉합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20년 2월 고용률(60.0%)이 월간 통계를 작성한 1982년 7월 이후 같은 달 기준 최고치를 달성했다는 정부의 발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즉, 정부예산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60세 이상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수 변화는 보다 극단적이다. 자영업은 크게 고용원이 있는 것과 고용원이 없는 것으로 나뉜다.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수는 일자리 창출과 관련이 있다. (그래프 4 참조)

먼저,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전인 2016년 1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수 증가량은 전년 동월 대비 -4만2000명이었다가 2017년 10월에는 3만 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후 그 증가량은 지속해서 하락해 2019년 3월에는 -7만 명을 기록했고, 2020년 2월에는 -14만6000명으로 더 하락했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수는 그 반대다. 2016년 1월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수 증가량은 전년 동원 대비 -5만9000명이었고, 2017년 10월에는 9000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후 그 증가량은 2018년 2월과 8월에 각각 -10만6000명, -12만3000명으로 하락하였다가 이후 지속해서 증가해 2019년 3월에는 5만9000명을 기록했고, 2020년 2월에는 14만8000명으로 급증했다.

이를 종합하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종업원을 지속해서 감소시켜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로 전락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한마디로 소주성이 자영업자의 질을 크게 하락시켜놓은 꼴이 되고 말았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크게 인상된 후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수가 일시적으로 감소한 것은 재료를 조달하는 사업장에서 최저임금 인상분을 재료비에 포함시켜 한계에 도달한 자영업자가 늘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고용 없는 ‘나 홀로 사업장’ 늘고 소득 격차 심화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단순 노무와 서비스직 일자리가 급감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 취업정보 게시판.
정부가 예상한 소주성의 궁극적 효과는 소득 격차 감소다. 상대적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높임으로써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장의 반응은 정부의 희망 사항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소주성 전후 소득분배 변화 지표를 통해 입증된다.

소득분배는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로 살펴볼 수 있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쉽게 말해서 가구 구성원의 상위 20% 평균소득을 하위 20%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따라서 값이 높을수록 소득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균등화 처분가능 소득 5분위 배율 자료는 2003년 1분기부터 2019년 4분기까지 가용하다. 1분기, 2분기, 3분기, 4분기의 최곳값을 기록한 연도는 각각 2018년(5.95), 2019년(5.3), 2007~2018년(5.52), 2018년(5.47)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엄습했던 2007년을 제외하면, 모든 최고 지표가 소주성 시행 이후에 몰려 있다. 한마디로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이후 소득분배가 오히려 통계를 수집한 이래 가장 악화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을 포함했는데도 2018년과 2019년 값이 최고였다는 것은 소주성의 부작용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오히려 소주성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1월 21일 3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이 2018년 5.52에서 2019년 5.37로 감소한 것에 대해 “소득주도 성장의 정책성과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기적인 지표는 외면한 채 직전 연도보다 다소 나아진 사실만 강조한 것인데, 이는 사실상 통계를 왜곡 해석한 것이나 다름없다.


소주성이 소비자 물가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소주성 전후 소비자물가지수 변화 추이는 다음과 같다. 분석 자료는 1966년 1월부터 2020년 2월까지 가용한 전체 자료를 이용했다. 이 기간에는 1997년 IMF 구제금융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포함된다. (그래프 5 참조)

소주성 이전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은 제로 또는 마이너스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소주성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후에는 그 증가율이 제로로 내려간 적이 2019년 8월과 10월로 두 번이나 되고, 2019년 9월에는 -0.4%까지 떨어졌다. 통계를 시작한 5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로 인해 일부 전문가들은 전 분야에 걸쳐 상당 기간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이 늘고 소비자물가가 오르지 않은 게 소비자 입장에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 품목으로 살펴보면 이런 기대는 현실과 다르다. 김밥과 같은 식료품 가격은 최저임금이 상승분이 반영돼 크게 올랐다. 반면 공산품 가격은 수요가 감소하면서 크게 하락해 전체 소비자물가 증가율 하락을 견인했다. 수요가 감소한다는 것은 경기침체 구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이 한 번도 마이너스로 내려가지 않았는데, 소주성을 펼친 이후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경고음이다.

통계 왜곡한 정책으로 현실 못 바꾼다


▎지난해 말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 주인이 혼자 저녁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거시지표는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 내수, 고용, 분배, 물가 변동 상황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소비, 내수, 고용, 분배, 물가 지표가 악화한 기준점이 소주성 시행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있을까.

혹자는 소주성의 기본 취지가 정당하니 정책의 실패를 혁신성장으로 만회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혁신성장이 기술의 혁신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기술 혁신은 자동화를 촉진하는 요인이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2017년 제조업에서 우리나라의 1만 명당 로봇 대수는 710대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 제조업에서 그동안 추구해온 혁신성장의 결과로 자동화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 제조업뿐만 아니라 전 산업에서 로봇 또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더 많이 대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주성의 기조를 바꾸지 않은 채 혁신성장에 매몰될 경우 일자리 문제는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혁신성장을 추구하되, 로봇 또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할 수 없는 분야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분야는 창조적 지능과 사회적 지능이 필요한 곳이다. 창조적 지능은 남이 한 번도 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이다. 기업의 생산 공정에 필요한 특허뿐만 아니라 그림 그리기, 노래 만들기, 글쓰기 등의 예술적 재능을 포함한다. 사회적 지능은 사회적 통찰력, 설득 능력, 협상 능력 등을 말한다. 소주성의 오류를 인정하고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바로잡는 게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전체를 종합적으로 보아야 객관적인 진단이 가능하고, 합리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대통령이나 정부 여당의 발표와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가 다른 이유는 정부가 지표 전체를 외면하고 한 단면만 부분적으로 부각했기 때문이다. 통계로 현실을 위장할 순 있어도 그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통계 왜곡에서 비롯된 정책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다양한 경제 이론과 주장은 정책을 통해 현실에 적용된다. 당연히 오류와 실패가 있을 수 있다. 오류가 발견된 정책을 고집한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 법이다.

- 라정주 (재)파이터치연구원 원장(경제학 박사)

202004호 (2020.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