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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최재붕의 ‘2020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개막’(1)] 코로나19 사태가 증명한 디지털 신인류의 위력 

상상에 빠진 청년 이제 그들이 표준이다 

신종 감염병에 맞서 중·고·대학생들이 스마트폰 정보 앱 개발·공유
문명의 대전환 주도하려면 옛 문명에 머문 제도·관념 과감히 깨야

인문과 공학을 아우르는 통찰과 체계적인 분석으로 신인류의 문명을 읽는 [포노사피엔스]의 저자, 최재붕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최 교수는 월간중앙 연재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마주하는 독자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신인류 문명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 주]


▎인류 문명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인간, 즉 포노 사피엔스는 이미 현실화한 디지털 문명시대를 주도하는 새로운 인류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시대가 저물고 호모 포노 사피엔스(Homo Phono Sapiens) 시대가 개막되었다. 생각하는 슬기로운 인류는 이제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로 사용하는 슬기로운 인류로 진화했다.”

문명의 표준이 바뀌었다. 데이터는 너무나 명백하게 시대 문명이 교체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바뀌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이 칼럼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문명 교체의 여명기를 맞고 있는 많은 사람, 특히 기성세대에게 새로운 문명이 도래했음을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며 미래를 준비하자는 데에 있다.

우리가 사는 문명사회의 표준이 바뀌었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이야기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상식을 버리고 내 생각의 거의 모든 것을 바꿔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뇌수술에 가까운 충격적인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글을 읽기에 앞서 잠시 명상에 잠겨 보시길 바란다.

문명의 표준이 바뀌었다


▎2007년 1월 애플의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가 최초의 아이폰을 소개하고 있다.
눈을 감고 수술실에 누워 마취를 앞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수술이 끝나면 내 생각은 마치 다른 사람의 뇌를 끼워 넣은 것처럼 모두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표준 문명이 바뀌는 것은 이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다. 준비되었는가? 그럼 이제 새로운 문명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2020년이 시작되면서 세계 경제는 포노 사피엔스 시대가 가속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보여줬다. 2020년 1월 1일 시가 총액 기준 세계 5대 기업은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페이스북이 되었다. 이들 모두가 포노 사피엔스 문명을 창조하는 기업들이다. 애플은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인류를 탄생시켰고, 구글·아마존·페이스북은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대표적인 플랫폼 기업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라는 PC 운영체계 시장을 벗어나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 1위를 차지하면서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비즈니스 플랫폼 기업으로 주목받으며부활했다.

이렇게 세계 5개 기업에 집중된 자본이 무려 5734조 원이다(2020년 1월 1일 기준). 1위 기업인 애플만 무려 1501조원을 기록했다. 같은 날 우리나라 코스피 기업들의 시가총액 합계는 1490조원이었다. 코스피 상장기업 전체의 기업가치가 애플사 하나만도 못한 것이다. 이 굴욕적인 기록은 2010년 12월 4일 처음 시작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미 세계 투자 자본은 포노 사피엔스 문명에 대한 투자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뜻이다.

왜 우리나라 기업들에는 거대한 외국 자본의 투자가 없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분명한 것은 문명의 표준이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 시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표준을 결정하는 법과 규제만 검토해 봐도 이 현상은 명백하다.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타다 문제가 대표적이다. 법원에서 ‘타다는 불법이 아니다’라고 판결하자 택시기사들의 표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이 득달같이 나서 새로운 법을 만들어 ‘확실하게 끝장내 주겠다’라며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이것이 대한민국 입법부의 표준 생각이다.

이 결정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명백한 것은 세계 문명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타다가 이 정도면 우버(Uber)는 국내에서 엄두도 낼 수 없으리라. 그런데 우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세계 인구는 얼마나 될까? 우리는 우버 도입의 부작용을 이야기하는 많은 언론사의 보도 탓에 아직도 그냥 몇몇 나라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국지적인 서비스 정도로 여기고 있다. 심지어는 택시에 밀려 결국 사라질 거라고도 믿고 있다. 그렇다면 데이터로 확인해보자.

현재 우버와 같은 서비스를 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중국·동남아시아·인도·호주·유럽·아프리카 대부분이다.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일본·독일·스페인·이탈리아, 이렇게 딱 다섯 나라다. 우버가 창업한 것은 2009년, 택시가 시작된 것은 1896년. 그러니까 120년 동안 우리 인류의 표준이었던 택시 서비스가 불과 11년 만에 그 자리를 내놓고 말았다. 이제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어디 가려면 스마트폰부터 연다. 물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뉴욕에서는 택시 면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8명의 기사가 자살을 선택했고, 우버 기사의 범죄 문제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그런데도 세계는 멈출 줄 모르고 새로운 선택을 늘려만 간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생존에 유리한 한 번의 압도적인 경험을 절대 잊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 상에서 생존과 번영을 누려온 가장 강력한 진화의 힘이다. 우리 사회가 인류 전체의 변화를 애써 부인한다고 해도 그들을 모두 바꿀 수는 없다. 그것이 역사의 증언이다.

120년의 운송 표준이 우버 등장에 휘청


▎모빌리티 혁신기업 우버와 타다는 택시 서비스 체계의 근간을 흔들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국내에선 기존의 법제도 때문에 불법의 낙인이 찍혔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의 표준 문명은 이미 포노 사피엔스 문명으로 바뀌었다. 이미 인구의 95%가 스마트폰을 사용 중이다. 활용능력도 출중하다. 2018년 12월 한국은행이 성인 2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모바일 뱅킹 이용 비율은 57.9%로 이미 절반을 넘었다. 20대 79.6%, 30대 89.3%, 40대 76.9%, 50대 51.8%, 60대 13.1%, 70대 이상은 6%로 세대 간의 격차는 컸지만 명백하게 금융업무 표준은 모바일 뱅킹이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가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 55.5세. 정당 특성상 거의 모든 결정은 지도부가 정하는 대로 따라간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권이 사회를 바라보는 표준 연령이 60세를 훌쩍 넘어간다. 입법기준이 60대라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문제는 그 기준(13.1%)이 대한민국 표준(57.9%)과 너무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표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대기업들의 대표이사들도 60대가 주류를 이룬다. 우리나라 조직문화의 특성상 지도부는 조직의 특성을 결정한다. 대한민국의 법체계가 인류 표준 문명이 된 포노 사피엔스 문명과 괴리감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관행이 표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 변화를 인공지능·로봇·자율주행차·5G 등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내는 ‘4차 산업혁명’에 책임을 물어 왔는데 실제로 언급된 디지털 기술들이 이 사회에 침투한 흔적은 아직 미미하다. 데이터는 혁명의 본질이 호모 사피엔스에서 포노 사피엔스로의 표준 문명 교체임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문명 전환을 촉진하는 코로나19


▎대학생 이동훈씨가 만든 코로나맵은 확진자의 이동 상황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 / 사진:코로나맵 화면 캡처
2020년이 시작되면서 전례 없는 공포로 세계를 강타한 사건이 바로 코로나19 사태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감염이 불과 몇 달 사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인류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전례 없는 국경 봉쇄로 세계 경제는 완전 마비 상태다. 중국과 이웃한 우리나라는 발생 초기 엄청난 속도의 바이러스 확산을 경험해야 했다. 확산의 속도는 좀 줄어들었다고 하나 여전히 감염의 공포로 모든 국민이 경직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공포를 확산시켰고, 미국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준전시 상태로 대비하고 있다. 세계를 마비시켜버린 코로나19 사태는 다른 한편 포노 사피엔스 문명으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시각과 청년의 시각은 방향부터 달랐다.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질병관리본부를 통해 매일 확진자 수와 그들의 동선을 텍스트 기반의 보도자료로 발표했다. 이를 본 청년들은 포노 사피엔스 표준을 적용해 모바일 서비스를 개발했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서비스 중 하나인 코로나맵은 대학생 이동훈씨가 개발한 서비스다. 내가 방문하려는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입력하면 주변 지역에 얼마나 많은 확진자가 다녀갔는지를 직관적으로 지도상에 표시해준다. 대통령 주관 회의에서 정부가 보고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인기 있는 서비스가 됐다.

‘멋쟁이사자처럼’이라는 연합동아리 대학생 3명은 ‘코로나 알리미’라는 앱을 만들었는데 개발 기간이 하루밖에 안 걸렸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과거 메르스 사태 때 동아리 선배들이 만들어둔 앱 서비스의 소스코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지자 이번에는 중학생들이 나섰다. 대구 고산중 3학년 최형빈 군과 이찬형 군은 국내 코로나 종합 상황판을 만들어 대국민 서비스를 시작했다. 포노 사피엔스 세대가 한눈에 감염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웹사이트가 없어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많은 국민이 이런 사이트를 방문해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도 이런 사이트를 만드는 것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사이트 개발에 걸리는 기간과 예산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어렵고 오래 걸릴 거라 지레짐작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냥 과거 표준에 맞춰 보도자료 형식으로 발표했다. 그렇다면 이 서비스들은 전문가 그룹이 만들었을까? 아니다. ‘코로나맵’ ‘코로나 알리미’ ‘코로나 나우’ 모두 코딩 전문가가 아닌 학생들이 국민에게 편리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단기간에 만든 서비스다. 더구나 교육부가 만든 표준 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 차이는 무엇일까?

직관의 시대에 여전히 정부는 텍스트 의존


▎대만 정부가 개발자들과 협력해 만든 마스크맵. 39세의 천재 프로그래머 오드리 탕 장관(오른쪽)이 데이터를 공유해 3일 만에 만들었다.
표준 문명이 다른 데서 나타나는 상상력의 차이, 전문적인 능력의 차이다. 모든 결과물은 기획단계에서 결정된다. 국민이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에 대해 상상하고, 그걸 바탕으로 서비스를 기획한다. 애초에 학생들은 포노 사피엔스 문명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상상력만으로 결과물을 만들 수는 없다. 전문적인 실현 능력이 필요하다. 이들은 표준 교육과정이 아니라 동아리 활동이나 유튜브 학습 등을 통해 전문 코딩 능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면 개발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기특한 것은 돈 한 푼 안 되는 서비스를 오직 국민 편의를 위해 헌신적으로 개발한 그 마음이다. 사실 세계 인류를 위해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는 정신은 오픈소스로 학습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문화에선 이미 오래된 미덕이다. 생각의 표준이 달라지면 이렇게 모든 것이 달라진다.

대만은 마스크 대란이 발생하자 마스크 구매를 위한 앱을 만들어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했다. 그 과정이 이채롭다. 39살 오드리 탕 장관(한국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해당)은 마스크 구매 실명제가 결정되자 대만에서 활동하는 개발자들의 페이스북 그룹인 ‘거브제로’에 도움을 요청했다. 어떻게 하면 이 많은 사람이 길게 줄 서지 않고 공평하게 공적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구했다.

마침 마스크맵을 개발하고 있던 한 개발자가 정부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공유하면 어느 약국에 몇 개의 재고가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3일 만에 개발이 완료돼 서비스가 개시됐고 국민은 마스크맵이라는 앱 서비스로 줄서기 없는 구매를 할 수 있었다. 이제 오프라인 판매를 온라인으로 확대해서 인터넷 구매로도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대했다. 서비스의 핵심은 실명제 구입이었다. 즉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마스크를 살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39살의 탕 장관은 자기가 익숙한 포노 사피엔스 문명 방식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을 해결했고 국민은 만족했다. 우리도 마스크맵을 만들고 서비스를 개시했지만, 공급의 방식은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 시대 그대로다. 유통과정에서 독점 기업이 생기고 마스크 판매 데이터 확보가 제대로 안 된 탓에 마스크앱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애당초 포노 사피엔스 문명에 기반해 서비스를 기획한 게 아니라 앱만 가져다 덧입힌 꼴이니 잘 돌아갈 리 만무하다.

우리 국회는 개인정보 보호 명분으로 데이터 3법도 누더기로 만들어 겨우겨우 통과시켰을 뿐이다. 마스크 생산부터 공급에 이르기까지 모든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다는 건 디지털 문명에서는 이미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 시스템의 구축을 법적으로 규제하고 막아왔으니 이런 긴급 상황에서 대응할 능력이 없는 건 당연하다. 실시간 데이터 업데이트가 어려운 약국은 약국대로 제조업체는 제조업체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만약 우리 장관이 공적 마스크 공급 시스템을 구상하면서 개발자 그룹에 도움을 요청하고, 그들이 제안하는 방식에 따라 마스크 제조업자와 배송업체, 약국 운영자들이 참여해 데이터를 제공하고, 시스템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체계로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제조업체·유통업체·약국, 그리고 소비자가 데이터 활용에 대해 미리 더 잘 알고 있었고 적합한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다면 이 불편함을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문명의 표준이 달랐다면 가능했을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획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표준 문명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국민은 매일 약국 앞에서 긴 줄을 서며 불안에 떨고 있다.

마스크 대란에 대처하는 대만과 한국의 차이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활성화했다. 이는 향후 기업의 일반적인 근무형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사태는 확진자 확인이나 마스크 구입에 그치지 않고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전면적인 확산을 촉진하고 있다. 우선 원격진료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일본·영국·미국·중국 등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원격진료를 적극 활용 중이다. 사실 몸이 아파도 감염이 두려워 병원 가기가 무섭다. 그래서 1차 진료는 가능한 온라인으로 상담하라는 게 원격진료가 정착된 각국의 대응방식이다. 심지어 일본은 네이버가 개발한 라인헬스케어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원격진료를 시행하고 있었다면 의심스러운 감기 환자는 자가격리 후 원격진료로 진단을 받고 필요한 시료를 채취해 제출하면 된다. 다른 증상으로 불편한 환자도 간단한 진료는 원격으로 실시하고 처방받으면 해결할 수 있다. 환자도 의료진도 훨씬 안전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드라이브 스루 진단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크게 자랑하고 있지만, 원격진료를 표준으로 설정하면 이보다 더 효율적이고 감염을 줄일 수 있는 합리적 서비스도 가능하다.

원격진료와 원격 처방이 진정 국민을 위한 서비스라면,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편리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라면, 이런 위기 사태에 진정 필요한 서비스라면, 이제 절대 불가라는 생각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의사·약사의 권리 보장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달라진 인류 문명의 표준을 생각해서라도 규제 완화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어느 쪽이 국민 생존에 유리한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 변화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산업생태계 전체가 달라졌다. 바이러스 전염을 우려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꺼리면서 가뜩이나 빠르게 늘던 온라인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오프라인 중심 사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의 근무 형태도 재택근무로 변모했다. 재택근무가 좋은지 회사근무가 좋은지 비교할 겨를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 이제 재택근무를 기반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인재를 선호하는 사회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재택근무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할 것도 분명하다. 이미 구글과 같은 많은 플랫폼 기업들이 시도하고 있는 근무 방식이기도 하다.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 모델은 앞으로 더욱 주목받을게 명백하다.

코로나 19는 교육의 표준도 강제로 바꿔 버렸다. 대학은 개강을 2주간 늦추더니 결국 온라인수업으로 대체하고 있다. 모든 교수는 싫든 좋든 강의를 녹화하거나 실시간 스트리밍을 기반으로 수업준비를 해야 한다. 학생들도 싫든 좋든 온라인 수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결국 코로나19는 모든 사회 시스템을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포노사피엔스 문명으로 강제 전환하게 하였다.

신문명 시대 걸맞게 국가 표준 과감히 바꿔야


▎포노 사피엔스는 호모 사피엔스와 전혀 다른 새로운 인류다. 포노 사피엔스에게 스마트폰은 신문명의 결정체이자,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다.
우리 국민은 코로나19로 인해 선택의 여지 없이 디지털 문명을 경험하고 있다. 이 경험은 많은 것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도 경험하게 했다. 재택근무·온라인교육·원격진료·온라인구매·앱서비스 등이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고 얼마나 우리 생활에 적용 가능한지, 기술적으로 얼마나 진보되어 있는지,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유용한지도 깨닫게 했다.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준비된 시스템뿐이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은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위기상황에서도 그 위력을 여실히 발휘하고 있다. 우리 후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어른들의 책무라면 이제 포노 사피엔스 표준 문명으로의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많은 전문가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극심한 사회 변화를 예상한다. 우리는 이 소중한 경험을 헛되이 날려버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전 지구적 위기는 지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위기 상황에서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당연한 귀결이다.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을 둔포노 사피엔스 문명으로의 전환은 이제 생존을 위한 인류의 필연적 선택이 되었다. 그렇다면 국가의 표준을 바꿔야 한다. 그게 문명전환의 시대,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의 책무다.

온갖 당파적 파벌싸움에 갇혀 대륙의 신문명을 무시하다 나라를 잃어버려야 했던 경술국치의 치욕을 기억하자. 반일 감정과 낡아빠진 이념 논쟁 따위가 우리 후손을 지켜줄 수는 없건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그 타령이다. 늘 그랬지만 희망은 똑똑한 우리 국민이다. 세계가 놀랄 만큼 침착하게 대응하고 규제하지 않아도 알아서 행동하며 진정한 선진 시민의 힘을 보여주는 우리 국민이 희망이다. 사재기도 삼가고 증상이 생기면 스스로 격리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필요한 무료 앱 서비스가 속속 개발되어 등장한다. 대구가 위기에 처하니 의료진의 자원봉사가 줄을 잇고 온 국민이 나서 SNS로 응원하며 함께 이겨내자고 다짐한다.

이 위대한 국민이 문명의 표준을 바꾸기로 마음먹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문명시대의 리더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위기는 곧 기회다. 코로나19의 고통과 아픔을 힘을 합쳐 극복하고 새로운 인류 문명 시대로 함께 손잡고 나아가자. 우리 아이들에게 더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해.

※ 최재붕 - 성균관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워털루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와 서비스융합디자인대학원 학과장을 겸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시작이라고 정의하면서 융합을 기반으로 문명을 읽는 공학자로 알려져있다. 저서로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엔짱] 등이 있다.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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