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유민호의 서양사 현장르포 | 승자의 조건, 패자의 교훈(16)]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만난 인간승리의 현장 

피 묻은 과학으로 로마 가톨릭에 맞서다 

‘질병은 신의 징벌 아닌 장기 부전 탓’이라는 다빈치 코드
인류 최초 해부학 극장은 이탈리아의 변방에서 나와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의 해부학 극장 전경. 중앙을 내려다보는 360도 입체 공간으로 이후 유럽과 일본에까지 확산된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대략 50대부터 기억력 감퇴가 본격화한다. 일과 중 기억력도 문제지만, 1주일 전, 1년 전, 10년 전에 대한 기억이 엉키면서 ‘그거, 그때, 그런 것’으로 어정쩡하게 표현되기에 십상이다. 주변을 보면 한 해 한 해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은 30대 이전 때에 그친다. 60대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50대 기억력은 아직 아인슈타인 수준이라고 한다. 기억력 감퇴만이 아니라, 찻집에 가서 자장면 시키는 식의 머리로 변해간다고 한다.

머리도 둔해지고 육신도 퇴화하는 세월이지만, 전에 몰랐던 긍정적인 부분도 하나 있다. 지혜다. 머리에 뭔가를 기억하고, 이미 기억한 부분을 꺼내는 것은 약화되지만, 남아 있는 기억에 기초한 전혀 다른 차원의 사고능력을 갖게 된다. 최근 필자의 머리를 스친 작은 경험 하나를 꺼내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덕분에 스포츠 센터에도 못 가고 라디오 체조를 하던 중 스친 생각이다. 다리를 굽히면서 팔을 양쪽으로 펴는 체조를 하다 알아냈다. 다리 운동이 무릎을 모아 앞으로 굽히는 것이 아니라, 양다리를 모아 활처럼 타원형으로 벌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앞으로 굽히는 것과, 타원형으로 벌리는 두 가지 체조를 전부 시행해봤다. 다리만이 아니라, 복근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무릎을 하나로 모아 아래로 내리는 것이 한층 더 효과적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왜 무릎을 모으지 않고, 그냥 선 상태에서 타원형 다리를 만들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름대로 결론에 도달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본인 체형에 맞는 체조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라디오 체조의 원조는 일본이다. 원래 미국 보험회사에서 출발했지만, 1928년 막 등장한 라디오와 더불어 NHK가 국민보건체조란 이름으로 보급한 것이 출발점이다. 미국에선 개인 차원이지만, 일본에선 집단운동으로 시작했다. 곧바로 일본을 넘어 식민지 조선과 대만, 만주로도 퍼진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왜 다리 운동이 타원형으로 이뤄지는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무릎으로 앉아 생기는 일본인 체형(体型)이 주된 이유다. 일본인 상당수는 ‘O’형 안짱다리다. 어릴 때 다리를 벌린 채 안아주는 습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릎을 꿇고 생활하다 보니 다리뼈가 수직이 아닌 O형으로 벌어지기 쉽다. 일본인 체형, 일본 체조에 맞추다 보니까 다리가 활처럼 휘어지게 된 것이다.

1088년 문 연 세계 최초의 대학 볼로냐


▎그리스정교에 등장하는 악의 상징인 용과 하늘의 천사 조르지오(Gorgeo). 중국에서 권력·재화의 상징으로 통하는 용은 원래 전염병 전쟁 화재의 아이콘이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얘기가 길어졌다. 세월과 함께 전부 녹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지혜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혜는 학력·재력과 무관하다. 표현이나 실행 방법이 다를 뿐, 나이가 차면 누구나 나타나는 본능에 가까운 사고 능력이다. ‘반백 년 살아보니’에서 오는 자신감일 수도 있고, 회한(悔恨)으로서의 지혜다. 사물 하나를 보더라도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 따른 배경·이유·현황, 나아가 전망까지 종합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장년 지혜의 특징이다.

지혜가 생길 경우 삶의 양적·질적 성장도 경험할 수 있다. 라디오 체조 하나 보면서 무슨 큰 성장을 느낀다고 말하느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빌딩 건물주를 인생의 전부라 믿는 사람도 있겠지만, 집주변 벚나무 꽃이 언제 터질지를 궁금해하며 아침을 여는 생각도 있다. 이런저런 사소한 생각들을 엮어가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 창조해나가는 것이 삶의 의미일 수 있다. 지혜는 그 같은 세계관의 단서(端緖)이자, 청량제다. ‘지혜=꼰대의 장광설’로 아예 처음부터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삶의 나침반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세상을 대하는 오감, 나아가 육감을 전 방위로 확산 진화시켜주는 동인(動因)이 장년의 지혜다.

지난 1월 초 이탈리아에 있을 당시 장년의 지혜를 체험했다. 어제·오늘·내일의 세계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직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카오스(Chaos)에 빠지기 전 일이다. 장소는 볼로냐(Bologna)다.

10여 년 전부터 겨울에는 항상 베니스에 머물고 있다. 이탈리아 동북부에 위치한, 옛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도였던 도시다. 그러다 문득 볼로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역사상 최초의 대학이 들어선, 교육·청년·자유의 도시가 볼로냐다. 이미 수차례 방문한 곳이지만, 음울한 잿빛 분위기의 겨울 베니스에서 벗어나 젊고 밝고 떠들썩한 공기를 느끼고 싶었다.

극장식 강의실의 원형, 해부학 극장


▎베니스 화가 틴토레토가 그린 산마르코 광장의 전염병 환자들. 전염병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비교될, 인간에게 닥친 최악의 형벌로 해석했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베니스 리도(Lido) 섬의 숙소에서 육지로 나가려면 시간이 적잖게 걸린다. 새벽 일찍 나서 버스와 배, 기차를 차례로 갈아탄 지 3시간 만에 볼로냐에 도착했다. 느린 이등석 기차에서 바라보는 이탈리아는 완벽한 조화의 정물화로 느껴진다. 대규모 심포니 오케스트라보다 많아야 6명 정도의 실내악단, 초대형 화폭의 현란한 오일 페인팅보다 손바닥 크기의 정물화에 빠진 것도 50대 이후인 듯하다. 크고 넘치고 많은 것을 가치로 삼았던 어제에 대한 반성도 장년의 지혜 덕분인지 모르겠다.

볼로냐는 좁은 듯 깊은 곳이다. 1088년 문을 연 세계 최초 대학, 볼로냐대학(Università di Bologna, UNIBO)과 더불어 대학생들이 넘치는 도시다. 볼로냐대 재학생만 8만5000명에 달한다. 볼로냐대 역사를 보면, 932년 전 창립 당시 모습이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대학의 틀인 학과·학문·학위·교수·대학생·교과과정 모두가 모호했다. ‘배움의 클럽’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교육학자들은 ‘함께 전부’라는 의미의 라틴어 ‘스트디움(Studium)’이 대학의 어원이라고 본다. 학과·학문 구별 없이, 모여서 공부하고 배우는 장소다.

흥미롭게도 사상 첫 대학의 첫 번째 학생은 이탈리아인이 아닌 외국인이었다고 한다. 유럽 대륙에서 온 외국인으로, 볼로냐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인류 최초 대학의 학생이었다. 교수는 외국인 대학생이 돈을 주고 고용한 이탈리아 지식인이었다. 무슨 목적으로 외국인이 볼로냐까지 와서 대학생이 됐을까? 중세 볼로냐는 현지법을 무시하거나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외국인에게 책임공유 연좌제를 실행했다. 외국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연좌제에 걸려들지 않으려는 과정에서, 현지법 특히 세법에 정통한 전문가를 모아 집단강의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스트디움, 즉 대학과 같은 조직이 문을 열게 된 것이다. 형사 문제도 있지만, 돈에 관련된 외국인의 민사문제 해결책으로서 대학 창설인 셈이다.

도착 즉시 볼로냐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대학 관련 유물·유적 관찰에 들어갔다. 보행자 천국용 공간을 통해 볼로냐 중심부, 즉 과거 대학의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도록 길게 이어진 지붕이 불로뉴 전역에 들어서 있다. 고풍스러운 건물도 인상 깊지만, 대학생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저가의 카페와 레스토랑도 볼로냐의 매력 중 하나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볼로냐 한복판 아르키지나지오 궁전(Palace of the Archiginnasio)에 들렀다. 볼로냐 필수 방문지로 매번 들른 곳이지만, 베니스 행 기차를 타기 2시간 전에 다시 찾았다. ‘아르키지나지오’는 중세 볼로냐에서 대학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기저기 분산돼서 이뤄지던 대학 강의를 하나로 모은, 인류 초유의 대학 종합 강의실이다. 건립 시기는 16세기다. 많아야 수백 명 단위 학생을 수용할만한 아담한 공간이다.

아르키지나지오 궁전은 볼로냐 시 정부가 운영하는 시립 도서관과 아르키지나지오 해부학 극장(Anatomical Theatre), 두 영역으로 나뉘어 있다. 중세풍 건축물로, 특히 2층 회랑과 도서관 내 벽화가 인상 깊다. 주기적으로 행하는 시립도서관 주관 특별전도 볼거리다. 대학이 존재한다는 것은 책과 문화가 상존한다는 의미다. 세상 어디에서 없는, 볼로냐에서만 접할 수 있는 중세 기록물과 문화가 아르키지나지오 궁전 안에 있다.

해부학 극장은 매번 그저 스쳐 지나던 곳이다. 건물 내 다른 곳과 달리 유료에다, 극장이란 이름과 달리 좁은 강의실이란 점도 무심하게 대한 이유다.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그냥 밖에서 둘러볼 수도 있기에 티켓을 끊지 않고 주마간산식으로 둘러봤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서는 뭔가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평소보다 관람객이 별로 없었다는 점도 관람을 결심한 이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가로·세로 10m, 대략 99㎡(30평) 크기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운데 해부학 테이블을 중심으로, 사방에 급경사 의자들이 배치돼 있다. 동물·인간을 테이블에 올려 해부를 하는 동안, 숨죽이며 지켜봤을 학생들의 모습이 상상됐다. 1595년 처음으로 설립된 대학 내 해부학 전용 강의실이라고 한다. 천장에는 힘줄만 앙상하게 드러난 두 명의 목상(木像)이 걸려 있다. ‘피부만 남은 인간(Spellati)’으로 명명된 구조물로, ‘스승의 의자’라 불리는 가구를 들고 있다. 강의실 한복판 천장에는 아폴로, 벽에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조각이 새겨져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공습으로 파괴됐지만, 전부 복원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 의학 전시물이 많은 까닭


▎지난 3월 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라파엘로 전시회에서 마스크를 쓴 여인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개인적 판단이지만, 복원·복제는 이탈리아인 특유의 국민성으로 느껴진다. 원래 모습이나 재료에 기초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짝퉁’의 달인이다. 이탈리아 전국에 뿌려진 수많은 박물관과 전시관에서 들어선 예술품들을 보자. 로마 시대 작품들 곳곳에 복원의 흔적이 남아있다. 조각상 하나만 봐도, 손가락과 다리, 심지어 머리조차 원래 모습에 기초해 복원한다. 무려 20여 년이 지난 뒤에야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로마 유물·유적과 관련해 100% 진품인 것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후세의 장인들에 의해 복원된 ‘짝퉁’이다. 20세기·21세기만이 아니라 멀리는 2세기·3세기, 가까이는 15세기·16세기에도 복원이 이뤄졌다.

그렇다면 원래 진품의 모습이나 재료 등은 어떻게 알아낼까? 복원품 재현에 앞서, 세심하고도 끈질긴 기록이 중요하다. 로마로 대표되는 유럽 문명의 맏형답게 곳곳에 기록 마니아가 있다. 진품이 어떠한지에 대한 세세한 기록이 글과 그림을 통해 꾸준히 남아 전해지고 있다. 미군 공습에 의해 부서지고, 천재지변으로 손상을 입어도 기존 자료를 통해 복원된다. 복원예술은 이탈리아 대학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매년 전문가가 수없이 쏟아진다. 근거 없이 임의로 추측해서 만드는 중국식 짝퉁과는 전혀 다른, 기록·자료·전문가에 근거한 ‘조직적·학술적’ 복원이다.

강의실을 오가며 수백 년 흔적을 관찰하던 중,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한가운데 들어선 해부학 테이블과 더불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해부 데생을 생각하며 연상된 의문이기도 하다.

“왜 이탈리아에서는 인체·수술 관련 전시물이 넘치는 것일까? 날카로운 칼이나 장기가 든 유리관, 의료 관련 책자들이 왜 주된 전시물로 다뤄지는 것일까?”

혹자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필자의 여행 체험에 따른 결론이지만, 양적으로 가장 많은 곳은 역시 이탈리아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최초의 해부학 강의실을 만든 나라도 이탈리아다. 볼로냐 대학과 같은 해인 1595년이지만, 불과 몇 개월 차로 베네통 지방 파두아(Padua) 대학 해부학 강의실이 원조로 기록된다. 한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경사진 의자로 둘러싸인 극장식 강의실을 창조해낸 곳이 파두아다. 고대 그리스 당시 야외 강의실을 본 딴 구조다. 해부학 관련 의료 도구들이 이탈리아에 넘칠 수밖에 없다.

자문자답하던 중 해부학 강의실 구석에 붙은 설명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볼로냐는 12세기 이래 16세기 초까지 자유도시로 성장했다. 1506년 교황 율리우스(Julius) 2세가 교황령으로 만들지만, 대학을 중심으로 한 자유로운 분위기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볼로냐는 이탈리아 자유와 지성의 상징이자 대표주자다. 해부학은 그 같은 상황의 결과물이다.”

교황 권위에 힘입은 ‘피렌체=르네상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 데생과 노트. 그림을 위한 관찰이 아니라, 신의 세계관을 부정하는 인본주의의 상징이 다빈치의 해부학 노트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잘 알려진 대로 이탈리아 역사는 성(聖)과 속(俗)의 대결사라 볼 수 있다. 교황과 정치적 권력자들이 다투는 ‘땅따먹기 경쟁’이 이탈리아의 흑역사다. 교황령인지 세속령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세금에 있다. 교황령은 가톨릭 조직을 통해 바티칸에, 세속령은 현지 정치가에게 세금을 바친다. 물론, 세금을 적당한 비율로 나눠 가지는 회색지대도 있다.

대부분 ‘피렌체=르네상스의 출발점’이라 배웠고 믿을 듯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 다른 해석을 덧붙일 수 있다. 로마에 가까운 피렌체는 교황청을 통해 부와 권위를 쌓아갔다. 그런 과정에서 교황청과 메디치가(家)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된다. 피렌체가 교황을 위한 호위무사로 나서게 된다.

원래 교황청 통제 하의 피렌체지만, 15세기 들어 상황은 역전된다. 메디치가 후손들이 교황 자리를 차지하는 등, 교황청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파워를 갖게 된 것이다. 둘의 관계가 일체화되는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에 주목한 메디치가의 취미도 바티칸에 파고든다. 15~16세기는 신대륙 발견과 프로테스탄트 확산이 이뤄진 시기다. 교황도 뭔가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줘야 할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 메디치가는 유럽 전역을 상대로 한 재력과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메디치가의 취미가 교황의 권위와 더불어 유럽 전체로 퍼진다. 바로 르네상스다. 메디치가가 탁월해서가 아닌, 교황이 권위를 부여하면서 ‘르네상스=유럽의 시대정신’으로 정착된다. 교황 역시 르네상스에 빠진 것은 물론이다. 만약 교황이 초기에 르네상스를 파문했다면 한순간에 사라졌을 것이다. 사실 르네상스 내용물은 피렌체만이 아닌, 이탈리아 내 다른 도시에서도 ‘대량으로’ 발견할 수 있다. 베니스는 시기적으로도 피렌체보다 더 빨리, 더 많이 확산된 곳이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만든 1등 공신은 피렌체다. ‘피렌체=교황청의 파트너’였기에 가능한 역사다. 피렌체와 달리, 볼로냐는 교황의 파워와 무관한 곳이었다. 교황청의 영향력이 커가던 16세기 초 편입됐지만, 신보다 인간을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 정신이 대세였다. 중심이 대학인 것은 물론이다.

해부학은 숨을 쉬는 생명체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기초 학문이다. 교황청 입장에서는 해부학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동물·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지키는 해부학을 ‘신의 이름으로’ 환영했을까? 정반대다. 동물·인간 모든 생명체의 어제·오늘·내일을, 전부 신의 뜻이라 해석해온 곳이 교황청이다. 살아도 신의 은총, 죽어도 신의 뜻인 것이 가톨릭의 사생관이다. 의학보다는 신에 대한 기도가 한층 더 중요하고 절대적이었다. 해부학을 통한 생명체 관여는 효과도 없을뿐더러, 신의 뜻에도 어긋나는 ‘사탄의 마술’ 정도라 격하했다.

바벨탑 건설로 여겨졌던 해부학


▎해부학 극장 내 설치된 ‘피부만 남은 인간’ 목조상. 스승의 의자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의학 스승에 대한 존경이 특별했다고 볼 수 있다. / 사진:유민호 객원기자
따라서 인간 신체를 이해하려는 해부학은 사탄의 학문이자,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바벨탑 건설에 비견됐다. 해부학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하나만으로 천벌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의 최대 덕목이자 윤리관인,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와 똑같은 발상이다. 신에 대한 도전이라 비난하는 목소리는 21세기 생명공학만이 아닌, 16세기 이탈리아 가톨릭 세계에서도 들을 수 있다.

다빈치의 인체 해부도는 누구나 눈에 익은, 15세기 르네상스 유산 중 하나다. 그렇다면, 다빈치는 왜 시체실에서 숙식하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몸을 관찰하고 기록했을까? 미술 평론가들이 말하듯, 근육·뼈·혈관의 내면적인 묘사를 통해, 자신의 그림을 보다 더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을까? 필자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풀이하고 싶다. 그림만이 아닌, ‘모든 것을 신의 뜻에 맡기는 가톨릭적인 세계관에 반대하는 상징물로서의 해부도’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신의 뜻에 어긋났기 때문에 천벌로 죽는 것이 아니라, 허파·위장·간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급사했다는 것이 다빈치 해부도 속에 드리워진 진짜 코드(Code)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다빈치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동성애자로 통하는 근거 중 하나다. 고향 피렌체를 떠나 속(俗)의 도시 밀라노를 거쳐 프랑스까지 건너간 끝에 객사한다. 15세기 당시, 고향을 떠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방인으로 여겨졌다. 동성애자로 불리며 세속적 군주가 지배하는 프랑스에서 숨졌다는 점에서 볼 때, 반(反) 가톨릭주의자, 나아가 무신론자였다고까지 추정할 수 있다.

볼로냐 해부학 극장은 다빈치가 보여준 데생 수준의 인본주의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면서, 가톨릭 세계관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해부학 극장의 진짜 가치다. 장기를 분해하고 연결하고 바꾸기도 하는, 피 묻은 과학으로서의 신에 대한 도전이다. 교황청이 보면 신에 대한 ‘반역의 공간’이 해부학 극장이다. 다빈치는 그 같은 이반(異般)의 선두에 섰던 인물이다. 다빈치 인체 해부 데생이 있었기에, 100여년 뒤 볼로냐 해부학 극장 개설도 가능했다.

물론 이탈리아 박물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해부학 관련, 도구·서적·자료도 다빈치에서부터 시작된 인본주의, 인간승리의 증거라 풀이될 수 있다. 유럽 그 어떤 나라보다도 이탈리아에 해부학 관련 전시관이 많은 이유도 그 같은 다빈치 세계관으로 설명될 수 있다. 가톨릭 세계관과 교황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던 반역의 증거로서의 다빈치와 볼로냐 해부학 극장이다.

지난 2월 21일, 이탈리아발 코로나 전염병 뉴스가 전 세계에 전해졌다. 유럽인 첫 사망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다. 이탈리아가 유럽 최대 코로나 발원지로 떠오른 신호탄인 셈이다. 뉴스를 접하며 깜짝 놀랐던 것은 78세 사망자의 출신지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해부학 극장을 ‘발명’해낸 파두아가 사망지다. 21세기 바이러스가 16세기 인본주의와 인간승리의 무대에 재등장한 셈이다.

‘인간승리의 무대’에 나타난 코로나19

짧은 시간이었지만, 볼로냐 방문을 통해 반(反) 가톨릭-르네상스-인본주의-해부학-다빈치-전염병으로 이어지는 ‘지혜의 연결고리’를 피부로 체험할 수 있었다. 굳어져 가는 ‘꼰대’ 머리지만, 바이러스 공포 때문인지 종합적 이해가 가능했다. 비록 2020년 3월, 바이러스 전염병 최대 창궐지란 오명을 쓴 이탈리아지만, 결국은 잘 풀어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당장은 혼란스럽겠지만, 교훈을 잊지 않고 기록·복원할 수 있는 나라가 문명대국 이탈리아다. 당장은 1000만 도시 봉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듯하지만, 교훈은커녕 주기적으로 반복 악화되는 일당독재 체제와는 격이 다르다.

바이러스 전염병이 잠잠해진 뒤의 시간이 되겠지만, 볼로냐 해부학 극장 방문을 권한다. 장년의 지혜가 아닌, 어린이의 눈으로도 봐도 이해할 수 있는 ‘도전과 교훈’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 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004호 (2020.03.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