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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전임 ‘세계 경제 대통령’이 쓴 미국 경제사 

신이 축복한 경제 제국 흥망의 열쇠 

민주적 자본주의에 바치는 헌사이자 따끔한 경고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는 미국이 ‘미국을 적대하거나 무시하는 모든 예상을 깨고’ 결국 굴기(屈起)한 원인과 ‘최근 쇠퇴’한 원인을 다룬다.

주 저자는 전임 ‘세계 경제 대통령’인 앨런 그린스펀이다. 미국과 세계 경제에 대해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모르는 게 없는 사람으로 유명한 노장(老將) 그린스펀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장기집권’했다. ‘보조’ 저자는 명품 경제매체 [이코노미스트]의 정치에디터인 에이드리언 올드리지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독자 중에는 그린스펀보다는 올드리지의 명성에 끌린 경우도 많으리라. 옥스퍼드대 역사학 박사 출신인 올드리지는 9권의 책을 냈다. 당대 최고급 2인이 의기투합했다. 물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도 있다. 이 책은 단연 예외다.

영문판 제목은 ‘미국 자본주의(Capitalism in America)’다. 부제는 ‘한 역사(A History)’다. 원제·부제를 풀어쓰고 의역한다면,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한 관점의 역사’다. ‘한 관점’이라는 뜻은 두 공저자가 자본주의 옹호를 포함해 얼마간 편견이 있고 편향됐다는 뜻이다.

미국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넓은 땅과 넉넉한 자원이나 노예제를 원인으로 드는 사람도 있다. (‘신(神)의 섭리’에서 원인을 찾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그렇다면 미국 못지않게 땅이나 자원이 풍족했던 소련은 왜 미국과 겨뤄서 졌을까. 게다가 제정 러시아에는 사실상의 노예제인 농노제가 있었다. 또 소련 체제는 노동자·농민을 노예제 수준 이상으로 착취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들이 포함된 영미권 주류(mainstream)의 주장을 읽는다는 뜻이다. 그 주장이 옳건 그르건. 그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미국이 지금도 유일 초강대국인 이유는 미국이 건국부터 지금까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했기 때문이다. 줄이면 ‘민주적 자본주의(democratic capitalism)’다. 이 책은 ‘민주적 자본주의’에 바치는 헌사요 따끔한 경고다.

‘첫 단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All is good that ends well)’라고 하지만, ‘시작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All is good that begins well)’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시작이 좋았다. 일단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지성·덕성 모두 대체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또 미국은 ‘자본주의의 신(神)’의 축복으로 태어난 나라였다. ‘자본주의 이론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1723~1790)가 쓴 [국부론]의 출간 연대와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해가 1776년이라는 것은 기막힌 우연이지만 뭔가 숙명을 암시한다.

무엇이든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이라는 ‘경제 제국’은 자본주의의 시대 개막 이후에 생겨난 최초의 나라였던 것이다. 미국 정치사회학자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표현을 빌린다면 미국은 ‘최초의 새로운 나라(The First New Nation)’였다. ‘제일신국(第一新國)’ 미국에서는 남녀 비즈니스피플이 최고의 영웅이다. 조금 과장한다면, 프랑스는 인텔리겐차, 독일은 학자, 영국은 귀족이 가장 이상적인 롤모델이다. 미국은 아니다.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할까. 경제의 세계에 좀 ‘소프트’한 입문이 필요한 독자들. 그리고 산전수전·부침 모두 겪은 미국을 앞서려는 중국사람과 그들 미국사람들과 중국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싶은 우리 한국인들이다.

- 김환영 중앙콘텐트랩 대기자 whanyung@joongang.co.kr

202004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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