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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포엠] 흐리고 흰빛 아래 우리는 잠시 

 

황인찬

▎오토바이를 탄 배달 기사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를 달리고 있다. / 사진 : 박종근 비주얼에디터
조명 없는 밤길은 발이 안 보여서 무섭지 않아?
우리가 진짜 발 없이 걷고 있는 거면 어떡해

그게 무슨 농담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너는 어둠 속에서 말했지

집에 돌아가는 길은 멀다
가로등은 드문드문 흐리고 흰 빛

이거 봐, 발이 있긴 하네

흐린 빛 아래서 발을 내밀며 너는 말했고
나는 그냥 웃었어

집은 아주 멀고, 우리는 그 밤을 끝없이 걸었지
분명히 존재하는 두 발로 말이야

발밑에 펼쳐진
바닥없는 어둠은 애써 모르는 척하면서

※ 황인찬 - 1988년 안양 출생. 2010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2년 김수영문학상, 2019년 서라벌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등을 냈다.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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