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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특집 | 특별기고] 정치학자의 21대 총선 관전기 

보수는 품격도, 유권자의 마음도 잃어버렸다 

충격적 참패는 국민에게 대안으로 인정 못 받았다는 의미
미래통합당 변하지 않으면 유권자 신뢰 되찾는 일도 요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4월 15일 서울 광진구 민방위교육센터에 위치한 구의 제3동 제1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 / 사진:연합뉴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특별한’ 선거였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번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의 여파 속에 총선이 실시됐다. 한때 국내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과연 선거를 제때 치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까지 일각에서 제기됐지만 확산세가 진정되면서 선거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두 당이 180석을 얻었다. 이에 비해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 한 정치 세력이 180석을 얻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민주자유당이 218석을 차지한 바 있지만, 그것은 인위적 합당을 통해 만든 의석이었다. 그 뒤 민자당은 1992년 총선에서는 149석을 얻어 과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대로 보수 정치 세력이 100석 정도를 얻은 것도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적 ‘주류’가 뒤바뀐 것이 확인됐다.

이렇게 커다란 변화가 생겨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라는 미증유의 상황이 선거의 분위기를 크게 바꿔놓았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만 3년이 되는 시점에 치러지는 만큼 선거 타이밍상 중간평가라는 특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해온 여러 정책에 대한 종합 평가가 내려져야 했다는 점에서 여당으로서는 애당초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소득주도 성장을 내걸었지만 경제는 활력을 잃어서 적지 않은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일자리 정부를 내세웠지만 고용은 나아지지 않았다.

미국·일본·중국과의 관계는 모두 삐걱거렸고,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가 공들였던 대북 관계에서도 핵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이뤘던 것도 아니었다. 중간평가를 앞두고 내치든 외치든 내세울 만한 뚜렷한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집권당은 수세적인 입장에 놓일 처지였다.

‘조국 사태’는 공정성을 강조해온 이 정부의 도덕성에 타격을 줬고 시민 사회는 그 사건으로 분열됐다. 더욱이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만 빼고’라는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경향신문] 칼럼에 대한 고발 사건, 홍익표 당 대변인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관련한 TK(대구·경북) 봉쇄 발언, 조국 사태 때 쓴 소리한 금태섭 의원에 대한 공천 배제 등 잇단 악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이런 모든 것이 다 덮여버렸다. 매일매일 확진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국민의 공포심이 커졌다. 학교가 문을 닫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모든 이의 일차적 관심은 방역과 보건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사태 초기에 확진자가 급증한 상황을 두고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제한하지 않은 탓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확진자 급증의 책임은 정부보다 대구 신천지 교회가 떠맡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사태 전개와 관련해서는 유럽·미국·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우리만큼도 이 사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정부의 위기 대응에 대한 평가가 높아졌다. 불리할 수 있는 상황이 오히려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된 것이다.

촛불집회 이후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 함의


▎1월 7일 당시 새로운보수당 하태경 책임대표와 정운천 공동대표가 국회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예방했다. 왼쪽부터 김성원 한국당 대변인, 황교안 대표, 하태경·정운천 의원. / 사진:연합뉴스
또 전쟁이나 대규모 재앙 등 위기 상황이 되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치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집하려는 경향(rally round the flag effect)이 나타난다는 점도 여당에 플러스가 되는 요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에는 다른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가 집권당의 승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운’이 좋았던 셈이다.

하지만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선거 결과를 두고 그 원인을 모두 코로나 사태에만 돌릴 수는 없다. 이 정도 참패라면 문재인 정부가 어떻든 통합당이 많은 유권자에게 신뢰할 대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본격적인 선거 운동을 전개할 수 없었다. 그만큼 개별 후보자의 선거 운동보다 정당에 대한 평가가 유권자의 투표 판단에 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던 셈이고, 이번 선거 결과는 유권자들이 철저하게 통합당을 외면했음을 보여줬다.

어떤 면에서 보면 통합당은 그저 나무 밑에 앉아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길 기다렸던 것 같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약속했던 성과들이 나오지 않고 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들을 지지할 것으로 봤던 것 같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 실망했거나 불만을 갖게 된 유권자들조차 보수 정당으로 지지를 옮겨가지는 않았다. 한국갤럽이 주기적으로 하는 여론조사를 보면 자유한국당이든 통합당이든 지난 2년여 시간 동안 당 지지도가 25%를 넘은 적이 없었다.

민주당 지지에서 이탈한 이들이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에서 이탈한 이들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로 옮겨갔지 통합당 지지로 바꾸지는 않았다. 각종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대로 이런 경향은 매우 오랜 기간 지속했지만, 통합당 지도부는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에 불만을 갖게 된 유권자들은 왜 통합당 지지로 옮겨가지 않았을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이번 선거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는 2016~17년의 대규모 촛불집회 이후에 실시된 첫 국회의원 선거였다.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2016년 4월에 실시됐고 촛불집회와 탄핵이 그해 가을 이후 이뤄진 만큼 20대 국회는 원천적으로 촛불집회에서 터져나온 민심을 반영할 수 없었다.

촛불집회가 촉발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과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등의 부패 등에 분노했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시민의 저항이 남녀노소·보수·진보를 가리지 않는 대규모 집회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정치 변화에 대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거대한 시민의 저항에 맞닥뜨리게 된 것은 그의 통치 방식이나 가치가 ‘지나간 시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찢어지게 가난했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던 한국을 경제적 번영으로 이끈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은 언제라도 부정될 수 없지만, 경제적 성공과 거기에 더해 민주화까지 이뤄내면서 오늘날 한국은 그 시절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회가 됐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사실상 ‘박정희 패러다임’에 대한 우리 시대의 작별 인사였던 셈이다.

그리고 한국 보수 정치의 기반이 ‘박정희 패러다임’이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바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보수 정치를 향한 시대적 요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 정치 세력은 그런 요구에 응답하지 않았다.

자기 개혁 없이 화학적 결합은 불가능


▎정의당 관계자들이 3월 27일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위헌·위장 정당 비례대표 후보 등록 무효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나마 일부 의원이 바른정당으로 떨어져 나오면서 보수 개혁의 기치를 들었다. 이들의 개혁 시도가 성공했더라면 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른정당의 대다수 의원이 자유한국당으로 ‘투항’하면서 사실상 보수 개혁은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의 후신인 새로운보수당과 일부 세력을 끌어들여 ‘보수 통합’을 실현하고 당의 명칭도 미래통합당으로 바꿨다. 보수 정파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으면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고 분노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두 받아낼 것으로 봤다. 매우 선거공학적인 접근이었다. 그래서 선거 전 ‘원내 과반 의석 확보’, ‘원내 제1당’이란 말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통합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보수 정파를 선택하지 않았다. 황교안 대표가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화학적 결합을 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말했지만, 화학적 결합은 시간의 문제이기보다 새로운 보수의 가치 정립을 위한 당내의 철저한 자기 개혁의 노력이 없으면 이뤄지기 어려운 것이다.

눈앞의 선거가 급해 당장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면 적어도 새로운 변화를 향해 당이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줬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 결과는 다수 유권자들의 눈에 보수 통합은 선거를 앞둔 편의상의 봉합에 다름 아닌 것이었고, 실질적인 당 내부 개혁이나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통합당은 탄핵 이전의 ‘새누리당’과 사실상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당의 리더십 역시 매우 취약했다. 보수 정파에 대한 지지가 세대로, 지역적으로, 이념적으로 매우 편중돼 있다는 사실이 이번 선거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났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이런 사실은 주기적으로 실시돼온 여러 기관의 여론조사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됐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 정파는 ‘매우 충성스럽고 열정적인 지지자들’을 넘어서 당에 대한 지지의 외연을 넓히지 못했다. 이른바 ‘아스팔트 보수’는 탄핵으로 당이 휘청거릴 때 흔들리지 않도록 꿋꿋하게 지켜준 고마운 지지자들이지만, 당이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권력을 얻을 만한 폭넓은 지지를 얻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이번 선거 결과는 잘 보여주고 있다.

당의 리더라면 이런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들을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중도적인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구하려고 하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와 달리 그동안 황교안 리더십은 이들과 동조하거나 포획된 모습을 보여줬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가 싫어도 중도 유권자들이 야당 곁으로 다가갈 수 없게 만들었다.

세대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촛불집회 이후의 첫 국회의원 선거라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키워드가 세대교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미래통합당 그 이름대로 ‘미래’를 위해 이번 선거에서 젊은 정치 지망생들을 대거 발굴해 과감하게 공천했다면, 그동안 보여준 대로 ‘꼰대 정당’이 아니라 젊은 세대의 고민, 시대적 어려움에 공감하고 있다는 걸 과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총선 4연패 영국 노동당의 선택


▎2019년 11월 21일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왼쪽부터)가 국회에서 열린 정치협상회의 전 기념촬영하고 있다. / 사진:임현동 기자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당의 외연을 박정희 세대를 넘어 젊은 세대로까지 확대하는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통합당은 현상유지적이고 보수적인 형태로 공천을 행했다. 게다가 선거운동 중 막말까지 터져나왔다.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유가족’과 관련된 발언은 그 표현의 천박함은 차치하고라도 그로 인해 ‘그 옛날 수구꼴통’의 보수 정당 모습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에 대한 당의 대응도 늦었고 오락가락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이번 선거에서 특히 중요했던 수도권 유권자들을 향해 ‘우리는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라고 외치는 꼴이었다.

이로 인해 보수는 품격도 잃고 유권자의 마음도 잃어버렸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해본다면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는 ‘야당 운’도 있었던 셈이다. 변하지 않으면 통합당이 지금의 정치적 수렁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한번 잃어버린 유권자의 신뢰를 되찾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1974년부터 집권해온 영국 노동당은 이른바 영국병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잃어갔다. 특히 1978~79년의 겨울 시기에 영국은 노조의 잇따른 파업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혼란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국민도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었다.

불만의 겨울을 겪으면서 노동당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1979년 5월 치러진 총선에서 노동당은 마거릿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권력을 넘겨줬다. 그러나 선거 패배 이후 노동당을 이끌게 된 사람은 더욱 강성 좌파인 마이클 풋이었다.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노동당은 1983년 총선에서 전후 최대의 패배를 겪게 됐다. 이때부터 조금씩 노동당 내에서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부분적으로 개혁이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당은 1987년 총선에서도, 그리고 이제는 충분히 당을 바꿨다고 자신했던 1992년 총선에서도 보수당에 패배했다. 1979년 권력을 잃은 후 네 차례 잇단 선거 패배였다.

그 무렵 노동당 내에서는 우리는 이제 집권할 수 없는 정당이 됐다는 자조까지 나왔다. 이런 노동당이 다시 수권 정당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토니 블레어가 당을 이끌게 되면서부터였다. 블레어는 ‘새로운 노동당(New Labour)’을 내세우면서 당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줬다.

당내 제도 개혁을 통해 당에 대한 노조의 영향력을 제한했고, 선언적인 것이긴 했지만 사회주의적 강령을 담은 당헌 4조도 사실상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당원과 지지자들의 격한 반발이 있었지만, 이렇듯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시는 집권할 수 없다는 노동당의 절박함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노동당은 드디어 1987년 총선에서 블레어의 리더십 아래 무려 18년 만에 다시 권력을 되찾게 됐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한번 잃어버린 민심을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변화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황교안 대표가 물러나면서 누가 새로이 당을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오세훈·나경원 등 중진들도 낙선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인물이 부족한 통합당 내에 리더십의 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이제 새로운 술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부대가 마련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통합당이 몰락한 것은 당 지도부가 변화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했고 새로운 보수의 길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수의 기본 가치를 지키면서도 변화된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고 시대의 요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보수 정당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게 이끌 수 있는 리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보수 정치 복원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수 정치가 올바로 서는 일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의 몰락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의 권력은 너무 한쪽으로 집중됐다. 2017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민주당은 행정 권력을 장악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경기를 포함해 TK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지방 권력을 차지했다. 이제 이번 선거를 통해 입법 권력도 통째로 차지하게 됐다. 대법원의 대법관 13명 가운데 9명이 새로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법복을 벗자마자 선거판에 뛰어든 판사들의 모습에서도 보듯이 사법부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검찰의 독립성은 검·경 권한 배분, 공수처 신설로 위협받고, 검찰총장에 대한 정치적 공세도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나 있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중립성·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번 선거 과정에서는 여러 차례 제기됐다.

한국은 민주화 이후 30여 년의 시간 동안 비교적 성공적으로 민주적 공고화를 이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집중은 언제나 민주주의의 안정적 작동에 위협요소가 된다. 그래서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비례대표 놓고 기득권에 집착한 민주당

이번 선거와 관련해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다. 20대 국회에서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했던 이른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이후의 정치권 행태다. 민주당은 4개의 소수 정당과 힘을 합쳐 47개 비례 의석 중 30석에 대해 정당투표와 연동되는 방식으로 선거제도를 개정했다.

제1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이에 대해 반대했지만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해 소수 야당의 협조를 얻어 이를 통과시켰다. 선거법 개정이 통과된 이후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국회가 소수 정당의 의회 진출 등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 대다수 국민을 제대로 대변하는 민의의 전당으로 한 걸음 나아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그러나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통합당의 이런 꼼수는 반드시 비판받아야 하지만, 더욱 큰 비판을 받아야 하는 건 민주당이다. 소수 정당의 의회 진출과 다양한 대표성을 내세웠던 민주당은 선거가 다가오자 슬그머니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들어 내세웠다. 그리고 선거 결과는 이들 두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이 비례 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결과적으로 볼 때 민주당이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공수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소수 정당을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적 미끼로 활용한 셈이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크게 승리하기는 했지만, 변화와 개혁을 주장해온 진보 세력이 스스로 개혁을 포기하고 기득권 집단이 돼버렸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큰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누더기가 돼버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개정은 불가피하게 됐다.

그렇지만 거대 양당 체제로 회귀한 21대 국회에서 이들이 기득권을 쉽게 놓으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21대 국회에서 과연 제대로 된 정치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강물은 배를 뜨게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다.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이 말 그대로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줬다.

이번에 강물에 배를 띄우는 데 성공한 민주당이 계속해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을지 풍랑을 만나게 될지 이제부터 모든 국민이 다시 꼼꼼하게 지켜볼 일이다.

-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kangwt@snu.ac.kr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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