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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특집 | 긴급진단] ‘열세’인 보수당이 ‘5전 5패’를 피하는 법 

‘개인기’에 의존하는 ‘약팀’은 승자가 될 수 없다 

대선주자급 중진들, 팀플레이 외면하고 자기 정치 골몰
가치 재정립이 대선 첫걸음… 다수가 바라는 정치 패러다임 실천해야


▎4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미래통합당 개표 상황실. 출구조사 발표 뒤 지도부의 퇴장으로 텅 비어 있다. / 사진:뉴시스
21대 총선이 집권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보수 야당으로선 일찍이 경험해본 적 없는 참패다.

여느 때처럼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이 무성하다. 코로나 정국의 반전과 미래통합당의 공천 실패, 선거 막판의 막말 파문이 패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물론 그런 요인들이 표를 까먹는 데 일부 영향은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결정적인 변수였을까?

미래통합당에 내재한 본질적 한계는 자주 간과된다.

지난해 2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시작으로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는 보수 야당의 간판 얼굴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보수 세력이 총선에서 승산 있다는 확신을 단 한 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없다. 여론조사 추이만 보더라도 2019년 1월 19%로 시작했던 정당 지지도는 그해 12월 21%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한국갤럽 2019년 1~12월 월간 통합 보고서 참조). 기껏해야 조국 사태와 코로나19 전파 초기 당시 희망을 품어보는 수준이었다.

보수 일각에선 윗세대보다 보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20대 젊은 층에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조차 3공화국 이래 형성돼온 보수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더 컸다. 그들은 보수 야당을 제대로 된 보수 세력의 대변자로 보지 않는다. 그저 해바라기나 다를 바 없는 ‘기회주의자’, 그리고 ‘꼰대’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30대 중반에서 40대의 (주장은) 논리가 없다”는 김대호 후보(관악구 갑)의 말은 젊은 층의 이런 인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김 후보는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살 만하다 보니 (비판) 기준이 일본쯤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040세대를 겨냥한 말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1020세대 역시 ‘살 만한 시대’에 태어나긴 매한가지다.

이런 정서는 젊은 층뿐 아니라 선거 때마다 중간 계층 내지는 부동층의 심리에도 상당 부분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보수 세력이 이런 젊은 세대와 중간 계층, 부동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이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환골탈태의 모습이 보여야 했다. 하지만 보수 세력은 위기 때마다 제대로 된 의식 전환을 보여주지 못했다.

보수당에는 ‘박지성’ 보다 ‘손흥민’이 필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3월 17일 대구 수성못 이상화 시인 시비 앞에서 대구 수성구을에 무소속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 사진:뉴시스
보수 진영은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그러나 영입된 새 인물들은 보수층이나 중간층의 기대를 충족하기보다는 과거 기득권 층에서 안온한 생활을 영위해왔던 타성에 머물러 실망감만 안겨주고는 했다.

21대 총선을 1년여 앞두고 무대에 오른 주인공은 황교안이었다. 데뷔 초기부터 한계에 대한 지적은 많았다. 그런데도 그가 보수 제1야당의 선택을 받았던 명분은 대안 부재론이었다. 그간 보수 진영에서 대선주자급으로 여겨지던 정치인들 가운데 흠집이 나지 않은 인물이 거의 없던 현실과 맞물린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보수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언행으로 상당한 비호감 여론을 만들어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에 특별시장직을 걸었던 ‘가벼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파격적인 총리 지명으로 ‘한국판 케네디’로 부상하는 듯했던 김태호 전 경남지사 역시 이후 행보에서 건강한 상식을 지닌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실패한 모양새다. 이런 인물들로는 21대 총선 선거전을 치르기 어렵다는 정서가 지배적이었던 탓에 황 전 대표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황 전 대표는 보수 진영의 회생보단 본인의 정치적 미래에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2022년 대선에서 자신의 참모 역할을 할 만한 인맥을 만들어내는데 주안점을 두고 움직인다는 소문이 보수 진영 안팎에 무성했다.

사실 정치인에게 무조건적인 희생만 요구할 순 없다. 그러나 객관적 전력이 우세한 ‘톱독(Top dog)’과 열세한 ‘언더 독(Under dog)’의 선거 전략이 달라야 하는 건 당연하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톱독’은 눈앞의 전투를 넘어 그 이후를 미리 염두에 두고 진용을 짤 수 있다. 그러나 ‘언더독’에게는 다음이 없다. 오직 눈앞의 전투에서 이겨야만 그다음이 열린다. 그러니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자기 진영이 가진 모든 가용 전력을 총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지휘관의 개인적 유·불리를 고려할 겨를이 없다.

황 전 대표는 보수 야당의 선거 총사령탑으로 등장했을 때부터 본인 스스로도 인정한 언더독이었다. 당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도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여당 주자들에게 밀리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나를 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예상 못 한 용병술로 감동을 줘야 했다. 자신의 잠재적 라이벌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도 모두 끌어안고 전투에 활용하는 포용력과 과감한 승부 근성이 있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황 전 대표에게는 여기서 한계를 보였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총선 과정에서 황 전 대표를 지켜본 한 미래통합당 관계자는 “지금 당에는 손흥민 같은 스트라이커가 필요한데, 황 전 대표는 박지성 같은 수비형 미드필더 스타일”이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당대 최강 팀에서는 돋보일지 몰라도, 약팀에서 역전승을 이뤄내기에는 2% 부족하다”고 촌평했다.

진보 진영은 이익 앞에서는 절대 분열 않아


▎3월 12일 미래통합당 원외당협위원장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정 공천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펼치려다 저지당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선 홍준표·김태호·윤상현·권성동 등 무소속 출마해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앞으로 당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 중 일부는 차기 대권 도전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들 또한 앞날이 밝다고 보긴 어렵다. 이들이 공천에서 탈락한 데는 물론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대중적 명분도 분명히 있었다.

경남지사 출신의 홍준표·김태호 두 당선자는 처음부터 본인들의 출마 희망지역에 유력 후보나 현역 의원들이 즐비했다. 굳이 그들이 아니더라도 당선이 어렵지 않은 지역과 인물들이었다. 그런 자리를 “지역적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명분을 빌미로 후배 정치인들의 길을 가로막은 셈이다.

특히 홍 당선자는 차라리 서울 동대문을에 재도전했다면 대권 도전에 유리했을 것이다. 비록 떨어졌더라도 당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모습에서 국민이 감동했을 수 있다. 만약 수도권 판세의 불리함을 딛고 역전승을 거뒀다면 새 당권 후보 0순위였을 것임이 틀림없다.

다른 두 당선자도 마찬가지다. 과거 언행에 있어 보수 정당의 품격을 훼손했다는 전국적 여론이 있어 공천 배제된 것이다. 지역별 득표력과 당선 가능성만 100% 반영해 공천하는 것이 정의라고 하면, 무소속 출마했던 후보들의 바람처럼 대부분의 현역 의원을 재공천하는 것이 맞는 논리일 것이다.

물론 공천에서 배제된 중진 정치인들의 경우 자신들의 정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으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겠다고 나설 법도 하다.

그러나 현역 의원이 지역구에서 승리할 만한 조직력을 갖추는 것과 그 의원이 한국 정치 수준에 어떤 기여를 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국민이 국회의원이라는 대리인을 통해 바라는 것은 후자일 것이다. 당 지도부와 공천관리 담당자는 의석 수 손실을 일부 감수하고서라도 전국 판세를 위해 현역 의원들을 컷오프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민이 보수 진영의 정치인들을 두고 이기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 또 이렇게 중진급 의원들이 전국 판세에 눈을 감는 마당에 2년 후 대선이라고 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과거 김영삼·김대중 양김 시대에는 정당 후보 개개인이 당선증을 얻는 것만큼이나 정당 차원의 승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30여 년 동안 이어진 권위주의 군사 정권을 청산한다는 대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정권 획득보다 소속 의원들 각자의 당선을 더 우선하는 행동이 버젓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아닌 ‘선사후공(先私後公)’이 당연한 여의도 문화가 되다시피 한 것이다. 이런 각자도생 문화는 특히 진보보다 보수 진영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진보는 목적을 쟁취하고 나면 보수와 별 차이가 없지만, 일단 이익을 앞에 두고는 예전과 달리 좀처럼 분열하지 않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민주당이 2016년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4연승을 거두고 있는 까닭이다.

이번 총선이 끝나자마자 민주당의 선거기획 책임자이자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려온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사퇴하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느낄 수 있다. “총선 결과가 무섭고 두렵다, 야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양 원장의 행보에서는 날렵함마저 느껴진다. 그 속내야 알 수 없지만,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한다는 메시지를 외부로 발산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선택이다.

양 원장의 선택은 압도적인 승리에 도취할 법한 여당 당선자들에게도 일시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의 승리 가능성이 희박에 보이는 다음 대선 결과가 더욱 한쪽으로 기우는 듯해 보인다.

정치 행위란 다수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경쟁이다. 구체적으로는 과반수의 지지를 얻으려는 과정이다. 경쟁 상대보다 적은 대중적 지지를 받는 정치집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상황을 역전시켜 가장 많은, 적어도 과반수의 지지를 받으려고 전력을 다하는 것이 지상 명제가 돼야 한다.

통합당, ‘소수’ 고정 지지층을 과반수로 착각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4월 16일 국회에서 21대 총선 관련 기자회견을 한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번 선거에서 보수 진영은 전통적인 고정 지지층의 지지를 과반수 지지라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그러니 중도 계층의 표심이 유례없이 여당으로 기우는데도 이를 눈치 못 챈 것이 아닌가.

팀이 이겨야 팀의 가치가 높아지고 소속 선수들 몸값의 총량이 높아질 수 있다. 팀이 3대1로 졌는데, 진 팀에서 유일한 한 골을 넣은 선수가 환호한다면 장내 분위기만 흐릴 뿐이다. 그런 개인주의 문화가 만연한 팀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내가 골을 넣는 것보다 팀이 이기는 것이 최우선인 가치관을 가진 팀만 승리할 수 있다. 지금 전력이 열세인 보수에 필요한 것은 개인플레이가 아니라 이길 수 있는 전력을 갖춘 팀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팀 전력의 향상이다.

그 팀 전력의 향상은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치행태를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개인기에 의존하는 약팀은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다.

물론 정치에서, 특히 선거에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스타 정치인의 존재 여부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력이 열세인 쪽에서 언제까지나 기존의 대권 주자급 인물들을 대상으로 유·불리와 당선 가능성에 대한 진단을 반복하는 것은 승산이 별로 없는 게임에서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헛수고일 뿐이다.

상황이 열악할 때에는 누가 후보감이냐를 고민하기에 앞서 팀의 힘, 집단의 힘, 보수 전체의 힘으로 국민 다수가 바라는 정치 패러다임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국민의 지지를 높여 보수의 집권을 바라는 국민 여론의 힘으로, 귀납적으로 자연스럽게 인물이 떠오르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다수가 원하는 보수 제1야당의 면모를 갖추는 것이 먼저다. 아무리 시간이 없고 급해도 단숨에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먼저 새 인물, 스타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당의 분위기를 고조시켜야 한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강약을 조절해서 국민이 집권당을 비판해줬으면 하는 그때 아주 세게 비판하고 국민이 이것은 협조해주면 좋겠다고 하는 순간 여권에 힘을 보태야 한다. 유권자들로 하여금 ‘보수 정당은 수준이 다르다’는 생각이 갖게 해야 한다. 늘 상대방을 깎아내려 지지율 뺏자는 싸움만 하는 상황에서는 큰 인물이 나오기 어렵다.

- 최원영 정치평론가 danlchoi@naver.com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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