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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심층진단] ‘일본판 MMT’ 아베노믹스의 종착지는? 

돈 푼다고 소비 늘어나지 않아 

재정팽창과 통화 남발에도 물가 안 올라, 포퓰리즘 유혹에 출구정책도 모호
코로나19 이후 다시 양적 완화 기조로, 당장은 괜찮지만 후대에 부담 지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코로나19가 퍼진 4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기자회견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로 경제가 극심하게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2012년 말 이후 경기확장 국면을 이어왔던 일본의 소위 아베노믹스 경기도 마감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일본 경제는 코로나19 쇼크가 습격하기 전인 2019년 4분기에 -7.1%(전분기연률, 2차 발표치 기준)의 극심한 후퇴 상황에 빠졌다. 2020년 1분기 성장률은 플러스 성장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으나, 코로나19로 일본 경제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일본 정부의 월례경제보고(2020년 3월)에서는 6년9개월 만에 ‘회복’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아베노믹스는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2년간 본원통화를 2배로 확대하고, 물가상승률을 2%로 올리겠다는 목표 아래 대폭적 금융 완화, 재정정책의 강화, 성장전략 등 소위 3가지 화살로 시작됐다. 그러나 일본은행의 물가 목표 달성 시기는 계속 연기돼 왔다. 일본은행은 본원통화 확대 목표를 거듭 상향 수정했으며, 현재는 연간 80조 엔에 달하는 본원통화 확대 정책을 실시 중이지만, 최근에는 물가목표 달성 시기 자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MMT(현대화폐이론) 이론가이자 MMT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빌 미첼 호주 뉴캐슬대학교 교수나 대표 이론가인 스테파니 켈턴 뉴욕주립대학교 교수 등은 ‘일본 경제의 경험이 MMT 구축의 시발점이 됐다’고 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는 장기침체에 빠지면서 재정확대 정책을 남발했다. 금리가 급격히 떨어지고 일본은행의 본원통화도 크게 팽창했다. 그럼에도 일본의 물가는 계속 저조한 수준에 그쳤다. 재정팽창과 통화 남발에도 금리가 급등하지 않고 물가상승률도 오히려 마이너스를 우려할 상황에 빠졌던 일본경제를 보고 MMT 이론가들은 각 선진국에 대해서도 재정과 통화의 팽창적 확장을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베노믹스는 장기불황 이후 일본의 재정과 금융의 팽창적 정책을 극한적 수준으로 확대했음에도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겨우 마이너스 상태를 벗어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일본 경제의 상황을 보면, 현재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한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재정 및 금융의 동시 팽창정책을 실시해도 단기적으로 물가가 급등할 우려는 적다고도 할 수 있다.

‘회복’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일본경제


주류 경제학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MMT 이론이지만, 최근의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비상시에는 주목받는다. 중앙은행이 무제한적으로 본원통화를 공급하고, 재정확대를 뒷받침하는 동시에 금융시장의 안정과 각 경제 주체들의 유동성 안정화에 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일본의 경우 막대한 재정적자와 본원통화의 급팽창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 발행 국채를 중앙은행이 직접 인수하는 ‘재정의 화폐화(Monetization)’를 금지하는 법률은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의 정책은 MMT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량 공급된 일본은행의 본원통화는 주식 및 부동산 관련 증권, 대기업 발행 기업어음(CP) 등의 매입에도 활용되지만 상당 부분 시중은행의 중앙은행 예금계좌에 예치되고, 대출 등을 통한 총통화의 확대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일본의 재정확대 및 본원통화 팽창 정책은 MMT의 주장과 다른 측면도 있으나 MMT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고 있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통화발행권을 가진 국가의 경우, 재정적자에 대한 제약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MMT의 주장은 달콤한 유혹이기도 하다.

2019년 3분기에 실시한 일본의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각종 재정지원책을 남발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그러면, 왜, 증세를 하는가’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증세 금액에 버금가는 재정적인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가 소비세 인상 충격으로 추락한 것을 보면, 민간으로부터 증세한 자금으로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경제적 효율 측면에서 얼마나 성과가 불확실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줬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은 GDP의 230%를 넘는 정부부채의 누적이라는 선진국 중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도, 국가 파산하거나 초엔저가 발생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의 부채는 국채를 매입한 일본의 각 경제 주체들의 자산이기도 해서 국내 채무와 국내 채권이 상쇄되기 때문이다.

MMT는 물가 우려가 없는 한, 통화와 재정을 팽창하자고 주장하지만, 이는 케인즈 경제학이 완전고용을 달성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이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경제학계 주류는 정부의 비효율적인 재정확대 정책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까 말까 하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그 효과에 대해 보수적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 정부가 민간경제 현장을 세세하게 파악하고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완벽하게 실시할 수 있을 만큼의 고도의 능력을 갖추기 힘들고 어느 선진국 정부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당파 이익, 유착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아베노믹스의 문제점으로서 팽창적 재정 및 금융정책이 만성화하고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할 수 있다. 아베 정권은 양적 완화의 출구정책을 분명하게 제시한 것도, 막대한 재정적자의 삭감에 큰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라는 비판이 따른다. 장기집권의 폐해도 겹쳐 아베 정권 주변의 친분을 활용한 권력형 비리 관련 사건들이 자주 언론에서 언급되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비효율


▎도쿄의 일본은행 본점. 공식적으론 부인하지만, 실질적으론 MMT에 근거한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의 최근 정책 결정 메커니즘에서 전문적인 고려가 점차 약화된다는 문제의식이 고개를 든다. 그동안 아베 정권은 수상관저의 정책주도력을 강화해 왔으며, 특히 공무원의 인사 결정권을 장악하면서 관료 기구에 대한 총리의 영향력이 막강해졌다. 관료기구의 전문적인 분석 능력이나 정책기획 능력을 제고해서 활용하려는 유인이 약해진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 일본에서는 경제기획청 출신 관료 이코노미스트가 양성되고, 일본을 대표하는 논객으로 성장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그러한 예가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매년 발행되는 내각부 작성 경제백서도 과거 객관적 입장에서 새로운 시각과 함께 많은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것에 견주면 최근에는 관심도가 현격히 떨어졌다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이후의 장기불황과 함께 기득권을 옹호하는 관료 주도형 경제정책 결정 시스템을 정치주도형 시스템으로 혁신하고, 정치가를 통해 민의를 신속하게 반영하자는 제도개혁의 결과이자 부작용이기도 하다. 이러한 혁신은 일부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포퓰리즘의 폐해 확산이라는 부작용, 장기집권과 함께 빠질 수 있는 독선 등을 고려하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실제로 2019년 한국에 대해 가해진 일본의 무역규제 조치 결정 과정에서는 한국이 북한에 일본제 민감 품목을 재수출하고 있다는 오도된 정보가 자민당 외교부회 등에서 논의되는 등, 총리 주변의 혐한 우파 인물 등의 영향력이 작용한 흔적도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국제여객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감염자 확산 방치 사건, ‘아베노마스크(각 가정에 두 장씩 면 마스크를 공급하자는 정책이 해결책이 되는가라는 비판을 받음)’, 감염 의심환자들에 대한 소극적 검사에 그친 코로나19 초기 대책의 실패 등 일본 정부의 비전문적인 대응이 국제적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심지어 코로나19 대응 경제대책으로서 ‘쇠고기 상품권’, ‘생선 상품권’을 국민에게 돌리자는 자민당정책 제안은 일본 내에서도 맹비난을 받아 철회되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일본이 본원통화를 남발하고 재정을 확장해 재정적자의 누적을 감수하는 정책은 과연 국민들의 소비 및 복지 수준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인가. MMT는 ‘국가의 채무는 다른 경제 주체들의 채무와 다르다, 현세대의 부담을 후세대에 넘기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실제 상황을 보면 이러한 이론적 설명이 그대로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소비 수준은 1990년 대 이후 부진을 면치 못했으며, 아베노믹스에 의해서도 뚜렷하게 회복하지 못했다. 아베 정권이 등장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7년간의 연평균 민간소비지출 증가율은 0.3%였으며, 이는 아베 정권 등장 이전 7년간(2005~2012년)의 연평균 민간소비지출 증가율 0.6%보다 오히려 하락한 수치다.

국가채무는 일반 경제 주체들의 채무와 다르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누적되면서 해마다 막대한 규모의 채무 상환, 이자 지급 부담 등으로 일본 재정지출의 유연성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성장전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재정적 여유도 감소했다. 저출산 인구 고령화로 인한 연금, 의료 등의 사회보장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재정에서 사회보험기금의 적자를 보전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게다가 각종 사회 보험료가 계속 인상되면서 일본 국민의 가처분 소득 인상도 난관에 빠진다.

지난해 6월에 일본 금융청의 금융심의회가 발표한 보고서(금융심의회 시장 워킹 그룹 보고서 ‘고령사회에 있어서의 자산 형성·관리’, 2019년 6월 3일)에서는 ‘노후에는 연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민 각자가 2000만 엔을 축적해야 한다’라고 언급한 부분이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일본 국민도 재정 건전성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 스스로가 이제 일본 국민의 노후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회피했다고 해석돼 큰 반발이 발생한 것이다. 일본의 공무원 급여의 인상도 계속 억제돼 왔다. 아베 내각은 그동안 민간 기업에 해마다 임금 인상을 요청하고 소비를 진작해야 한다고 호소해 왔으나 인사원이 권고한 2019년 공무원 급여 인상률은 0.09%에 그쳤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다시 108조엔 투입


▎코로나19 전(위 사진)과 후(아래 사진)의 도쿄 아사쿠사 센소지 풍경. 일본의 소비심리 위축을 짐작할 수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누적되는 재정적자를 줄이자면 누군가가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미래에 있을 부담 때문에 현재의 소비를 억제하려는 경향도 나타난다. 재정악화가 중장기적으로 만성화할 경우 성장잠재력과 국민 생활 수준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는 2019년 4분기에 이어 2020년 1분기, 2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연간성장률도 수출·소비·투자 등 주요 부문의 수요 부진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코로나19의 대유행이 발생함으로써 일본 정부도 4월 7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소비 등 경제활동이 위축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미래다. 감염원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전염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감염 대유행 사태는 적어도 수개월 이내에는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108조엔을 넘는 긴급경제대책 등의 효과 하반기 중에는 먹힌다면 일본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대규모 경제대책을 추가적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이미 위축됐던 중국 경제가 일부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코로나19의 소강상태 진입과 함께 효과를 나타낼 경우, 세계 경제와 함께 일본 경제도 하반기에 급반등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신규감염자의 피크가 지나도 일본이나 세계가 그 후유증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행, 관광 등 산업은 도쿄올림픽 연기의 영향도 있어서 침체 기조가 장기화할 우려는 있다. 일본의 관광 및 여행 산업은 이미 한·일 마찰의 영향으로 충격을 받았던 상황에서 코로나19 쇼크가 발생해 일본 지방경제 악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원격 의료, 원격 근무 확대 등의 영향으로 통신 사업, PC 등 IT분야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세계적인 데이터 센터 투자 회복세에 힘입어 일본의 반도체 장비 수출은 3월에도 연속적으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2020년 후반에는 일본 및 각국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 금융완화, 사람들의 외출활동 재개 등의 영향으로 자동차 판매도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분야는 결이 다르다. 저신용 기업의 과잉채무 문제가 심해진 상황에서 수요와 공급의 차질이 대규모로 발생하는 통에 기업 자금 경색이 우려되고 있다. 일본은행 및 각국 중앙은행은 대규모 통화 공급책을 통해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해소하려 든다. 2008년 리먼 쇼크와 같이 대규모 금융기관의 자금경색, 연쇄부도, 유동성의 세계적인 소멸 위기로까지는 비화하지 않을 가능성은 그리 우려하지 않는 분위기다. 다만 이러한 전개는 과잉채무 기업의 구조조정을 전 세계적으로 지연시키고, 점차 자산시장의 거품을 재확대할 가능성과 각국의 재정적자 문제의 악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코로나19 위기를 고려할 때, 당장은 과잉채무 기업 문제 해결보다 금융시장의 안정화가 우선시되고 있다. 이 결과 일본에서도 하반기 이후 자산시장의 안정화가 예상되고, 기업 자금 사정도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는 재정지출이 관건

이와 같이 현재의 일본 및 세계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재정 확대와 통화공급 확대가 불가피하다. 그런 측면에서 MMT가 각국 정부의 심리적 부담감을 완화하는 효과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것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고 재정적자 규모가 팽창할 경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출구전략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케인스가 말한 바와 같이 재정지출은 미래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 및 분야에 대해서 선택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금이라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재정지원 사업을 구상하고 실시하자면 객관적 증거에 기초한 정책입안(Evidence-Based Policy Making, EBPM)이 정착되고 지속적으로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이지평, [Tokyo Watch] 일본 정부, 26조엔 경제대책에서 ‘와이즈 스펜딩’ 강조, 국가미래연구원, 2019년 12월 18일). 또 경제 및 정책 현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증거 분석도 요구된다. 이를 기초로 한 여러 정책의 예상 효과의 증거를 제시하고 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기반 마련도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보다 스마트한 재정집행, 와이즈 스펜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재정지출의 방향이 보다 전문적으로 결정될 수 있도록 하는 독립적인 실무기구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장기적인 방향의 정책 메뉴가 준비된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경기부양책을 결정할 때, 그 방향을 강화하는 정책을 유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코로나19 쇼크 국면에서 한국이 질병관리본부라는 전문적인 행정기능을 갖추고 대응해 성과를 보인 반면 일본에는 이러한 조직이 부재한 탓에 대응에 실패한 측면이 있다. 재정 및 예산 등에서도 이러한 전문집단의 조직적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 jplee@lgeri.com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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