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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코로나 방역 모범국 비결은 

차이잉원·리셴룽의 리더십, 사스(SARS) 악몽 재현 차단 

대만, 1월 중순부터 본격 대비 돌입… 2월부터 중국 통하는 길목 모두 막아
싱가포르, 투명한 정보 공개와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 속 유연성 발휘


▎올 3월 6일, 군 인력과 자원봉사자들이 대만 타이난시에 있는 한 생산업체에서 의료용 마스크를 만들고 있다. / 사진:EPA/연합뉴스
세계 각국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 대만의 각급 학교들은 2월 25일 개학해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겨울방학을 늘리고 여름방학을 줄이는 식으로 당초 2월 11일로 예정된 초·중·고등학교의 개학 일정을 2주간 늦췄다. 대만 정부는 개학을 연기하는 동안 마스크 645만 장을 비롯해 체온계와 손 소독제 등을 다량으로 준비했다. 또 책상마다 설치할 칸막이까지 마련했으며, 교사들에게 방역 교육까지 했다. 학생과 교사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채 수업에 임하고 있다. 일부 학교들은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기상 시 1회, 학교 도착 시 1회, 교실 내에서 1회 등 총 3회 체온을 측정해야 한다. 학생의 체온이 37.5도 이상이면 학교를 쉰다. 학교들은 10개 이상의 등교 루트를 만들어 학생들이 집단으로 만나는 일이 없게 했다.

대만 정부는 초·중·고에서 한 반에 교사 또는 학생 1명이 코로나19로 확진되면 해당 학급의 수업을 중단하고 14일 내 동일 학교에서 2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면 14일간 휴교한다는 원칙을 세워놓았다. 대만 정부는 혹시라도 확진자가 나와 휴교를 하거나 아이들을 집에 격리해야 할 경우 발생하는 아이들의 돌봄 문제도 제도적으로 정비해 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스포츠가 중단됐지만 대만 프로야구는 4월 11일 개막했다. 라쿠텐 몽키스와 중신 브라더스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4개 팀은 총 240경기를 소화하게 된다. 당초 3월 14일 개막할 예정이었지만 2주 늦췄고, 이후 일정을 다시 바꿨다. 경기는 무관중으로 진행되고 있다. 각 팀은 경기장 출입 인원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선수나 구단 직원 중 확진자가 나오면 즉각 리그를 중단할 방침이다. 대만은 미국·일본·한국과 함께 세계 4대 프로야구 리그를 운영하는 국가다. 미국·일본·한국 등 3개 프로야구의 개막 일정이 코로나19로 불투명한 가운데 대만이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대만, 사스(SARS) 반면교사 삼아 12월 말부터 대응


▎코로나19에 대한 대만 정부의 법정 전염병 공식 지정 6일 뒤인 1월 21일, 대만 타이베이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대만은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 방역의 ‘모범국’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코로나19가 중국을 거쳐 유럽과 미국을 휩쓸고 남미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지구촌에는 안전지대라곤 없어 보인다. 치료제와 백신도 개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때까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각국 정부의 방역대책과 역량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자그마한 섬나라 대만이 세계 최고의 방역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만의 전체 인구는 2377만 명이며 면적은 3만5980㎢밖에 되지 않는다. 대만에선 4월 14일 기준으로 확진자 393명, 사망자 6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반면 대만보다 인구가 59배나 많고, 면적에선 330배나 큰 중국은 확진자가 8만여 명이나 발생하고 3천여 명이 사망하는 등 상당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발병국이란 오명까지 듣고 있다.

대만이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이란 평가를 받게 된 비결은 무엇보다 지난 2002~2003년 중국에서 발생해 유행했던 사스(SARS,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의 교훈을 지금까지도 뼈저리게 새겨왔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정부의 정보 은폐 등으로 대만은 37명이 숨지는 등 인명 피해를 입었고 수습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과거의 이런 경험을 잊지 않았던 대만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를 기다리지 않고 초기부터 강력한 조치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31일 공식적으로 WHO에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다고 통보한 날부터 대만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 실행에 돌입했다. 같은 날 대만 정부는 우한에서 출발하는 항공기에 대한 검역을 시작했다. 당시 대만 정부는 우한에 바이러스 전문가를 파견해 독자적인 조사를 벌였다. 사스 때 중국 정부의 정보만 믿다 낭패를 당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제이슨 왕 미국 스탠퍼드대 예방의료연구센터 교수는 의학 잡지 [JAMA]에 기고한 논문에서 “WHO를 포함한 국제 사회가 코로나19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12월 말부터 대만은 이미 검역 수준을 높이고 본격 대응했다”고 밝혔다.

경제적 타격 감수하고 중국 교류 차단


▎올 1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연임에 성공한 뒤 손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대만 정부는 올 1월 15일 코로나19를 법정전염병으로 공식 지정한 데 이어 1월 20일 중앙전염병 지휘센터를 개설해 관련 업무를 총괄하도록 했다. 대만 정부는 1월 23일 우한으로부터의 입국 금지를, 이틀 뒤인 1월 25일부터는 자국민의 중국 여행을 중단시켰다. 대만 정부는 2월 6일, 14일 이내 중국 본토를 비롯해 홍콩과 마카오를 방문한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홍콩과 마카오를 방문한 사람 중 대만 거류증을 소지한 사람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입국을 허용했지만 14일간 자가 격리를 하도록 했다. 또 2월 10일부터 중국 푸젠성과 가까운 진먼다오(金門島)와 마주다오(馬祖島)에 대한 왕래도 중단시켰다. 대륙과의 항로와 해로 등 모든 직항 노선을 끊은 것이다. 입국 금지는 중국과 관계된 수많은 기업과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경제 타격이 예상되었음에도 대만 정부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중국 본토에서 일하는 대만인도 85만여 명에 달하고, 중국 수출이 전체의 30%를 차지하는 대만으로선 경제적 희생을 감수한 조치였다. 때마침 중국 정부가 2016년과 2019년 대만에 대한 단체 및 개별 관광을 제한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 상태였던 점도 대만 정부가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다.

대만 정부의 또 다른 과감한 결정은 중국에 대한 마스크 수출 중단과 ‘마스크 실명제’를 도입해 일종의 ‘배급’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만 정부는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한 다음 날인 1월 24일부터 의료용(N95) 마스크에 대해 1개월간 수출금지 조치를 발동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만에서 사용할 마스크가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의료물자 비축에 나선 것이다. 수출금지 조치에 대해 친중 성향인 국민당 출신인 마잉주 전 총통 등이 ‘인도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비판하자, 쑤전창 행정원장(국무총리)은 “자신을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自救才能救人)”고 반박했다.

마스크 전매 후 구매가보다 싸게… 군 병력까지 생산 투입

대만 정부는 마스크 매점매석을 막기 위한 ‘마스크 실명제’를 시행했다. 당초 대만 정부는 지난 2월 1일부터 1인당 하루 3개까지만 개당 6대만달러(240원)에 마스크를 지정된 약국에서만 살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상황이 갈수록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대만 정부는 2월 6일부터는 건강보험카드를 휴대한 1인이 7일간 1회, 마스크 2장씩에 한해 개당 5대만달러(200원)에 살 수 있도록 했다. 가격통제를 비롯한 매점매석 제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날도 홀짝 수로 지정했다.

대만 정부는 국민에 마스크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생산 업체들에 24시간 공장 가동을 요청했고, 생산 라인 증설에 필요한 자금 2억 대만달러(약 81억원)를 신속히 지원했다. 또 마스크 제작 일손이 부족해지자 군 병력과 예비군까지 동원해 마스크 공장에 배치했다. 대만 정부는 마스크 생산량을 전부 사들여 구매가보다 판매가를 낮춰 팔았다. 마스크 유통을 위해 중화우정망(한국의 우정사업본부) 직원들을 투입했다. 하루 근무 인원 약 7000명 중 3000명을 이에 배정했다. 국가 기관이 유통까지 맡으니 당연히 마진 논란도 없었다. 대만의 마스크 생산량은 하루 400만 개(1월 30일)에서 500만 개(2월 17일), 820만 개(3월 첫 주)까지 늘었다. 4월 초부터는 마스크 1300만 개를 생산하고 있는 대만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각국에 700만 개, 미국에 200만 개, 대만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15개 수교국에 100만 개의 마스크를 각각 기증했다.

약국의 마스크 재고량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개발됐다. 천재 해커 출신인 오드리 탕 대만 IT 담당 장관이 실시간 재고 데이터를 민간에 공개하고, 민간 개발업자들이 지도 데이터와 연결해 ‘마스크 지도’를 만들었다. 대만에선 마스크를 찾으러 거리를 헤매거나 따로 줄을 설 필요도 없다. 이 앱은 마스크를 판매하는 약국 위치와 보유 수량은 물론 영업시간·주소·전화번호 등 세세한 정보까지 게시해 국민의 혼란을 덜고 있다.

대만 정부의 또 다른 비결로는 차이잉원 총통의 강력한 리더십과 일사불란한 지휘통제 체제 및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들 수 있다. 올 1월 11일 총통 선거에서 압승하며 연임에 성공한 민진당 출신의 차이 총통은 그동안 중국 정부의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라는 압박과 위협을 받아왔지만 이를 거부하는 뚝심을 보여 왔다. 차이 총통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 원칙으로 내세우면서 중국 정부의 ‘눈치 보기’를 배제하고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서슴없이 내리는 등 단호한 결단력을 보여 왔다. 특히 차이 총통은 전염병 전문가들을 비롯해 의료진 등의 조언과 의견을 중시했다. 대만 정부는 전문가들이 참석한 대책회의를 수시로 개최해 상황 변화에 따른 행동계획 124개를 만들어 즉각 실시했다. 이 중에는 해외 체류 이력을 건강보험카드를 통해 확인하도록 해 병원에서의 감염 가능성을 줄이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전염병 전문가인 윌리엄 섀프너 미국 밴더빌트 의대 교수는 “대만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전염병 전문가, 과학자, 의사로부터 조언을 구했고 그대로 실행했다”며 “이는 매우 좋은 전염병 대처 공식”이라고 평가했다.

“일사불란한 지휘통제 체제, 효과적”


▎싱가포르 정부가 보건경보 등급을 ‘오렌지’로 격상시킨 이튿날, 사재기가 일어난 모습.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차이 총통은 또 미국 존스홉킨스대 공중보건대학원 방역학 박사 출신 천젠런 부총통에게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책을 총괄하도록 했다. 천 부총통은 2002~2003년 사스 사태 때 위생복리부 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으며, 2004년 세계 최초로 중앙전염병 지휘센터를 설립하는 등 대만의 방역 체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천 부총통은 대만에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전에 위생복리부에 대책 마련을 지시하는 등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천스중 위생복리부 부장도 헌신적으로 일하면서 코로나19 방역의 일등공신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건강보험위원회와 타이베이시 의사회 고문으로 활동한 천 부장은 타이베이 의대를 졸업한 치과 의사 출신이다. 2017년 2월 취임해 역대 최장 위생복리부장 기록을 세우고 있는 천 부장은 ‘중앙전염병 지휘센터 지휘관’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천 부장은 ‘지휘관’이라고 적힌 조끼를 입고 강행군을 하고 있어 ‘철인(鐵人)부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중앙전염병 통제센터는 주말을 포함해 매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보를 공유한다. 천 부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진행해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부의 정보와 조치를 일원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또 자가 격리된 사람들을 관리하는 ‘전자 울타리(electronic fence)’라는 휴대전화 위치추적 시스템을 도입했다. 휴대전화 위치가 주소지에서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거나 휴대전화기 신호가 15분 이상 잡히지 않으면 지역 공무원이나 경찰에 알람이 가고, 15분 이내에 해당 주소지에 연락을 하거나 직접 방문한다. 대상자들이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외출하지 않는지 하루 2번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방식이다. 대만 정부는 또 자가 격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 무단이탈 사실이 적발되면 즉각적인 강제 격리와 더불어 격리 비용으로 하루 4500대만달러(약18만5000원)를 청구한다. 왕 스탠퍼드대 교수는 “코로나19 발생 초기 신속하고 엄격한 대응에 힘입어 대만 정부는 중국 인접국임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면서 “대만 정부가 일사불란한 지휘통제 체제로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적절한 조치에 나선 것이 지금까지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만 정부의 방역 성과 덕분에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68%까지 치솟는 등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차이 총통은 오는 5월 20일 취임식을 갖고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지만 코로나19 방역에 매진하기 위해 취임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차이 총통은 또 “코로나19 사태로 취임식 당일에 대형 경축행사를 갖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만 총통부는 다만 차이 총통의 취임선서와 외국 국빈 접견 등 일부 일정은 계획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도 대만 수준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에서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올 2월 1일부터 중국을 다녀온 이력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입국을 금지하고, 중국인에 대한 비자발급을 중지했다. 자국민과 영주권 또는 장기체류 비자를 받은 외국인에게는 입국을 허용하되 14일간 격리 조치했다. 싱가포르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올 1월 30일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다녀온 40대 자국 여성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등 모두 13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싱가포르 정부도 과거 사스 때문에 상당한 인명피해를 보았던 경험 때문에 관광을 포함한 경제 전반에 대한 타격을 각오하고 과감하게 대처했다. 싱가포르는 사스 당시 중국의 정보 은폐로 33명이 사망하는 등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게다가 중국 관광객이 전체 관광객의 20%를 차지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데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원칙에 따라 모든 중국인의 입국 금지 결정을 내렸다.

사재기 발생하자 총리 나서서 안심시켜


▎올 2월 8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영상으로 코로나19 대국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후 사재기는 사라졌다. / 사진:싱가포르 총리실 유튜브 캡처
그런데 싱가포르 정부가 2월 7일 보건 경보 등급을 기존의 ‘옐로우’에서 ‘오렌지’로 한 단계 올리자 국민들이 상당한 공포를 느끼면서 사재기에 나서는 사태가 발생했다. 과거 사스 때와 똑같은 오렌지 등급의 경보가 발령되자 싱가포르 국민들은 앞 다퉈 슈퍼마켓과 마트 등으로 달려가 각종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들였다. 소셜 미디어에는 카트마다 물품을 가득 채운 국민들이 계산대 앞에 줄 선 모습이 공유되면서 불안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러자 리셴룽 총리는 2월 8일 소셜 미디어 영상으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리 총리는 다인종 구성을 고려해 영어·중국어·말레이어 등 3개 언어로 제작된 9분간의 담화를 통해 정확한 정보 전달, 솔직한 한계 인정, 구체적인 계획과 명확한 행동수칙을 제시하고 국민의 협조를 요청했다. 리 총리는 담화에서 “싱가포르에는 충분한 보급품이 있는 만큼, 컵라면이나 화장지 등을 사재기할 필요가 없다”고 국민을 안심시켰다. 그는 또 “사스 사태를 거치면서 정부는 훨씬 더 잘 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는 바이러스 자체보다 두려움이 더 해를 끼친다. 이번 사태를 극복할 수 있다는 단결되고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리 총리는 이어 “상황이 악화하면 접근 방식에 변화를 줄 것”이라면서 “모든 과정을 국민에게 계속해서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리 총리의 담화 이후 사재기는 없어졌다.

리 총리의 담화는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리더십의 ‘모범사례’라는 말까지 들었다. 전염병에 대한 대중 반응을 연구해 온 클레어 후커 호주 시드니대 부교수는 “리 총리의 연설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의 매우 뛰어난 사례”라면서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면서 국민들을 안심시켰다”고 평가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은 환경·사회·경제적 위험성에 관한 정보를 위험 관리자·주민·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것을 뜻한다.

리 총리는 2월 14일 창이 국제공항을 찾아 근무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코로나19의 경제 충격이 이미 사스 당시를 넘어섰다”면서 “경기침체 여부는 정확하게 말할 순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싱가포르가 방역에 상당한 성과를 거둔 또 다른 비결은 국민들이 철저하게 정부 지침을 지키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태형(笞刑)이라는 처벌이 있을 만큼 각종 법을 통한 규제와 통제의 나라로 유명하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거리를 다니다 보면 쓰레기가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벌금 때문이다. 쓰레기를 버리면 초범은 500싱가포르달러(약 42만원), 재범은 1000~2000싱가포르 달러(약 85~170만원)를 내야 한다. 침을 뱉어도 적발 횟수에 따라 500~2000싱가포르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노상 방뇨도 마찬가지다. 껌의 판매·소지·수입은 완전히 금지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을 처벌한 나라도 싱가포르다. 음주 운전 상습범은 최고 3만 싱가포르 달러 벌금(약 2560만원)과 징역형이 부과된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에서 1년 동안 적발되는 음주 운전 건수는 100여 건 정도다.

자가 격리 지침 어기면 여권 무효화 조치

싱가포르 정부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침으로 내렸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와 ‘앉지 말라’는 표식이 붙은 의자가 있는 곳에서 의도적으로 1m 이내에 앉거나, 1m 보다 가깝게 줄을 서는 경우에는 최대 1만 싱가포르 달러(약 850만원) 벌금 또는 최장 6개월 징역형을 각오해야 한다. 또 직장·학교 바깥에서 10명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하고, 커피숍·식당·쇼핑몰 등에서 1m 이상 서로 거리를 두도록 했다. 특히 싱가포르 정부는 자국인들은 물론 모든 입국자에게 14일간 의무적으로 자택이나 지정 거처에서 자가 격리를 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1만 싱가포르 달러의 벌금 또는 최장 6개월의 징역형에 처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3월 29일 자가 격리 지침을 위반한 자국민의 여권을 무효로 했다. 이 사람은 앞으로 영원히 싱가포르를 떠날 수 없다. 싱가포르 정부는 또 자가 격리 지침을 어긴 45세 중국 국적 영주권자에 대해 영주권을 박탈하고 재입국을 금지했으며, 외국인 유학생 2명에 대해선 비자를 종료하고 사실상 추방했다.

싱가포르 정부의 또 다른 비결은 정책을 상황에 따라 바꾼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미국과 유럽에서 귀국하는 자국민들과 이주노동자 때문에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하자 유연한 대응에서 초강경 대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리 총리는 4월 7일부터 4주 동안 필수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모든 사업장을 폐쇄하고, 학교를 4월 9일부터 재택수업으로 전환했다. 싱가포르 각급 학교의 경우, 3월 23일 봄 단기 방학을 마친 뒤 예정대로 개학했었다.

이번 조치에 따라 시장과 슈퍼마켓, 의원과 병원, 공익 사업장, 운송 및 주요 금융 서비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장은 문을 닫았다. 관광 명소, 테마 파크, 박물관 및 카지노는 물론이고 쇼핑몰과 상점, 회사까지 모두 휴업에 들어갔다. 리 총리는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집에서 나오지 말 것을 당부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민들에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했다.

특히 싱가포르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철저하게 격리하는 조치를 내렸다. 싱가포르에는 인도, 미얀마 등에서 들어온 20만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43곳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청소, 잔디 손질, 식당 일, 건설 등 싱가포르 사람들이 꺼리는 일들을 해온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기숙사들은 비좁은 데다 상당히 비위생적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 때문에 코로나19가 이들이 거주한 기숙사에서 크게 퍼졌다. 싱가포르 정부는 건강에 이상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을 군부대 등으로 옮기고, 코로나19가 발생한 기숙사 여덟 군데를 통째로 격리시켰다. 이들 기숙사에는 이주노동자 2만여 명이 살고 있다. 로런스 왕 국가개발부 장관은 “정부가 이주노동자 기숙사들에 대해 더욱 공격적인 검사를 진행함에 따라 확진자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주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치료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체 인구가 585만 명인 싱가포르는 4월 14일 기준, 확진자는 2918명, 사망자는 9명이다.

대만과 싱가포르 정부의 공통점은 이처럼 초기 조치를 단호하게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 격리 조치 및 지도자의 리더십 등을 통해 코로나19와의 싸움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21세기의 페스트’라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지도자의 리더십과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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