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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靑 ‘적자국채’ 발행 시도 폭로한 신재민 전 사무관 

“교과서에 나온 노무현 재정개혁 文 정부 실행 안 해” 

“‘부총리 패싱’한 청와대 행태가 ‘적자국채 발행 시도 의혹’의 본질”
3월 출간한 책에 관련 문건 새로 공개… “고발당할 각오로 원고 써”


▎신재민 전 사무관이 2018년 12월 29일 유튜브 개인방송에서 2017년 말 정부의 적자 국채 발행 시도 의혹 등을 폭로하고 있다. / 사진:유튜브
2018년 12월, 서른두 살 전직 5급 사무관이 세상을 흔들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그 주인공이다. 새해를 사흘 앞둔 12월 29일 신 전 사무관은 문재인 정부가 민간 기업인 KT&G 사장 인사에 개입했고, 청와대가 불필요한 적자국채 발행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정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의 폭로로 여권은 곤혹스런 상황으로 내몰렸다. 불과 사흘 전인 2018년 12월 26일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이 이른바 ‘환경부 산하기관 블랙리스트’ 문건을 공개했던 까닭에 파장은 더욱 증폭됐다. 자유한국당은 “환경부가 8개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동향을 담은 문건을 작성해 2018년 1월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신 전 사무관이 자기 주장을 밝힌 방법도 공격적이었다.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렸고, 고려대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고파스’에 줄곧 심경을 드러냈다. 국회 본청 1층 정론관 기자회견장이나 서울 광화문광장처럼 익숙한 오프라인 공간을 택하지 않았다.

그만큼 퇴장 순간도 평탄치 않았다. 2019년 1월 2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연 다음 날, 신 전 사무관은 대학 지인에게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잠적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모텔에서 자살 시도를 하던 그를 경찰이 발견한 것은 잠적한 지 다섯 시간이 지난 오후 1시경이었다.

당시 정치권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김병준 당시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신 전 사무관을 두고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최대 양심선언”(2019년 1월 3일)이라며 극찬했다. 반면 여당에서의 반응은 냉담했다. 손혜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단기간에 큰돈을 벌기 위해 사기행각을 벌인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자”(2019년 1월 2일)라며 깎아내렸다.

이후 병원 입원, 칩거 등으로 세상과 거리를 둬오던 신 전 사무관이 최근 책 [왜 정권이 바뀌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가]를 펴냈다. 2018년 폭로 당시 못다 한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고 한다. 책 머리말에서 그는 “‘행정부 시스템이 문제’라는 내 메시지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진영 논리로 비난을 받았다”고 여야의 정쟁에 휘말린 소회를 대신했다.

4월 1일 만난 그는 “(출간 이후) 진보 성향 언론사에서는 거의 연락이 없다”고 말했다. 주로 보수 언론에서만 접촉을 해온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 같느냐’고 묻자 그는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정치가 아니라 행정을 비판하고 싶었다”는 게 책을 펴낸 그의 변이었다.

차관 부속실 책상에 놓인 KT&G 문건


▎신재민 전 사무관이 4월 1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비판하고 싶었던 건 정치가 아닌 행정부 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있다.
2018년 5월 16일 MBC가 기재부 내부 문건을 단독 보도했다. 그해 3월에 있었던 KT&G 사장 선임과정에 기재부가 개입할 방법을 담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올린 유튜브 동영상에서 제보자가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국고국 총괄과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인사에 관련한 내용을 두루 파악할 수 있었다. 문제의 그 문건만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면 공직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차관 부속실 컴퓨터 바탕화면에 문건이 있는 것을 보고서 처음에는 집에 갔다. 그런데 며칠 뒤 부속실을 다시 찾았을 때 문건이 그대로 있더라.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주어진 선택지는 언론 제보뿐이라고 생각했다.”

신 전 사무관 제보로 당시 MBC가 공개한 문건에는 정부가 KT&G 2대 주주인 기업은행 지분을 통해 사장 선임에 개입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정부는 소유 지분이 없어 직접 개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용이 사실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했던 민간기업 인사불개입 원칙을 깨는 것이었다. 문건에 대해 당시 기재부는 “실무자가 동향파악 차원에서 혼자 보려고 작성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2018년 7월 사표를 냈다. 현직에 있으면서 언론을 통해 내부 제보를 이어가는 방법은 없었을까?

“보도가 나가고 나서 문건을 유출한 사람이 누군지 내부적으로 감찰이 나왔다. 그런데 정작 밖에서는 해당 문건을 다룬 보도가 별다른 파장 없이 묻혔다. 그래서 내가 밖으로 나가 직접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편으론 이렇게 내부적으로 시끄러운데 제보자가 아닌 척 근무하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신념과 조직 사이에서 방황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4월 10일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신재민 전 사무관 고발 취소 등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동영상에서 ‘청와대가 불필요한 적자국채를 발행하라고 기재부를 압박했다’고도 주장했다. 우선 왜 적자국채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나?

“폭로 당시 2017년 11월 14일 기재부 차관보가 만든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내용을 공개했다. 그 차관보는 “핵심은 2017년 국가 채무 비율을 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기재부는 8조7000억원 한도에서 적자국채를 추가로 발행할 수 있었다. 국회에서 그해 허용한 한도가 그랬다. 그런데 2017년 당시 세입이 15조원가량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적자국채를 발행할 이유가 분명치 않았다. 국가 재정법 상 다음해 추경에 쓸 수도 없는 돈이었다.”

당시 폭로 내용의 엄중함을 보여주는 데 있어 카카오톡 단톡방 대화 기록을 증거로 삼긴 다소 부족하단 느낌도 있었다.

“이번 책에서 부총리 지시사항으로 국가 채무 비율 39.4%를 달성하기 위해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내부 문건(‘17.12월 국고채 발행 계획(안)’)을 처음 공개했다. 부총리 지시시항이라는 점과 목표 채무 비율인 39.4%, 그리고 추가 발행할 적자국채 4조6000억원이 명시돼 있다.”

왜 폭로 당시 문건을 공개하지 않았나?

“퇴직 후에도 관련 문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당시에도 순차적으로 문건을 공개하려고 했지만 당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바람에 때를 놓쳤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해 1월 2일 기재부로부터 공무상 비밀 누설 및 공공기록물 관리에 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미 한 차례 검찰에 고발됐었다. 2018년 5월 MBC에 제공했던 KT&G 사장 선임 관련 기재부 문건 때문이었다.

지금은 법적인 문제가 없나?

“고발 당할 각오로 이번에 공개했다. 법정에서 사실 관계를 제대로 다퉈보고픈 마음이 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어떻게 압박이 들어왔었나?

“당시 국고국장이 직언한 덕분에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는 적자국채를 추가로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런 내용으로 2017년 11월 23일 ‘12월 국고채 발행 계획’을 작성한 뒤 기자실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자 곧바로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차영환 경제정책비서관(현 국무조정실 2차장)은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하는 것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한 상황이니 보도자료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미 배포된 자료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취소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대통령은 선출된 권력이다. 경제부총리도 국회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치 아닌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청와대나 김동연 당시 부총리가 정무적 판단의 내용이 무엇인지 폭로 이후에라도 설명을 해줬나? 말해줬다면 논리에 따라 납득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 안 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말기의 나라 빚이 많아보이게끔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기자회견 다음 날 아침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이때 무슨 일이 있었나?

“계획에 없었던 기자회견이었다. 1월 2일 언론사 두 곳(방송사와 신문사)과 인터뷰를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전날 심리 상담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마음이 불안정했다. 그래서 부득이 인터뷰 당일에 거절 의사를 보냈다. 그랬더니 다른 신문사의 기자가 ‘다음날 신문 지면을 이미 잡았기 때문에 정식 인터뷰를 안해도 (기존에 담당 기자가 전화 통화를 통해 얻은 신 전 사무관의 코멘트를 바탕으로) 기사는 나간다’고 알려왔다. 어차피 기사가 나간다면, 유튜브 동영상처럼 모든 기자를 상대로 말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권은 바뀌어도 ‘청와대 정부’는 그대로


▎신재민 전 사무관이 지난해 1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강남구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서 부모님이 계신 강북구 자택이 아닌 관악구로 향했다.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재부를 나오고 나서 관악구에 마련한 원룸에서 생활했다. 원룸에 온 뒤 (유튜브 동영상을 올리고 나서) 처음으로 여론 반응을 살폈다. 기사 댓글도 보고, ‘구글 트렌드’도 돌려봤다. 부정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더라. ‘할 만큼 했는데, 세상이 나를 믿지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가지고 있는 문건을 더 공개해도 나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날 기자회견을 둘러싼 여론 반응이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했던 건가?

“개인적인 죄책감도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국채 발행 의혹과 관련한 실무자 이름(차영환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을 밝혔다. 차 비서관 역시 30년 가까이 기재부에서 일한 선배였다. 내가 몸담았던 부서와 나를 아꼈던 선임자들에게 불이익이 갈까 봐 죄스러웠다. 나를 믿어줬던 사람들 뒤통수를 친 것 같아 괴로웠다.”

1월 2일 기재부가 신 전 사무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 일도 감정 상태에 영향을 미쳤나?

“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래서 그날 서둘러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도 있다.”

이후 홍남기 부총리는 2019년 4월 신 전 사무관에 대한 고발을 취소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담당 차관이 신 전 사무관의 부모를 만났는데 자성하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왔다”며 고발 취소 배경을 설명했다. 같은 해 1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신재민 전 사무관은 자신이 경험한 좁은 세계 안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다”라고 말한 지 4개월 만에 나온 결정이었다.

문건을 공개한 일을 후회하는가?

“그렇지 않다. 유튜브 동영상을 올릴 때와 책을 내는 지금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다만 신념대로 행동한 결과로 조직에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 신념과 조직에 대한 마음 중 하나를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단으로 상황을 밀어붙이다가 마음이 깨져버린 것 같다.”

신 전 사무관은 2019년 1월 3일 고파스에 올린 유서에서도 “고발을 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못할 거란 부채의식 때문에 6개월 동안 폐인처럼 살았다”고 토로했다.

줄곧 조직에 미안함을 토로하면서도 신념을 강조한다. 신념과 조직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폭로를 결심한 동기는?

“2016년 촛불집회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전까진 나도 조직문화를 적극 따르는 편에 가까웠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기재부 출신 선배들의 이름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등장하더라. 검찰 압수수색도 들어왔다. 이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한 결과 적폐세력의 일부가 돼버린 것이다. ‘촛불정신’을 내건 새 정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이던 검찰은 2016년 11월 24일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기재부 1차관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2008년 기재부 출범(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통합) 이후 처음 있는 검찰 압수수색이었다. 기재부는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에서 기부금을 낸 기업들에 면세점 인허가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기재부는 관세청과 함께 면세점 사업 인허가 업무를 담당한다.

“현 정부, 참여정부 재정개혁 때보다 후퇴”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월 10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에 대해 “자신이 아는 좁은 세계 속의 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4월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 적용된 혐의 다수를 인정했다. 1심 판결문엔 신 전 사무관이 말한 ‘기재부 선배와 동기’가 등장한다. 판결문에서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1월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 ‘면세점 관련법을 조속히 통과시킬 방안을 찾아 보고하라’고 지시한다. 해당 지시는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기재부 관세제도과 과장과 사무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나온다.

신 전 사무관 내면의 갈등을 지금 현직에 있는 후배들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후배들이 당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동일한 선택을 권할 것인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2018년 12월 당시 나선 것이다. 이렇게 나온 나도 잘 먹고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지난해 2월 28일 퇴원한 뒤 기재부 고발 건에 관련한 검찰조사가 이어졌다. 마음을 추스리기에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난해 4월 10일 홍 부총리의 발언이 있기 전까지 참고인 조사만 받았다. 발언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의자 조사를 한 차례 받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담당 검사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추천하는 등 오히려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줬다.”

당시 담당 검사에게 ‘차라리 기소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는데.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생각했다. 내가 언론에 제보한 문건은 KT&G 사장 선임과 관련한 것 하나였다. 공공기록물로 등록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제보했다. 그런데 그걸 비밀 누설이라고 할 수 있나? 이번에 법정에서 분명히 다퉈야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소를 자청한 것이다.”

사무관 시절 경험했던 일화들을 책에서 무척 상세하게 소개했다. 당시를 기록한 비망록이 있는 건가?

“그렇지는 않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문건들을 중심으로 기억을 되살려 살을 붙였다.”

폭로 당시 실명을 거론한 사람들에게 연락한 적 있나?

“책을 내는데 무슨 면목으로 연락하겠나.”

책에서 지향점으로 제시한 것이 참여정부의 재정개혁이었다.

“‘3+1 재정 개혁’이라고 해서 행정학 교과서에 나온다. 쉽게 말해 위에서 부처의 예산총액을 결정하고 내려주면 아래에선 부처별로 예산을 자율 편성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5월 기재부 예산실 폐지를 시작으로 시동을 걸었는데, 다음 정부에서 원상 복귀했다. 현 정부에서도 변함 없다. 모범 답안이 나와 있는데 실천에 옮기지 않을 뿐이다.”

노무현식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낀 경험이 있나?

“예산 기금 편성 업무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어느 지역에 파출소가 더 필요한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그런데도 그 판단을 내가 해야 했다. 사무관이 이해 안 되면 예산을 다 삭감한다. 부처에서 정말 필요한 예산이면 다시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삭감한 예산을 다른 사업으로 채워야 하지 않나. 어떻게 채우는지 정부에선 공개 안 한다. 공무 상 비밀이란다. 그러니 국회의원의 ‘민원예산’처럼 사적인 이해가 비집고 들어온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보수 야당에서도 40조원 규모 국채 발행을 주장하고 있다. 기재부 공무원 출신으로서 이런 선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필요에 따라 채무를 내야 한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추경을 하는 것도 공감한다. 문제는 어디에 쓰느냐다. 예를 들어 가계 차원에서 대출받은 돈 1억원을 가지고 술 마시는 데 쓸 건가, 재교육하는 데 쓸 건가가 중요한 것 아닌가. 규모가 아니라 용처를 가지고 다퉈야 한다고 본다.”

“정치인 될 깜냥도, 자격도 없어”


이제 어디에 쓰느냐를 따지기보다 현금으로 지급하자고 한다. 예산 편성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건 아닐까?

“어느 정당에선 ‘뼈를 깎는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서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어디서 빼는지 사람들이 알까? 뼈를 깎아서 뺄 수 있는 돈이었다면, 왜 예전에는 안 깎았나? 행정부에서 안 알려주니까 판단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중위소득 기준 70%로 할지, 100%로 할지 범위와 총액만 두고 ‘공중전’을 벌이는 거다. 정치 진영이 양분된 탓에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정보가 없으니 싸움이 소모적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공천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다.

“미래한국당에서 지인을 통해 제안했다고 기사에서 봤다. 퇴원한 뒤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서 정말 연락이 왔었는지는 모르겠다. 직접 연락이 왔어도 사양했을 것이다. 지난해의 일을 겪으면서 ‘내가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적 역량이 정말 부족하구나’라고 절감했다. 또 한국 정치를 비판하는 분들은 내가 아니라도 많지 않나? 정치가 아닌 행정부를 비판하고 싶었다.”

정치인이 돼 행정부를 감시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

“내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천을 받으면, 현장에서 헌신하는 청년 당직자, 보좌진들에게 면목이 없을 것 같다. 훌륭한 국회의원 아래에서 훌륭하게 일한 보좌관이 4년 동안 일한 성과를 바탕으로 공천을 받는 것이 맞지 않나. 개인으로선 영광이겠지만, 정당의 액세서리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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