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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예측] 전문가들이 본 ‘포스트코로나’ 대격변 시나리오 

유례없는 코로나19 공격 속, 경험하지 못한 세상 열릴 것 

‘세계의 공장’ 중국 탈출 가속화… 국제적 연대 혹은 고립 갈림길
VR(가상현실), 새로운 만남의 장으로… 투표 기간은 1개월로 확대?


▎코로나19로 인해 정오인데도 영국 런던 의사당 앞 웨스트민스터 다리에 인적이 드물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을 가리키는 ‘팬데믹(pandemic)’을 선언한 지 30여 일 만에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2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4월 15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97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사망자 수는 12만여 명이다. 전 세계 국가(239개)의 77%에 해당하는 185개국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태다. 그야말로 바이러스 하나가 지구를 휩쓸고 있는 셈이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의 세계는 ‘코로나19 이전(BC, Before Corona)과 이후(AC, After Corona)’로 구분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험하지 못한 대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등을 집필한 유명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도 “이 폭풍이 지나고 인류는 살아남겠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 각국은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숨죽이고 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엄청난 격변의 씨앗이 꿈틀거리고 있다.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전 세계 석학들은 앞으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어떤 부분에서 우리의 삶이 변화할지 전망하고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소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국가들은 의료 물품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마스크는 물론 방호복, 인공호흡기 등 코로나19 예방과 치료에 필수적인 물자가 부족한 상태다. 이에 대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4월 10일 영국 [가디언(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의료용품 공급이 어느 한 국가 또는 한 지역에 집중돼 있을 경우에 초래되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상황이 마무리된 이후 서구 국가들의 의료용품 수입은 줄어들고, 국내에서의 생산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 기고한 미국외교협회(CFR)의 섀넌 오닐 선임연구원도 비슷한 의견이다. 오닐 연구원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에서 더 많은 회사가 그들의 공급품이 어디에서 왔는지 파악하고, 공급 다변화를 위해 효율성을 다시 생각할 것”이라고 봤다. 코로나19가 글로벌 공급망의 고리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닐 연구원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지역의 공장 폐쇄로 병원, 약국, 슈퍼마켓, 소매유통뿐만 아니라 다른 제조업체들의 재고와 제품 공급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기업들은 이제 오늘날 생산을 지배하고 있는 다단계, 다국적 공급망을 재고하고 축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맹점이 코로나19로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에 이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일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얽히고설킨 세계 경제 시스템 전면 수정 불가피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으로 프랑스 보르도의 대형 쇼핑몰 주자창이 텅 비어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로빈 니블렛 소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코로나19가 경제적 세계화를 후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한다. 니블렛 소장은 “이미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첨단 기술과 지적 재산권 사용을 금지시켰고, 동맹국에 이를 따르도록 결정했으며, 탄소 배출량 감축 요구에 많은 기업은 장거리 공급망에 의존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중 무역 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코로나19가 글로벌 공급 체계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이어 “세계 경제 통합에서 오는 공동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동기가 없다면 20세기에 만들어진 세계 경제 거버넌스는 빠르게 위축될 것”이라며 “21세기 초에 정의했던 상호 유익한 세계화라는 개념이 계속 효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에볼라 보도로 1996년 퓰리처상을 받은 과학 저술가 로리 가렛은 코로나19로 인해 근본적인 경제 시스템의 변화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가렛은 “코로나19는 사람들을 감염시킬 뿐 아니라 적시공급(Just-In-Time) 시스템에 치명적인 해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기업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적시 공급 체계와 세계 각지로 분산된 생산 시스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가렛은 기업들이 공급망을 최대한 국내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기고 코로나19와 같은 위협에서 보호하기 위해 공급망을 중복 설계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라고 봤다. 이에 그는 “단기적으로 기업 수익은 감소하겠지만, 전체 시스템은 외부 충격으로부터 회복 탄력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글로벌 공급망의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원자재, 공산품 등의 공급이 위태로워졌다는 점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의 중국 탈피 현상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위축된 경제만큼 정치 분야도 크게 경직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세계화의 후퇴를 예견했다. 그는 “이전의 전염병들은 강대국 간 힘의 대결을 종식하지 못했을뿐더러 글로벌 협력의 새 시대로 인도하지 못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라고 단언했다. 월트 교수는 이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로 후퇴하는 것을 목도하게 될 것이며, 코로나19는 세계를 덜 개방적이고, 덜 번영한, 덜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러면서 “인류는 새로운 우려스러운 길목에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화 후퇴인가 연대 속 진전인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인 예수상이 부활절을 맞아 코로나19에 감염된 나라들의 국기를 비추고 있다. (왼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브라질·한국·미국·스페인·이탈리아·중국 국기 문양. / 사진:AP/연합뉴스
존 앨런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소장도 “이 위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국제 권력 구조를 재편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앨런 소장은 “코로나19는 계속해서 경제활동을 억제하고 국가 간의 긴장을 높일 것”이라며 “글로벌 시스템은 결국 엄청난 압력 속에 불안정해지고 국가 내 및 국가 간에 광범위한 갈등이 야기될 것”이라고 봤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국수주의적 고립을 우려한다. 하라리는 [파이낸셜타임즈(FT)]에 기고한 ‘코로나 이후의 세계(Yuval Noah Harari: the world after coronavirus)’ 칼럼에서 투명한 정보 공유를 주장한다. 그는 “영국 정부가 여러 정책 사이에서 망설일 때 이미 비슷한 딜레마에 봉착했던 한국인들에게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면 세계적인 협력과 신뢰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라리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14년 에볼라 전염병과 같은 이전의 글로벌 위기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미국 행정부는 지도자의 직무를 포기했다. 그것은 인류의 미래보다 미국의 위대함에 대해서만 훨씬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했다”고 비판한다. 협력의 걸림돌로 미국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이 남긴 공백을 다른 나라들이 메우지 않는다면 현재의 전염병을 막는 것이 훨씬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것의 유산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국제관계를 계속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인류는 분열의 길을 걸을 것인지, 글로벌 연대의 길을 걸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며 “우리가 연대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승리일 뿐만 아니라, 21세기에 인류를 공격할지도 모르는 모든 미래의 전염병과 위기들에 대한 승리가 될 것”이라 말한다. 위기 상황 속에서 전 세계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카쿠타니 미치코 전 뉴욕타임스 문학 비평가도 연대의 중요성을 힘줘 말한다. 그는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Politico)]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외교 정책 대신 우리는 다자 외교로 돌아가야 하며, 기후 변화나 바이러스 전염병 같은 세계적인 문제를 다룰 때 동맹국들은 물론 적대국들과의 협력 역시 특히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마저 방해하고 있다. 올 3월 15일, 프랑스는 3만5000여 곳의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 1차 투표를 실시했으나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세 속에 예정대로 투표를 강행했으나 6년 전 지방선거 때보다 20%p 이상 낮은 투표율을 나타낸 것. 결국 같은 달 22일에 예정됐던 2차 결선 투표는 오는 6월로 연기됐다.

미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유력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은 코로나19 사태에서 정상적인 경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중도 하차했다. 미국 전역에서는 대부분 경선을 연기하거나 대면 투표를 취소하고 우편 투표로 바꿨다. 통상 민주당은 경선을 통해 선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는 점에서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집에서 투표하고 선거 기간은 1개월로 연장?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유권자가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전자 투표를 하고 있다.
[폴리티코(Politico)]에 기고한 전문가들은 선거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바라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R스트리트연구소의 케빈 코사르 부소장은 우편 투표의 활성화를 얘기한다. 그는 “코로나19가 올 6월이나 늦여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각 정당은 올가을 치러질 본선 전에 전당대회를 개최하고 후보 지명을 해야 한다”며 “우편 투표가 표준(norm)이 될 것”이라고 봤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우편 투표를 주장한 이유로는 “이미 많은 해외 주둔 미군들이 수십 년간 우편 투표를 해왔다”는 근거를 들었다. 그러면서 “유권자들은 이미 유권자 등록과 선거 가이드를 우편으로 받고 있는데 투표는 왜 안 되나”라며 “실제 사람이 가서 하는 투표가 야기하는 리스크를 고려할 때 주 정부가 지금의 시스템을 현대화하기 위해 움직이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자 투표 스타트업 데모크라시 라이브 대표인 조 브라더턴은 “전자 투표가 대세”라고 주장한다. 그는 “해외 주둔 군인과 교민의 전자 투표에 필요한 법안이 이미 통과했고, 일부 주(states)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집에서 투표가 가능한 방법을 찾고 있다”며 “2020년 미 대선에서 몇몇 지역에서는 종이 투표와 모바일 투표가 혼용되는 사례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201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는 중간 총선에서 투표를 원하는 해외 거주 군인 및 가족을 위해 모바일 투표 앱을 시범적으로 활용했다. 대선에서도 블록체인 기반 전자 투표 앱을 부재자 투표에 이용하려 했으나 올 초 해킹에 취약하다는 MIT 연구팀의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 투표 방식의 변화는 우리나라도 시도하는 중이다. 이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8년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민간분야의 투표·설문조사에 시범 실시한 바 있다.

선거 기간의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 연구기관 뉴아메리카의 리 드루트먼 선임연구원은 “선거일(Election Day)이 앞으로는 선거 월(Election Month)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트루트먼은 “시민들이 원하는 시점과 장소에서 쉽게 투표하게 되면 선거일에 사람들이 몰리고 긴 줄을 서지 않게 된다”며 “개표 전에 우편 투표를 도착시키고 사전 투표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선거일을 선거‘월’로 확대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시민들이 한번 사전 투표 또는 우편 투표의 편리함을 경험한다면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코로나19가 촉발한 ‘비대면 선거’ 논의가 영구적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는 3월 16일 자신의 SNS에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들을 위한 곡”이라며 3분 21초짜리 분량의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3번 사라반드’ 연주 동영상을 공개했다. 거장의 연주는 ‘코로나 블루’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는 멀게만 느껴졌던 예술 영역의 벽을 뛰어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이자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온라인 시대에 혁신적 마인드를 기르는 대화의 힘] 저자인 셰리 터클은 [폴리티코(Politico)] 기고에서 “디지털기기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커뮤니티의 종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던 시기의 초반에 우리는 영감을 주는 사례들을 발견했다”면서 “온라인 공간에 첼리스트 요요마는 매일 라이브 콘서트를 포스팅했고, 요가 강사들은 무료 수업을 제공했다. 우리는 타고난 능력을 기기에 적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온라인 공간에서 아바타를 가꾸는 것처럼 과거의 우리가 디지털 기기를 다뤘던 것과는 다르다고 터클 교수는 말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내가 진정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 속에서 인간의 관대함과 공감이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간적 면모와 기기의 결합은 코로나19의 강력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술·공연계도 코로나19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디지털 콘서트홀 무료화를 연장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도 매일 밤에 오페라를 한 편씩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런던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빈 국립오페라, 영국 로열 오페라, 태양의 서커스도 온라인 무료 스트리밍 중이다. 영국의 클래식FM은 코로나19가 클래식 음악계에 가져온 9가지 변화를 꼽으며 “엘리트주의가 사라지고, 합주가 중요해졌으며, 음악을 듣는 층이 넓어졌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흐름이 일시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라는 점, 청중과 관객이 있어야 예술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손안의 공연장, 가상공간 속 전시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지친 시민들과 의료진을 위로하기 위해 부산문화회관이 무관중 공연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또 다른 활용 방식도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인 보건 학자인 엘리자베스 브래들리는 [폴리티코(Politico)] 기고문에서 가상현실(VR)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VR은 따로 떨어져 있고 고립돼 있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며 “안경을 쓰면 갑자기 교실 혹은 사람들이 모이는 환경에 들어가게 된다고 상상해보라”고 말한다. 그는 VR을 통한 긍정적인 심리학적 개입도 가능하다고 본다.

브래들리의 주장처럼 성장세가 더뎠던 VR 기술은 코로나19로 인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실제로 VR 기기를 생산하는 대만 HTC는 3월 19일, 코로나19 여파로 매년 연례행사로 진행하던 ‘바이브 에코시스템 콘퍼런스(VEC)’를 VR로 대체했다. 이날 콘퍼런스는 3차원 가상공간에서 발표자와 참석자가 가상의 아바타를 만들어 의견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개최됐다.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VR이 새로운 만남의 장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엿본 셈이다.

오락거리의 변모도 예상된다. 메리 프랜시스 베리 펜실베이니아대 미국사 연구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대학들은 팬데믹 관련 강의를 추가하고 과학자들은 전염병에 대한 예측·치료·진단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뛰어들겠지만, 역사를 보면 또 다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예로 베리 교수는 1918~1919년의 스페인 독감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미국인이 편안하게 즐길 오락거리(entertainment)를 찾았고 이는 자동차와 라디오 보급을 촉진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 세계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스트리밍 서비스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포브스(Forbes)]는 4월 9일, 월트디즈니가 지난해 11월 론칭한 동영상 스트리밍 ‘디즈니+’의 전 세계 가입 회원 수가 5000만 명을 돌파했다고 전했다. 서비스 출시 불과 5개월 만에 기록한 놀라운 수치다. 회원 수 기준으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1위인 넷플릭스(1억6700만 명)와 2위 ‘아마존 프라임(1억5000만 명)’은 5000만 명 돌파까지 10년이 걸렸다. 기존 사업자들이 구축한 스트리밍 시장에 편승한 측면도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디즈니가 오랫동안 축적해놓은 막대한 어린이 대상 콘텐츠가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이처럼 상상의 영역에서 가능은 했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던 일들이 앞으로는 현실의 세계로 속속 진입하게 될 전망이다.

- 허인회 월간중앙 기자 heo.inhoe@joongang.co.kr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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