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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CEO in KOREA (15)]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의 ‘인본주의 경영’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 

의사 출신으로서 21년간 CEO로 활동 중, 생명보험 ‘빅3’로 회사 키워
교보문고·광화문 등 문화경영도 애착, 업황 위기에 ‘언택트’로 대응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2020년 1월 경영전략회의에서 ‘디지털 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본사 임원 회의실에는 황동 향로 2개가 전시돼 있다. 신창재(67) 교보생명 회장이 2012년 특별 주문한 것이다. 향로는 서로 모양이 다르다. 하나는 세 개의 발이 균형을 유지하며 반듯이 서 있고, 다른 하나는 세 발의 길이가 달라 기울어져 있다. 여기에는 신 회장의 ‘이해관계자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향로의 세 발은 각각 고객, 재무설계사와 임직원, 투자자를 상징한다. 이 두 개의 향로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하나는 ‘고객에게 사랑받는 미래’, 다른 하나는 ‘버림받는 미래’, 우리는 무엇을 택해야 할 것인가?”

신 회장은 2000년 5월,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21년간 CEO를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신 회장은 보험업계 거의 유일한 오너 경영자다. 그렇기에 다소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고객과 종업원, 투자자를 우대할 수 있는 회사다. 이런 신 회장에게 가장 비윤리적인 경영은 수익을 못 내는 기업, 파산한 기업이다. “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하게 해야 한다. 투자자에게는 이익을, 고객에게는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직원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해야 하고, 정부에는 세금을 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은 정당하게 수익을 많이 내야 한다”는 지론이다.

저금리·저성장 시대에 생명보험사는 가장 피해를 보는 업종으로 꼽힌다. 역마진이 발생하는 구조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사 ‘빅3’ 중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2019년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감소했다. 이에 비해 교보생명만 2019년 당기순이익이 증가했다. 그러나 계속 교보생명의 순이익 증가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신 회장이 20여 년 전, 교보생명 CEO로 처음 들어왔을 때 못잖은 위기 국면이다.

독립운동 가문에서 태어난 회사


▎교보생명 임원 회의실에 놓여있는 황동 향로 2개. 신창재 회장의 ‘이해관계자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 사진: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의 이력을 보면, 특이점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그는 의사 출신이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의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0년 동안 서울대 의대 교수로 일했다. 이런 그가 돌연 보험회사 경영자로 경로를 변경한 결정적 계기는 아버지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의 부탁 때문이었다.

방기철 선문대 교수의 책 [한국역사 속의 기업가]에 따르면 대산(大山) 신용호 창업주는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1917년 태어난 신 창업주의 집안은 독립운동 가문이었다. 젊은 시절의 신용호는 시인 이육사와도 교류를 가졌다. 사업의 시작은 중국에서 이뤄졌다. 쌀 도매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이 물러나자, 중국 정부는 외국인의 은행 예치금을 동결시켰다. 이때 신용호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돈을 털어 중국 교포들의 귀국 비용으로 내놨다. 1946년 그는 다시 빈털터리로 귀국했다.

돌아온 신용호는 한국에서 재기를 모색했다. 출판업(민주문화사), 직물업(한양직물·동아염직), 제철업(한국제철) 등에 손을 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 사업으로 보험업을 시야에 넣었다. 이 무렵 이미 보험 회사들이 있었지만, 판매 상품이 단순했다. 신용호는 틈새를 파고들기로 했다. 단순 생명보험이 아닌 교육보험·아동보험·군인보험·퇴직보험·암보험 등 특화 상품을 고안했다.

1958년 6월, 설립한 태양생명보험은 교보생명의 모태가 됐다. 신용호는 회사 설립 11일 만에 정부로부터 사명 변경 허가를 받아냈다. 그해 7월, 대한교육보험으로 간판을 바꿨고, 8월 개업했다. 당시 신 창업주가 제시한 대한교육보험의 영업 방식은 현재 보험설계사 제도의 원형이 됐다. 전국 주요 도시에 지사를 설치하고, 지사장에게 전권을 주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성과가 나면 해당 지사의 구성원들에게 ‘인센티브’가 할당됐다.

사업이 궤도에 진입하자, 신 창업주는 의외의 행보를 보였다. 1967년, 창업 10년 만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그러다 1970년 ‘제2의 창사’를 선언하고 복귀했다. 1975년 명예회장으로 추대됐지만, 직원들에게 “명예회장이 아니라 창업자로 불러 달라”고 했다. 1979년에는 지금의 22층짜리 광화문 세종로에 본사를 건립했다. 대한교육보험 창업식 당시 직원들에게 했던 “서울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가장 좋은 사옥을 짓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신 창업주는 교보생명 본사 지하 1층에 세간의 예상을 깨고, 서점을 만들었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부티크를 출점해도 상업성이 있는 입지였다. 그러나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서점으로 밀어붙였다. 1981년 6월 1일 60만 권을 갖추고 탄생한 서점은 교보문고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후 교보문고는 서울 강남, 경기도 부천, 부산, 대구 등에도 지점을 열었다.

사업은 확장일로를 걸었다. 보험 외에 증권, 자산신탁 등 금융업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신 창업주의 장남인 신창재 회장은 1996년 교보생명 부회장으로 입사했다. 그 전까지 신 회장은 대산문화재단 이사장 직함만 지니고 있었다. 신 회장과 교보생명의 인연은 아버지 신용호 창업주의 암 발병에서 비롯됐다. 신 창업주는 1993년 담도암 진단을 받았다. 건강상의 문제로 1995년, 또 한 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후계자를 찾아야 할 상황에서 신 창업주의 선택은 의사로 일하던 아들이었다. 신 회장은 1996년 경영에 참여했고, 아버지는 2003년 9월, 86세의 나이로 별세하기까지 버텼다. 이 기간 IMF 외환위기라는 환란이 닥쳤지만, 교보생명은 끝까지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입사원을 600명 채용했다.

의사 CEO의 기업 재생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오른쪽)이 2018년 도종환 당시 문체부 장관으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고 있다. / 사진:교보생명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할수록 아들의 비중이 커졌다. 2000년 5월 교보생명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때 교보생명의 상황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2000년 한 해의 적자만 2540억원에 달했다. 게다가 산부인과 의사 출신 CEO에 대한 조직 내부의 불신도 거셌다. 교보생명 임원들이 집단 사퇴하는 파동도 있었다. 그러나 회사나 사람이나 결국 아픈 부위를 찾아내 도려내거나 치유해서 선순환을 시키는 구조는 동일했다. 신창재는 회사의 비효율에 메스를 들이댔고, 회사의 체질을 바꿨다. 보험업계의 관행이었던 외형 경쟁을 중단시켰다. 그 대신 ‘퀄리티(quality) 경영’이라는 처방을 내놨다. 이에 따라 영업 조직을 정예화했다. 마케팅 전략을 중장기 보장성보험 위주로 전환했다. 매출을 늘리기보다 내실성장에 집중했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 소통의 조직문화를 도입했다. 취임 당시, 2500억 적자를 내던 회사가 매년 5000억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교보생명은 총자산 기준, 생명보험 업계 3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교보생명에 따르면,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은 338.9%(2019년 기준)로 안정적이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로부터 A1 등급, 피치로부터 A+ 등급을 받았다. 이는 금융권 최소 수준의 신용등급이다. [포브스]는 2010년 5월에서 신 회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한 번도 경영인을 꿈꾸지 않았던 의사 출신이 교보생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호평했다.

21년간 그룹을 이끌면서 신 회장은 거의 구설에 오르지 않았다. 교보생명의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는 금융회사에서 곧잘 발생하는 모럴 해저드를 예방하고 있다. 이사회의 3분의 2 이상이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어 견제와 균형이 작동한다. 이밖에 리스크 관리, 준법감시, 경영감사 활동 등 감독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교보생명은 2020년 4월 현재 비상장기업이다. 그럼에도 홈페이지 등에 공시 사항과 재무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 클린 계약제 등도 실시 중이다.

신창재 회장은 2018년 5월, 미국 뉴욕 UN 본부에서 열린 ICBS(세계중소기업학회) 포럼에서 한국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기조연설을 했다. 주제는 ‘지속가능한 인본주의적 이해관계자 경영’이었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리더가 직원을 만족시키고, 직원이 고객을 만족시키면, 만족한 고객이 저절로 회사의 이익에 기여하게 된다”며 “회사가 모든 이해관계자를 균형 있게 고려할 때, 기업의 이익은 더욱 커지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그런 선순환이 만들어질 때, 지속가능 경영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결국 경영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익이 아니다. 모든 이해관계자의 동반 발전이다. 경영자는 특정 그룹의 이익을 위해 다른 그룹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2019년 10월 ‘대한민국 지속가능경영 최고경영자상’을 수상했다. 한국표준협회가 올바른 기업인상(象)을 도모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의 후원을 받아 제정한 상이다. 신 회장은 교보생명을 ‘대한민국 지속가능성지수(KSI) 생명보험부문 10년 연속 1위’로 이끌며 최고경영자상 초대 수상자로 선정됐다. 영역별 전문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는 신 회장이 지난 20년간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발전하는 ‘좋은 성장’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경영에 앞장선 점을 평가했다. 교보생명 또한 KSI 생명보험부문 10년 연속 1위에 올랐다. 금융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어 2019년 12월에는 세계 최대의 중소기업 관련 연구 단체인 세계중소기업학회(ICSB)로부터 ‘사람중심 기업가정신 실천 경영자대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UN이 채택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성공적 추진을 돕고, 국제사회에 올바른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ICBS가 새롭게 제정한 상이다. 2019년 8월, 미국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협의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RT)’이 발표한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의 영향을 받아 제정했다.

父子의 문화훈장

신 회장의 수상 경력은 문화 후원자로서 더 화려하다. 201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한국 문학 발전과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선친인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가 1996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데 이어 대(代)를 이어 영예를 안았다. 신 회장은 1993년부터 대산문화재단을 이끌었다. 이 기관을 통해 한국문학의 발전과 세계화에 기여했다. 교보문고와 광화문은 그 자체로 문학 플랫폼이었다. 이를 통해 독서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교보생명의 문화예술 지원에 대해 신 회장은 “기업의 이윤추구는 최종 목표가 아니다.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지론을 지니고 있다.

신 회장은 교보생명 입사에 앞서 서울대 의대 교수 신분으로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돈을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법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선친 신 창업주의 뜻이었다. 대산문화재단은 한국 최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대산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산창작기금, 대산대학문학상 등을 통해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문학의 번역·출판 지원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 결실이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였다. 이 작품이 영국에서 출판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외에도 대산문화재단은 박경리·황석영·이승우 등 한국 대표 문호들의 작품 번역과 해외 출판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번역된 작품은 577편에 달한다. 해외에서 출판된 작품은 330편에 이른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지 않는


▎교보생명과 교보문고, 광화문글판이 자리한 광화문 본사 전경. / 사진:교보생명
일반 국민에게 교보생명보다 더 친숙한 교보문고는 ‘국민책방’의 이미지로 연상된다. 연 5000만 명이 방문하는 도심 속 지식문화 공간이다. 교보생명 건물에 가로 20m 새로 8m 크기로 배치된 광화문글판은 30년째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30자 남짓 되는 글자의 힘으로 시(詩) 문학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광화문글판은 1991년부터 시작됐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 메시지를 전한다. 시인·소설가·언론인·카피라이터 등이 모여 ‘광화문문안선정위원회’를 2000년 만들었다. 교보생명은 광화문글판 운영 20주년과 25주년인 2010년과 2015년에 역대 글귀를 엮은 기념집을 펴냈다. 여기서 얻은 판매 수익금은 기부하고 있다.

광화문글판에 대해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도심 큰 건물에 문학성 풍부한 구절을 지속해서 노출한 경우는 외국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며 “대중들에게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동시에 글판 서체 또한 다양하게 시도하며 한글 폰트 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고 평했다. [중앙일보] 박정호 논설위원이 다룬 광화문글판의 역사에 따르면, 처음부터 시구를 따온 것은 아니었다. 1991년 1월 걸린 첫 문구는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 활력 다시 찾자’였다. 이후에도 ‘훌륭한 결과는 훌륭한 시작에서 생긴다’처럼 계몽적 문구를 활용했다. 그러나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겪은 뒤 위안을 주는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계절별로 문구를 선보였다. 감성적 손 글씨를 접목한 것은 2005년부터였다. 2020년 봄, 광화문글판은 100편의 글귀를 선보였다. 김영호 한국메세나협회 회장은 “공익재단, 교보문고, 광화문글판 등을 통한 교보생명의 체계적인 문화예술 지원은 한 차원 높은 사회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모범적 메세나 활동”이라고 평가했다.

신 회장은 2017년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시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한국시인협회로부터 명예 시인으로 추대됐다. 그해 11월, 프랑스 정부는 한국과 프랑스의 문학과 사상 교류의 공헌을 인정해 ‘레종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2010년에는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도 받았다. 이 상은 세계적 명품 브랜드 몽블랑이 매년 세계 각국에서 해당 국가의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해 온 후원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신창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지 않는’ 쪽이다. 인수·합병에 소극적이지만, 그만큼 안정적이다. ING생명, 우리은행, 카카오뱅크 등의 지분 인수에 관심을 표명했지만, 최종적으로 하지 않았다. 몸집 키우기를 지양하는 대신, 신 회장은 최근 디지털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2020년 경영방침을 ‘생존을 넘어 디지털 교보로 가자’로 정했다. 보험업계의 업황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지만, 고객가치 중심의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해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신 회장은 2020년 1월 출발 경영전략회의에서 “고객 니즈(needs)에 기반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새로운 가치를 전달해 고객 만족을 달성하는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며 “우수한 상품과 서비스를 발 빠르게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에게 ‘타사보다 더 큰 만족을 주는 회사’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은 디지털을 기반으로 조직,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 기업문화, 커뮤니케이션 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며 한 차원 높은 디지털 혁신을 주문했다.

이 방침에 맞춰 교보생명은 고객이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사용자 중심의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또한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강화하고, 상품 경쟁력을 강화해 생명보험 본연의 가치인 고객보장을 확대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기존의 종신보험, CI보험 등 보장성 상품 외에도 건강·의료·장기간병 등 차별화된 특화 상품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신인 재무설계사(FP)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FP의 컨설팅 역량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자산운용 측면에서는 리스크 관리에 힘쓴다는 전략이다. 고금리 자산 투자를 확대하고, 해외자산이나 대체투자 자산 등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수익모델을 다변화하는 데 역점을 둘 방침이다. 가계부채 리스크의 현실화와 보유자산의 부실화를 방지하기 위한 지속적 모니터링과 선제적 위험 관리다.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보험업계에도 언택트(untact, 비대면) 바람이 일고 있다. 신 회장은 4월 1일 사내 방송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며 “디지털 트렌드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과거의 소비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생명보험 업계의 위기 국면에서 교보생명의 사풍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금융권 최초로 2020년 1월부터 전 직원 대상 직무급제를 시행했다.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직급이라도 받는 돈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앞서 2014년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전체 직원의 15%가량을 줄였다.

교보생명의 IPO는 연착륙할까

업황 불안이 공통적 사안이라면 교보생명만의 특수성이 있는데, 바로 기업공개(IPO)다. 신 회장에게 교보생명 IPO는 경영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 등 FI(재무적 투자자)들은 대우인터내셔널의 교보생명 지분 24%를 주당 24만5000원에 사들이며 ‘3년 내 상장하지 않으면, 대주주인 신창재 회장에게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받았다. 그러나 교보생명의 상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FI들은 2018년 10월 풋옵션 행사를 결정했다.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압박이 직면하자, 교보생명은 2018년 12월 정기이사회에서 IPO 추진을 결의했다. IPO를 하지 않고 풋옵션을 받아주려면 최소 1조2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신 회장은 주식을 팔지 않는 한 여력이 없다. 만약 주식을 팔면, 경영권이 위협받는다.

결국 교보생명은 상장 작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저금리 시대에 보험회사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거기다 코로나19가 겹쳤다. 헐값으로 IPO를 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하지 않고 버틸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교보생명은 부채비율 부담을 일정 부분 감수하고, 배당을 통해 FI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아울러 어피니티 등 FI들이 공정가치(FMV) 산출을 의뢰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미국 회계감독법인과 한국 검찰에 고발했다. 딜로이트 안진이 책정한 풋옵션 주당 행사가격 평가방식이 올바르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딜로이트 안진은 주당 40만9912원으로 평가했는데, 신 회장 측의 계산(주당 20만원 대)과 격차가 크다. 당분간은 중재와 소송 국면이 불가피하다. 신 회장에게는 신용호 창업주부터 이어온 교보생명의 60년 경영권을 지켜야 할 과제가 남겨졌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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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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