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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 부국굴기(富國屈起) | 자유시장경제의 원류를 찾아서(17)] 미국, 자본주의의 아이콘 

이민자의 나라, 돈을 받들어 융성하다 

근면을 도덕과 연결한 청부(淸富)정신, 자원과 영토, 포용주의의 결합으로 팽창
세계대전 거치며 초강대국 위상 확보… 문화와 IT 분야에서도 21세기 산업 주도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통하는 뉴욕 맨해튼 마천루 숲 / 사진:위키피디아
미국은 자본주의의 대명사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마천루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뉴욕 맨해튼은 자본의 축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달러는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기축통화다. 미국의 기업과 브랜드는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도대체 어떤 요인이 미국을 자본주의의 상징 국가로 만들었는가.

첫 번째 요소로 거대한 규모의 미국 영토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776년 13개 주로 구성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을 당시, 영토의 크기는 이미 그 어떤 유럽 국가보다 컸다. 미국은 이후에도 프랑스나 러시아·멕시코·스페인 등으로부터 전쟁을 통해 영토를 획득하거나 돈을 주고 사들였다. 19세기 중반이 되면 대서양부터 태평양에 달하는 북아메리카 대륙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미국은 독립 당시 인구가 250만 명에 불과했지만, 250여 년의 역사를 ‘이민의 역사’라고 부를 만큼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사람들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1820년대 인구 1000만 명을 넘어섰다. 1910년대 1억 명, 1960년대 2억 명, 그리고 2000년대 3억 명을 기록했다. 영토의 확장도 인상적이지만, 인구의 증가는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 의하면 성장이란 원칙적으로 노동할 수 있는 인구가 늘어나고, 활용할 수 있는 토지가 증가하면 가능하다. 미국은 이에 더해 종주국이었던 영국에서 불어오는 산업혁명의 열기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적 행운을 타고났다. 새로운 젊은 나라의 역동성이 과학과 기술을 활용하는 산업혁명과 시기적으로 접목되면서,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역사는 시작부터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 그 자체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베버가 말하는 자본주의 정신이란 마치 하느님의 명령을 받드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근검절약하며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태도를 의미한다. 자본가는 돈이 많다고 사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꼼꼼히 계산하고 모아뒀다가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 노동자 역시 술이나 도박을 멀리하면서 검약하게 가계를 꾸려 나간다.

“시간이 돈임을 잊지 말라”


▎미국 100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벤저민 프랭클린. / 사진:위키피디아
베버가 자본주의 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것이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의 처세술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청교도 문화를 대변하는 프랭클린은 젊은이들에게 “시간이 돈임을 잊지 말고” 또 “신용이 돈임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돈은 돈을 낳을 수 있으며 그 새끼가 또다시 번식해 나가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에게 돈을 번다는 것은 ‘유능함의 표현’이며 ‘도덕의 실질적인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돈은 때때로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더럽고, 돈을 추구하는 탐욕은 죄악으로 생각했던 유럽 기독교 전통에 비춰볼 때, 신대륙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윤리는 분명 혁신적이다. 이런 특징은 유교나 불교, 이슬람 등 다른 문화에 비춰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초기부터 돈을 윤리적 삶의 보상으로 판단하는 파격적인 생각을 인류에 선보였던 셈이다.

19세기 미국 사회를 관찰한 또 다른 유럽의 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에게 미국인들은 평등정신을 공유하는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신분의 차이가 사회를 지배하는 유럽과 평등함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미국을 대비시켰다. 그는 모든 인류 사회가 평등을 기준으로 삼는 ‘민주적 상태’로 진화할 것으로 봤고, 그런 점에서 미국은 인류 진화의 첨단에 있다고 판단했다. ‘돈을 가치의 척도로 삼고, 사람들이 서로 평등하다’고 여기는 세상은 종교와 신분이 지배하는 전통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미국은 마을이나 직업 공동체와 같은 오래된 집단 정체성보다는 스스로 자립하는 개인을 전제로 하는 이민사회였다. 친척이나 가문, 동업자와 연대하기보다는 핵가족을 꾸려나가는 사람들끼리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였다.

커다란 영토에 많은 이민자가 모여든다고 자연스럽게 경제발전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뭉쳤다. 사장님도 이름을 부르는 사회다. 또 개인주의가 확실하다. 철저하게 개인의 능력을 위주로 일하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금수저’보다는 무일푼으로 시작해 커다란 부를 형성한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다. 이런 자본주의 정신은 18세기 벤저민 프랭클린부터 21세기의 자본가 워런 버핏까지 연결되는 미국의 핵심 정신이다.

남북전쟁, 미합중국의 최대위기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를 연 포드사의 자동차 모델 T. / 사진:위키피디아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에서 시장 규모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시장이 클수록 세밀한 분업이 가능하고, 그로 인한 생산성의 증대가 수월해진다는 설명이다. 18세기 영국은 해안을 타고 상품을 이동하고, 강과 운하를 통해 교역이 활성화되면서 시장의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분업을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품을 전국 시장에 널리 유통해 판로를 개척했다.

19세기 미국에서도 경제 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사업은 교통 분야다. 미국이 독립할 때, 13개 주는 모두 대서양 연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19세기 초반 연안 지역과 대륙의 내부를 연결함으로써 미국 경제영토를 확장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업은 1825년 개통된 이리(Erie) 운하다. 미국 내륙의 5대 호를 허드슨 강과 뉴욕시까지 연결하는 이리 운하를 통해 중서부 곡창 지역은 대서양으로 출로를 열 수 있었다. 미국 특유의 물레방아 바퀴를 돌리는 증기선들이 대서양과 대륙 내부를 이었고, 오하이오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남부와 중서부를 연결했다. 이어 1850년대는 철도망이 동부에서 시작해 중서부 지역으로 확장하면서 수로를 보완하는 육로의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철도 건설에는 유럽에서 이민 온 아일랜드와 독일 출신 노동자들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기아를 피해 대거 이민 온 아일랜드 사람들은 가톨릭이었다. 기존 프로테스탄트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또 독일에서는 1848년 ‘민중의 봄’이 실패하자 신대륙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혁명 사상을 가진 자들이 다수 몰려왔다. 미국은 이 새로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흡수해 평등을 소중히 여기는 개인주의자들로 돌변하게 만들었다.

1848년 캘리포니아 금광의 발견은 일명 ‘골드러시’(Gold Rush)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뉴욕에서 배를 타고 남아메리카를 돌아 태평양을 통해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중남미에서 육지를 통해 태평양으로 나감으로써 여정을 줄였다. 금을 캐려는 사람들을 실은 배가 캘리포니아에 도착하면, 손님은 물론 선장부터 선원까지 금광으로 달려가 텅 빈 배들만 항구에 남았다고 전해진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서부 개발은 노예제를 두고 대립했던 북부와 남부의 갈등을 격화시켰다. 북부는 개인 중심의 핵가족 농업이 발달한 세상이었지만 남부는 노예에 의존하는 농장 경제를 갖고 있었다. 독립 이전의 담배부터 독립 이후의 면화까지 농산물 수출을 통해 부를 축적한 지역이 남부였기에 그들 입장에서 노예는 토지보다 중요한 자산이었다. 현대 한국인에게 부동산이 가장 큰 자산이듯 19세기 미국 남부의 백인들은 노예가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노예제를 폐지한다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재산을 몰수하는 정책이었다.

남북전쟁(1861~1865)은 미국 역사 최대의 위기였다. 미국이 분열되지 않고 한 덩어리를 유지하는 것은 거대한 대륙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은 내전이었지만, 근대적 무기를 대량 사용함으로써 피해 규모는 엄청났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종결되면서 미국이라는 최대 규모의 자본주의 국가를 형성하는 일이 가능해졌고 유럽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거대한 시장이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고 하나의 문화가 지배하는 시장, 인종과 종교는 다르지만, 달러를 통해 교류하고 법의 지배라는 공통의 틀을 가진 세상이 신대륙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영국이 18세기 후반 인류 최초의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종주국이었다면, 미국은 그로부터 100여 년 뒤, 새로운 형식의 산업혁명을 이끄는 종가로 부상했다. 두 혁명을 구분하는 커다란 차이는 에너지 자원이다. 영국이 땅만 파면 석탄이 나올 정도로 풍부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처럼, 미국은 185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가 발견된 이후 전국에서 유전을 개발하는 붐이 일어날 정도로 원유 매장량이 많다. 또한 에너지를 개발하고 유통하는 자체가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광부의 일손이 필요하던 석탄에 비해 석유는 노동보다 자본 집중 산업이었다. 특히 석유의 이동을 위해 파이프라인을 사용하고, 정유 시설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면서 규모의 경제가 산업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1870년 록펠러가 설립한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사는 미국 석유산업을 지배하는 공룡으로 부상했고, 이 대규모 트러스트는 이후 엑손모빌, 쉐브론, 아모코 등으로 분할됐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기계가 증기기관이라면, 미국의 산업혁명은 전기와 내연 엔진을 중점적으로 사용했다. 이들 전기 기계와 내연 기관은 21세기에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석탄과 증기기관은 주로 산업적 용도로 사용됐지만, 전기를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바꿔놓았다. 특히 1880년 대 토머스 에디슨의 전구 발명과 이를 통한 빛의 확산은 낮과 밤의 구분을 줄여버렸다. 이제 전기는 미국 전국을 그물처럼 연결해 빛을 밝히는 역할을 했다. 게다가 전기를 사용하는 냉장고, 세탁기, 진공청소기, 라디오, 텔레비전 등 다양한 전자제품은 현대적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상의 동반자가 됐다. 에디슨으로 대표되는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과 그와 경쟁하는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사는 당시 전기 및 전자 분야에서 미국의 압도적 우위를 보여주는 대기업들이었다.

제2차 산업혁명의 종가(宗家)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 엔진에 대한 연구와 개발은 미국과 유럽에서 동시에 진행됐지만, 자동차를 대량 생산해 인간의 삶을 통째로 뒤바꿔 버린 것 역시 미국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석유산업의 록펠러나 철강산업의 카네기가 노년에 접어들자, 뒤이어 자동차 산업의 헨리 포드가 미국 자본주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포드는 다양함을 추구하는 대신, 저렴한 하나의 모델을 대량생산해 다수의 소비자가 누릴 수 있도록 사업을 조정했다. 포드의 모델 T 자동차는 1916년 360달러까지 가격이 내려갔고, 이는 포드 공장에서 일하며 하루 5달러를 버는 노동자가 3달만 일하면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달리 말해 공장 노동자도 커다란 희생 없이 여유롭게 자동차를 굴릴 수 있는 자본주의의 시대를 연 것이었다.

이처럼 미국은 유럽에서 시작한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킨 것은 물론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기존의 사회 질서와 전통이 강한 유럽에 비해 미국은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실험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던 셈이다. 그 결과 20세기에 돌입하면서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앞서가는 선두주자로 확실하게 부상했다.

인류는 20세기 전반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렀다. 그리고 이 비참한 경험은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전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채무가 많은 나라였다. 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에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으로부터 돈을 빌려와 산업에 투자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치르면서 이런 상황은 완전히 역전돼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발돋움했다. 이제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의 신생 국가에서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의 선진국들에 큰돈을 빌려주는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은 사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증권시장의 붕괴로 시작돼 유럽으로 확산한 자본주의의 위기였다. 이는 그만큼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미국과 유럽 경제 간의 밀접한 상호의존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대공황의 세계 1929~1939]에서 1930년대 경제위기의 세계적 확산은 더 이상 리더십의 능력이 없었던 영국과 능력은 있었지만, 리더십의 의지가 부족했던 미국의 어정쩡한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어 1939년 발생한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떠오르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동했다. 초기에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전세(戰勢)가 퍼져 나가는 와중에도 미국은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언젠가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따라서 전쟁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실제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미국이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진행되는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전기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은 대규모 현대전이란 기본적으로 경제를 동원하는 능력에 의해 결판이 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민간의 소비용으로 성장한 자동차 산업이 비행기를 생산하는 군수(軍需)산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1930년대 말 미국의 군용 비행기 생산량은 연간 900여 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숫자는 1940년 6000대 이상으로 불어났고 진주만 폭격 이후 매년 10만 대 수준으로 대폭 증가했다. 같은 시기 1940년 400만 대에 달하던 민간 자동차 생산량은 1943년 139대로 거의 중단됐다. 강한 민간 경제를 전쟁에 총동원한 결과다.

미국을 세계 최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전환시킨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경제력과 군사력을 겸비한 초강대국으로 거듭나게 했다. 그때까지 미국의 경제 발전이 민간의 창의력과 의지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사업을 거대한 시장에서 펼친 결과였다면, 이제 미국은 국가가 나서서 세계의 정치경제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능동적인 세력으로 떠오른 것이다. 전후 세계경제 질서의 구상은 다름아닌 미국의 휴양도시 브레턴우즈(Bretton Woods)에서 논의됐고 미국의 구상과 계획을 반영했다. 달러 중심의 자유무역 체제를 브레턴우즈체제라고 부르는 이유다.

세계대전이 낳은 초강대국 미국


▎미국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핵 항공모함 USS 엔터프라이즈호. / 사진:위키피디아
물론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공산주의 소련과 냉전을 벌이며 경쟁을 이어갔다. 하지만 소련의 도전이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분쟁을 의미했을 뿐 경제적으로 소련이 미국을 능가할 만큼의 수준에는 단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다. 소련의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은 소련이 미국 경제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객기에 불과했다. 소련은 경제 침체로 인해 미국과의 경쟁을 포기하고, 1990년 국가 자체가 붕괴했다.

20세기 전반기 미국은 새로운 제품을 수많은 사람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나라였다. 집안에서는 전등을 밝히고, 라디오를 듣는 습관이 전국에 퍼졌다. 1930년대 대공황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국 국민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난롯가 이야기’(爐邊閑談, Fireside chat)를 라디오로 들으며 대중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현대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1939년 출판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오클라호마주의 가난한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을 그렸다. 하지만 미국은 가난한 가족조차 자가용을 타고 이주를 할 수 있는 부자나라였다. 1930년대 대공황 속에서도 미국은 수천만 대의 자동차가 등록돼 있었고 2000만 가구 이상이 전기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의 압도적인 물질적 풍요는 더욱 강화됐다. 수백만 명의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새롭게 가족을 꾸렸다. 이들에게는 주택이 필요했고, 건설 회사들은 도심을 떠나 교외 지역에 거대한 개인 주택단지들을 만들어 공급하기 시작했다. 교외의 저렴한 토지에 똑같은 설계의 집을 수백 또는 수천 채씩 지음으로써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 건물 전체의 준공이 필요한 아파트와는 달리 개인 집은 완성 되는 대로 곧바로 한 채씩 판매할 수 있었다. 미국 정부는 또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에게 대학에 갈 수 있는 자금을 지원했다. 유럽에서는 대학이 여전히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 미국은 대학의 대중 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규모를 키운 미국의 고등교육은 점차 세계의 엘리트를 교육하는 중요한 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아메리칸 라이프스타일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페이스북의 멘로 파크 캠퍼스. / 사진:위키피디아
미국은 또 유럽의 개별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시장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발전시켰다. 할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의 영화산업은 제작을 위한 초기 투자비용은 많이 들지만, 한번 성공을 거두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월트 디즈니의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미키 마우스는 세계에서 열광적 인기를 얻으며 미국의 문화를 전파하는 매체로 떠올랐다.

미국은 먹거리 분야에서도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원칙을 적용해 성공시킨 나라다. 19세기 후반부터 이미 코카콜라라는 특이한 음료를 개발했고, 아이스크림이나 소다수를 파는 ‘소다 샘’(Soda fountain)을 유행시켰다. 바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해 시리얼을 만들어 우유와 말아먹는 아침 식사도 미국 자본주의 생활 패턴 가운데 하나다. 20세기 중반부터는 켄터키 프라이드치킨(KFC)이나 맥도널드처럼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외식의 획일화를 주도해 나갔다. 드라이브 스루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 콜라를 사서 야외극장에 차를 세워놓고 영화를 보며, 거대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규모 월마트에서 장을 보는 삶. 교외의 개인 주택에서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열고 텔레비전에 몰두하는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델로 등장했다. 자본주의의 미국 버전이 풍요와 자유의 상징이 된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냉전에서 소련과 경쟁을 이겨냈고, 21세기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정치경제 질서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천국의 그림자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이다. 필자는 2004년 [미국이라는 이름의 후진국]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어두운 부분을 다소 도발적으로 꼬집어 소개한 바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가장 커다란 약점은 역시 불평등 문제다. 미국은 특히 1970년대 이후 경제 불평등이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이며, 심지어 선진국 가운데 전 국민을 포함하는 보편적 의료보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유일한 나라다.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또한 온전히 보장돼 있지 않다 보니, 해고가 너무나도 자유롭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2020년 지구를 휩쓰는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경제활동이 마비되면, 순식간에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양산되는 나라다.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풍요의 상징으로 비칠지 몰라도 실제로는 건강한 삶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햄버거와 정크푸드에 중독된 미국인의 건강 상태는 높은 비만율과 고혈압, 당뇨병 등의 비율이 보여주듯 그리 부러운 상황이 아니다. 심각한 오피오이드 약물 중독 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제약회사의 비즈니스 자유는 미국인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천국의 그림자

환경 또한 미국을 선진국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그림자의 영역이다. 미국은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앞장서서 환경오염을 주도하는 나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가 어렵사리 합의한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미국을 탈퇴시킴으로써 지구 차원의 환경 개선 노력을 깨뜨려 버렸다. 또한 공공 보건과 관련해서는 ‘위험이 증명되지 않는 상품’은 유통할 수 있다는 비즈니스 친화적 태도를 보인다. 안전이 증명되지 않으면, 시장에 내놓을 수 없다는 유럽의 ‘조심의 원칙’과 대조적이다.

세계의 정치경제를 관찰하는 학자에게 가장 씁쓸한 부분은 미국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그 어떤 버전의 자본주의보다 효율적으로 승승장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 자본주의는 야만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그 야성 덕분에 대중을 상대로 가장 혁신적인 실험을 지속하게 유도한다. 살상 무기인 자동 총기조차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자본주의 국가이다 보니 인명을 대량 학살하는 총기사고도 자주 발생하지만, 총기류 비즈니스는 평상시처럼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산업혁명은 물론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하는 제3차 산업혁명도 앞장서 주도하고 있다. 페이스북·애플·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21세기 세계 혁신의 중심은 여전히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 있다.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를 주도하는 리더 역시 미국의 기업들이다. 풍요 속에 사는 미국인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시장을 통한 비즈니스의 실험과 기회를 제공하는 데 미국이 가장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만큼은 명확한 듯하다.

※ 조홍식 - 1989년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을 졸업하고, 1993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베이징외국어대, 팡테옹-소르본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고, 2006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근저로는 [문명의 그물: 유럽문화의 파노라마]와 [파리의 열 두 풍경] 등이 있다.

202005호 (2020.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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