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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대학총장 열전] 미래대학 창조 파이오니어 한균태 경희대 총장 

“AI 넘어 EI(확장지능) 교육, 경이로운 경희의 길 열어갈 것” 

신입생 8가지 핵심역량 분석, 문명사적 대전환 맞춤형 대학 모델 개발
미래 산업과 지구적 난제 분야 석학 영입, 글로벌 학습공동체 만들 것


▎경희대 본관 앞에서 한균태 총장은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미래문명 창달을 위한 경희의 정신은 코로나19 사태로 더 확고해졌다”며 “재정건전성 확보와 커리큘럼 혁신으로 고등교육 패러다임을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경희대 학풍은 독특하다. 창학이념이 ‘문화세계의 창조’다. 1949년 창학 이래 ‘학문과 평화의 전당’을 내건 학풍은 71년째 이어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생태 환경, 에너지 등 전 지구적 문제에 남다른 애정을 쏟는 학풍은 글로벌 속으로 스며들었다. 유엔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매년 9월21일) 제정이 상징적이다. 1981년 경희대 설립자이자 세계대학총장회(IAUP) 의장이던 고(故) 조영식 박사가 IAUP 총회에서 제안해 유엔이 기념일로 정한 계기가 됐다. 경희대가 매년 세계평화의 날을 기념해 ‘피스 바 페스티벌(Peace BAR Festival)’을 여는 까닭이다. 여기서 BAR는 ‘정신적으로 아름답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며, 인간적으로 보람 있는(spiritually Beautiful, materially Affluent, humanly Rewarding)’ 지구공동사회를 함께 만들자는 뜻을 담고 있다.

경희대는 국내 최초로 후마니타스칼리지를 세워 인성교육에 앞장섰고, 2019년에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국내 첫 세계시민교육 과정을 개설했다. 올해는 기후변화 교육과정을 개발해 내년부터 특화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그런 경희대는 코로나19 사태를 문명사적 전환기의 새로운 미래지향적 학문 체계 정비의 기회로 보고 있다. 올해를 경희대 ‘아누스 미라빌리스(기적의 해, Annus Mirabilis)’ 원년으로 삼아 대학 시스템 혁신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경희 70년 역사상 최초의 직선제 총장으로서 3만6000여 명의 구성원(재학생 3만4016명, 전임교원 1434명, 직원 428명 등)을 이끄는 한균태(65) 총장이 리더다.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로 30년 넘게 모교에 재직하며, 언론정보대학원장·서울부총장·대외협력부총장 등 보직을 두루 거친 뼛속까지 ‘경희인’이다.

‘온고잉 코로나’ 시대, 교육시스템 대전환 요구


▎경희대 정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교시탑. 교시이자 창학정신인 ‘文化世界의 創造’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경희학원 설립자인 미원(美源) 조영식 박사(1921~2012)가 6·25 전쟁 중 집필한 [문화세계의 창조]에 이념적 기초를 두고 있다. / 사진:경희대학교
2월 14일 취임사를 통해 “총장의 책무를 가슴에 새기고, 초심을 잃지 않도록 눈과 귀를 열어 놓겠다”고 하셨습니다. 총장의 책무와 초심은?

“문명사적 대전환, 기후위기와 환경파괴, 바이러스의 습격, 질병과 빈곤, 불평등과 갈등, 식량난 등 지구적 난제와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요. 미래사회의 예측 불가능성도 증가하고 있고요. 경희의 창학정신과 역사·전통을 되새기면서 지속가능한 인류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한 보편적인 공적가치 정립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경희대가 대학사회의 리더로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대학다운 대학’을 건설하고,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을 구현해 밝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이 앞장서자는 메시지죠.”

코로나19 사태로 사회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잘 대비해야겠습니다.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온고잉(ongoing) 코로나’ 시대로 표현하는 게 적절해요. 스페인 독감 유행 때 5000만 명이 사망했어요. 1차 때보다 2차 때 사망률이 5배나 높았죠.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닙니다. 대학도 아날로그 방식으론 위기 대응이 힘들어요. 온라인 교육을 갑작스럽게 했지만, 미국 대학들은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어요. 미네르바스쿨을 보세요. 창의적이고 융합적으로 진행되고 있잖아요. 이제는 코칭과 함께 상호 러닝이 돼야 합니다. 교수와 학생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문화가 필요합니다. 교수는 코칭 멘토가 돼야지요. 지금 교육방식은 19세기 강의실에서 20세기 교수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치는 낡은 방식이라고도 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그걸 깨우쳐 줬어요. 시대가 교육·행정 시스템의 대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연대와 전환을 강조하셨습니다.

“총장의 강력한 책무 중 하나는 재무 안정성입니다. 재무 안정성이 좋아야 교육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수 있어요. 요즘 [와세다 대학의 개혁]이란 책을 읽고 있어요. 세키 쇼타로가 쓴 책인데 일본 사립대학 중 처음으로 재무제표 내용을 홈페이지에 상세히 실은 와세다대의 위기 대응에 관한 내용입니다. 와세다대는 1994년 재정이 파탄위기였죠. 위기를 통감하고 재무구조 개혁 운동을 벌여 일본에서 제일 건전한 사립대로 거듭났어요. 단기적으론 경비 삭감과 절감, 중장기적으론 수익구조 다각화를 추진했죠. 사립대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경영이 중요해요. 경영 감각이 없으면 재무 타당성을 따지지 않아요. 투자만 했지 어떻게 건질 것인지 생각을 안 하는 거죠. ”

코로나19 사태는 고등교육의 중대한 전환점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의 역할과 책무를 돌아볼 기회입니다. 대학의 존재 이유가 교육과 연구를 통해 더 나은 인류의 미래 건설에 있다면, 대학은 먼저 위기의 실체를 파악하고 극복 방안을 제시해야 할 책무가 있어요. 필요한 요건 중 하나가 재정 안정성입니다. 교육·연구·사회 기여의 책임을 다하려면 재정이 탄탄해야지요. 경희대는 중장기 위기 대응 계획인 ‘연대와 전환(KHU Contingency Plan: Overcoming for Transition)’을 수립해 거버넌스를 가동 중입니다. ‘연대와 전환’은 범 경희 차원에서 경제학자·재무관리학자·질병관리예방학자 등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보고서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 모여 위기 대응 보고서 마련


▎지난해 5월 경희대 개교 70주년을 기념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이 서울캠퍼스 평화의전당에서 열렸다. / 사진:경희대학교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입니까?

“‘온고잉’ 코로나 시대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합니다. 문명사적 전환을 하려면 사고방식부터 전환해지요. 콜라보레이션과 트랜지션이 핵심입니다.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과 협력하는 모드 전환입니다. 재무구조 개혁을 1차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재정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희학원 차원의 재정협력체계인 ‘파이넌스21(Finance21)’ 사업단을 꾸렸습니다. 외부 위험 요인 선제 대응, 범경희 협력체계 시너지 창출, 선진 재정구조 구축이 목표입니다. 법인·대학·의료원·사이버대 등과의 협력을 통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경비절감 운동도 벌일 겁니다. 구성원들에게 인기가 없겠지만, 교육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맞이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공감을 얻어 내려면 부지런히 소통해야죠. 세키 쇼타로가 얘기했듯 재정 정보의 투명성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합니다.”

재무 구조를 개편하려면 외부적 요인도 중요합니다.

“기부자에 대한 과감한 세제 우대조치가 필요합니다. 사립대는 자기책임과 자조노력으로 재정기반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부금에 대한 간결한 세제우대조치가 절실해요. 기부 절차 간소화, 개인소득공제 한도액 철폐, 증여나 유증 상속재산 기부 시 사업실시 유예기간 연장이나 사업목적 제한 철폐 같은 조치가 필요합니다. 수익사업을 법인 외에 대학은 못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 총장이 경희대의 컨틴젠시 플랜의 제1 목표로 재정 안정성을 꼽은 것은 그만큼 대학의 재정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국의 대학들, 특히 지방대들은 더 심각해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을 오아시스로 여긴다. 경희대도 29개 사업단과 사업팀을 꾸려 가동 중이다. 대학혁신지원사업(215억원)과 LINC+사업(190억원), 캠퍼스타운조성사업(100억원)을 수주했고, BK21 4단계 사업도 도전 중이다.

정부의 재정 사업이 다양하지만 개선해야 할 점이 있지요?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은 ‘통제 수단’ 성격이 강합니다. 평가지표에 정원감축 이행 여부, 총장 간선제 운용 여부, 등록금 인상률 등 사업 고유 목적과는 괴리가 있는 지표가 포함돼 있어요. 자율권 보장이 필요합니다. 재정지원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등록금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대학이 법적 허용 범위 안에서 등록금을 책정한다면 불이익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대학의 교지 경계선 내에 교육ㆍ연구 목적의 의학 계열 부속병원이 위치한다면 부속병원의 면적을 교지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해당 기준을 보완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부의 산·학·연 협력사업 참여 기준을 교지확보율 100%에서 90%로 완화하는 등의 현실적 방안도 필요합니다.”

한 총장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피터 드러커의 말을 꺼냈다. ‘경이로운 경희의 길’을 가기 위해선 미래를 창조하는 교육 혁신이 승부처라는 의미였다. “앞으로 AI시대에는 적합한 ICT 교육과 함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중요한 핵심역량 개발과 분석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해 사회 수요에 적합한 인재를 키우는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유연한 교육체제와 평생학습체제를 구축하며,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포인트입니다.”

신입생 대상 중요한 핵심역량 8가지 분석이 신선하네요.

“비판적 사고능력과 복합적 의사소통 문제해결 능력, 디지털 리터러시 등 8가지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능력입니다. 1차 검사에서 부족한 분야가 나오면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 배치합니다. 2학년 때 다시 테스트하고, 그런 식으로 반복하면 4학년 때는 4차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거의 갖추게 될 겁니다. 과정에 대한 인증서를 주면 기업도 반영할 수 있고요. 학력이 아니라 실력이 중요합니다. 요새 구글이나 아마존이 학력을 따지나요? 전문성이 실력입니다. 미네르바스쿨이 인기 있는 이유는 현실 역량을 키워주기 때문입니다. 경희대가 나아갈 방향입니다.”

한 총장은 인문학과 미래과학이 결합한 융·복합 교양교육프로그램을 신설해 교양교육과정을 혁신하겠다고 했다.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육과정 개편이 그 신호탄이다. 문명사적 전환기에 적합한 신규과목 개발을 독려하고, 실무형 교과목과 융합전공 교육과정을 확대하겠다는 설명이다.

온라인 강의 확대는 시대적 대세, 동남아 진출 기회도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70주년 기념식 모습. ‘문화세계의 창조’를 창학이념으로 하는 경희대는 ‘미래세대의 더 큰 미래’를 여는 담대한 도전에 나선다. / 사진:경희대학교
온라인 강의로 교육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좋은 계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1~2%에 불과하던 온라인 강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큰 소득입니다. 미국에서 무크(MOOC) 온라인 학위과정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도 한국 대학엔 위기입니다. 안으로는 학령인구 감소, 밖으로는 학생 유출 이중고가 몰려옵니다. 미네르바스쿨 같은 대학이 뜨면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의 예측처럼 전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경희대는 ‘e-캠퍼스’, 즉 온라인학습관리시스템(LMS: Learning Management System)을 구축해 원격수업 활성화에 나섰습니다.”

2학기에 수업이 정상화돼도 온라인 강의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온라인 강의는 주로 기초과목만 진행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런 관념을 깨야 합니다. 앞으론 지식전달 시스템 자체가 통째로 바뀔 겁니다. 우리는 사이버대를 가진 장점이 있어요. 경희사이버대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명품 강의가 많이 나올 수 있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론 벽이 있는데 어떻게 하실 것인지?

“규제를 풀어야 혁신이 활성화됩니다. 온라인 교육 제한(전체 강의의 20%)을 풀어야 합니다. 팬데믹은 지속적으로 오고 주기가 빨라질 수도 있어요. 동남아 국가는 학생 수가 급증하고 있어 온라인 쪽으로 K-열풍도 있어요. 국내 대학들의 진출 기회이기도 합니다.”

쌍방향 학습은 싱가포르 난양이공대가 앞서가고 있습니다. 미국 스탠퍼드대나 애리조나주립대도 모델이 되고 있고요.

“세 대학뿐만 아니라 버지니아대도 참조할 만한 모델이더군요. 버지니아대는 코세라에서 운영 중인 ‘MOOC Certificate’ 발급 수익만 2018년에 32억원을 올렸어요. 우리는 특화(Specialization) 온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호텔관광대, 한의과대, 국제교육원 한국어교육 등이죠. 스마트 팜, 기후변화, 인공지능 등 지구적 과제를 다룬 명품 온라인 강의도 준비 중입니다.”

경희대는 외국인 유학생이 많은데 상황이 어떤가요?

“1999년 국내 대학 최초로 한국어 교육프로그램인 한국어 학과를 개설한 것을 계기로 외국 학생 유치가 활성화됐습니다. 2020년 4월 1일 기준 학위과정 외국인 학생은 3700명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전년(4061명) 보다 8.9%가 줄었지만, 국내 대학 중 가장 많죠. 외국인 학생 감소 비상계획도 짜고 있습니다.”

경희의 국제화 상징이네요. 그런데 글로벌 대학평가에선 갈 길이 멉니다.

“연구실적과 평판도는 좋아지고 있습니다. 미래과학·바이오헬스·사회체육·문화예술·인류문명 등 5대 연계협력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학문 간 융·복합과 산학협력에 나서고 있습니다. 연계협력 클러스터는 우리의 강점 분야를 연결한 융·복합 교육·연구·실천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어요. 2018년 말 국내 최초로 개발한 우주기상 탑재체를 기상관측위성 천리안 2A호에 실어 발사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AI, 빅 데이터, 친환경 에너지, 차세대 통신, 생명공학, 신소재 등 미래산업 분야와 지구적 난제 분야의 석학을 영입해 학습공동체를 만들 겁니다.”

그러면서 한 총장은 “AI는 단순히 방대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분석하는 도구일 뿐”이라며 “인간다운 작업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알렉스 펜트렌트 교수가 언급했듯 AI 대신 EI(Extended Intelligence, 확장지능)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성과 감성이 들어간 창의성을 발현하려면 EI 교육이 필요합니다. AI를 활용해 더 창의적인 융합 활동을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거죠. ‘경이로운 경희’의 미래대학 가치이자 방향입니다.”

공대 강화에 역량 집중, 2025년 글로벌 100대 대학 목표


▎경희대 한의과대는 ‘경희한의 노벨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30년 안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한다는 목표다. / 사진:경희대학교
미래대학의 가치가 중요한 개념이네요. 방법론이 중요합니다.

“교육환경과 네트워크의 개방·공유입니다. 온라인 교육, 재택 학습, 탐방학습 등 교육시스템이 체험과 토론 형태로 바뀔 겁니다. 창의적 생각과 활동이 가능한 오픈랩(Open Lab)을 통해 취업·창업 역량을 강화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넓히려 합니다. 유엔과 NGO 등 국제기구와의 교류를 확대해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를 위한 글로벌 협력사업도 추진합니다.”

이공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경희대에도 공대가 있냐고 묻는 이들도 있어요.

“공대 강화는 숙원사업입니다.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선 이공계가 살아야 합니다. 세계대학평가 순위를 오는 2025년 100위권으로 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이공계열이 치고 나가야죠. 총장 취임 후 공대 학장에게 가능한 분야부터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재생에너지와 기후변화 특화 커리큘럼이 대표적입니다. 응용과학대·생명과학대·공대가 연계해 미래과학클러스터를 통한 이공계열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고 있어요. 단일 전공으론 안 돼요. 연합해야 합니다.”

MIT는 1조원을 투입해 AI대학을 설립했고, 하버드대는 전 교육과정에 AI를 도입했습니다.

“우리는 2017년 정부의 SW 중심대학 지원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V자형 융합 SW 인재 양성을 위해 SW 전공 학생은 물론 전교생에게 교육을 진행 중입니다. 각자의 전공에 SW라는 무기를 장착해 실력을 극대화하는 ‘SW부트캠프’를 가동 중입니다. 지난해 말 인공지능연구소도 설립했고요. AI대학원은 계속 추진합니다.”

경희대는 지난해 정부 AI대학원 지원사업에서 고배를 들었다. 국내 대학 최초로 대통령 부부(문재인 대통령 법학, 김정숙 여사 성악)를 배출한 대학이어서 기대가 컸다. “대통령이 도와주셔도 안 되지만, 도와주실 수도 없죠. 실력을 더 키워야지요.”

의대·치대·한의대·약대·간호대도 다 있습니다. 바이오 분야에서 뭔가 일을 내야지요?

“컨틴전시 플랜으로 재정사업단을 꾸린 배경입니다. 다양한 수익사업과 복합 연구를 활성화하는 전략을 짜고 있어요. 경희만의 장점이니 일을 낼 겁니다. 핵심은 미래과학과 바이오·헬스입니다.”

신문기자 출신 언론학자, 70년만의 선출직 모교 총장


▎경희대 국제교육원은 1993년 한국어교육 과정을 개설한 이래 매년 세계 100여 개국 6000여 명의 외국인과 재외 교포 학생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교육하고 있다. / 사진:경희대학교
코로나 사태로 고3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올해 입시 특징이 뭔가요?

“입시 부담을 덜어주려 전형을 단순화할 계획입니다. 교사 추천서를 폐지하고 전형도 축소합니다. 나이와 졸업 연도 등 지원 자격도 완화하고, 사회적 배려자나 지역균형선발 등을 통해 다양한 학생들에게 문호를 넓히려 합니다. 입시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중요해요. 전형자료 검증 절차와 전형 결과 검증을 강화하고, 전형 결과도 공개할 예정입니다.”

한균태 총장은 해직 기자 출신이다. 1980년 신군부에 항의하다 기자 생활 2년 만에 해직의 아픔을 겪었다. 한동안 방황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언론학자가 되어 경희대 교수가 됐다. 뜻하지 않게 기자의 길을 접었던 만큼 언론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지금도 집에서 신문을 5개나 열독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기자 출신의 언론학자, 그리고 최초의 직선제 모교 총장인 그는 “언론의 기본은 팩트 체크”라며 저널리즘 정신을 강조했다.


▎경희대 서울캠퍼스 전경.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본관, 평화의전당, 중앙도서관. 등록문화재(제741호)인 본관 중앙부는 1956년 7월 완공됐다. / 사진:경희대학교
20대 때 신문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언제, 어느 신문사였나요?

“신문방송학과 4학년 여름방학 때인 1978년 [현대경제신문](현재 [한국경제신문]) 시험을 봤어요. 군 복무를 마친 복학생이었죠. 한 번에 덜컥 붙었어요. 바로 출근하라고 해 그해 8월 8일 입사했어요. 시험 삼아 봤는데 붙었으니, 경험을 쌓다가 큰 곳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하다 보니 쉽지 않더군요. 6개월 수습기간 동안 특종을 3번 했어요. 주로 정부 경제 정책 관련 기사였는데 당시엔 엠바고도 없었죠. 상을 받고 나서 대기자가 되자고 결심했죠.”

그런데 왜 기자를 그만두셨나요.

“1979년에 10·26사태가 발생했어요. 전두환 신군부의 12·12사태로 이어져 나라가 백척간두였죠. 언론 통제가 심했어요. 매일 검열 받았죠. 그래서 [한국경제신문] 기자들과 함께 ‘언론 자유를 달라’며 의기투합해 혈서를 썼어요. 입사 8기들과 쓴 혈서 벽보를 회사에 붙였죠. 그랬더니 보안사에서 당장 해고하라고 난리를 쳤어요. 결국 1980년 8월에 그만뒀어요.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도 안 되더군요. 상심이 컸어요. 술도 마시고 힘들었죠. 그때 유학 간 여동생이 ‘반정부 세력으로 찍혔으니 공부하라’고 하더군요. 정신이 번쩍 들어 3개월 동안 죽어라고 토플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유타주립대에 유학 갔죠. 26살 때였어요.”

한 총장은 결혼한 뒤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1981년 5월이었다. 유타주립대에서 저널리즘 석사를 마친 한 총장은 미네소타 대학에 들어갔다. “영하 40도, 너무 추웠어요. 장학금도 많지 않아 경쟁도 심했고요. 그래서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텍사스주립대로 옮겼죠.” 1984년 텍사스로 내려간 그는 세계적인 언론학자들을 만났다. 어젠다 세팅의 창시자 맥콤스와 저널리즘의 뉴스 가치 모델 대가인 슈메이커와 리스 교수였다.

“슈메이커 수업을 들으면서 논문을 썼는데 내용이 좋다며 논문 제안을 했어요. 미국 언론학회에 같이 논문을 냈죠. 맥콤스 수업도 3과목 들었어요. 맥콤스가 지도 교수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학생이 너무 많아 빨리 지도해 줄 것 같지 않았어요. 서둘러 학위를 따 귀국해야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난감하더군요. 그런데 학과장인 리스 교수는 지도 학생이 없었어요. 그래서 부탁했죠. 당시는 저널리즘 전성기였어요. 아내가 내조를 잘했어요.”

유학생 한균태는 6개월 만에 박사학위 논문을 마쳤다.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박사 학위를 받자 저에게 연구 장학금(RA)을 주었던 웨인 다니엘슨 교수가 파티를 열어줬어요. 맥콤스·리스·슈메이커 교수도 참석해 축하해 줬죠. 마지막 논문 심사 때 위원장은 슈메이커였어요. 제가 텍사스주립대에 전설로 남아있어요. 교수들과의 신뢰가 구축된 덕분이죠.”

자신에게 찾아오는 기회, 함부로 걷어차선 안 돼


▎한균태 총장이 1987년 텍사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들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부터 세계적인 언론학자로 한 총장이 수업을 들은 슈메이커 교수, 리스 교수, 한 총장, 그리고 축하 파티를 열어준 다니엘슨 교수, 맥콤스 교수. / 사진:경희대학교
부인의 내조가 고맙기도, 미안할 것 같기도 합니다.

“미안하지요. 아내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했거든요. 경희대 출신으로 1호 신문방송학과 교수라는 상징성이 있으니 서둘러 귀국하자고 했어요. (웃으며) 아내가 ‘저는 놔두고 가세요’라고 했지만, ‘위험해서 안 된다’고 우겨서 귀국했죠.”

한국에 오신 게 1988년이네요.

“만 33세에 모교 교수가 됐으니 운이 좋았죠. 잠 안 자고 논문을 써서 리스 교수에게 심사를 요청했더니, ‘균태 같은 독종은 처음 본다’고 하더군요. 귀국하니 당시 [한겨레신문]이 창간했는데 해직 기자들이 같이 일하자고 해 고민도 했죠. 여건상 결국 학자의 길을 선택했어요. ”

기자에서 교수로 변신했는데 어땠나요?

“그땐 굉장히 말랐어요. 담배도 피우고 깐깐했죠. 처음에 복학한 83학번을 가르쳤는데 영어로 시험을 보게 했어요. 2주에 한 번씩 퀴즈를 냈어요. 죽을 맛이라고 아우성쳤지만, 실력이 부쩍 늘더군요. 당시 제자들은 친구처럼 같이 술 마시고 우리 집에서 자기도 했어요. 학생인지 교수인지 구분이 안 된 시기였죠. 공부는 강하게 가르쳤어요. 미국 대학 교재를 사용했죠. 유학 간 제자들이 같은 내용이라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며 고마워하더군요.”

한 총장의 신조는 ‘스스로 노력하자’이다. 인생의 전환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찾아오는 함부로 걷어차선 안 됩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기회는 찾아오는데 그걸 어떻게 활용하려고 노력하느냐에 따라 삶의 향방이 달라져요.”

언론계 선배로서 요즘 언론 상황에 대해서도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세 가지 조언을 했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은 진실성·공정성·객관성·중립성입니다. 원칙을 지키려면 팩트체크가 중요합니다. 요즘은 예전 언론인들 만큼 열정과 끈기가 적은 것 같아요. 발로 뛰는 노력이 부족해요. 손으로만 쓰는 기사는 발로 뛰는 기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모든 보도는 팩트에 기반을 둬야 합니다. 그다음은 품위와 품격입니다. 기자들은 저널리즘 원칙을 배우고 현장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큰 기자가 됩니다.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을 6년간 했는데 정정보도에 인색하더군요. 정정보도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철칙을 세워야 합니다. 그게 팩트체크의 기본에 충실하는 거고요.”

한 총장은 언론의 정파성도 경계했다. 저널리즘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하면 대중에게 외면당한다는 논지다. 뉴스에 사견이나 정파성을 달아서는 안 되고, 언론사의 입장은 사설이나 칼럼·논평을 통해서 전달하는 기본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들이 기사에 색을 넣으면 안 돼요. 그건 기자 직업윤리에도 어긋나요. 기자는 팩트 파인더입니다.”

※ 한균태 총장 약력


▎2016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당시 한균태 서울부총장(왼쪽)이 졸업생들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경희대학교
■ 1955년 서울 출생
■ 1979년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 1983년 미국 유타주립대 언론학 석사
■ 1987년 미국 텍사스주립대 언론학 박사
■ 1988년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2003~2005년 언론정보대학원장
■ 2009~2014년 정경대학장
■ 2014~2017년 서울부총장
■ 2017~2018년 대외협력부총장
■ 2020년 2월~ 제16대 총장

[주요 활동]
■ 한국언론학회장
■ 한국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공익자금관리위원
■ 방송문화진흥회 감사

※ 양영유 교육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와 한국외국어대에서 교육저널리즘으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중앙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교육데스크, 정책사회데스크, 사회1데스크, 행정국장, 사회에디터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마음은 따뜻하고 시선은 엄정해야 한다는 저널리즘 소신을 갖고 있다. 공저 [한국의 파워 엘리트]와 역서 [멀티미디어 조직혁명]이 있다.

- 사진 신인섭 선임기자 shinis@joongang.co.kr / 녹취 정리 심민규 인턴기자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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