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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오작교 놓을 만큼 영리한 까막까치 

 

일부일처로 평생 지내는 까치… 수백 마리 눈 마주치며 집단 맞선
겨우내 먹을 식량 숨겼다 잊기도… “까마귀 고기 먹었나” 속담 유래


▎입에 먹이를 문 까마귀 뒤를 다른 까마귀가 뒤좇고 있다.
까막까치란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한자로는 오작(烏鵲)이다. 그래서 칠월칠석날 저녁에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하기 위해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에 놓는다는 다리가 오작교(烏鵲橋)가 아니던가.

먼저 까마귀부터 보겠다. 머리 위를 떼 지어 맴돌면서 죽음을 부른다는 깍깍하는 살기 밴 날카로운 까마귀 소리에 얼른 고개를 치뜨고 공중에다 대고 폐, 폐, 폐 세 번 침을 내뱉는다.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인은 까마귀를 길조(吉鳥)로 여기지만 우리는 흉조(凶鳥)로 삼는다. 하지만 우리도 한때는 까마귀를 신성한 동물로 취급했다. 고구려 때 ‘태양 안에서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를 ‘금오(金烏)’, ‘삼족오(三足烏)’라 하여 힘의 상징으로 여겼고 용이나 불사조보다 윗길로 쳤다.

속담에 ‘까마귀가 아저씨 하겠다’란 손발이나 몸에 때가 너무 많이 끼어서 시꺼멓고 더러운 것을 놀림조로 이르고,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라면 반갑다’란 자기가 오래 정들인 것은 무엇이든 다 좋음을 빗댄 말이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 까마귀는 무려 42종이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텃새로는 까마귀(Corvus corone)와 큰부리까마귀가 있고, 늦가을에 북쪽에서 내려왔다 봄에 돌아가는 겨울 철새인 갈까마귀와 떼까마귀가 있다.

까마귀(crow)는 까마귓과(科)에 속하고, 보통 무리생활을 한다. 몸길이는 50㎝이며 날개 길이는 32~38㎝로 수컷이 암컷보다 다소 크다. 온몸은 보랏빛 윤기 나는 검은 깃털로 덮여 있으며 다리·발·부리까지도 새까맣다.

까마귀 새끼는 충분히 성장하고도 얼마 동안 멀리 떠나지 않고 어미들 가까이에 머물면서 먹잇감을 물어다 어린 동생들을 먹이면서 정성껏 돌본다고 한다. 직접 어미를 먹이지는 않지만 이렇듯 어미를 거들기에 반포지효(反哺之孝)를 다하는 거룩한 효조(孝鳥)다! 말하자면 ‘까마귀의 은혜 갚음’은 그냥 하는 뜬 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까치다. 까치가 울면 좋은 조짐(길조, 吉兆)이 생긴다고 믿었던 상서로운 새였다. 그런가 하면 유난히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을 ‘아침 까치 같다’하고, 허풍을 잘 떠는 사람을 ‘까치 뱃바닥 같다’고 비꼰다.

길조(吉鳥)였던 까치는 지금 와서는 천하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과수원의 과일을 파먹어 피해를 주며, 철탑 전봇대에 집 지으면서 물어온 철사가 정전을 일으킨다고 총 쏘아 죽이기에 이르렀다.

까치(Pica pica serica , Korean magpie)는 까마귀와 함께 까마귓과에 속하는 텃새로 한자어로 작(鵲), 희작(喜鵲)이라 한다. 몸길이는 45㎝, 날개 길이는 19~22㎝ 정도로 까마귀보다 조금 작은데, 꽁지는 26㎝에 달할 정도로 길다. 까치의 날개 끝은 짙은 보라색이고, 꼬리는 푸른 광택을 내며, 어깨 깃과 배는 흰색이고, 나머지는 죄다 검다. 얼마나 예쁜 배색(配色)인가.

까치는 일부일처로 부부의 정이 돈독하고, 평생을 같이 한다. 그리고 겨울 동안에 그해 태어난 수백 마리가 떼를 지우니 이때 서로 눈을 맞추고, 얼굴을 익히는 집단 맞선보기(marriage meetings)를 한다. 까치는 잡식성이라 쥐 따위의 작은 동물을 비롯해 곤충·나무 열매·곡물 등 닥치는 대로 마구 먹고, 과수원에도 달려들어 제일 맛있는 것을 파먹는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 알아보는 까치


▎한 농가 감나무 위에서 까치가 홍시를 먹고 있다.
까마귓과 새들은 준비성이 있는 편이다. 가을철이면 한겨울에 먹으려고 먹이를 물어다가 양지바른 곳의 잔디나 돌멩이 나무 틈새에 몰래 쑤셔 넣어둔다. 그런데 이듬해 봄까지 끝내 그것을 모두 못 거둬 먹고 마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어디다 숨겼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고 하는데, 본디 건망증인 사람을 놀릴 때 쓰는 말이다.

이제 까마귀·어치·까치·물까치·꾀꼬리 따위의 까마귓과 조류와 앵무새(parrot) 무리는 날짐승 중에서 지능이 가장 높은 새라는 것을 소개하려 한다. 물론 까막까치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조류 중에서 가장 머리 좋은 새는 까마귀(raven)·어치(jay)·까치(magpie)이고, 타조·닭·비둘기 순으로 둔해진다. 머리 좋은 새들은 죄다 다른 새나 사람 소리도 흉내 낸다.

사실은 까막까치도 ‘새대가리’란 말처럼 뇌(brain)가 매우 작고, 대뇌피질(cerebral cortex)도 없어서 지능적 행위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뇌의 뒤편에 포유류의 대뇌피질과 같은 인지(認知)기능 역할을 하는 너도팔리움(nidopallium) 부위가 있어 감각, 인지능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촘촘한 뉴런(neuron)으로 인해 작은 뇌의 단점을 보완하게 됐다. 그런데 까마귀나 까치의 니도팔리움의 크기가 놀랍게도 침팬지와 거의 맞먹는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런 실험도 했다. 까치 목에 노란 스티커(sticker)를 붙이고, 거울 앞에 놓아주자마자 발로 문지르고, 목을 바닥에 비벼서 스티커를 떼 내버리고서야 안정을 찾는다. 이렇게 까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정도(mirror self-recognition)로 똑똑하다.

나도 어릴 적에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내 키만 한 거울을 마당에 들고 나가 수탉 앞에다 세워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당장 눈알을 부라리고, 목을 끄덕거리며 거울에 다가서더니만 마구 거울 유리를 박찬다. 거울에 비친 수탉 놈이 자기를 노려보고 달려드는 것으로 알았던 게지. 까치보다 머리가 한참 아래인 수탉이다.

영리하기 짝이 없는 까치는 제가 사는 동네 사람들의 몸차림이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어서 낯선 사람이 마을 어귀에 나타나면 깍깍 울어 젖힌다. 실은 여기에서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2006호 (2020.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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