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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 논설위원의 ‘온 리버티(on liberty)’] 한국 보수의 길을 묻다(2) 미국의 ‘파운더스(Founders)’ 

가노(家奴)들 풀어준 ‘18세기 부르주아’ 조지 워싱턴 

영국 제국주의 맞서 ‘자유’ 전면에… 수정헌법 제1조로 명문화
대통령 연임 거부하고 다양성 옹호하는 등 ‘자유주의 선구안’ 가져


▎미국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새겨진 미국 러시모어 산 국립기념지. 왼쪽부터 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에이브러햄 링컨(16대). / 사진:REUTERS/연합뉴스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미래통합당을 개혁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고심 중입니다. 30대 청년과 여성 등 새로운 인물을 비대위원으로 발탁하며 혁신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죠.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더 이상 ‘보수’나 ‘우파’를 강조하지 말자면서 “일반적 변화가 아닌, 엄청난 변화만이 대선 승리의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2022년 대선까지 통합당의 대대적인 변신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지난 호에서 ‘온 리버티’는 보수와 진보의 뜻이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관부터 홉스·로크·루소의 사회계약론을 비롯, 마르크스의 사적유물론까지 따져봤죠. 그러면서 국가와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 개혁을 위한 방법론의 차이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나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보수와 진보는 그 자체가 어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특정 가치와 철학이라는 내용물을 담는 그릇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안에 담길 내용물은 달라져야 합니다. 부르주아 계급을 대변했던 영국의 보수당이 19세기 선거권 확대를 주장하며 국민정당으로 탈바꿈하고 20세기 초 노조를 끌어안으며 좌우의 넓은 스펙트럼을 갖춘 것처럼 말이죠. 아울러 미국의 민주당이 19세기 남북전쟁에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링컨의 공화당과 맞서 싸웠다고 해서 현재도 그와 같은 낡은 사고에 빠져 있진 않습니다.

그릇에 담기는 철학과 가치, 이데올로기는 보수와 진보 모두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에게 변하지 않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입니다. 보수는 역사와 사회를 바라볼 때, 또 현실적 문제의 해답을 얻는 과정에서 집단지성을 강조합니다. 즉 소수 엘리트가 유토피아를 꿈꾸며 설계한 계획대로 세상이 변하지 않으며, 그 어떤 똑똑한 개인도 집단의 문화유산인 전통과 관습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믿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완전한 진리를 알 수 없고 완벽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죠.

보수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각자의 개성을 가진 개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수많은 논증과 반박이 오가는 토론 속에서 발견됩니다. 결코 어떤 한 천재가 만든 그림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수에게 제일 중요한 가치는 자유입니다. 그래서 존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에서 ‘사상의 자유경쟁시장’에서 만들어진 생각과 이념이 진리에 가장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가능한 많은 주장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치열한 토론에서 살아남은 주장만이 그 시대의 진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시대가 바뀌면 진리의 자리를 내줘야 합니다. 이는 종교적 교리와 도덕적 윤리, 과학적 이론도 마찬가지죠. “반증 가능성이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카를 포퍼의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이처럼 자유는 점진적으로 세상을 바꿔 나가려는 보수에게 있어 없어선 안 될 가치입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가 어떻게 보수의 본질적 가치로 자리 잡았는지, 한국의 상황은 어땠는지 하나씩 따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식민지 장교와 영국 제국주의


▎미국 뉴욕 공립도서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1779년 토머스 제퍼슨이 집필한 독립선언문 원고를 관람하고 있다. / 사진:UPI/연합뉴스
18세기 중엽 당시 영국령이었던 현재의 버지니아 주(미국)엔 유독 모험심이 강한 소년이 한 명 있었습니다. 소년의 꿈은 탐험가가 되는 것이었지만 11세 때 아버지를 여의며 집안 농사를 책임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모험가가 되고 싶은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더 큰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탐험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런 소년에게는 한 명의 멘토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복형인 로렌스입니다. 14살 연상이었던 로렌스는 소년에겐 삶의 모델이자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죠. 영국군 장교인 로렌스를 따라 그도 역시 성인이 되면 군인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20세 되던 해 형과 함께 군복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입대한 지 몇 달 만에 자신의 멘토였던 로렌스를 전장에서 잃고 맙니다.

형의 죽음을 맞이한 소년은 갑작스러운 비극을 맞이했지만, 결코 상심하지 않았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딛고 마음에 난 상처를 스스로 다독이며 열심히 군 생활을 했습니다. 특유의 집념과 열정으로 전쟁에서 활약했지만, 식민지(미국) 출신이 영국군에서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그는 제대 후 고향에 돌아와 버지니아 주의 하원의원이 됩니다.

정치인이 된 그는 영국의 부당한 식민통치 현실에 눈을 뜹니다. 뜻이 맞는 의원들과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1774년 ‘대륙군(Continental Army, 독립군)의 총사령관이 됩니다. 그의 군 시절 경험은 이때부터 진가를 발휘합니다. 1775년 시작된 전쟁에서 독립군의 지휘를 맡아 혁혁한 공을 세우죠. 그리고 1783년 이들은 영국으로부터 13개 주의 연방국가로 독립을 인정받습니다.

훗날 독립 영웅으로 추대된 그는 6년 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바로 미국의 국부인 조지 워싱턴(1732~1799)입니다. 그는 링컨, 루스벨트와 더불어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입니다. 그런 그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미국의 정신과 가치를 바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유’에 대한 워싱턴의 철학은 미국을 자유세계의 수호자로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군 시절 식민지 출신이어서 차별을 받아야 했던 경험부터 식민지를 착취하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기까지 워싱턴이 평생 추구했던 가치는 자유였습니다.

워싱턴은 자유를 구속하는 노예제에도 일찌감치 반대 입장을 가졌습니다. 다만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와 달리 이를 찬성하는 남부 사이에서 갈등이 커질 것을 우려해 정치적으론 이를 강하게 주장할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진적인 노예제의 폐지를 주장했던 워싱턴은 그가 죽으면서 자신의 노예를 자유인으로 풀어주고 유산까지 남겨줬습니다.

워싱턴뿐 아니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정치적 가치도 자유였습니다. 독립전쟁 또한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국가적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었죠. 이 같은 정신은 ‘파운더스(founders,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패트릭 헨리(1736~1799)의 명언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에 잘 집약돼 있습니다.

사실 자유주의는 영국·프랑스의 보수층인 부르주아가 만들어낸 정치적 산물입니다. 부르주아는 절대왕권과 맞서 싸우며 법의 지배와 삼권분립 등의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 기본이라고 믿는 선거제도와 정당정치 등을 가능케 했고요. 이처럼 민주주의 역사에는 시민의 자유를 위해 최전방에서 투쟁했던 부르주아, 즉 ‘보수주의자’가 있었습니다.

결국 보수주의의 본질은 자유주의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양성과 개방, 관용 등의 가치입니다. 국민 개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때 국부가 가장 커질 수 있으며(애덤 스미스), 국가 권력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시민의 자유가 보장돼야 사회가 바로 선다(에드먼드 버크)는 이론 모두 자유를 강조하고 있죠. 주지하다시피 스미스와 버크는 모두 경제·정치 분야에서 보수주의의 이론적 기틀을 제공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자유주의는 어떻게 보수의 핵심 이념이 됐을까요? 왜 보수는 시민의 자유를 강조하는 걸까요. 앞서 보수와 진보는 그 자체가 이념이 아니라 내용물을 담는 그릇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일종의 ‘성향과 태도(attitude)’란 이야기죠.

美 수정헌법의 첫마디는 ‘표현의 자유’


▎미국 남북전쟁 당시인 1862년 7월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선언문 초안을 회람하고 있는 각료회의 장면(프랜시스 카펜터의 1864년 유화).
에드먼드 버크(1729~1797)의 설명에 따르면 진보는 소수의 엘리트가 미래를 설계하고 그들의 의지에 따라 세상을 바꿔 갈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반면 보수는 세상이 설계도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전통과 문화를 중시하고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죠.

그런데 여기서 ‘전통’은 영국의 정치철학자 로저 스크러튼의 말처럼 “어느 한순간, 한 개인에 의해 창조될 수 없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합리적 보수를 찾습니다])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개인의 성취가 쌓이고 모이면서 한 사회의 문화적 유산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이를 위해선 “시민 개개인의 개별성이 존중되고 이들의 능력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자유주의적 토양이 마련돼야” 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그렇기 때문에 보수는 필연적으로 시민의 자유를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진보가 자유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진보주의자는 자신이 설계한 이상대로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해 과거로부터 내려온 전통과 유산보다는 인위적으로 새롭게 만든 제도와 규칙을 더욱 필요로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개별성보다는 공동체의 목표가 더 중시되고, 아울러 자유보다 평등에 큰 방점을 찍습니다.

결국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보수와 진보,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균형 있게 사회 전반에 녹아 있어야 합니다. 20대 국회의장이었던 문희상은 취임 당시 인터뷰에서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자유’의 가치를 생명으로 하는 보수와 사회가 존재하는 한 진보가 강조할 수밖에 없는 ‘평등’의 가치는 영원히 함께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죠. (중앙일보 2018년 6월 17일)

즉, 보수에게 ‘자유’는 가치의 심장입니다. 다시 미국 건국 아버지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그들 또한 자유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적 전통 아래 나라를 세웠습니다. 경희대 미래문명원장을 지낸 안병진 교수(미국정치학)는 “근대 혁명은 훗날 좌파의 전통이 된 프랑스혁명과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원조가 된 미국의 독립혁명으로 나뉜다”며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은 오늘날 보수주의자의 원조”라고 말합니다.

이 같은 정신이 잘 드러나 있는 게 1776년 발표된 독립선언문이죠. 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천부인권, 국가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주권재민, 잘못된 국가는 전복할 수 있다는 저항권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시민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장치로 나온 게 ‘수정헌법 1조(표현의 자유)’이고요.

“종교와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롭게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해 정부에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이처럼 미국은 건국 때부터 자유주의적 전통 아래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의 좌파적 시각에서 보면 미국의 정치 지형 자체가 ‘우클릭’ 돼 있죠. 실제로 유럽에선 ‘사회주의’ 정당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미국에선 비주류입니다. 이는 미국 건국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즉,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은 유럽과 달리 아일랜드계·유대계 등 민족별로 분열돼 있어 노동자들이 계급화된 정치 주체로 나설 수 없던 것이죠. 또 노력만 하면 누구나 계층 이동이 가능한 ‘아메리칸 드림’은 이런 계급 구조를 공고화하기에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결국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겐 ‘자유주의가 곧 민주주의’며 이 같은 정신은 지금까지 보수주의의 가장 근본적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유를 강조하는 파운더스의 사상이 명확한 정치철학으로 자리 잡은 것은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1743~1826) 때입니다. 그는 보수당의 원조인 민주공화당을 창당해 연방주의를 반대하며 대신 각주의 독립과 개별적 운영을 강조했습니다.

‘자유주의가 곧 민주주의’


▎당명에 ‘자유’를 넣었던 보수 정당들의 대선 후보 포스터. 왼쪽부터 자유당(4대)· 민주자유당(14대)· 자유한국당(19대).
연방의 힘이 세지면 영국처럼 중앙집권적 권력이 탄생하고 이는 또다시 제국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죠. 제퍼슨은 “이상적인 정부는 가장 적게 간섭하는 정부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길을 스스로 찾아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파운더스의 자유주의 정신은 훗날 공화당의 링컨 대통령으로 이어지고 남북전쟁을 통해 노예제를 폐지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오늘날 자유주의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밀의 생각과도 비슷합니다. 1859년 출간된 [자유론]은 정치·사회적 자유의 뜻과 필요성을 역설한 자유주의의 교과서죠. 이전까진 주로 철학의 영역에서 ‘의식의 자유’가 논의됐고, 한 세기 전의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관점에서 ‘경제적 자유’를 논했습니다. [자유론]은 개인의 자유, 특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타인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에서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다양하고 새로운 생각들이 많이 나와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밀은 진리에 이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유로운 토론이라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치열하게 치고받는 과정을 거쳐야 더욱 합리적인 의견에 다다를 수 있죠. 만일 A라는 주장에 대해 B라는 잘못된 반박이 나온다 하더라도 결국 A는 그 정당성을 더욱 분명히 더욱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자리 잡습니다. 이와 같은 과정이 반복되면서 인간의 역사는 발전합니다.

‘자유’의 탈을 쓴 한국의 반공주의


▎지난해 12월 14일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를 비롯한 당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장외집회를 마친 뒤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금까지 워싱턴부터 제퍼슨까지 미국의 건국 과정과 그에 담긴 정신, 그리고 밀의 [자유론]까지 살펴봤습니다. 이를 통해 보수의 본질은 자유주의라는 것을 짚어봤죠.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의 보수 정당들도 당명 앞에 ‘자유’라는 표현을 쓴 경우가 많습니다. 이승만 시절의 자유당부터 1990년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 이후 김종필이 탈당해서 만든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또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미래통합당 이전의 자유한국당까지 보수 정당은 자유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은 이들에게 진정 ‘자유’의 정신이 깃들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즉,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강조했던 것과 같은 자유주의적 전통과 문화가 지금의 보수 정치인들에게 녹아 있느냐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현재의 보수 정당은 시장의 자유,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는 강력한 지지의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 개인의 자율과 개별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자유, 그 어떤 사상과 표현도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는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며 삶의 준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해 자유를 비롯한 그 안에서 파생되는 관용과 개방, 다양성의 가치를 지금의 보수 정치인들이 과연 생명처럼 여기고 있을지 의문이란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보수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검찰을 개혁하고, 부패한 관료사회와 편법이 난무하는 기업 관행을 바로 잡는 일은 보수와 진보 모두의 역할입니다. 다만 그 방법과 속도에 있어서 다를 뿐이죠. 그렇다면 진보와 차별화된 보수의 정체성, 그 본질적 가치는 무엇인가요. 핵심 가치가 정해져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입장과 대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보수 정당이 원칙도 명분도 없이 그저 반(反) 문재인, 반(反)김정은만 외친 것은 스스로 체화한 공통의 가치, 즉 이것만은 꼭 지켜야 하겠다는 정치철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철학이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살펴본 자유주의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보수는 역사의 발전이 뛰어난 소수 엘리트(한국의 진보로 치면 586 운동권 및 강남좌파)의 설계도대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것은 단순히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 선배들이 그런 문화를 만들고 지켜온 이유는 그만큼 정당성과 효용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주장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살아남은 이론만이 당대를 대표하는 시대정신이 됩니다.

워싱턴이 국부인 이유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6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정원석 청년비대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자유주의는 시민 각자의 자유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양성과 개방성, 관용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습니다. 집단보다 개인을, 통제보다 자율을, 획일성보다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국가가 대중을 획일화하고 통제할 때 이로부터 시민의 인권과 권리를 지켜내고 이를 실천할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이 진짜 보수가 할 일입니다.

특정 정치인의 팬덤이 지식인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신문에 비판적 칼럼을 쓴 인사를 비난하며 ‘신상털기’를 하는 등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화 되는 것을 가장 앞장서서 막아야 할 이들이 자유주의자이며, 곧 보수주의자입니다. 외국어고·자사고를 폐지해 학교 다양성을 없애고 획일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아니다, 모른다’고 발뺌하며 거짓 뉴스와 음모론을 진실처럼 내세우는 ‘가짜 민주주의’와도 치열하게 투쟁해야 합니다.

지금의 보수는 자유주의라는 철학과 가치의 무기로 중무장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지성주의를 무너뜨리는 포퓰리즘 세력에 대항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이성과 합리를 마비시켜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가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유주의가 사회 전반과 시민 각자에게 뿌리내려야만 민주주의의 장래가 밝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에겐 애석하게도 이런 자유주의의 지적 전통이 일천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 호에선 한국의 보수에 자유주의가 왜 빠져 있는지,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워싱턴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처음 미국이 독립했을 때 사람들은 전쟁 영웅 워싱턴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선거를 통한 대의제를 제안했고 초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1797년엔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때도 국민은 그의 연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에게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국민이 있었고 강력한 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퇴진을 선택했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의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권력을 잡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아름답게 물러나는 것입니다. 이는 정치의 목표가 자신의 영달이나 공명심을 채우기 위한 게 아니라 오직 국민과 국가를 위할 때 가능한 일이죠. 권력은 소금물과 같습니다. 마실수록 갈증이 커지기 때문에 처음에 선했던 의도도 언젠가는 권력에 취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그 때문에 권력자는 자신의 권력에 취해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또 자신이 물러설 때를 알고 다음 세대에게 그 역할을 넘겨주는 아량과 혜안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보수의 재건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제일 먼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요.

※ 윤석만 논설위원/중앙일보 -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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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호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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